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277)

내 몸은 절로 기품 있는 동작을 만들어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오늘 뵙게 될 줄 예상치 못했는데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샤티 부인.”

내 시선은 연두색 드레스 차림의 부인에게서 왼쪽으로 차례로 옮겨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하미엘 부인베네타 부인세비네 부인.”

여기까지는 기초적인 예법이었다.

내가 익힌 스킬 [중급 예법]은 품위 있는 숙녀이자 신분이 높은 귀족다운 너그러운 태도까지 자연스럽게 구사하도록 했다.

그간 일이 많아 미처 왕래치 못했는데도 저를 상냥하게 반겨주시니이 기쁨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나!”

나는 차분한 미소를 띤 채 슬쩍 샤티 부인의 기색을 확인했다.

함부로 미소 짓지 않는 샤티 부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군요테레제 양앞으로 종종 즐거운 인사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나는 샤티 부인의 말에 무릎을 살짝 굽히며 영광스럽다는 뜻을 전했다.

띠링!

[퀘스트예법에 맞는 인사 진행 완료]

보상사교계 평판 상승 획득

합격이다.’

아마 테레제에 대한 선입견으로 날 나쁘게 보고 있다가 생각이랑 다른 모습에 그 반동으로 더 점수를 후하게 준 듯했다.

띠링!

[성좌 성적충’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와 여기서 바로 후원금을 쓰네이럴 때 다른 BJ들은 후원금 아끼다가 고구마 오지게 먹는데]

후원금이 귀한 거야 BJ의 입장일 뿐시청하는 성좌의 입장에서는 시원한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짜증 날 수밖에 없었다.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샤티 부인한테 인사받고 아이템 사기까지 2초 컷 ㄷㄷ]

띠링!

[성좌 로판중독영애’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쁘지 않았어요영애.]

계속해서 띠링띠링울려대는 알림 소리를 들으니 성좌들도 만족한 모양이고.

그때였다.

[최단기간 후원금 100,000코인 달성!]

[새로운 성좌들이 입장합니다.]

[새로운 성좌들이 입장합니다.]

.

.

.

또 최단기간 달성이 떴네.’

그런데 저 알림 창이 뜨면 꼭 새로운 성좌들이 입장했다는 알림도 함께 떴다이유가 뭘까?

띠링!

[성좌 로맨스극혐’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 방송 대체 뭔데 최단기 알림 또 뜸궁금해서 와봄;]

아하기록에 관련된 알림은 MMORPG에서 아이템 강화 성공 알림처럼 다른 성좌들한테 뜨는가 본데?’

그 알림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성좌들이 방송을 찾아오는 시스템인 듯했다.

이제 후원금 100만 코인을 최단기로 달성하면 되는 건가?’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래서 언제 10억 코인을 모으겠나 싶기는 하네.’

오즈월드는 본인이 데려온 BJ 전원이 소원권을 샀다고 했는데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채널 등급이 올라갈수록 방송을 보는 성좌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는 건가?

지금도 좀 시끄러운데 나중에는 후원창이 되게 거슬릴 것 같은데.’

내가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귀부인들은 연신 감탄했다.

가만히 있는 모습까지도 겸손함으로 본 듯했다.

과연 스콰이어 가문의 영애로군요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예법을 생략하기 마련이던데.”

사교 활동 장소는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예법은 점차 간소화되는 추세잖아요저는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까다로운 절차가 많은 고풍스러운 예법이야말로 신분을 증명하는 가장 우수한 방식인 것을.”

실용을 가장 높은 가치로 두는 자본주의 출신으로서 썩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충 동의하고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절대 꼰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그때 베네타 부인이 은은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얼마 전 생일이었죠?”

그렇습니다.”

내 얌전한 대답에 베네타 부인의 미소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이 미친 망아지도 나이가 들더니 좀 사람다워진 것 같네.’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공녀의 유년 시절이 여전히 눈에 선한데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되었을까요올해 사교계의 꽃이 바뀔지도 모르겠군요.”

[성좌 로판중독영애’ 님이 사교계의 꽃에 관심을 보입니다.]

사교계의 꽃.

