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레제 스콰이어]
설명: 스콰이어 공녀
나이: 21세
마법 등급: B
지능: C+
마력: A (12,034/12,034)
▲
“역시.”
상점이 있다면 상태창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대로 존재했다.
테레제의 인물정보는 내가 마지막으로 세팅해둔 그대로였다.
‘며칠 후에 생일이 지나고 22살이 된다는 걸 제외하면 이 설정값은 엔딩까지 유지되지.’
지능은 낮으나 마력이 풍부하여 결점을 어느 정도 커버하는 무식한 마법사.
“과연 막무가내식 패악질이 일상인 악녀다운 설정이야.”
‘이딴 설정이 내 일이 되어버려서 그게 문제지.’
[성좌들이 BJ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아. 테레제의 지능에 대해 생각 중이었어요. 이게 제 IQ와는 상관없는 마법 능력에 관한 부분이라서.”
마법은 수식을 써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학처럼 ‘술식’을 사용했다.
“지능이 높으면 복잡하고 어려운 술식을 이용한 고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차이는 단순했다.
지능이 B인 마법사가 한 번에 죽이는 괴수를 테레제는 열 번 만에 죽인다고 이해하면 된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것의 방증이었다.
“지능을 높이려면 마법서를 통해 공부해야 하는데, 테레제는 책과 수업, 교수를 혐오하거든요.”
따라서 평생 지능 C+에서 벗어날 수 없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독서를 좋아했다.
뭐, 공대 출신이라 수학도 어느 정도는 했고.
“마법 술식이 수학이랑 비슷하다고 설정한 게 다행이었죠.”
동료 팀원들은 너무 이과 감성 아니냐고 우려했었지만 그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마법서를 독파해서 지능을 B등급 정도로는 높여야지.’
낙원으로 들어가려면 ‘차원의 열쇠’가 필요하다.
차원의 열쇠로 특정 장소의 문을 열면 랜덤 확률로 낙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률이 꽤 극악이라 여러 문을 찾아서 열어봐야 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낙원이 아닌 꽝이 뜨더라도 상관없었다.
간혹 보물창고로 연결되거나 신비로운 장소가 나타나는 등,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걸 발견할 수 있거든.
“개인 재산이 넉넉하면 독립하기가 더 쉬울 텐데.”
테레제는 공녀 신분이지만 용돈을 받아 쓰는 처지였다.
공작가의 재산은 모두 라울의 것이며, 그가 죽어야 유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똑똑한 귀족가 자제들은 괜찮은 사업체를 미리 물려받아 재산을 불리지만 테레제는 건드리는 사업마다 족족 망했다.
테레제는 멍청하고 이기적인 악역이라 사업을 잘한다는 설정은 개연성에 어긋났으니까.
‘나라고 해서 딱히 사업에 소질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럴 땐 역시 보물 창고 찾기가 제격이었다.
차원의 열쇠는 경매장에 참가해야 얻을 수 있다. 경매품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곧 테레제의 생일이니까 선물로 용돈이나 좀 달라고 해야겠어.’
테레제의 생일은 닷새 후인 2월 20일이다.
공작가에 돈도 많은데 미운 딸이라고 해도 용돈쯤이야 주지 않을까?
“그나저나 마력이라…….”
마력. 마법. 너무나도 잘 아는 설정이고 익숙한 단어지만, 동시에 가장 생소하고 낯선 것들.
그런 힘이 내게 생겼다는 게 아직은 믿기지 않았다.
나는 내 안에 존재할 새로운 감각에 집중해보았다.
“……응?”
보통 판타지 소설에서 주인공에게 다짜고짜 마력을 느껴보라고 하면 어려워하지 않나?
한데 지금, 그냥 마력이 뭔지나 느껴보자 했을 뿐인데 무엇이 마력인지, 이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모조리 터득했다.
너무도 안정감 있고 친밀한 감각이라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마법을 사용해보았다.
“작은 불씨여, 촛불처럼 타올라라.”
화르륵!
손바닥 위에는 내가 의도한 그대로의 조그마한 불씨가 아롱거렸다.
“우와!”
[성좌들이 BJ의 순수한 반응에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 ‘성적충’ 님이 마법이 없는 세계에서 온 BJ들이 보여주는 이 뻔한 반응이 좋다며 흡족해합니다.]
“……큼.”
너무 어린애처럼 들떴나?
괜히 민망한 기분에 머쓱해져 황급히 손바닥 위의 불꽃을 없앴다.
‘얼른 화제를 돌려야겠어.’
“상태창이 있으니까 다른 시스템 창도 있을 것 같은데. 방송에는 보통 설정 같은 게 있지 않나…….”
내가 한 말이지만 그럴싸한 가정이었다.
‘당장 확인해봐야지.’
“방송 설정.”
▼
[방송 설정]
채널명: BJ악역영애
채널 등급: 브론즈
채널 순위: 100위 밖
후원금: 2,700코인
▲
예상대로 방송 설정이 있었다.
“채널 등급은 몇 단계까지 있나요?”
[성좌들이 그건 오즈월드만 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왜 그 인간이 알려줄 수 있는 거야?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그는 내가 딱 싫어하는 양아치 스타일이었고, 성격도 고약하여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부류였다.
하지만 채널 관리자이니 계속 마주할 일이 있을 듯했다. 에휴.
