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3/277)

5. 인터뷰

나는 학교 식당으로 가서 샌드위치를 포장해 기숙사로 돌아갔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엘로이즈가 다가왔다.

다녀오셨어요아가씨저녁 식사는…… 어머포장해오신 건가요?”

나는 손에 든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혹시 몰라서 네 것도 가져왔는데먹을래?”

엘로이즈는 내 행동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순순히 봉투를 받으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너무 감사하죠그렇지 않아도 저녁 식사를 주문하러 갈 생각이었거든요아가씨께서도 이걸로 드시려고요?”

간단하게 먹고 싶어서난 방에서 혼자 먹을 테니까 이만 쉬어.”

알겠습니다편히 쉬세요.”

나는 2층 침실로 올라갔다.

후아.”

침실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감정이 섞인 한숨이 나왔다.

오늘 중 처음으로 완전한 적막과 고요가 찾아왔다.

물론 성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익숙해져서인지꽤 무감각해졌다.

일단 화장대 위에 책부터 내려놓으며 뻐근한 어깨를 풀었다.

피곤해…….”

이대로 샌드위치를 먹어 치우고 남은 책을 읽으며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잘 다녀왔습니까테레제 양.”

젠장.’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옆을 돌아보자마자눈가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또 오즈월드였다.

오늘도 광고 영상을 틀었나 봐.”

애써 짜증을 삼키며 묻는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오즈월드는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다가와 내 손등에 키스했다.

테레제 양이 이렇게나 열심히 임해주는 덕에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서 말입니다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보려고요.”

당연하지만 내게 양해를 구하지 않은 행위였다.

그가 뺨이든 손등이든 자꾸 스스럼없이 입을 맞추는 게 몹시 불쾌했다.

나는 오즈월드가 손을 놓아주자마자 은근슬쩍 치마에 손등을 닦았다.

그때 오즈월드가 내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휙 낚아채 갔다.

이건 뭐죠?”

나는 순식간에 비어버린 손을 움찔했다.

내 저녁 식사야이리 줘.”

내가 돌려 달라는 듯이 종이봉투를 향해 어정쩡한 동작으로 손을 뻗는 사이 오즈월드가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샌드위치로군요.”

오즈월드는 샌드위치가 든 봉투를 뒤로 집어 던졌다.

!

샌드위치는 봉투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엉망으로 나뒹굴었다.

덕분에 내 기분도 바닥에 흩어진 샌드위치처럼 매우 처참해졌다.

오즈월드는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나를 염려했다.

식사는 잘 챙겨야죠끼니를 거르니까 이렇게 기운이 없잖습니까.”

개소리 좀 집어치워네가 왜 내 끼니를 걱정하는데?’

나는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오즈월드가 지팡이로 침실 테이블 위를 두드리자 금세 화려한 음식이 가득 차려졌다.

테이블 중앙에는 빌어먹게도 고상한 센터피스와 초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썰면 피가 뚝뚝 흐를 거 같은 두툼한 고깃덩어리가 조금도 먹음직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겐 그저 샌드위치 한 조각이면 충분했는데.

오즈월드는 점잖은 신사처럼 의자를 빼내며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죠.”

나는 이게 권유가 아닌 강압이라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자리에 앉은 후 오즈월드가 맞은편에 앉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즈월드는 참 품위 있는 식사 예절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내가 같이 식사해 본 귀족은 스콰이어 가문 사람들 뿐이었지만눈앞의 남자만큼 완벽한 기품과 여유가 느껴지진 않았다.

대체 정체가 뭘까이 남자는.

어떻게 천박함과 고귀함이 동시에 느껴질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으나 거기까지였다.

나는 뻑뻑한 시선을 내려 나이프에 짓이겨지는 중인 고깃덩이를 쳐다보다 다시 오즈월드를 보았다.

입도 대기 싫은 음식을 먹으며 오즈월드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느니 어서 용건을 해치우고 싶었다.

인터뷰는 언제 하는데?”

오즈월드는 그런 내 속내가 훤하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전에 나눴던 대화가 아직 학습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당신의 성좌님들이 이런 지루한 구간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

기계적으로 한 말이었지만한편으론 사실이지 않을까 싶었다.

고작 실버 채널의 BJ에게 팬 같은 게 있을 거 같지도 않고있더라도 벌써 인터뷰씩이나 할 만큼의 인지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조언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그럴 리가요.”

오즈월드가 빙긋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

“-!”

순간 귀청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나는 경악한 눈으로 방을 가득 채운 알림창을 보았다.

[성좌 오즈월드가 리얼월드’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아아악!!!!!! 오즈월드!!!!!!!]