그것은 황후 루트를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예법의 달인인 샤티 부인의 가르침이 필요한 거고.’

사교계의 꽃은 단지 매력 수치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다.

교양마법원만한 대인 관계 등 다방면으로 평균 이상의 능력치를 보여주어야 했다.

사교계의 꽃은 8월에 열리는 여름 무도회에서 황제가 직접 화관을 씌워주는 것으로 결정된다.

나는 차분하게 미소 지었다.

글쎄요저는 남은 학기 동안 공부에 전념할 생각이어서요.”

그러고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슬쩍 실 팔찌가 보이게 했다.

어머귀여운 팔찌네요.”

예상대로 귀부인들은 팔찌에 반응했다.

공녀가 착용하기에는 격에 맞지 않는 장신구라 외려 도드라져 보인 탓이었다.

동생이 생일선물로 직접 만들어준 팔찌예요이런 자리에 알맞은 장신구는 아니지만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거라서요.”

내 말에 부인들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금류처럼 번뜩였다.

사실상 리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내게 몰려든 것일 테니그 주제가 나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스콰이어 가문에서 잃었던 둘째를 찾았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이들은 섣불리 축하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욕심 많고 이기적인 테레제가 제 것을 나눠야 할 여동생이 생긴 걸 달가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세비네 부인이 은근히 떠보듯 말했다.

갑자기 생긴 동생이 낯설 법도 한데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나는 밝고 따뜻하며 구김살 없는 리비를 떠올렸다.

실제로 보게 된 리비는 그래픽 따위로 담아내지 못할 더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한 번씩 그 애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따끔거렸다.

누구든 그 애를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리비는 그야말로 내 이상이었으니까.

나는 어느새 시선을 멍하니 두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자마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네 명의 부인은 내게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각자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샤티 부인이었다.

공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잊고 살았던 여동생이 떠오르는군요결혼하고서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드문드문해졌지요그 애는 남편을 따라 남부로 갔거든요.”

하미엘 부인은 무척 공감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 언니도 타국 귀족과 결혼해서 제국을 떠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어릴 때는 매번 디저트를 놓고 싸우느라 정말 싫어했었는데…….”

하미엘 부인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살짝 붉어진 눈시울에서 그녀가 언니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세비네 부인은 유치하게 굴던 어린 날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저는 언니의 드레스를 물려받았을 때 서러워서 펑펑 운 기억이 나네요저도 새 드레스가 무척 갖고 싶었거든요.”

베네타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저희 언니는 늘 자기가 잘못해놓고는 저한테 아직도 삐쳤니?’ 하면서 초콜릿 같은 걸 툭 던져주었답니다저는 바보같이 언니가 양보한 간식에 홀랑 넘어갔었고요.”

어쩜저희 언니도 똑같았는데!”

부인들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며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싸우고 싫어했었는데왜 그때가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어요.”

나는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내게는 이들처럼 자매에 대한 귀여운 추억이 없었기에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조금 막막해졌다.

그런 내 상태를 훤히 꿰고 있다는 듯이 부인들은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매란 나이가 들어서도 유치한 거로 매일 싸우는 사이랍니다앞으로 공녀도 경험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결혼하기 전까지도 싸웠답니다부디 공녀는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나와 리비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부인들은 흐뭇한 미소로 나를 더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자매가 있다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친근함을 느낀 듯했다.

하미엘 부인은 여전히 눈시울을 살짝 붉힌 채로 내 손을 잡았다.

오늘 공녀 덕분에 잊고 있었던 시절이 떠올랐어요고마워요.”

당혹스러웠다.

나는 단지 실 팔찌를 보임으로써 리비가 여느 귀족과는 다르단 소문을 퍼뜨리려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귀부인들은 내게서 자매에 얽힌 추억을 반추하고 있었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아뇨저는 아무것도-”

잠시 후 경매가 시작됩니다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좌석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때마침 호텔 직원들이 대기실에 들어와 말이 끊겨버렸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그대로 입을 다물자 부인들이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나 역시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띠링!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 이런 거 좋아하네…….]

띠링!

[성좌 로맨스극혐’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나도 이런 거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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