나는 뜨끔한 마음에 재빨리 변명했다.
“<신의 유희>는 엄밀히 말하면 롤플레잉 게임이야.”
시뮬레이션과 롤플레잉을 합한 장르인데 이 정도 규모의 세계관은 당연하지!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큰 규모의 세계관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베테랑 개발자 없이 의욕만 가득한 팀원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게임은 착실히 산으로 가버렸다.
장르마저 바꿔야 할 정도로.
젊음과 수명을 갈아 넣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열정의 결과로 나와 팀원들은 죽어라 철야를 거듭했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짓이었다.
오즈월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만 다음 주제로 넘어가죠.”
제작 비화 같은 건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테레제 양은 오늘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을 모두 만났는데, 누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었다.
다들 원화와 실물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점에서 놀랐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글쎄.
‘이성적인 호감이 들진 않는데.’
외모가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고, 혹은 내가 연애에 관심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내가 한 사람을 콕 집어내지 못하자 오즈월드가 갸웃했다.
“연애는 해보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짝사랑해본 적도 없습니까?”
“…응.”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굴더니 그런 점까지는 알지 못하는 건가.
하긴. 오즈월드는 전지전능해 보이지만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내 속마음까진 읽지 못하는 것 같긴 했다.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주제를 넘겼다.
“그럼 이상형을 이야기해보죠. 남자 주인공 중에서 가장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가 누굽니까?”
“……없어.”
오즈월드는 나직하게 탄식했다.
‘로맨스 방송인데 안일한 대답이었나.’
문득 성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인터뷰 자리인 만큼 쓸만한 대답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형이라……. 그런 건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데.’
취지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신의 유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말해도 괜찮겠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조연 중에서 이상형이 있기는 해.”
“앞으로 흥미진진하게 볼 관전 포인트가 되겠군요. 누구인가요?”
“펠릭스 록하트 교수. 식물원 같은 연구실을 가진 사람이야. 동물과의 교감 능력도 뛰어나지.”
이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단지 신기한 연구자를 향한 관심에 불과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긴 했다.
나는 짤막하게 남자 주인공들에 대한 감상을 덧붙였다.
“아직 황제 캐릭터가 나오지 않긴 했지만, 오늘 남자 주인공 셋을 보니까 다들 굉장했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조형해낸 인물이 실체를 가지니 몹시 인간답지 못한 미모를 지니게 되어 다소 이질적이기는 했다.
“조금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다 마음에 들어. 우리 팀이 만든 캐릭터니까.”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심지어 나는 빙의하게 되어 몹시 유감인 테레제에게조차 애정을 느꼈다.
테레제는 내가 싫어하는 면을 총망라한 캐릭터였다.
그런데도 사무치는 외로움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괴로울 만큼 이해돼서 함부로 미워할 수 없었다.
오즈월드는 내 진심을 이렇게 평가했다.
“흔한 감상이네요.”
참 기이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상의 콘텐츠에 대한 감상을 말한 게 아니었다.
내게 일어난 현실에 대한 진심을 말했다.
그게 흔한 감상이라니. 천지개벽할 이 상황이 흔해 빠진 일일 수가 있다니.
나는 오즈월드가 인간에 특별히 무자비한 신 같았다.
러브 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신처럼 말이다.
이 남자야말로 내가 오늘 마주한 남자 주인공들보다도 훨씬 위험했다.
당장 나를 어찌할 수 있는. 아니, 이미 어찌하고 있는 존재였으니.
오싹한 자각을 느낀 순간 등 뒤로 소름이 쭉 끼쳐 올랐다.
그의 질문은 나를 하찮고 무력한 존재라는 걸 되새기게 하는 면이 있었다.
어쩌면 일부러 그러는 걸지도 몰랐다.
나를 굳이 테레제라고 부르는 걸 보면.
‘어차피 오즈월드에게 내 말은 다 진부하게만 들리겠지.’
무슨 대답을 해도 오즈월드는 ‘흔하게’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질문을 받는 쪽이 되면 어떨까?
‘내가 역으로 오즈월드를 인터뷰하면 더는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될 테고.’
꽤 괜찮은 생각 아닌가?
오즈월드에 열광하는 성좌의 수가 어마어마했으니 대부분 인터뷰를 좋아할 것 같았다.
“나도 궁금한 게 있어.”
오즈월드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물어보세요.”
“로맨스 방송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었지. 해보니까 어떤 것 같아?”
