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소년 근욱 (2)
“아이고, 죄송합니다.”
“뭐, 애들끼리 장난 좀 친 거 가지고요.”
“그래도 귀한 아드님을 다치게 했으니 저희 애가 잘못했습니다. 병원비는 저희가…….”
“어릴 때 깁스도 좀 해 보고 그러면서 크는 거죠, 뭐.”
병원 대기실.
양쪽 부모들이 인사를 주고받는다.
근욱의 부모님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밑도 끝도 없이 쿨했다.
한편, 육중덕의 부모님들은 기골이 장대했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키가 엄청나게 컸다.
중덕의 아버지가 옆에 서 있던 아들의 귓불을 쭉 잡아당기며 일갈했다.
“이놈아, 얼른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장난으로 배치기 한 번 했는데 그렇게 우주 끝까지 날아갈 줄 몰랐네요.”
“이놈이! 제대로 각 잡고 사과 안 드려?!”
빠악!
육중덕이 뒤통수를 맞는다.
한편, 근욱이는 끙끙 앓으며 대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논두렁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진 것뿐인데, 어깨뼈가 빠지고 다리뼈에 금이 갈 줄이야!
오늘따라 약골인 것이 세상에서 제일 서러웠다.
‘아이고, 나 죽네…… 여긴 또 어디야……?’
근욱은 끙끙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찌저찌 자동차에 실려 시내의 병원으로 달려왔다.
간단한 초진 이후 엑스레이부터 찍고 치료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으아악!
치료실 안쪽에서부터 환자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하면.
―우왜애애앵! 카드드득!
반대편 어딘가에서는 전기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고 보면 깁스를 자르는 평범한 소리였지만, 근욱에게는 무섭게만 들렸다.
정형외과를 처음 와 보는 어린 환자 입장에서는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었다.
“김근욱 환자, 들어오세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근욱은 부축을 받아 쭈뼛대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형외과의 장팔봉>
의사는 노인이었다.
서리가 내린 듯 머리가 하얬고, 그마저도 숱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부랑 노인’이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웬만한 젊은 사람들보다 앉은 자세가 바르고 꼿꼿했기 때문이다.
그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엑스레이를 확인하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굴렀구먼?)”
“예?”
“어디서 굴렀길래 이렇게 됐을꼬? 높은 데는 아닌 것 같고, 논두렁으로 굴러떨어졌나?”
“어…… 마, 맞아요.”
근욱은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의사가 아니라 무당인가?
엑스레이 사진만 보고 상황을 맞추는 게 신기했다.
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홀홀홀…… 일단 어깨부터 맞춰야겠어. 여기 만져 봤을 때 감각은 느껴지고?”
“네.”
“그러면 액와 신경은 괜찮다는 뜻이겠고. 읏차~”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근욱을 침대에 눕게 한 뒤, 그 위에 올라탔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의사는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발로 근욱의 겨드랑이를 밀고, 양손으로 팔을 잡는다.
흡사 레슬링 자세.
근욱은 흠칫 놀랐다. 겉보기와는 달리,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의사의 악력이 굉장했던 것이다.
‘무, 무슨 할아버지가 이렇게 힘이 세?’
이 할아버지, 돌팔이 아니야?
혹시 내 팔을 확실히 부러트리려는 건 아닐까?
오만 생각이 다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의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힘을 꽉 주었다.
“자, 뼈가 들어갑니다~ 허이차!”
“우아아악! 살려 주세요!”
―뚝!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어라?”
근욱은 눈을 깜빡였다.
빠져 있던 어깨가 마법처럼 들어맞더니 멀쩡해지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까지 1cm도 움직일 수 없었던 팔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다리 쪽의 통증은 잊을 정도로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뼈를 한 번에 정확히 집어넣을 수 있는 걸까?
“우, 우와…….”
근욱이 감탄하는 사이, 의사는 껄껄 웃으면서 자리로 내려왔다.
“다리는 깁스하고 가.”
“꼭 해야 해요?”
