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21화 (221/241)

#외전 3화. 연서가 웃는 이유 (3)

“왜 왔어?”

“왜 오기는.”

“병원 일 바쁠 텐데 굳이 오밤중에 여기까지 왔어? 너 오늘 당직이라고 안 그랬어? 인제 그만 가.”

봉합을 마친 연서의 엄마는 곧바로 입원 절차를 밟기로 했다.

자세히 검사해 보니 갈비뼈 2개에 금이 간 것이 발견되었고, 입원해서 2~3일 정도 경과를 봐야 했다.

연서는 속상한 눈으로 응급실에 누워 있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갈비뼈 쪽도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고, 겉으로 보기에도 무릎 외에 다른 곳의 상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뜻밖의 사고를 겪은 탓에 표정에 힘이 없고 아직 낯빛이 창백했다.

“어쩌다 넘어졌어?”

“안경 때문에 그랬지 뭐.”

“안경?”

“눈이 안 좋아져서 다초점렌즈로 바꿨거든. 분명히 안경사가 계단 오르내릴 때 조심하라고 했는데……. 어휴, 내가 조심했어야지.”

연서의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다초점렌즈를 처음 착용하는 사람들은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안경의 부위에 따라 초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계단을 내려갈 때는, 고개를 숙여서 렌즈의 상단 부분으로 계단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땅이 홱 다가오는 느낌에 발을 헛디딜 수 있다는 것이 안경사의 설명이었다.

“눈이 안 좋아?”

“나이 먹으면 여기저기 고장 나는 거지 뭐. 신경 쓰지 말어.”

“…….”

연서는 입술을 꾹 닫았다.

속이 상했다.

동생을 안심시키기는 했지만, 그녀 또한 엄마가 걱정됐다.

단순히 잔병치레라고 하기에는,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많았다.

작년에는 갑상선 항진증으로 갑상선 절제술을 받았고, 외래에 다니면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은 아니었지만, 연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어휴, 그래도 큰일 날 뻔하셨던 걸 이만하면 다행입니다!”

옆에 서 있던 응급실 의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봉합해 놓은 부분은 성형외과에서 봐주실 거고, 갈비뼈에 금이 간 부분은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텐데, 혹시 모르니 입원해서 이틀 정도만 살펴보면 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연서가 물었다.

“다리 쪽은 봉합해 놓은 부분 말고 내부에는 문제없다는 이야기죠?”

“예? 아, 예. 맞습니다.”

“가슴 쪽 검사에서도 금이 간 것 외에는 문제없었고요? 입원해서 보자는 이야기는 뒤늦게 혈흉이나 기흉이 생길까 봐인가요?”

“예, 맞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의료계에서 일하는 분입니까?”

“예, 아직 인턴이지만요.”

“아아, 어쩐지 의료적인 지식이 남다르시더라고요. 실례지만 어느 병원에 계신지?”

“연국대병원이요.”

“아, 이런 인연이 있다니! 거기 제가 아주 잘 아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혹시 박준성 선생님 아세요? 아니면 그쪽에 제가 아는 인턴 후배도 있는데……!”

의사는 자신의 인맥을 늘어놓으며 연서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동안 연서의 엄마와 동생은 ‘또 시작이군’이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어머니는 잘 나으시도록 제가 확실히 신경 쓰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연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며 인사하는 모습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젊은 남자 의사는 헤벌쭉 웃으며 응급실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그가 사라지자마자 주안이는 싸늘한 눈으로 뒷모습을 흘겨보았다.

“저 의사 맘에 안 들어.”

“왜?”

“아까 나한테는 되게 불친절했거든. 근데 누나 오니까 그때부터 갑자기 인상 싹 바뀌면서 친절해지잖아.”

“착각이겠지.”

“아니라니까! 아까 누나가 저 사람 말투 변하는 걸 봤어야 하는데.”

주안이가 투덜거리자 엄마가 픽 웃었다.

“아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책에서 읽었는데…… 뭐라더라. 대부분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성격도 달라진대.”

“그런 게 어딨어? 사람이 한결같아야지.”

“정말이라니까. 책에 있었어. 미국에서 무슨 실험을 했다는데…….”

엄마는 요즘 책을 많이 읽었다.

작년까지는 보조원 일을 했지만, 건강이 악화된 뒤로는 북카페를 관리해 주는 일을 했다.

수입은 줄었지만, 평소 좋아하던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연서는 그게 보기 좋았다.

자신이 생활비를 보태는 만큼 엄마는 미뤄 두었던 자신의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만 책을 읽을 때 시력이 불편해서 안경을 바꾸다가 이 사달이 나긴 했지만.

연서가 엄마의 말을 듣고 있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지금 하는 일 안 나가도 돼.”

“응?”

“힘들면 그냥 집에서 쉬어도…….”

“얘는. 사람이 일하는 보람도 있고 그래야지. 집에만 있으면 엄마 심심해.”

“그래도.”

연서가 뭐라 더 말하려는데, 엄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딸, 미안해. 걱정하게 만들어서. 이제 안 아플게.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

“일하느라 힘들지?”

“아니.”

“힘들면 혼자 속 앓고, 애쓰고, 그러지 마.”

“안 그래.”

연서는 뺨에 힘을 주어 일부러 미소를 지었다. 엄마도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웃어야 했다.

서로를 걱정시키면 안 되니까.

여전히 엄마와 연서는 서로를 연민하고 있었다.

* * *

연서의 집은 오래된 빌라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골목에는 온갖 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조합장을 규탄한다>든가, <무슨 무슨 심의를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든가…….

너저분한 골목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연서는 시간이 더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철이 들기 전부터 언제나 이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안이 너, 방학이라고 집에서 게임만 하는 건 아니지? 프로게이머 할 거 아니면 적당히 시간 정해 두고 해야 돼.”