이렇게 물으면서도 좋은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내 속을 확 긁어놓을 무례하고 공격적인 말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직은 로맨스랄 게 없지 않았나요? 하지만 뭐, 솔직히 지루할 줄 알았는데 꽤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조금은 뜻밖의 대답이었다.
“취향이 아니라더니.”
내 온건한 표현에 오즈월드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짧게 웃었다.
“여전히 로맨스가 좋은 건 아닙니다. 제가 신선하고 재밌다고 느끼는 건 당신이니까요.”
오즈월드는 웃음기가 사라진 눈으로 날 직시했다.
“당신의 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테레제 양.”
어처구니없는 팬 타령에 하마터면 코웃음 칠 뻔했다.
‘성좌들이 보고 있다고 립서비스도 하네.’
본인이 관리하는 방송의 흥행을 위해 애정을 내비치는 거겠지만, 그가 내 팬이 된다고? 빈말이라도 불쾌했다.
‘다음 질문이나 생각하자.’
저 남자가 헛소리를 더 늘어놓기 전에 진짜 궁금했던 걸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궁금한 게 있어. 이 방송이 흥하려면 내가 다른 성공한 채널들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아?”
이런 일은 시장 조사가 필수적이었다.
한데 나는 다른 채널은 어떤 게 있는지, 로맨스가 유행이라는데 어떤 로맨스가 유행인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내 의문에 오즈월드는 가소로움을 숨기지 않았다.
“다분히 인간적인 관점이군요.”
인간적인 관점.
이건 휴머니즘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한참 미개한 종족이 할법한 미개한 발상이라는 뉘앙스였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찡그리자 그는 관용을 베푸는 태도로 설명했다.
“우선 당신은 시청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이건 개인 방송이 아니라는 점도요. 말했잖아요? 저는 방송국 PD와 비슷한 존재라고.”
오즈월드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띠링!
[퀘스트: 학생회 가입]
▸보상: +100,000코인
▸실패: 통학
지난번, 샤티 부인과 세 명의 귀부인에게 인사를 해야 했을 때 이후로 처음 뜬 퀘스트 창이었다.
나는 실패 부분을 보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목숨 아까운 줄도 모르고 오즈월드에게 감히 쌍욕을 퍼부을 것 같았으니까.
‘클라이드에게 앞으로 덜 얼쩡거리겠다고 말한 게 고작 한 시간 전인데, 학생회에 가입하라고?’
날 엿 먹이려고 작정한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새끼.
오즈월드는 내게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라고 말했다.
“BJ가 낯선 세계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만큼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게 없죠. 그러니 당신처럼 사랑을 애걸복걸하는 타입일수록 방송은 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
“말했잖아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라고. 지금껏 보답받지 못했던 구질구질한 당신의 지난 인생과 달리 지금은 충분히 돌려받을 요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까?”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온 전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나는 뜨겁게 충혈된 눈으로 오즈월드를 노려보며 물었다.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해…?”
광대가 되어 코인을, 관심을 구걸하는 게 사랑이야?
오즈월드가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테레제 양. 당신이 가장 바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기꺼이 무대를 마련해주었잖습니까. 마음껏 사랑받으라고.”
그는 내가 지난날 동안 가족들에게 갈구했던 애정과 성좌들이 던져주는 코인을 똑같이 취급했다.
우스웠다.
그에게 사랑이 뭔지 아냐고 물은 나 자신이 너무나도 우스워졌다.
저딴 인간도 아닌 새끼한테.
내가 말없이 분노로 몸을 떨고 있으니 오즈월드가 시계를 힐끗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킷 단추를 잠갔다.
퍽 우아한 동작이었다.
“아쉽지만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해야겠군요.”
오즈월드는 내게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볼에 입 맞추려는 거였다.
그의 입술이 닿기 전, 나는 고개를 비틀었다.
지금만큼은 도저히 역겨움을 참으면서까지 입맞춤을 견뎌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즈월드는 잠깐 멈칫하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양 중얼거렸다.
“아아. 당신의 문화권은 비쥬가 익숙하지 않았던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그 순간.
꽈악!
“읏…!”
오즈월드의 억센 손길에 턱이 붙들려 강제로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의 짙푸른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말입니다, 테레제 양. 감히 제 인사를 피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의 인사법 따위를 일일이 맞춰야겠습니까?”
“…….”
나는 입술에 선명한 자국이 남도록 세게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한 차례 뜨겁게 달아오른 눈에서 분노에 절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오즈월드는 그런 나를 놀리듯 뺨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행운을 빕니다. 테레제 양.”
그 말을 끝으로 오즈월드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