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쟤는 테레제를 끔찍하게 싫어해요.”
[일부의 성좌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습니다.]
그놈의 의미심장은 얼어 죽을.
내가 이 게임 제작자예요. 성좌님들아.
똑똑.
그때 마침 하인이 노크했다.
“아가씨, 브런치를 준비해왔습니다만, 안으로 들일까요?”
“그래.”
[성좌 ‘먹방BJ찾는중’ 님이 흐르는 침을 황급히 닦으며 코인을 준비합니다.]
아직 접시 덮개도 안 열었는데 대체 뭘 보고 침을 흘린다는 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덮개를 열었다.
조금 있으면 한바탕 눈물을 줄줄 쏟아낼 감동적인 재회 장면이 있을 테니 그전에 에너지를 좀 충전해야겠다.
* * *
라울이 리비를 데리고 저택에 도착한 것은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갈 무렵이었다.
“주인님께서 들어오십니다!”
하인이 부리나케 로비로 들어와 소식을 알리자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로잔이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달려 나갔다.
누구도 그 모습을 보고 품위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잃은 줄 알았던 딸을 되찾은 어미의 심정을 능히 이해한다는 듯 눈물을 훔치기 바빴으니까.
공작가의 사람들은 리비를 맞이하기 위해 로잔의 뒤를 따라 현관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스콰이어 공녀.”
로잔과 주세페에게서 조금 떨어져 멀뚱멀뚱 서 있던 내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로잔의 친정 오빠, 케빈 윌리엄스 자작이었다.
“네, 뭐.”
나는 대충 대꾸하고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데 공녀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군요.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지요?”
제국에서 다섯밖에 없는 공작 가문의 딸이란 몹시 고귀한 존재였다.
그건 윌리엄스 자작 따위가 테레제에게 대화를 가장한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라울에게 곧 버려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신의 유희>를 제대로 플레이한다면 테레제는 항상 라울에게 버려지게 되니 마땅한 추측이기는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윌리엄스 자작의 말에 긍정했다.
“네, 걱정이에요. 가문의 일에 외부인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당장 다음 달부터 품위 있는 가문의 사람만 집안에 들여야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릴까 해요.”
“…….”
윌리엄스 자작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라울의 배려였다.
나는 그 점을 지적했고, 말귀를 알아들은 윌리엄스 자작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조용히 다른 인척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하아… 사이다 달달하다]
사실 내 말은 딱히 틀리지 않았다.
라울이 전령을 통하여 미리 리비를 찾은 것 같다는 소식을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계 귀족과 로잔의 친정 식구들이 죄다 공작저로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다들 진정한 스콰이어 공녀를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려는 이유였다.
‘그건 핑계고, 그냥 라울한테 잘 보이려는 수작이지.’
확실히, 공작가의 곳간을 털어먹는 거머리들은 솎아낼 필요가 있었다.
가만히 놔두면 악역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가게 되니까.
이윽고 거대한 마차가 현관에 멈춰 섰다.
달칵.
마차에서 먼저 나온 사람은 라울이었다.
그가 여전히 열려있는 문을 향해 손을 뻗자 희고 고운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빈민가에서 고생한 설정이라지만 여주의 손이 터 있을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는가?
‘이걸 실사화로 보니까 좀 이질적이기는 하네.’
곧 마차에서 라울이 입고 나갔던 외투로 몸을 감싼 여자가 내렸다.
리비였다.
“세상에……!”
주변의 모두가 숨을 헉 들이켰다.
리비는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금빛 생머리와 여린 잎사귀 같은 연둣빛 눈동자의 사랑스러운 외모였다.
[성좌 ‘얼굴감별사’ 님이 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라. 저 성좌 테레제의 외모에는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 같은데.
‘테레제와 리비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지.’
차갑고 도도한 인상의 테레제.
따뜻하고 온화한 인상의 리비.
냉미인과 온미인으로 취향이 갈릴만했다.
“마님의 젊은 시절과 똑같습니다. 네, 정말로 똑같아요……!”
로잔을 오랫동안 모신 나이 든 시녀가 손수건에 얼굴을 묻으며 펑펑 울었다.
리비는 낯선 상황이 두려운 듯 가늘게 떨면서도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인 채 조심스러운 첫인사를 건넸다.
“다들…… 안녕하세요?”
차마 리비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가슴을 움켜쥐며 눈물만 쏟던 로잔이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마님! 괜찮으세요?!”
“부인!”
다들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가장 먼저 걸음을 옮긴 건 다름 아닌 리비였다.
“……어머니.”
“리비……! 아아, 내 딸을, 드디어……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자리의 모두가 감동적인 재회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오직 나만 제외하고.
실제로 재회 장면을 보면 테레제답지 못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내심 걱정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실제로 보게 된 재회 장면은 생각보다…… 그저 그랬다.
나는 남들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 더 공들여서 도입부 짤걸. 너무 신파였네.”
괜히 오즈월드의 신랄한 평가가 떠올라서 기분만 나빠졌다.
띠링!
[성좌 ‘MBTI는 과학’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확신의 T다.]
“…….”
성좌도 유사 과학을 믿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