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23화 (223/241)

#외전 5화. 소년 근욱 (1)

연국대병원 지하.

지금 이곳에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끄악!”

“더 더! 쥐어짜십쇼!”

“으아아아악! 조상님!”

“조상님 찾지 마세요! 조상님이 무게 대신 안 들어줍니다!”

지하 3층 헬스장.

경쾌한 음악 사이로 곡소리가 섞인다.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가 문 바깥까지 후끈 뿜어져 나오고 있다.

바벨을 들어 올리거나, 케틀 벨을 흔들거나, 운동 기구에 매달리는 등.

다들 열정적으로 운동에 전념하는 모습들이지만…….

표정을 들여다보면, 다들 한마음으로 죽어 가는 중이다.

그리고 헬스장 한가운데.

한 젊은 남자가 활기차게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

“승모근 쓰지 말고! 코어에 힘 바짝 조이시고!”

착하게 생긴 얼굴.

하지만 몸매는 폭력적이다.

미사일처럼 툭 튀어나온 어깨, 벌판처럼 광활한 광배근.

옷을 입은 상태에서도 도드라지게 보이는 데피니션(definition, 근육의 선명도)!

그는 이 병원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인이자 전설적인 레지던트, 김근욱이었다.

다들 죽어 가고 있는데, 혼자만 에너지가 쌩쌩한 모습이다.

“거기, 왜 쉬고 계십니까?”

“그, 근욱 쌤, 오늘 저는 여기까지만…….”

“구 선생님, 수영장 가서 자신감 있게 상의 탈의하고 싶다면서요? 아들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싶다면서요?”

“윽…….”

“홍 선생님은 비키니 입고 바디 프로필 찍는다면서요? 죽기 전에 한 번은 몸매가 좋아야겠다면서요?”

“흑…….”

“오늘 드는 무게가 내일의 몸이 됩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아오! 알았어요!”

매트 위에 쓰러졌던 사람들은 울상을 지으며 다시 일어나 운동을 시작했다.

연국대병원 의사들.

맨날 환자에게 운동하라고 잔소리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만성적인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

작년까지는 이곳 헬스장도 비교적 한산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올여름은 다르다.

지금 이곳에는 열정적인 <헬스 붐>이 일고 있다.

그리고 그 돌풍의 근원지는 바로 소아과 레지던트 김근욱이었다.

몸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

거짓말 같습니까?

정말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보증합니다.

오늘 바로 시작하세요!

저 김근욱이 여러분을 도와드립니다!

―소아과 레지던트 김근욱

레지던트 2년 차.

근욱은 헬스 동호회를 만들었다.

바쁜 레지던트가 무슨 동호회냐고?

김근욱은 아무리 바빠도 규칙적으로 헬스장을 찾았다.

심지어 근욱은 당직의 피곤이 가시지 않았을 때조차 ‘운동량이 줄어서 피곤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아과 생활에 익숙해진 2년 차 후반, 마침내 그는 사내 게시판에 헬스 동호회 공고를 낸 것이다.

“헬스 동호회?”

“솔깃한데?”

“에이, 병원에서 저런 거 제대로 굴러가는 거 못 봤다!”

“근데 동호회장이 근욱 쌤이라는데?”

“뭐? 소아과 김근욱 선생님? 그렇다면 얘기가 다르지.”

“나도 한번 들어가 볼까?”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병원에서 한 번이라도 그의 몸을 본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평소에 몸을 키우고 싶었던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는 물론이고, 젊은 교수들까지 운동을 가르쳐 달라며 찾아왔다!

물론, 대부분 작심삼일.

하지만 몇몇 성실 멤버는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근욱을 따랐다.

덕분에 근욱은 요새 하루하루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크으, 운동에 진심인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즐겁구먼, 즐거워!’

근욱은 흐뭇한 눈길로 동호회 회원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게 삶의 보람일까?

남의 운동을 돕는 것이, 본인이 운동하는 것만큼 즐겁다.

바쁜 생활 중에 시간을 쪼개어 노력하는 회원들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물론 당사자들은…….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의 표정들이었지만 말이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헉, 헉.”

