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마법 학교 발할라는 황성과 비견될 크기의 대형 건축물이다.

스콰이어 공작저를 조금만 벗어나도 새하얀 외벽과 푸른 지붕 첨탑으로 이루어진 마법 학교를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생트리오 호텔도 실물로 봤을 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발할라는 차원이 달랐다.

풍경도 하나같이 절묘했다.

수도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물과 이때의 기술력으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심각한 고증 부재의 다리.

희고 푸르른 광경 속 화룡점정을 찍는 흰 비둘기 떼.

그래픽으로 봐도 흐뭇해질 풍경이 실제로 구현되어 있으니 미지의 세계에 들어온 실감이 나며 가슴마저 두근거렸다.

심지어 타고 있는 마차 또한 자신의 팀에서 만든 것이다.

동석한 여동생조차도.

‘이 모든 걸 나 혼자 만든 건 아니지만, 이러니까 꼭 창조주라도 된 기분인데.’

실상은 온갖 악조건이 도사린 창작 세계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가엾은 빙의자에 불과했지만.

이제 곧 학교에 도착할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긴 모양이었다.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어쨌든 ‘가족’ 그 자체였기에 스콰이어 가문에서 벗어나니 의식하지 못했던 긴장감이 약간 누그러졌다.

새로운 기분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큰 거 온다]

띠링!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감별 준비 완료.]

띠링!

[성좌 ‘성적충’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오즈월드 방송은 항상 시청자 대비 후원이 잘 터지는 편이긴 한데 이번 BJ는 유난히 더 그렇네;]

확실히 성좌들은 오늘따라 후원창으로 메시지를 많이 보내왔다.

나는 문득 현재 상태를 점검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상태창.’

▼

[테레제 스콰이어]

설명: 스콰이어 공녀

나이: 22세

마법 등급: B

지능: B-

마력: A (12,034/12,034)

▲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법서를 수십 권 독파한 덕에 지능이 올랐다.

‘그래도 턱없이 모자라. 더 부지런히 다독해야겠어.’

어느덧 발할라에 도착한 나는 마차에서 내리며 생각했다.

‘이제 이 마차를 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좀 아쉽네.’

나는 리비를 돌아보았다.

“통학할 때 이 마차를 쓰지 않을래? 사용하지 않고 그냥 두기에는 너무 좋은 마차라서.”

내 권유에 리비는 놀란 강아지 같은 표정이더니 이내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였다.

“조심히 탈게요. 고마워요, 언니.”

‘애초에 본인 건데 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으니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같은 옷차림인 인파에 섞여 로비로 들어갔다.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신기했다.

신입생 입학식 때문인지 학생들이 우르르 강당 쪽으로 향했다.

나 역시 리비를 데리고 강당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신입생 입학식은 대강당에서 열려. 데려다줄게.”

리비는 잔뜩 긴장해 있던 표정을 조금 풀고서 살며시 웃었다.

“언니랑 같은 학교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조금 무서웠거든요.”

“무섭다니?”

“아직 공녀라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데 귀족이 다니는 발할라에 입학하기까지 해서 긴장됐어요. 저는 제가 마력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저 바보 같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게임에서 리비가 가족을 찾고 보름 후에 곧장 발할라에 입학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전개였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되니 너무 배려 없는 짓이라는 게 느껴졌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 하나도 바보 같지 않아. 당연한 감정이지.”

“……언니라면 이해해주실 줄 알았어요.”

나는 리비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미안.”하고 중얼거렸다.

리비는 내게 좀 더 붙어 서더니 의아하게 말했다.

“그런데요, 언니……. 기분 탓인지 다들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요.”

그 말에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이쪽을 힐끔거리던 학생들이 사색이 되어 내 눈을 피하는 게 보였다.

시한폭탄, 역병에 이어 눈을 마주치면 저주를 쏘는 악령이 된 기분마저 느꼈다.

테레제가 그렇게 무서운데도 감히 우리 쪽을 힐끗거리는 이유가 뭐겠는가?

예쁜 신입생의 등장에 절로 시선이 끌리는 거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원래 그래. 예쁜 신입생을 쳐다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왜 남주는 아직도 안 보이고 엉뚱하게 여주를 꼬시고 있니ㅠ]

나는 이상한 소릴 하는 후원창을 보느라 당황해 얼굴이 붉어진 리비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때 로비로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울부짖음을 닮은 요란한 환호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악! 데미안! 여기 봐줘!”