“뼈가 잘 붙으려면 해야지. 다리는 체중이 실려서 자칫하면 모양이 변형될 수 있다고. 홀홀홀.”
“저 안 그래도 허약하다고 놀림받는데…… 깁스까지 하면 중학교 처음부터 애들한테 약골이라고 찍힌단 말이에요.”
근욱이 울상을 지었다.
당장 아픈 것보다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더 걱정되는 근욱이었다.
의사는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지. 오히려 자랑해야지!”
“뼈에 금 간 걸 왜 자랑해요? 약골이라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뼈라는 건 말이야, 부러지면 더 강해지거든…… 뼈가 붙는 과정에서 골진(骨津)이라는 게 나오는데…… 이게 뼈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지. 홀홀홀.”
다리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의사는 설명을 이어 갔다.
“사람 몸이라는 게, 적당히 손상되고 나면 오히려 회복하면서 더 단단해지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다친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 과정이다~ 이 말이야.”
“오…….”
설득력이 있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까?
설명을 듣고 나니, 뼈가 다친 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아까보다 통증도 훨씬 덜하게 느껴진다.
석고실에서 깁스를 감고 오자, 장팔봉이 말했다.
“자, 치료는 다 끝났고!”
“감사합니다.”
“2주 후에 다시 와! 뼈 붙을 때까지는 내 얼굴 꾸준히 봐야 하니까!”
“네!”
근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심쩍었다. 저렇게 나이 많은 할아버지한테 진료받아도 괜찮을까 싶었다.
그런데 치료를 받고 나니, 이제는 그에게 신뢰감이 들었다.
‘멋있는 할아버지네.’
의사 장팔봉.
그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으며…….
훗날, 근욱의 유년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이기도 했다.
* * *
<장팔봉 정형외과>
이곳은 근욱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꽤 명성이 높았다.
바로 장팔봉 원장의 실력 때문이다.
동네마다 소문난 명의(名醫)가 있기 마련인데, 장팔봉이 그랬다.
과장을 좀 보태서, 기어서 들어가던 환자도 장팔봉의 손을 거치면 걸어서 나온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 덕에, 몸 어딘가 불편한 노인들로 병원은 매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장팔봉 선생님은 진짜 신통방통하다니까.”
“아유, 말해 뭐 해.”
“명의야, 명의.”
“선생님, 어디 다른 데로 가시면 안 돼! 계속 이 동네에 있어야 돼!”
그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는 거의 신앙에 가까웠다.
흡사 장팔봉 교(敎)랄까?
노인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장팔봉은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가기는 어딜 가? 어디 크게 다치지나 말어. 나이 먹어서 다치면 아픈 건 둘째치고 서러우니까!”
총 6주의 치료 기간.
근욱은 정기적으로 병원을 들러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혹시라도 골절 전위가 일어나지는 않는지, 골진이 잘 나와서 골유합이 진행 중인지 확인했다.
그동안 근욱은 장팔봉과 제법 친해질 수 있었다.
그 역시 <장팔봉 교(敎)>의 최연소 멤버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선생님!”
“엥? 손에 뭐냐 그건?”
“집에 있던 홍삼진액이요!”
“아니 이눔아, 부모님 드실 걸 왜 나한테 들고 와? 하여간 뉘 집 말썽꾸러기인지 원!”
“헤헤헤.”
근욱은 머쓱하게 웃었다.
특유의 밝은 성격과 넉살.
훗날 ‘누구와도 5분 만에 친해질 수 있다.’고 평가받는 미친 친화력은 어릴 때부터 타고났던 것이다.
“선생님, 그나저나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사람은 몇 살까지 커요?”
뜬금없는 질문에, 장팔봉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왜, 키 안 클까 봐 걱정되냐?”
“네, 저만 초등학교 때 키 그대로라…… 혹시 이대로 평생 안 크는 거 아니겠죠?”
“본 에이지(bone age) 라는 말 들어 봤어?”
“본 에이지요?”
“그래.”