“오늘 단체 루틴은 여기까지고, 개인 운동 하실 분들은 계속하세요. 자세를 잘 모르겠으면 저에게 물어보시고요!”

“네에…….”

“그럼 이제 저도 슬슬 몸 좀 풀어 보겠습니다!”

후욱, 후욱!

이제 근욱이 운동 기구에 매달려 운동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태껏 자신들이 하던 운동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와아…….’

‘저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살벌하다, 살벌해!’

‘그 와중에 자세 정확한 거 봐.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지?’

근욱의 움직임은 초심자들과 달랐다.

힘도 힘이지만, 자세가 정확하다.

거대한 근육이 무게를 밀어낼 때마다 주변에 후끈한 바람이 분다.

다들 궁금했다.

저 사람은 대체 언제부터 운동을 잘하게 된 걸까? 태어날 때부터 엄마 탯줄로 로프 운동이라도 하면서 나왔나?

“저, 근욱 쌤, 궁금한 게 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근욱에게 한 무리의 남자 레지던트들이 다가왔다.

“뭔데요?”

“근욱 쌤은 3대 운동(스쿼트, 벤치 프레스, 데드 리프트) 도합 500kg를 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어헛, 남의 숫자에 관심 가지지 말라니까요? 오로지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 자신이라는 거! 모르십니까?”

“그렇긴 한데, 너무 궁금해서…….”

“뭐, 제가 3대 500을 치는 건 사실이긴 합니다. 하하핫!”

"허억."

다들 놀랐다.

소위 <3대 500>은 운동인들에게 꿈의 경지나 다름없다.

심지어 전문 트레이너도 아니고,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이 보통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역시 대단하시네.”

“부럽습니다.”

“나는 언제 근욱 쌤 같은 어깨 가져 보나?”

“야 인마, 근욱 쌤은 우리 같은 놈들이랑 근본이 달라. 완전 <인자강>이라니까. 인간 자체가 강하게 태어났다고!”

다들 감탄하기 바쁠 때, 근욱이 피식 웃으며 의외의 말을 던졌다.

“에이, 무슨 소리예요. 제 어릴 때 사진 보여 줄까요?”

처억!

근욱이 스마트폰을 뒤적여 내밀었다.

곧 화면을 본 사람들의 눈이 깜짝 놀라 휘둥그레 커졌다.

“어어?”

“이게 누굽니까?”

“뭡니까, 이 멸치는?”

“완전 어좁이잖아?”

“아, 어좁이라는 표현 쓰지 마세요! 내가 그 별명을 얼마나 싫어했는데!”

“아니…….”

사람들은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사진 속, 헐렁한 교복을 입은 소년.

분명 얼굴은 근욱인데, 몸이 반쪽이다. 아무리 어릴 때라지만 지금에 비해 너무 왜소했다.

특히 어깨 라인이…… 과장을 보태, 귓불보다 조금 더 넓은 수준.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수군거렸다.

“이거 진짜입니까?”

“아예 인간이 다른데.”

“환골탈태 수준을 넘어섰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뭐, 피나는 노력을 했죠.”

근욱은 코를 쓱 훔치며 웃었다.

막상 관심을 받으면 쑥스러움을 타는 성격이다.

그때, 깡마른 체형의 여자 의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러면 근욱 쌤은 어떤 계기로 운동을 시작하신 거예요? 원래 이런 건 동기 부여가 중요하잖아요?”

“말하자면 긴데…….”

근욱이 시계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마지막 세트 끝내고, 다들 저녁 먹으러 가서 얘기하시죠.”

“오, 회식인가요?”

“예. 오늘 다들 열심히 하셨으니까 멤버들한테는 제가 저녁 쏩니다!”

“오오!”

“요 앞에 샐러드 집에 닭가슴살 메뉴가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하하핫!”

“…….”

모두의 얼굴이 축 처졌다.

닭가슴살 싫어요! 삼겹살 먹고 싶은데! ……라고 외치는 표정들.

하지만 근욱은 모두의 의견 따위 듣지 않고 다음 운동에 매진했다.

마침 헬스장 스피커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와, 이 노래 추억이네!’

