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4/277)

그사이 마차는 목적지까지 순조롭게 달려 화려한 번화가로 진입했다.

저기 생트리오 호텔이에요!”

생트리오 호텔은 백화점극장까지 총망라한 대형 건축물이었다.

경매는 호텔의 가장 큰 파티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도착했습니다아가씨.”

호텔 앞은 각양각색의 인장이 박힌 마차들로 즐비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내 전용 마차였다.

열린 창을 타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인 귀족들의 쑥덕거림이 들려왔다.

호오상당히 화려한 마차로군황족이라도 온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인장을 보니 스콰이어 공작가네요.”

그렇다면 설마…….”

마차 문이 열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직원이 벨벳으로 감싼 발 받침대를 내왔다.

나는 흑진주색의 새틴 장갑을 낀 손으로 어느새 다가온 호위 기사의 손을 잡고서 발 받침대를 사뿐사뿐 밟고 땅에 내려섰다.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수많은 시선이 화살비처럼 날아와 꽂혀 드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확실히 테레제는 얌전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외모였다.

직원은 상대가 개망나니임을 알면서도 풀어진 얼굴로 정중히 손등에 입을 맞췄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테레제 스콰이어 공녀님이쪽으로 오시죠.”

끄덕.

나는 최대한 도도한 표정으로 말없이 이동했다.

실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폭발적인 관심에 내심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얼른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으로 콕 숨고 싶었다.

오늘 온다는 말은 들었지만진짜였을 줄이야.”

저 드레스는 어쩜 저리도 예쁘게 반짝거릴까요잔상까지 남는 게 꼭 요정 같네요!”

귀족들은 주어를 쏙 빼놓고 테레제에 관해 떠들기 바빴다.

매번 드레스든 마차든 저리도 주목받으려고 용을 쓰는 게 참 대단합니다.”

내가 아는데저런 드레스 한 벌이면 성 한 채 값은 나갈 거요저런 사치스러운 여자를 누가 감당할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들려온 말소리 중 가장 거슬리는 마지막 두 이야기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크흠!”

그들은 찔끔한 얼굴로 고개 돌렸다.

만든 기억도 없는딱 봐도 별거 아닌 엑스트라였다.

감히 엑스트라 주제에 사망 루트만 수십 가지인 악역에게 덤벼?’

호위 기사가 정중히 물었다.

머리채를 잡고 끌고 올까요?”

……아니.”

과연 악역의 호위 기사인가?

제정신이 아닌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시녀들은 다들 멀쩡한데 말이지.’

띠링!

[성좌 프로훈수러’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저런 것들은 함부로 봐주면 오히려 평판 더 떨어짐내가 봤음.]

직접적인 폭력까지 쓸 마음은 없었지만그냥 두고 볼 생각도 없었다.

모두가 꺼리는 시한폭탄의 삶이 나쁘지 않거든.

나는 시녀들에게 말했다.

저것들 가문이 어딘지 알아보고 앞으로 내가 다니는 곳에서 마주치면 귀족 명단에서 이름을 지워주겠다고 전해.”

용서하는 게 아니라 죽이지 않는 것이 악역의 자비였다.

시녀는 감복한 표정이었다.

너무나도 상냥하고 너그러우십니다아가씨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호텔 직원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미심쩍어하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나는 도도하게 뜬 눈으로 직원을 쳐다보았다.

어서 날 VIP실로 안내하지 않고 뭐해?”

실례했습니다가시지요.”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청량감 100% 방송]

나는 곧 경매장에 참석하는 수많은 귀족 중에서도 VIP에게만 제공되는 대기실에 도착했다.

저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처리가 필요한 자가 있다면 불러주십시오아가씨.”

그래.”

호위 기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에 나는 시녀들만 대동하여 대기실로 들어갔다.

말이 대기실이지이곳은 폐쇄적인 연회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려고 많은 돈을 써서 생트리오 호텔의 VIP가 되는 거니까.’

상류층 사이에서도 엄연히 급이 있는 법.

이들은 사실상 이 공간을 사기 위해 돈을 쓴 사람들이었다.

확실히 돈과 권력이 좋긴 좋다내가 이런 데를 다 와보고.’

오감으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조명의 빛깔우아하게 흐르는 실내악과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

귀족들의 취향에 맞춘 품격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어지간한 가문이 아니면 엄두도 못 내겠어요!”

이런 작은 연회장이 있다고 말로만 들었는데너무 멋져요.”

시녀들도 내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상류사회 문화에 황홀해하는 기색들이었다.

나는 온종일 고생한 시녀들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딱히 시중이 필요 없으니까 다들 즐겨술은 너무 취하지 않게끔만 마시고.”

