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32화 (232/241)

#외전 14화. 심장과 사랑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고서 (6)

17번 방 수술방.

김성탁 교수의 대동맥 판막 치환술(aortic valve replacement) 수술이 진행 중이다.

그 맞은편에는 안경식이 제1 조수로 들어와 있다.

삐이― 삐이―

수술의 막바지 과정.

판막 교환을 위해서 멈춰져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고, 고요한 수술방에 심전도 소리만이 흐르고 있다.

집도의인 김성탁 교수의 눈썹은 잔뜩 찡그려져 있다.

오늘 수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듯한 낌새가 느껴진다.

“안경식, 똑바로 해라.”

“예, 교수님.”

곧, 김성탁 교수가 하대정맥에 들어가 있던 카테터(catheter, 도관)를 뽑는다.

쥬욱―

다음 과정은, 도관이 뽑힌 자리에 준비되어 있던 실을 타이(tie, 매듭)하는 과정이다.

이 타이는 그의 맞은편에 있는 제1 조수가 하게 된다.

집도의와 합을 맞춰, 집도의가 카테터를 뽑는 동시에 타이(tie, 매듭)가 들어가야만 출혈량을 줄일 수 있다.

“경식아, 타이!”

“예.”

스윽― 스윽―

카테터가 뽑히자마자 타이가 진행된다.

하지만 안경식의 손은 오늘따라 어딘가 엉성하다.

마치 1년 전의 실력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랄까?

그의 오른손과 왼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타이가 중간에 꼬여 버리고 만다.

“야!”

김성탁은 안경식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수술 필드(field, 수술 시야)에는 금방 피가 차오른다.

김성탁 교수는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고 있고, 안경식은 고개를 떨구고 수술 필드만을 쳐다보고 있다.

차가워진 분위기에, 제2 조수와 간호사 역시 조용히 수술 필드만을 바라보며 차오르는 피를 석션(suction, 흡입)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어휴…….”

김성탁은 꼬여 버린 매듭을 끊어 버리고, 니들 홀더(needle holder, 바늘을 잡을 수 있는 봉합에 사용하는 수술 기구)를 사용해 다시 수처(suture, 봉합)를 한다.

“야, 안경식. 너 오늘 왜 그래? 수술하는 내내 애가 어디 정신이 딴 데 팔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안경식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김성탁 교수가 심장막(pericardium)의 미세 출혈을 보비(bovie, 전기 소작술)로 컨트롤하며 입을 연다.

“이놈 자식, 연애하느라 정신 없다더니만.”

“…….”

“아무리 연애에 정신이 팔려도, 일은 제대로 해야지. 이렇게 서툰 모습 보면 여자 친구가 당장 헤어지자고 한다, 인마?”

김성탁이 농을 섞어 가며 질타했다.

진지하게 혼낼 수도 있었지만, 평소 안경식을 아끼며 가깝게 지내는 교수님이기에 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농담은 오늘 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농담이었다.

“…….”

안경식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김성탁이 수처 한 실을 안경식이 잡고, 다시 타이를 하려 했지만…….

그의 시야에는 이미 눈물이 차올랐다.

수술 필드와 봉합사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수없이 반복해 온 타이이기에, 잘 보이지 않는 시야에도 어떻게든 마무리하려 애쓴다.

싹둑―

타이 된 실을 김성탁이 자른다.

평소와는 무언가 다른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김성탁은 그를 힐긋 쳐다본다.

그리고 그때.

안경식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는 걸 김성탁 교수도 알아챘다.

동시에 눈치를 보던 바로 옆의 제2 조수가 슬며시 안경식의 팔을 잡는다.

“선생님, 왜 그래요…….”

“경식아.”

김성탁이 그의 이름을 불렀고, 그 뒤에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름은 안경식의 터질 듯 말 듯 하던 눈물샘을 기어코 터져 버리게 만들었다.

교수가 설마 하다가 물었다.

“너 인마, 뭐…… 헤어지기라도 했냐?”

또오옥―

안경식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어제 결국 헤어짐을 통보받았던 곳에서도, 방에 돌아와서도, 태연한 척하며 잠을 청했던 그였지만…….

하필이면 수술방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모든 수술은 무균 수술이 원칙이기에, 떨어지는 그의 눈물은 오염원이었다.

다행히 열려 있는 환자의 흉강 내로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안경식의 바로 앞에 펴져 있는 포에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어어!”

“야, 인마!”

“죄, 죄송합니다.”

안경식이 황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스윽―

떨어진 눈물 때문에 오염된 부분을 간호사가 무균 방포로 덮는다.

또옥―

또 떨어진 자리를 다른 무균 방포로 덮는다.

그래도 계속 눈물이 떨어진다.

김성탁과 간호사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한다.

“이, 이놈 자식이…….”

김성탁 교수는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수술 필드를 더럽힐 뻔한 꼴이 되었으니, 집도의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하다.

하지만…….

불과 작년에, 그를 궁지로 몰아세웠다가 탈주시킨 것이 본인 아니었던가?

이런 상황에서 개복치 같은 멘탈을 가진 안경식을 몰아붙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김성탁은 깊은 한숨과 함께 화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경식아, 나갔다 와라. 우리 밖에 다른 레지던트 선생님 불러 주세요!”

제2 조수는 안경식의 몸을 잡고 수술 필드에서 멀어지게 한다.

주변에서 이렇게 나오자, 안경식의 눈에서는 눈물이 더 떨어진다.

그렇게 안경식은 모든 이를 숙연하게 만들어 버린 뒤, 수술방을 나가 라운지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후우…….”

화장실에서 세수한 안경식은 거울 속 얼굴을 쳐다본다.

두꺼운 안경 속, 울긋불긋한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못난 놈.’