아직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근욱이 MP3 플레이어에 담아서 듣던 애니메이션 주제가였다.

물론 그땐 몰랐다.

자신이 만화 속 근육질 캐릭터 못지않은 강인한 몸을 가지게 될 거라곤.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네.’

키가 작았던 소년.

어깨가 좁았던 소년.

김근욱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 * *

“학교 가기 싫다.”

근욱은 거울 속 깡마른 자기 상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

아무리 밝은 성격을 타고났다 해도, 사춘기의 컴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욱이는 아침마다 밥상에 앉아 부모님에게 징징대곤 했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아들, 엄마도 직장 다니기 싫단다. 아들이 대신 출근 좀 해 줄래?”

“아빠, 애들이 나 어깨 좁다고 놀려!”

“초등학생 때는 그러고 노는 거야. 친구들이랑 싸우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그러다 친해지는 거야.”

근욱이의 부모님은 밑도 끝도 없이 쿨한 성격이라, 아들의 징징거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으씨…… 내 맘 아무도 몰라!’

그렇게 투덜거리며 논두렁 사이로 등굣길을 오르고 있을 때.

―퍼억!

실내화 가방이 뒤통수를 쳤다.

뒤를 돌아보니,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야, 어좁이!”

“하지 말라고!”

“김근욱은 좋겠다, 비 오면 비 안 맞고 사이로 막 피해 갈 수 있어서!”

“아니라고!”

“김근욱은 좋겠다, 달리기할 때 공기 저항이 적어서!”

“하지 말라고!”

“흐즈 믈르그~!”

“으아아!”

근욱은 괴성을 지르며 도망가는 녀석들을 쫓았다.

돌이켜 보면 흔한 초등학생들의 유치한 장난이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서러웠다.

어깨가 좁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젠장…… 그래도 중학생 되면 덜 놀리겠지? 내 몸도 지금보다는 더 클 거고!’

하지만 웬걸.

친구들의 놀림은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인구가 적은 지방 도시라, 초등학교 때 알던 얼굴들이 거의 그대로 중학교까지 이어진 것이다.

근욱의 키와 덩치는 성장하지 않았고…….

반면, 친구들은 비 온 날 상추마냥 쑥쑥 자라났다.

“야 김어좁. 오랜만이다?”

투웅!

근욱이 어깨를 맞고 휘청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이제는 교복을 입은 녀석들이 히죽히죽 웃고 있다.

그 가운데는 유독 심술궂은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익숙하지만 등굣길에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뭘 봐, 인마?”

육중덕.

초등학생일 때부터 키가 165cm.

심지어 하루가 다르게 점점 성장하고 있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인데 벌써부터 운동부 에이스라는 소문이 있다.

녀석이 히죽대며 웃는다.

“야 어좁이, 반가워서 쳤는데 왜 그렇게 휘청대냐? 너는 중학생이 돼도 여전히 비실비실하네.”

“하지 말라고…….”

“뭐?”

“어좁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억울하냐? 억울하면 너도 나 한 대 치든가!”

육중덕이 배를 들이밀었다.

초등학생 때도 그랬지만, 이제는 그의 덩치가 태산처럼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근욱이도 자존심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이제 민감할 만큼 민감한 나이.

같은 또래 여자애들 앞에서까지 놀림받고 싶지는 않다.

만약 이 기싸움에서 진다면, 3년 내내 학교에서 놀림당할 것이 뻔할 터.

근욱은 육중덕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인마! 나도 한 대 쳐 보자!”

“배치기!”

“꽥!”

투웅!

단 한 방.

근욱이는 육중한 배에 퉁겨졌다.

마치 수수깡으로 만든 허수아비처럼, 그는 비탈로 굴러떨어져 우당탕탕 논두렁으로 굴러갔다.

그쯤 되자, 막상 시비를 걸던 아이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

“쟤 어디까지 굴러떨어지냐?”

“야, 쟤 좀 잡아!”

“그만 굴러가, 인마!”

소년 김근욱.

그는 허약 그 자체였다.

야생과 같은 중학교에서, 그는 최약체나 다름없었다.

이날,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어쩌면 이 인연이 근욱을 의사의 길로 이끌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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