“데미안 선배! 사랑해요!”

“오늘도 잘생겼어요!”

나는 후광 같은 햇살을 등진 채 뛰어 들어오는 남자를 보았다.

남들보다 훤칠한 키, 뛰는 걸음에 맞춰 싱그럽게 흔들리는 군청색 머리카락이 시선을 끌었다.

그는 공략 대상 중 하나인 데미안 웨스트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데미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에게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아무것도 안 보이네.”

하나 얻은 수확이라고는 멀리서 봐도 데미안은 굉장히 잘생긴 남자라는 객관적인 정보밖에 없었다.

“강당으로 가자, 리비.”

리비는 소란에 이끌려 데미안을 힐끗거리더니 내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이동했다.

나는 리비와 함께 강당으로 향하며 뒤를 확인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제 곧 이벤트가 벌어질 예정이거든.’

사람이 붐비는 로비에서 저를 붙들려 드는 학생들을 피해 강당으로 달려드는 데미안이 여자주인공과 우연히 부딪친다.

이는 <신의 유희>의 뻔한 클리셰 장면이었다.

탁!

“아, 미안. 괜찮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들었다.

암흑 속에 켜진 촛불 같은 황금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다친 데는 없어, 테레제?”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대단히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고맙게도 나를 정신 차리게 한 것은 눈치 없는 시스템 창이었다.

‘얘가 왜 나랑 부딪쳐?’

원래대로라면 데미안과 부딪치는 사람은 리비여야 했다.

바쁘게 길을 가던 데미안은 짤막하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떠나버리고 리비는 황당해하며 ‘뭐야, 저 선배는?’이라고 생각하는 파트란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데미안이 리비를 찾아와 “아! 드디어 찾았다.”라고 말하며 싱그럽게 웃는다는 스토리인데.

‘아무렴 어때.’

나는 일부러 이 이벤트에 끼기 위해 리비와 동행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인 리비는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있을지라도 데미안은 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동급생인 걸 떠나서 데미안은 ‘스콰이어 장학재단’에서 후원받는 학생이니까.

나는 아까 데미안을 통해 확인하려던 것을 시도해보았다.

‘데미안 인물 정보.’

▼

[데미안 웨스트]

나이: 22세

키: 187㎝

생일: 1월 31일

좋아하는 것: 장난감, 요리, 스포츠 경기

싫어하는 것: 귀족

호감도: ♥♡♡♡♡

▲

공략 대상들은 기본적인 인물 정보를 제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에게 맞는 선물이나 이벤트를 통해 호감도를 쌓아야 하니까.

내 시선은 이미 아는 정보들을 훑어 내려오다 호감도에서 멈췄다.

‘하트 게이지 칸이 떠 있다는 건 테레제로도 남자주인공 공략이 가능하다는 뜻인데.’

끄응. 전혀 반갑지 않은 사실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했다.

플레이어가 남자주인공의 호감도를 높여 빈 하트를 하나씩 채울 때마다 그에 따른 변화가 생긴다.

호감도에 따른 남자주인공의 플레이어 인지 수준을 매우 단순하게 표기해보자면 이렇다.

[호감도: ♡♡♡♡♡]→아는 사람

[호감도: ♥♡♡♡♡]→친구

[호감도: ♥♥♡♡♡]→친한 친구

[호감도: ♥♥♥♡♡]→썸

[호감도: ♥♥♥♥♡]→사랑

[호감도: ♥♥♥♥♥]→진엔딩

그렇다면 현재 데미안의 호감도에 뜬 검은 하트는 뭐냐고?

이는 부정적인 상태를 표시하는 색임과 동시에 배드엔딩 루트 진입 정도를 뜻했다.

붉은 하트와는 의미하는 바가 아예 다르기도 했다.

검은 하트는 플레이어에게 주는 경고였으니까.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호감도: ♥♡♡♡♡]→주의

[호감도: ♥♥♡♡♡]→경계

[호감도: ♥♥♥♡♡]→위협

[호감도: ♥♥♥♥♡]→살의

[호감도: ♥♥♥♥♥]→배드엔딩

이런 식이었다.

따라서 데미안은 ‘주의’ 단계였다.

‘시작부터 검은 하트라니? 아니, 물론 테레제니까 당연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너무하잖아.’

[성좌들이 채널 관리자-오즈월드가 제공한 하트 게이지 설명을 확인했습니다.]

[성좌들이 BJ가 남자 주인공들을 어떻게 공략할지 주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