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9/277)

내가 일리야 교수를 부른 이유가 있었다.

테레제의 지도교수가 바로 일리야였으니까.

진로에 대해 면담 요청을 드리고 싶어서요.”

일리야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연구실로 가지.”

미모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필사적인 손놀림으로 내가 낀 팔짱을 풀어냈다.

안녕하세요교수님저는 제 지도교수님과 면담이 있어서요……그럼 가보겠습니다!”

미모사는 거의 줄행랑을 쳤다.

일리야는 미모사에게 전혀 관심 없는 표정으로 내게 턱짓했다.

올라가지.”

교수님.”

그는 잠시 무심한 시선을 내게 두더니 고개 돌렸다.

미모사처럼 필사적으로 그를 피해 다니던 테레제가 먼저 다가온데다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니 이상하게 여긴 듯했다.

나는 연구실로 같이 이동하는 동안 일리야의 인물 정보도 확인했다.

[일리야 번스타인]

나이: 30

: 194

생일: 1월 31

좋아하는 것침묵연구

싫어하는 것소란무지천족

호감도♡♡♡♡♡

일리야 교수는 아예 하트 게이지 칸이 텅텅 비어있었다.

방금 검은 하트 하나를 보고 온 충격 때문인지 일리야 교수가 천사로 보였다.

달칵.

일리야 교수가 문을 열며 말했다.

들어오도록.”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안내를 따라 푹신한 소파에 앉을 때까지도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할 말은?”

서늘한 기운을 품은 암녹색 눈동자가 나를 무감하게 쳐다보았다.

묘하게 익숙한 눈빛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누르면 터져 죽을 조그마한 개미를 보는 눈빛.

오즈월드…….’

그 개자식이 저런 눈으로 날 쳐다보았지.

띠링!

[성좌 흑염의 귀공자’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천한 광대 BJ한 가지 궁금한 게 있노라이 교수가 천족을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뭐야이 컨셉충은.’

이상한 성좌의 등장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멈칫했다.

<신의 유희>는 신천사악마마수가 존재하는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는 각각의 계는 서로 간섭할 수 없도록 아득하게 먼 차원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설정.

그러나 모종의 사건으로 차원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에 연루되어있는 대천사 일리야의 쌍둥이가 천사들의 계략으로 죽고 일리야 본인은 마계로 추방당해버렸다.

대천사 일리야는 타락하여 새로운 이름을 영혼에 새겼다.

그렇게 대악마 [아블로]가 탄생하게 되었다.

…….”

나는 급격히 미소를 잃었다.

눈앞의 남자가 인간 교수가 아니라 전직 대천사현직 대악마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탓이었다.

찮을 거야이 남자의 진짜 목적은 어쨌든 천족과 천계를 멸망시키는 거니까나한테는 아무런 유감이 없을 거라고.’

비록 그러기 위해서는 천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중간 통로인 인간계를 먼저 전복시켜야 하지만.

일리야의 복수는 100년을 걸쳐 서서히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악마를 죽여 인간계를 지켜낼 강력한 마법사를 육성시킬 마법 학교발할라가 설립되었다는 게 그 증거와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 강력한 마법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여주인공의 존재였다.

일리야의 배드엔딩이 바로 인간계 멸망이었으니까.

토네이도를 따라온 줄도 모르고 안전하다 착각해 헤실헤실 웃고 있던 내가 바보였다.

검은 하트만 없다면 일리야 교수는 수틀린다고 아무나 죽이진 않아.’

그러니 절대로 심기를 건드려선 안 돼!

나는 검은 하트가 생기지 않도록 무난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살인자와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있게 된다면 누구도 절대로 침착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의 유희>가 시작부터 죽게 할 정도로 불친절한 게임은 아니라고……테레제로는 어떻게 될지 예상되진 않지만.’

일리야 교수가 인간 같은 건 손쉽게 한 줌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라 해도 하트 게이지가 비어있으니 내겐 아직 잿더미가 될 사유가 없었다.

테레제 스콰이어나는 시간 낭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나는 감히 대악마님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죄로 재가 되기 전에 필사적으로 용건을 떠올렸다.

!’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니 딱 생각나는 게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마법서를 꺼냈다.

요즘 마법서를 탐독하느라 항상 들고 다녔는데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심지어 읽고 있던 책이 전공 서적인 마력의 속성과 이해Ⅰ》이었다.

