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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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성좌들도 방금의 내 태도가 만족스러웠는지 몇 번의 후원이 이어졌다.

    자작은 본인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나쁜 맘을 못 먹는 타입이지.’

    괜히 어설프게 굴었다가는 테레제가 만만해졌다고 생각하고 암살자라도 고용할 인간이었다.

    이후 만찬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때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지 시녀장미란다가 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내게 다가와 빈 술잔을 치워주었다.

    아가씨께서 일개 하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페니를 말하는 건가?’

    그야 당연히 기억하지페니는 그저 그런 엑스트라가 아니니까.

    여주인공의 완벽한 몸단장을 위해서는 그만큼 대단한 기술자가 필요한 법.

    페니는 몸단장 시중의 달인으로 설정한 인물로 솜씨가 좋아 하녀임에도 리비의 꾸미는 임무를 받게 될 예정이었다.

    아아그 애가 일을 잘하잖아그래서 기억이 나더라고.”

    그러자 미란다의 눈에 이채가 맴돌았다.

    아가씨께서 눈여겨보신 하녀라면 확실히 일을 잘하겠군요.”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미란다는 자리를 떠났고 나는 대충 식사를 마친 뒤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홀로 고요하게 있었다.

    아니딱히 고요하진 않은가?

    아가씨혹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다른 것으로 내올까요?”

    아니배불러.”

    그럼 디저트를 내오겠습니다.”

    그러든가.”

    아가씨식기를 교체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아가씨술을 더 내올까요주인님께서 아끼시는 73년산 블랙 코르크 술을…….”

    아냐됐어.”

    나는 어리둥절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미란다가 떠난 이후로 자꾸 날 챙기려 드는 사용인들이 많아진 기분인데.

    원래 다들 날 피하기 급급하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은 리비에게 잘 보이려 애를 써도 모자랄 판이었다.

    테레제 같은 내놓은 자식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란 말이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사회생활 참 못하네.’

    밥그릇도 제대로 못 챙기는 게 좀 안타까워져서 시중은 됐으니 쉬라고 했다.

    당연히 내 말을 반길 줄 알았던 사용인들은 외려 몹시 실망한 얼굴로 물러났다.

    아니그러니까 대체 왜 그러냐고.

    그때내 귓가로 하녀들끼리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왜 갑자기 다들 테레제 아가씨께 잘 보이려고 안달이에요오히려 리비 아가씨보다 더 많은 사용인이 붙은 것 같은데요?”

    어어나도 그게 궁금해.

    나는 디저트로 나온 푸딩을 깨작거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너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참이지?”

    이제 1년 차예요.”

    그러니까 모르지잘 들어테레제 아가씨는 사람을 잘 기억 못 하셔특히 아랫사람이면 10년을 봐도 얼굴조차 모르신단다.”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테레제를 너무 멍청하게 설정했나?’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때.

    하지만 유독 잘 기억하는 사용인이 이따금 나오거든그중에 도노반 님과 미란다 님이 있단다.”

    그야 그분들이 집사고 시녀장이시니……

    아가씨의 눈에 들고서 두 분 다 승진하셨어.”

    !”

    요지는 이거였다.

    테레제가 기억할 정도의 사용인라면 무조건 고속 승진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테레제가 얼굴과 이름을 익힌 가솔은 유독 뛰어난 능력치를 보유한 인물들이긴 했다.

    최고의 것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테레제에게 특별한 것은 제국 최고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게 바로 타고난 안목이라는 거지.”

    괜히 들었다내가 다 민망하네.’

    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척 디저트에 다시금 집중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놀리듯 자꾸만 띠링띠링후원이 터지고 있어 조금 민망했다.

    띠링!

    [성좌 음모론자’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와 큰그림 ㄷㄷ 이렇게 주도권 가져오는 것까지 계산했다고?]

    그럴 리가 있겠냐고요…….”

    나는 물잔을 들어 타는 목을 축이다 리비와 눈이 마주쳤다.

    리비는 이렇게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칠 줄 몰랐는지 당황한 얼굴이었다.

    …….”

    …….”

    공작 부부마저 불콰해진 얼굴로 웃고 마시는 떠들썩한 분위기 속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내가 만든 게임 속 주인공을 마주하고 있다니.

    꽤나 묘한 기분이었다.

    흔히 창작물을 자식으로 비유하고들 하는데그런 낯간지러운 감상은 나와 전혀 관련 없었다.

    창작물이 창작물이지 뭐.

    하지만…….

    예쁘네.”

    참 예뻤다.

    내 바람을 모두 담아 만든 사랑스러운 리비가.

    샴페인을 겨우 두 잔 비웠을 뿐인데 취기가 오르기라도 한 걸까?

    나답지 않게 괜히 감상에 젖어선.’

    나는 피식 웃으며 테레제와 말을 섞고 싶어 안달인 이들이 모여든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나를 향해 있는 연둣빛 시선은 무시하고서.

    * * *

    만찬회는 하루로 끝이었다.

    둘째 공녀의 생환을 널리 알리기 위한 화려한 축하는 단지 리비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일이었다.