거실로 들어선 뒤, 연서는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엄마의 입원용 짐을 챙겼다.

“알았어. 내가 애도 아니고.”

주안이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누워 핸드폰을 켰다.

연서는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힐긋 바라보았다.

1년 사이에 키가 더 컸다.

예쁘장했던 얼굴에도 이제 제법 남자다운 태가 나기 시작한다.

목소리도 슬슬 변하고 덩치도 커지고 있는데, 연서가 보기에는 아직 품 안의 아기 같은 느낌이다.

오늘따라 더 그렇다. 아까 누나의 품에 안겨 훌쩍훌쩍 우는 걸 보면 아직 어린애구나 싶었다.

연서는 그런 동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 주고 싶었다.

“참, 너 곧 생일이지? 뭐 필요한 거 있어? 그러고 보니 로션 다 떨어질 때 된 거 같은데…….”

“여친이 사 줬어.”

“?!”

여친이 있어?

아니, 어린애 같은 내 동생이?!

연서는 다소 충격을 받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저번에 게이밍 키보드 가지고 싶다고 했었지? 그거 사 줄까?”

“전여친이 사 줬어.”

“농구화는?”

“그건 전전여친이.”

“……너 학교에서 연애만 해?”

연서는 당황했다.

아니, 얘가?

아직 중학생인데 무슨 비싼 선물을 그렇게 많이 받아?

“여자들이 막 주는 걸 어떡해. 거절할 수도 없고.”

주안이의 말에 연서는 어질어질 현기증을 느꼈다.

‘나…… 나의 작고 귀여웠던 막둥이가……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문득, 연서는 대학교 교양 시간에 배웠던 고사를 떠올렸다.

옛 중국에 반악(潘岳)이라는 문인이 살았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미남으로, 시장 거리에 나갈 때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왜냐고?

하도 아낙네들이 선물을 던져 대서.

한 번 나갔다 돌아오면 반악의 수레는 과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척과영거(擲果盈車)다.

자기 동생이긴 하지만, 너무 잘생겨서 엇나갈까 봐 가끔 걱정되기도 한다.

“아, 아무튼 필요한 거 있으면 누나가 사 줄게! 여자애들한테 선물 너무 받고 그러지 마. 제일 가지고 싶은 게 뭐야?”

연서는 묘한 위기의식을 느끼며 물었다.

이제 월급 받으니까 얼마든지 비싼 선물도 사 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자 주안이가 등을 돌리고 누운 자세 그대로 대답했다.

“계단 없는 집.”

“…….”

“엄마 사실 무릎도 안 좋아서 요새 집 올라오는 데 10분씩 걸려. 예전에 병원 일할 때부터 안 좋았잖아.”

아니, 그래도 집은 좀.

거, 내 동생이지만 스케일이 너무 크시네.

“올해만 참아. 내년에 이주 지원비 나온다고 하니까 그거랑 누나 월급이랑 하면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갈 수 있으니까…….”

“그래도 집은 못 사지?”

“당연하지.”

의사가 아무리 일반 직장인보다 고소득이라 해도, 사회 초년생부터 집 같은 걸 턱턱 살 수는 없다.

“나는 누나가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았으면 좋겠는데, 기왕 결혼할 거면 부동산 부자랑 결혼했으면 좋겠다.”

“뭐?”

“농담.”

주안이는 그렇게 말하며 픽 웃었다.

하지만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새 어린 학생들은 살고 있는 아파트 브랜드로 급을 나눈다는데…….

아마 주안이도 내색은 안 하지만 본인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지잉―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연서는 금이 가 깨진 액정을 통해 메시지를 확인했다.

[진아] 어머니 괜찮으셔?

[연서] 네, 많이 안 다쳤어요. 다리 쪽에 깊지 않은 열상으로 몇 바늘 꿰매고, 늑골 2개 정도 금이 갔대요.

[진아] 어휴, 그나마 다행이다.

[연서] 병원은 별일 없어요?

[진아] 어, 아까 자잘한 콜 몇 개 오기는 했는데, 내가 얼른 처리했어.

[연서] 헉, 콜 많았어요?

[진아] 아니야, 다 간단한 것들이었어.

[연서] 진짜 고마워요, 언니 ㅠㅠㅠ

연서의 메시지가 ‘ㅠ’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고마웠다.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는 동기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었다.

[진아] 아 참, 그리고.

[연서] 네?

[진아] 그 이억준 말인데, 아무래도 너한테 진심인 모양인데?

[연서] …….

[진아] 지금 레지던트들이랑 술 마시면서 자기는 진심이었다고 막 울고 있대 ㅋㅋㅋ

[연서] 어휴 ㅠ

[진아] 그냥 그렇다고. 한번 생각해 봐~

―걔네 집 엄청 잘산다니까? 할아버지가 건설사 회장이래. 걔가 서울에 가지고 있는 부동산만 백 채가 넘는다는 썰이 있던데?

문득, 아까 진아 언니에게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좋겠다, 부동산 부자.”

연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트 에코백에 엄마의 짐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진아] 근데 연서 너, 솔직히 다른 사람 마음에 있지?

멈칫.

연서는 발걸음을 멈췄다.

깨진 액정 너머로, 한 줄의 질문이 연서의 마음을 묻고 있었다.

원래는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 성격이지만…….

왜일까.

오늘만큼은 누군가에게 털어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

토도독.

연서는 메시지를 보냈다.

후우우.

추위가 가시지 않은 밤공기를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어 본다.

속이 시원했다.

연서는 병원으로 향하기 전, 계단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뚤비뚤한 주택가 위로, 말갛게 하얀 달이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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