장팔봉은 고개를 끄덕인 뒤 설명했다.
“말 그대로 뼈의 나이를 말하는 건데, 이게 실제 나이와는 다르다고. 어떤 사람은 나이가 13살인데 뼈 나이가 11살이라서 한참 자랄 수 있지.”
“우와! 그런 걸 사진만 보고 바로 알 수 있어요?”
“신기하냐?”
“네.”
“원래 사람 몸이라는 게 신기한 거다. 특히 제 몸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재밌는 법이지. 홀홀홀.”
근욱의 눈이 빛났다.
분명 거울로 볼 때는 자기 몸이 싫었는데…….
엑스레이로 보는 느낌은 좀 다르다.
어제까지 싫었던 자기 몸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다.
의학적인 시각을 통해 바라보자, ‘인간의 몸’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때 처음으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매력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클 수 있으니까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거라! 학교에서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
“네. 고맙습니다!”
“다시는 다쳐서 오지 말어! 이눔아!”
장팔봉은 껄껄 웃으며 근욱을 내보냈다.
6주의 치료 기간.
그것이 마지막 만남일 줄 알았다.
이제 당분간은 정형외과에 들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두 달 후.
어찌 된 일인지, 근욱은 또다시 진료실에 누워 있었다.
“왜 또 왔어?”
“헤헤.”
근욱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이번에는 발목이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유심히 보던 장팔봉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축구구먼.”
“어떻게 아셨어요?”
“이눔아, 척하면 척이지. 네 나이 때 이렇게 다치는 경우가 축구 말고 또 있어? 뽈도 못 차는 것들이 몸만 달아서는.”
“아, 갑자기 태클이 들어오는데 어떡해요.”
근욱은 볼멘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범인은 이번에도 육중덕.
녀석은 그새 덩치가 더 커졌다.
자기 몸집만 믿고 운동장에서 난폭하게 몸을 날려 대는 통에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결국 근욱은 육중덕 때문에 또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이때만큼은 근욱의 부모님도 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뭐? 이번에도 그놈이라고?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먼! 내 당장 이놈 부모님을 찾아가서……!
하지만 근욱은 그런 부모님을 말렸다.
뭐랄까.
자존심의 문제였다.
부모님에게 의존하기보단, 더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저 몸 키우려고요.”
“뭐?”
“덩치 커지려고 운동 시작했어요.”
“아서라. 괜히 몸 키워서 쌈박질할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남들한테 무시당하기 싫어서 그래요.”
“이눔아, 발목 다친 거나 신경 써!”
“상체부터 키우려고요. 한번 보실래요?”
근욱은 자신의 책가방을 열어 묵직한 아령을 꺼냈다.
“으잉?”
장팔봉의 눈이 띠용 하고 커졌다.
뭐야?
저걸 왜 들고 다녀?
하지만 아직 황당함은 시작에 불과했다.
“핫, 둘! 핫, 둘!”
이어지는 근욱의 아령 운동을 본 장팔봉은 펄쩍 뛰며 대경실색했다.
“이눔아, 누가 근력 운동을 그따위 자세로 하냐?”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아령을 무겁게 왜 책가방에 넣어 다녀!”
“만화책에서 보니까…… 무거운 거 지고 다니다가 봉인 해제하면 갑자기 힘이 세진다던데…….”
“아, 아이고. 내 뒤 목!”
장팔봉은 뒤 목을 잡고 끙끙댔다.
운동인들에게 운동을 배우는 법?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눈앞에서 잘못된 운동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운동을 배울 수 있다.
“당장 그만둬! 그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야!”
의사 장팔봉.
그는 환자가 자기 몸을 망치는 것을 눈 뜨고 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상대가 성장기의 어린아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의 캬랑캬랑한 목소리가 진료실에 울려 퍼졌다.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까 나한테 확실히 배워, 이눔아!”
소년 근욱.
그는 의도치 않게 장팔봉을 자극하고 말았으며…….
훗날 근욱은, 이때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진 분기점으로 회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