    이후 공작 부부는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내길 원했다.

    그들은 공작저를 돌아다니며 리비의 뿌리가 이곳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주세페도 매일 친누나를 찾아 쪼르르 공작저를 누볐다.

    테레제만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더없이 완벽한 나날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장해주기 위해 개강을 앞두고 부족한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서고에 처박혀 있었다.

    서고는 작은 독채로 되어있었다.

    정원을 따라 난 산책로를 통해 한적한 장소로 이동하면 흰 외벽을 타고 덩굴이 자라난오래된 건물이 나타났다.

    그 안은 별천지였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음에도 과연 공작가답게 수많은 마법서가 사방에 빼곡했다.

    팔락팔락-

    이건 봐도 봐도 신기하네.”

    띠링!

    [성좌 설명충’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이걸로 신기하다는 말 100번째임.]

    그 정도까진 아닐걸요.”

    [성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건가.

    나는 머쓱하게 표지를 손으로 쓸었다.

    하지만 신기한 걸 어떡해.

    “<신의 유희>에서는 이런 논리를 갖춘 마법 학문을 만들지 않았어요지구에 없는 개념이니까요.”

    정말 실존하는 차원 같아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띠링!

    [성좌 설명충’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당연함여긴 실재하는 차원이니까.]

    바로 그 점이 신기하다는 거예요.

    랭크된 채널만 해도 100위까지 있으니까 이런 행성도 최소 100개 이상이라는 뜻일까?’

    그러고 보면 채널과 성좌라는 시스템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나의 창작물을 방송으로 만들 때마다 기존의 행성을 이용하는 건가요아니면 새로운 천체가 만들어지는 거예요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기억은 자체 학습을 통해 개연성에 맞춰 보완되는 건가요?”

    이런 걸 가능케 하는 채널 관리자의 권한이 어느 정도인 건지도 궁금했다.

    띠링!

    [성좌 문송합니다’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그게 뭔데, X덕아]

    나는 신기해신기해중얼거리며 마법서를 훑어나갔다.

    띠링!

    [성좌 프로훈수러’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제발 책 정리 좀 하자]

    테이블 위는 며칠 동안 읽어내린 마법서 수십 권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 놔둔 것도 아니고 다 테이블에 있는데…….”

    이 정도면 깔끔하지 않나?

    띠링!

    [성좌 ‘MBTI는 과학’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P]

    …….”

    * * *

    요즘 아침에 눈 뜨면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서고로 달려가 다음 식사 시간까지 내내 처박혀 있는 게 일과였다.

    그리고 점심 먹고 다시 서고.

    저녁 먹고 서고.

    잠자리까지도 마법서를 가져와서 램프를 켜놓고 읽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예상대로 마법은 수학과 닮았냐고?

    아니다이건 완전히 다른 학문이었다.

    정말로 듣도 보도 못한너무나도 신비로운 학문.

    재밌어.’

    내게 있어 공부는 단지 새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이토록 순수하게 학문에 빠져들어 몰두한 건 게임 관련 공부를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점점 마법 이론에 대한 개념이 생겨 새로운 마법서를 이해하며 완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그야말로 고무적인 성취였다.

    [일부 성좌가 하품을 뱉습니다.]

    성좌들에게는 아닌 모양이지만.

    똑똑.

    슬슬 오늘 공부는 여기서 마무리하려던 찰나에 시종이 찾아왔다.

    아가씨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1층 다이닝룸으로 가시지요.”

    요즘 서고에 있느라 끼니때를 종종 놓쳐 혼자서 밥을 먹었는데 어제저녁라울이 가족들끼리 다 같이 점심을 들자고 제안해왔다.

    말이 제안이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이었다.

    나는 라울이 가족들끼리 식사하자고 말한 시점이 왜 하필 오늘인지 궁금했다.

    혹시 기억하고 있는 건가?’

    오늘이 2월 20테레제의 생일이라는 걸.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당히 공교로운 타이밍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원작을 좀 비틀기는 했으니까 뭔가 달라졌을 수도 있어.’

    라울이 테레제의 생일을 기억해서 불러낸 거라면 용돈을 달라고 말하는 일이 훨씬 수월할 듯했다.

    달칵.

    그러나 다이닝룸에 들어선 순간 나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들 기쁨으로 상기된 얼굴이었거든.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나는 자리에 앉으며 라울을 향해 물었다.

    라울은 지금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자상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친자 검사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당연히 친자라고 떴을 것이다.

    축하드-”

    그런데 리비 누나정말 다음 학기에 발할라에 가요?! 내년에 가면 안 돼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괜히 캐릭터에 안 맞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가 주세페가 끼어들어 끝맺지도 못했다.

    [성좌 막드매니아’ 님이 실망을 감추지 못합니다.]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지루함에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성좌 로맨스패스’ 님이 그래서 남주는 언제 나오냐고 묻습니다.]

    마치 꾹 참았던 불만이 팍 터진 것처럼 알림이 주르르 이어졌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를 빼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당연한 무시와 배제잊힌 생일.

    누구나 싫어하는 바로 그것.

    이거고구마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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