[성좌 믿고 보는 오즈월드’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즈월드야 이번에도 재밌다]

[성좌 오즈월드_노예_75’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늘도 얼굴이 성스럽다… 나 코인 더 벌어올게… 자주 와]

그 밖에도 성좌의 이름에 오즈월드가 붙은 알림창이 수두룩했다.

광기가 느껴질 정도의 반응이었다.

오즈월드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알림음도알림창도 사라졌다.

…….”

기이할 정도의 적막이 찾아왔다.

내가 얼어붙어 있으니 오즈월드는 짐짓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보다시피 제가 방송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시거든요.”

불쾌한 기시감이 들었다.

오즈월드에게 열광하는 성좌들의 후원 알림이 꼭 클예부와 데미사와 겹쳐 보인 탓이었다.

심지어 추종자를 거느린 당사자가 심드렁한 부분마저도 비슷했다.

오즈월드가 입을 열었다.

이제 알았겠지만당신에게 보이는 후원창은 검열된 것들입니다후원창을 본 횟수에 비해 코인이 많다고 느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였나.’

어쩐지 매번 총후원금을 확인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많이 쌓여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지금도 그랬다.

[후원금: 151,500코인]

최단기간 10만 코인을 달성한 게 겨우 전날에 있었던 일이다.

한데 벌써 이만큼이나 후원금이 쌓여있었다.

단지 내가 혼절하거나 잠든 사이에 후원이 있었겠거니 여기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오즈월드라는 단어가 들어간 닉네임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다시금 고기를 짓이기기 시작했다.

이런 적막한 시간조차 성좌들에게는 즐거움이라니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오즈월드는 내가 급격히 조용해진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는 변덕을 부렸다.

격 떨어지는 짓거리라 썩 선호하진 않지만인터뷰를 진행하며 식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나는 그가 예와 격을 논하는 것이 우스웠다.

여기서 가장 격 떨어지는 건 본인의 무지개색 탈색모와 주렁주렁한 피어싱새빨간 양복이지 않을까?

하나 내 감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오즈월드는 옆에 반투명한 창을 띄워놓고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듯 서두를 늘어놓았다.

성좌님들은 방송에 입장하기 전설명문을 통해 이 방송의 콘텐츠가 뭔지 파악하십니다.”

방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사용된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오즈월드는 성좌들이 그가 직접 작성한 <신의 유희게임 설명서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습득한다고 말했다.

남자 주인공들의 진짜 정체라든가 어떤 엔딩을 볼 수 있는지 같은직접 플레이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다만 필요한 경우제가 따로 자막을 달거나 안내서를 추가해서 원활한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BJ가 직접 알려주는 것만큼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어쨌든 스포일러였으니까.

“BJ는 적절한 순간에 적당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렇다고 모든 걸 다 알려드리면 기대감이 줄어들고 재미도 없어지겠죠.”

이해했어.”

다행이군요그렇다면 그 부분을 고려해 오늘 상황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건 어렵지 않았다.

일리야 교수는 인간인 척 둔갑한 타락 천사이자 대악마야인간계를 마기로 오염시켜서 제2의 마계로 만들 계획이지.”

인간계는 지하철 환승역 같은 것이었다.

신계천계마계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직접적으로 서로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계는 중간 통로로써 어디로든 다소 쉽게 연결될 수 있었다.

오즈월드는 옆에 띄운 창을 힐끗 보더니 질문했다.

대악마라면 쉽게 말해 마왕이라는 겁니까?”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해.”

그런 존재라면 인간계를 단번에 몰살시킬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게임 진행이 불가능하잖아.’

우리 팀 또한 그 부분의 개연성에 대해 고민했고제약을 걸었다.

인간은 물속에서 살 수 없고 물고기는 뭍에서 살 수 없지자신이 속하지 않은 계라는 건물 혹은 뭍인 거야일리야 교수는 인간 껍데기를 산소통처럼 이용하고 있는 거고.”

이해했습니다하지만 악마들이 이 세계를 침공하고 있잖습니까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죠?”

일리야처럼 스스로 인간으로 둔갑할 수 없는 하위 악마는 인간과의 계약을 통해 인간계에 간섭할 수 있어.”

나는 일리야 교수의 배드엔딩이 인간계 멸망이라는 것도 설명했다.

더불어 클라이드가 반인반마라는 점.

스콰이어와 윌로우의 사이가 몬테규와 캐플릿 가문처럼 최악이라는 점.

미모사와 테레제가 1세대 아이돌 팬클럽처럼 가문 간의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남주들을 추앙하고 있다는 점까지 설명을 끝냈다.

그러자 오즈월드는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악의 없는 얼굴로 물었다.

역하렘 게임의 세계관은 원래 극단적인 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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