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VIP라 해도 안내하는 직원과 배정된 자리는 모두 달랐다.
나는 시녀들과 함께 지정 좌석으로 이동했고 그사이 후원창은 계속 울렸다.
확실히 사이다를 주거나 테레제의 평판이 나아진다거나 물질적으로 뭔가를 얻었을 때 성좌들의 반응이 제일 좋았다.
‘비록 방금은 나한테 유리할 상황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지만.’
경매가 열리는 홀은 호화스러운 극단 같은 생김새였다.
나는 제일 앞에 있는 고위 귀족을 위한 넓은 좌석에 앉았다.
잠시 뒤, 사회자가 무대에 나타났다.
“오늘 자리를 빛내러 와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기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뻔한 인사말과 소개가 이어지고 나서야 경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첫 번째 경매품입니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카탈로그를 뒤적거리며 경매품을 확인해보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사려는 물건은 차원의 열쇠 하나였으니까.
경매품들은 그리 높지 않은 금액 선에서 빠르게 팔려나가고 있었다.
“열다섯 번째 경매품입니다. 익명의 후원자가 보낸 마법의 열쇠입니다. 어떤 마법사도 이 열쇠에 걸린 마법이 무슨 장치를 푸는 것인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제야 집중하는 눈빛으로 경매품을 쳐다보았다.
“미지의 비밀이 담긴 열쇠는 수집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시작가는 30만 겔랑입니다. 5만 겔랑씩 호가합니다.”
겔랑은 <신의 유희>에서 쓰이는 화폐 단위였다.
경매는 딱히 열기 없이 무난하게 흘러 65만 겔랑에서 멈췄다.
말이 좋아 마법의 열쇠지,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골동품이었으니까.
“65만 겔랑 없으십니까?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65만 겔랑-”
슥.
65만 겔랑. 예상보다 훨씬 적은 금액에서 호가가 멈추었다.
나는 이때 손을 들어 올렸고 사회사가 바로 반영했다.
“65만 겔랑 나왔습니다. 70만 겔랑 없으십니까?”
정체불명의 골동품 열쇠는 누구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 모양인지 나는 무난하게 65만 겔랑으로 경매품을 낙찰받았다.
‘일부러 형편없는 물건처럼 보이게 만들기는 했지만, 신기하네.’
차원의 열쇠와 낙원은 사실 ‘이스터에그’였다.
이스터에그.
부활절 달걀이라는 뜻이지만 게임에서는 개발자가 재미로 숨겨놓은 요소를 뜻했다.
나는 백지수표에 65만 겔랑을 써서 내밀었다.
오늘 경매품 중 최저가였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경매장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가자.”
[성좌들이 BJ가 산 열쇠의 정체에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성좌 ‘물질만능주의’ 님이 시시한 소비에 한숨을 내쉽니다.]
내 구매가 의아한 것은 시녀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듣자 하니 오늘 대부분 마지막에 나올 ‘사랑의 로사리오’를 구매하러 왔다던데, 아가씨께서는 관심 없으신가요?”
사랑의 로사리오는 매력 수치를 어마어마하게 높여주는 아이템이었으므로 당연히 관심 없었다.
“응. 그런 건 시시하잖아. 이 마법의 열쇠는 사랑의 로사리오보다 훨씬 가치 있어.”
시녀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아가씨께서는 마법을 상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학문에 매진하시는 모습이 멋지세요…….”
아무래도 시녀들은 나를 마법에 환장한 괴짜 마법사로 오해한 듯했다.
이 열쇠가 실은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공작저에 도착하고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 준비를 마쳤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아가씨.”
시녀들이 방에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자, 이제 작업을 시작해볼까?’
나는 차원의 열쇠를 챙겨 방구석으로 이동했다.
“제가 왜 이런 열쇠를 샀는지, 왜 이 구석진 방을 선택했는지 다들 궁금하셨죠?”
[성좌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열쇠는 이스터에그예요. 용도는 지금 보여드릴게요.”
성좌들은 물론 오즈월드가 이 열쇠의 진정한 용도를 깨달아서는 곤란했다.
‘단순히 보물 창고 열쇠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해.’
나는 장식장을 옆으로 밀어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홈에다 열쇠를 끼워 넣었다.
철컥.
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열쇠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더니 안쪽으로 문이 열렸다.
“빛이여, 내부를 환하게 밝혀라.”
어두컴컴한 내부를 빛으로 밝히자 수많은 금괴와 보석, 장신구 등이 보였다.
“전대 스콰이어 공작이 숨겨놓은 거액의 비자금이에요. 이 창고 열쇠가 아니면 열 수 없죠.”
띠링!
[성좌 ‘물질만능주의’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젠장 믿고 있었다구!!]
“참, 여기 어디에 인벤토리 아이템이 있을 텐데.”
‘마법 세계에는 역시 아공간 같은 휴대용 창고가 있어야지.’
“이거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브로치에 마력을 주입하자 아공간이 생성되었다.
나는 아공간 마법을 사용할 범위를 설정해 금과 보석, 차원의 열쇠까지 몽땅 브로치에 집어넣었다.
[성좌들이 브로치를 잃어버리면 안에 든 재산은 어떻게 되느냐고 우려합니다.]
“귀속 아이템이라 양도도 못 하고 훔칠 수도 없어요.”
[성좌들이 게임 시스템에 만족스러워합니다.]
휴. 이제 튜토리얼은 다 끝났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신의 유희>가 시작될 것이다.
“궁금하긴 하네.”
남주들의 실물이 어떨지, 아주 조금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