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노반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아가씨께서 이렇게까지 마차에 조예가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건 아닌데…….”
졸지에 바퀴 달린 것에 환장하는 어린 주세페와 동급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괜히 말을 돌렸다.
“그리고, 너 아니라 누나라니까?”
“흥! 누나는 무슨. 그래서, 이 마차 언제 타볼 거야?”
그때 잠자코 우리를 지켜보던 로잔이 놀란 듯 말했다.
“두 사람 꽤 친해 보이는구나.”
주세페가 펄쩍 뛰었다.
“무, 무슨 소리예요, 어머니! 얘랑 하나도 안 친하거든요?!”
“누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주세페.”
주세페는 차마 로잔의 말에는 대들지 못해 뚱하게 입을 다물었다.
곧 죽어도 누나 소리는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리비는 뒷짐 진 자세로 꼼지락거리다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말했다.
“마차가 너무 예뻐요.”
“어? 아, 그러게.”
저기, 너 아까부터 마차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난 이만 마차를 다 구경했으니, 슬슬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만하면 가정을 위한 장녀 노릇은 다 한 것 같으니까.’
나는 라울과 로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이만 방으로 돌아가 볼게요. 개강 준비가 남아 있어서요.”
“앗, 잠깐만요!”
리비는 내가 떠날까 봐 당황한 얼굴로 부리나케 뒷짐 지던 손을 뻗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별건 아니지만 생일선물이에요.”
나는 소담스러운 꽃송이로 장식한 상자를 건네받았다.
‘…이게 오늘이었구나.’
리비가 뒤늦게 테레제의 생일을 알고서 선물을 건네는 장면이었다.
원작에서 테레제는 당연히 보지도 않고 바닥에 내팽개쳐버렸다.
지금 그런 짓을 했다가는 순조롭게 사망 루트를 달리겠지.
“지금 열어봐도 돼?”
리비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끄덕거렸다.
선물은 직접 만든 실 팔찌였다.
과연 손재주가 좋다는 설정답게 색도 예쁘고 매듭이 꼼꼼했다.
나는 곧장 팔찌를 착용했다.
“예쁘네. 고마워.”
로잔은 내가 순순히 팔찌를 착용하는 걸 보더니, 본인의 팔찌를 풀어냈다.
내 것과 비슷한 모양의 얇은 실 팔찌였다.
“정성은 좋지만 스콰이어의 장녀가 하기에는 모자람이 있구나.”
로잔은 실 팔찌에 꿰어둔 맑은 하늘색 보석 펜던트를 빼내 내 팔찌에 달아주었다.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이라 요즘 보석만 못 하겠지만, 품질이 나쁘지 않은 아쿠아마린이란다.”
나는 손톱만 한 보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북해의 얼음조각처럼 시리도록 청명한 아쿠아마린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테레제는 이들과 이런 따뜻하고 가족적인 일화를 나누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그런 장면 따위, 하나도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분수에도 맞지 않는 감정을 느낄 것만 같아서.
나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른 채 잠시 침묵했다.
누군가의 정성이 깃든 선물도, 유서 있는 선물도 전부 처음이었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라울이 미간을 찌푸렸다.
“감사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라울은 테레제가 아내에게 무례한 것을 유독 참지 못했다.
나는 실수했다고 생각하며 얼른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런 건 처음 받아보는-”
아. 나는 놀란 얼굴로 입술을 다물었다.
속에서 썩게 내버려 뒀어야 할 생각이 제멋대로 입밖에 튀어나와 버렸다.
“선물 감사히 받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먼저 가볼게요.”
이어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테레제!”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성좌들은 정신 사나울 정도로 쉴 틈 없이 후원금을 보내왔다.
“장난감이잖아요, 지우 양은.”
귓가에 오즈월드의 비웃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어쩌면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어서 이런 에피소드가 생겨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제도 모르고.’
아직 공작가의 재산을 쓰는 법을 모르는 리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한 것뿐이었다.
또한 로잔은 리비의 순진한 선물이 책잡히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신한 거였고.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사랑받고 자라지 못해 이런 일을 유별나게 여긴다는 걸.
그래서 결국 더 비참하고 초라해질 뿐이라는 사실까지도, 전부 알고 있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게 살면서 터득한 최선의 자기방어였다.
“하아… 하아….”
방에 돌아왔을 때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시녀들은 방까지 거의 뛰어오다시피 한 내 행동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냐. 그런 거 없어.”
어지간히 눈치가 없지 않은 이상 내가 말을 돌리길 원한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시녀들은 난처한 얼굴로 어쩔 줄 모르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숨을 다 고른 후 여러 가문에서 보내온 생일선물로 복잡해진 방안을 확인했다.
신경을 흩트릴만한 일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생일 편지 답신을 마무리해야겠어. 선물은 다 정리되어가?”
내 물음에 가장 오래된 시녀인 엘로이즈가 대답했다.
“오전에 목록 정리까지 끝내두었습니다. 확인하셔야 할 가문은 서류로 작성해놓았습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서류에 집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들쑥날쑥하던 기분은 점차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난 빙의자에 불과했다.
테레제의 상황을 내게 겹쳐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생각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니 정말로 마음이 좀 괜찮아졌다.
‘오랜만이어서 그랬나 봐.’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러다 또 기대하는 날 싫어하고.
그 짓거리는 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집을 뛰쳐나온 이후로는 점차 하지 않게 된 일이었던지라 오랜만에 비슷한 상황을 겪어 약한 패닉이 온 듯했다.
‘정말로 별일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는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선물 목록을 확인하다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왜 봐도 봐도 끝이 없어?’
시녀들은 이번 생일에 편지가 유독 많이 들어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다들 리비의 소식이 궁금해서 축하를 빙자한 정보 캐내기용 편지를 보낸 거지.’
내가 생일파티를 취소하는 바람에 귀족들은 몸이 달았다.
편지의 서두는 생일 축하로 시작해서 왜 파티를 열지 않았느냐, 집안에 여러 소식이 있는 것 같더라, 언제쯤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 등.
다들 짜고 쓴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대부분은 아랫선에서 처리했지만, 내가 직접 답신을 작성해야 할 것도 더러 있었다.
“상류층의 생일은 마냥 즐기기만 하는 날이 아니구나.”
성가신 건 편지만이 아니었다.
띠링!
[성좌 ‘미카 사랑해’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런 거 왜 봄?ㅋㅋ ㅈㄴ 노잼; 다들 미카 방송 ㄱㄱ]
채널이 커지며 새로운 성좌들이 유입되다 보니 그중 소위 말하는 ‘어그로꾼’이 분탕질을 쳐댔다.
[다수의 성좌가 눈살을 찌푸립니다.]
띠링!
[성좌 ‘차단각도기’ 님이 1,0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미카빠 이제 실버 채널까지 찾아와서 저러네; 차단 각 떴죠?]
성좌의 후원과 동시에 시스템 창이 떴다.
[채널 관리자-오즈월드가 성좌 ‘미카 사랑해’ 님을 차단했습니다.]
타 방송을 언급하는 어그로꾼은 오즈월드에게 금방 차단당했다.
채널 관리자라더니, 정말로 관리하기는 하는구나.
나는 불쾌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어그로꾼 자체는 아무렇지 않았으나 그들 때문에 오즈월드의 존재감을 자꾸 확인하게 되었다.
‘그 새끼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고 싶지 않아.’
“좋은 생각만 하자. 좋은 생각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사정없이 난도질하는 빌어먹을 양아치 대신 좋은 일만 생각하자.
곧 차원의 열쇠를 손에 넣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