나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오즈월드는 집어치우고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이상하네. 후원금이 어떻게 2,700코인이나 있지?”
그것보단 훨씬 적게 받은 것 같은데.
띠링!
[성좌 ‘설명충’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어제 너 라울 앞에서 쓰러졌을 때 후원 쏟아짐]
“아하. ……왜요?”
[성좌들이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뭐야. 이유는 알려주고 웃으라고.
띠링!
[성좌 ‘음모론자’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쓰러져있기만 했는데 상황은 알아서 풀렸잖아 ㅋ 다 계산한 거지?]
‘어제 뭐가 있었나?’
그냥 빙의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아서 좀 정신 나가 보이는 행동을 했던 것 말고는 없는데.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추측을 포기했다.
별로 궁금하지 않기도 했고.
그때였다.
쾅!
공작이라 하여도 공녀의 방을 쾅 소리가 나도록 밀치고 들어오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러니 공작이 굳이 몰상식한 행동을 감행한 것이 아니라면 감히 스콰이어 공녀의 방을 이따위로 들어올 사람은 달리 없을 텐데.
나는 의아함이 담긴 눈으로 방에 들어온 상대를 확인했다.
테레제의 명치쯤 되는 키의 검은 머리 소년이 연둣빛 눈동자에 살기를 가득 품은 채 방을 쳐들어오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야?”
상대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내심 감탄 중이었다.
‘와……. 너무 귀여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뽀얀 살결, 강아지처럼 동그란 눈의 미소년.
이 집안 막내아들인 주세페였다.
‘이대로만 자라면 네 명의 남주만큼 미모가 대단해지겠는데?’
내 감탄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봤자 곧 나랑 엮일 일도 없는 사이가 되겠지 뭐.’
아니, 엮이고 싶지 않은 사이라고 해야 마땅하려나.
“당장 말해! 대체 무슨 꿍꿍이냐고!”
“그런 거 없는데?”
그러자 주세페가 하! 하고 크게 비웃으며 신랄하게 나를 헐뜯었다.
“네가 그간 한 짓을 생각해봐. 그런 주제에 갑자기 상식적으로 행동한다고 해서 정상인이 되는 건 아니잖아? 영혼이 바뀐 게 아니고서야.”
오……. 방금 말에는 좀 뜨끔했다.
‘근데, 내가 그렇게 튀게 행동한 것 같지도 않은데 너무 과민 반응인 거 아냐?’
“설령 꿍꿍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잃은 줄 알았던 가족을 찾아줬는데 완전 범죄를 꿈꾸는 예비 범죄자 취급은 좀 너무하지 않아?”
내 항변에 주세페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것도 사람 나름이지. 아무도 너의 같잖은 수작에 안 속아, 이 멍청아.”
테레제와 주세페는 사이가 몹시 나빴기에 대체로 서로 본 척도 않고 무시하기 일쑤라는 설정이다.
더불어 주세페는 고작 13살에 불과했으나 벌써 마법사 협회의 관심을 받는 천재였다.
또한, 시스콤 말기였고.
리비의 시점으로 봤을 땐 참 귀엽고 깜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으음. 이렇게 보니 오만하고 무례한 게 꼭…….’
“너 되게 테레제 동생답다.”
“므, 뭐?!”
“아, 그러니까 내 동생답다고.”
내 말에 주세페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게 왜 말이 안 돼?
“맞잖아? 네가 주워온 자식도 아닌데…….”
띠링!
[성좌 ‘사이다패스’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아 ㅋㅋㅋㅋ 동생 킹받게 하는 거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
‘비아냥거린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난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한데 주세페는 내 말을 성좌처럼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시끄러워! 정말, 정말 너랑은 대화가 안 통해!”
저주를 퍼부은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극렬한 거부반응이었다.
외모는 귀엽지만 하는 짓이 지구에 있을 관종 녀석들을 떠올리게 해서 거북해졌다.
그 녀석들 역시 나를 죽어도 언니, 누나라 부르지 않았다.
매번 야, X신아 등으로 불렀지.
‘주세페가 걔들처럼 싫은 것까진 아니지만.’
“너가 아니고 누나라고 해야지, 주세페.”
“누나는 무슨……! 네가 언제부터 내 누나였다는 거야?! 너랑 난 하나도 안 닮았어. 전혀! 하나도!”
‘으음. 어쩌라는 건지…….’
나는 괜한 불똥이 튀기 전에 주세페가 좋아할 일을 권유했다.
“날 상대할 시간에 곧 네 친누나가 올 테니까 맞이할 준비를 하러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주세페가 입술을 꼭 다물었다.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내가 리비를 언급해서 화가 난 건가?’
그런 거라면 일일이 대응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성가시니까.
‘내가 할 일은 가족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대로 평범하게 지내다가 기숙사로 들어가는 거야. 그럼 게임 엔딩 시점까지 얽힐 일이 없으니까.’
주세페는 낮게 들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넌 항상 이런 식이지.”
“무슨-”
쾅!
내가 미처 말뜻을 묻기도 전에 주세페가 먼저 방을 나가버렸다.
주세페는 테레제를 싫어하니 좋아하는 리비를 보러 가라고 좋게 말했을 뿐인데, 황당했다.
“왜 저래…?”
띠링!
[성좌 ‘음모론자’ 님이 100코인 후원하셨습니다.]
[딱 봐도 관심 끌려는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