시녀들은 매우 기쁜지 꽃망울이 터지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근처에 있을 테니까 언제든 불러주세요아가씨.”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너무 허기져.’

오늘 먹은 음식이라고는 비스킷 조금주스 한 잔이 전부였다.

내로라하는 귀족들로 즐비한 VIP 대기실일지언정 여기서 테레제보다 신분이 높은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러니 친분이 있지 않은 한 누구도 함부로 테레제에게 말을 걸 수 없지만어디에나 치기 어린 이들은 존재하는 법.

테레제를 알아본 귀족 중 간교한 인상의 남자들이 나를 보며 미소 짓는 게 보였다.

으음엮이고 싶지 않은데.’

나는 일부러 못 본 척접시에 음식을 담는 일에 집중했다.

이상한 자들에게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밥이나 먹고 싶었다.

.

그때 옆에서 음식을 담고 있던 누군가와 어깨가 살짝 부딪쳤다.

누가 앞도 안 보고… 흐어어억!”

상대는 사색이 되어 손에 든 접시까지 바닥에 떨어뜨렸다.

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마터면 드레스에 튈 뻔했네.’

상대는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말도 지나치게 더듬었다.

테레제 님죄송합니다!”

누가 보면 내가 해코지했다고 오해를 살 모습이었다가령머리에 탈모라도 오게 했다든지.

나는 어쩐지 이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파비오 영식?”

!”

진짜네.’

얼마나 쥐잡듯했으면 테레제보다 나이가 최소 10살은 더 많아 보이는데 기가 팍 죽어 있었다.

나는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사과는 괜찮으니 이만 가보세요피차 불편한 사이잖아요.”

감사합니다죽을 때까지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아예 VIP 대기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게 접근해오던 남자 귀족들은 헛기침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귀족들도 슬금슬금 내게서 더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시한폭탄을 넘어서 이제는 거의 역병 취급인가…….

공간을 넓게 쓰면 쾌적하고 좋지 뭐.’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도 받지 않고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어머테레제 공녀여기서 뵙는군요!”

디저트로 딸기 셔벗을 세 그릇째 먹고 있을 때누군가가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뒤를 돌아보니 무려 세 사람이나 되는 귀부인이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간 잘 지내셨지요오늘도 완벽할 정도로 아름답네요.”

…… 누구지?’

아무리 내가 게임 개발자라고 해도 팀에서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면 모를 수밖에 없었다.

테레제는 다행히도 개망나니에 본인보다 아래인 사람은 얼굴도 모른다는 설정이잖아적당히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내 생각은 한 캐릭터로 인해 뒤집혔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군요저도 이야기에 끼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샤티 부인물론이지요.”

나는 몹시 깐깐하고 완고해 보이는 귀부인을 바라보았다.

샤티 부인.’

샤티 부인은 후작가의 안주인이지만 모친이 황족이라 고귀한 혈통이었다.

또한 사교계에서 영향력이 드높은 예법 선생님이기도 해서샤티 부인의 가르침을 받은 레이디는 진정한 숙녀로 품격이 드높아졌다.

그런고로 리비의 예법 선생이 될 예정인 인물이란 말이었다.

테레제의 악명 때문에 그 과정이 쉽지 않지샤티 부인의 마음에 들도록 깨야 하는 퀘스트들이 있으니까.’

여기서 내가 더 안 좋은 인상을 심었다가는 아예 예법 선생으로 모시는 일이 요원해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샤티 부인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테레제 양반가워요.”

띠링!

[퀘스트예법에 맞는 인사 진행]

샤티 부인→⁇→⁇→⁇

보상사교계 평판 상승

실패사교계 평판 하락

사교계 평판이 일정 수준 미달일 시 황제를 알현할 수 없습니다.

갑자기 웬 퍼즐 게임이냐고.’

여기서 가장 신분이 높은 샤티 부인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 건 퀘스트 창의 설명 없이 정황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세 사람이었다.

나는 이들의 이름작위를 전부 몰랐다.

뭐라도 힌트를 주던가!’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띠링!

[상점에 입고된 상품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상점 알람이 떴다.

몹시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뜬 알람이었으니 뭔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상점.’

[상점]

소원권 [1,000,000,000코인]

어떤 소원이든 1회 들어준다.

인물 확인 [5,000코인]

통성명한 적 있는 인물은 언제든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빙의 전 테레제 시점 포함)

중급 예법 [9,900코인]

상황에 따라 그에 알맞은 예법을 구사하게 된다.

이거다!

그러고 보니 후원금이 얼마나 쌓였지?’

[후원금: 98,900코인]

아직 소소한 금액이기는 했지만상점 아이템의 금액이 비싸지 않아 부담되진 않았다.

‘[인물 확인], [중급 예법구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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