읽다가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이 생겨서요.”

일리야 교수는 책을 물끄러미 보더니시선을 들어 나를 응시했다.

“2학년 교재로군.”

4학년이 이 책을 들고 와서 이해되지 않는다고 묻는 게 말이나 되냐고 묻는 거겠지.

그야 테레제가 속성 마법에 흥미나 재능이 있어서 이 전공을 선택한 게 아니니까…….’

일리야는 불세출의 천재 마법사였고그가 가르치는 전공 마법은 속성 마법이라 하여 대단히 어렵고 까다로운 학문이었다.

그 덕에 일리야의 직속 제자는 고작 학생회장인 클라이드와 그를 따라온 테레제 두 사람이 전부였다.

테레제는 지능형 마법사가 아니라 피지컬형 마법사였기에 속성 마법 같은 학문은 젬병이었다.

따라서 학점은 개판.

졸업은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일리야 교수 역시 테레제의 저세상으로 가버린 학점을 알고 있기에 충분히 납득되는 상황이라는 듯 더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이해했지?”

나는 책의 끄트머리를 펼쳐 한 단락을 가리켰다.

이 부분이요속성 마법은 원소의 성질을 다루는 마법인데 물공기 외의 흑백 마법은 어째서 사용하지 못하는 건지 궁금해서요이론적으로는 고대 마도 왕국 시절 이후로 소실되었다고 알려진 백마법과 흑마법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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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3줄 요약 좀]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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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 좀 할 줄 아는 놈인가?]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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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악역영애가 아니라 MC악역영애인 줄]

일리야 교수가 설명했다.

그 부분에 관한 내용은 마력의 속성과 이해Ⅱ》에서 다루지고대 마도 왕국은 고작 한 챕터 정도로 모두 다룰 수 없으니.”

마력의 속성과 이해Ⅱ》라는 말씀은그러니까…….

“3학년 커리큘럼에 있다.”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무지함과 불성실함을 지도교수 앞에서 당당히 실토해버린 사람이 된 끔찍한 상황에 봉착해버렸다.

일리야는 내가 가져온 마법서를 휘리릭 넘겨보며 물었다.

이 전의 내용은 다 이해했나?”

.”

내 대답에 그는 그럴 리가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몇 가지 질문하지.”

!”

갑자기 시험을 친다고요?’

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조마조마하게 그의 질문을 받았다.

한데 생각보다 질문이 쉬웠다.

그래도 내 수준을 배려해서 질문해주신 모양이네.’

내가 몇 번이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자 일리야 교수는 수준을 파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학 동안 읽은 책이 뭐지?”

일일이 다 말하기에는 수가 많았기에 기초적인 마법 서적은 제외하고 다섯 권 정도를 말했다.

다 이해했나?”

거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은 묘하게 게임을 만드는 것과 비슷했다.

마법에 사용되는 룬어는 게임에서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느껴졌고.

룬어들을 마력 회로로 이어 술식을 구성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코딩 작업 같았다.

그렇게 완성된 술식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게임이 작동되듯 마법이 발현된다.

그래서 마법이 재밌는 건가?’

익숙한 공식을 따르지만 실체화한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마법은 무결한 수학과 황홀한 예술을 합친 듯한 학문이었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더니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렇다고 연구실에 계속 있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제 슬슬 나가고 싶은데.’

내가 일어날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일리야 교수가 무심하게 툭 물었다.

그래서 진짜 용건은?”

순간 혀를 깨물 뻔했다.

책은 그저 변명일 뿐이었다는 거 눈치채고 있었구나.’

그럼 그렇다고 티를 내든가.

모른 척해줄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말을 하지 말든가.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다가 하는 수 없이 이실직고했다.

실은 아까 좀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교수님이 보여서 도망칠 수 있겠다 싶은 반가운 마음에…… 죄송합니다.”

일리야는 미세하게 미간을 좁혔다.

그래서 내게 도망쳐왔다고?”

네에…….”

도망친 곳이 대악마의 연구실이라니하책 중 하책이었다.

일리야 교수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책장에 꽂힌 마법서를 세 권 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걸 다 읽고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찾아와라.”

……?’

이건 일리야 교수가 책을 빌려주는 행동은 하트를 한 개 채웠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일리야 교수의 호감도를 확인했다.

[호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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