바보야.

수술방에서 울어?

환자의 흉강 안에 눈물이라도 들어가면 어쩔 뻔했어?

공과 사도 구분 못 하는 자식…….

그렇게 자책하면 할수록 더욱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헤어진 슬픔을 안고 일해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정] 오빠, 괜찮아?

[경식] ……그래.

[수정] 나 이해해 줄 수 있어?

[경식] 응.

[수정] 우리 좋은 직장 동료로 지내자, 오빠. 그동안 좋은 추억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마웠어. 오빠는 좋은 사람이야.

……그게 마지막 메시지였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텅 비어 있다.

나의 예쁜 여자 친구였던 그녀는, 이제 남이 되고 만 것이다.

안경식은 한동안 메시지 창에 <자니?>라는 문장을 몇 번 썼다, 지웠다 했지만 결국 조용히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날, 당직실에서 마동섭은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힘내라, 인마.”

“어떡하죠, 선배님?”

“시간이 약이지.”

“시간 말고 다른 약은 없나요?”

“뭐?”

“심장이 약하게 뛸 때는 에피네프린(epinephrine, 강심제)을 투여하면 되고, 심장이 세게 뛸 때는 딜티아젬(diltiazem, 심근의 수축을 억제하는 약)을 투여하면 되는데…… 사랑은…….”

으악!

마동섭은 경악했다.

한동안 봉인되었던 안경식 특유의 감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당장 귀를 막고 싶었지만, 마동섭은 오글오글 쪼그라드는 손바닥을 겨우 펴 그의 등을 토닥였다.

눈물을 머금은 안경식의 씁쓸한 독백은 이어졌다.

“이놈의 사랑은 답도 없는 것 같아요……. 사랑이 빠져나간 심장의 빈자리에는, 대체 무슨 약을 써야 하는지…… 훗…….”

그때, 옆자리에서 처방을 내고 있던 신선한이 빨간 종이 케이스를 슬쩍 안경식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데요? 타이X놀?”

“네.”

“이건 진통제잖아요.”

“실연의 아픔에도 도움이 된대요.”

“…….”

“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통(social pain)과 신체적 통증이 비슷해서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외로움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연구 결과 밝혀져…….”

신선한이 건조한 말투로 마치 책을 읽어 주는 것같이 말한다.

“안 먹어욧!”

안경식은 빽 소리를 질렀다.

* * *

그날 밤.

안경식은 진탕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물론 신선한이 건넸던 진통제는 먹지 않았다.

타이X놀을 비롯한 아세트아미노펜은, 술과 함께 먹으면 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오늘은, 그냥 술이 약일 것 같다.

“동섭 선배, 선한이 형…… 위로해 주셔서 감사함다, 딸꾹.”

“뻘소리 말고 그냥 마셔, 인마.”

“정말…… 정말 감사함다. 충성충성!”

동섭이 등을 토닥여 주고, 선한이 소주잔을 채워 준다.

또다시 3인조다.

안경식이 울고 싶을 때면 이 두 사람이 항상 함께 있어 주었다.

흉부외과 생활을 하면서, 그가 의지할 만한 사람들은 결국 이 둘뿐이다.

안경식이 혀 꼬인 말투로 속내를 토해 냈다.

“병원에서…… 연애하고 헤어지면…… 제일 슬픈 게 뭔 줄 알아요? 병원 어디를 가도 전 여친이랑 함께했던 공간이라는 거예요…… 거기서 계속 나는 몇 년이고 일해야 하는데…… 딸꾹!”

복도.

수술방.

불 꺼진 외래.

편의점 앞 벤치.

돌이켜 보면, 참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싶다.

직장에서 연애한다는 것은, 헤어지고 난 후의 후폭풍을 몇 배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왜 사람들이 일터에서 연애하지 말라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안경식이었다.

“야, 인마, 궁상떨지 말고 노래방이나 가자. 너 노래방 좋아하잖아.”

“노래방…… 헤헤…… 수정이가 코인 노래방 좋아했는데…… 헤헤.”

“정신 나갔네, 이거.”

마동섭은 두꺼운 팔뚝으로 헤롱대는 안경식을 둘러업고 성큼성큼 노래방으로 향했다.

늘 혼자 사랑하고 혼자 이별하고

늘 혼자 추억하고 혼자 무너지고

사랑이란 놈, 그놈 앞에서

언제나 난 늘 빈털털일 뿐

“어휴, 저거 또 지 같은 노래 부르네. 궁상맞게시리.”

마동섭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경식은 마이크를 붙잡고 열창했다.

오래된 노래였지만, 사랑의 씁쓸한 뒷맛에 관해 이야기했던 명곡이다.

한참 열창하다 보니, 문득 올해 봄의 기억이 떠올랐다.

벚꽃 인테리어가 가득 달려 있던 카페에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길.

―옛날 노래 좋아하세요?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질문으로 시작된 사랑이었다.

―저 옛날 노래 좋아해서 혼자 코인 노래방 가서 한 시간 동안 옛날 노래만 부른 적도 있어요.

그랬었지.

취향이 비슷한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좋아졌고…….

데이트할 때 자주 갔었지, 노래방.

한때 손을 꼭 잡고 노래방에서 함께 부르던 노래를, 안경식은 눈물을 참아 가며 끝까지 열창했다.

노래의 마지막 가사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는 물기로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그래 아직 내 가슴은 믿는다

사랑

사랑은 다시 또 온다

그래, 사랑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계절이 돌아오는 것처럼 금방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지.

나는 금사빠니까.

하지만…….

두 번 다시, 절대로!

NEVER!

같은 병원 안에서는 연애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안경식이었다.

-1부 외전: 심장과 사랑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고서(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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