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20화 (220/241)
  • #외전 2화. 연서가 웃는 이유 (2)

    “엄마가 왜? 많이 다쳤어?”

    그렇게 묻는 연서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진아는 놀랐다.

    1년 동안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아 왔지만, 이렇게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일단 알았어……. 주안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 알았어.”

    연서는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든 침착을 되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모습이다.

    침대 위에서 진아가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엄마가 계단에서 넘어졌대요.”

    “많이 다치셨대?”

    “모르겠어요. 검사 중이라는데……. 일단 다리 쪽에서 피가 많이 났대요. 우리 집 계단이 좀 가팔라서, 좀 많이 다쳤을 수도 있…….”

    빠각!

    연서가 허둥대다 핸드폰을 놓쳐 떨어트렸다.

    액정에 금이 갔다.

    깨진 화면이, 마치 혼란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이연서, 진정하자.”

    진아가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말했다.

    “너 오늘 당직이야?”

    “네.”

    “당장 급한 콜 올 거 없지? 내가 오프니까 커버해 줄게. 13층 유로(URO, 비뇨기과) 병동 콜만 받으면 되는 거지?”

    “…….”

    “얼른 옷 갈아입고 가 봐. 13층 병동에다가는 내가 전화해 놓을게.”

    “그래도 돼요? 고마워요, 언니. 내일 자 프리옵(pre-op, 수술 전 준비) 다 해 놔서 콜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연서는 급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너희 집 의정부랬지? 의정부 병원 어디야? 언니가 택시 불러 줄게.”

    “송 병원이요.”

    “마침 대기하고 있는 택시 있네. 지금 옷 챙겨서 정문 쪽으로 나가면 시간 딱 맞겠다.”

    “진짜 고마워요, 언니. 제가 나중에…….”

    “됐고, 빨리 가 봐.”

    탁탁탁!

    연서는 뛰었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복도를 정신없이 달렸다.

    휴게실에서 인턴들이 왁자지껄하게 웃는 소리가 등 뒤로 멀어진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오늘따라 야속하게 들렸다.

    “의정부 콜 부르신 거 맞죠?”

    “예. 얼른 가 주세요!”

    연서는 택시에 얼른 올라탔다.

    숨이 가쁘다.

    무언가 가슴속에서 터질 것 같다.

    병원에서 계속 감추고, 덮고, 참아 왔던 감정들이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것처럼 끓어오른다.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택시 기사가 허허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아유, 너무 예쁜 아가씨가 달려오시길래 연예인인 줄 알았어요!”

    “…….”

    “그런데 이 시간에 의정부까지는 무슨 일이래요? 그 뭐냐, 방송 스케줄이라도 잡히신 모양인가 봐요? 허허허…….”

    택시 기사 아저씨는 농을 던지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룸미러 너머로 연서의 어두운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도저히 농담을 받아 줄 분위기가 아니다.

    머쓱해진 기사는 라디오의 볼륨을 올린 뒤 운전에만 집중했다.

    “……얼른 모셔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부웅―

    택시가 달린다.

    창 너머로 밤의 한강이 지나간다.

    창문을 살짝 열자, 영동대교 위로 부는 바람이 뒷좌석으로 거세게 들어온다.

    연서는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한 번 뜨거워진 눈시울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자꾸만, 자꾸만 뜨거워졌다.

    엄마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라디오에서는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 반대편에 있는 대교의 이름을 딴 노래인데, 오늘따라 가사가 마음에 아프게 박힌다.

    아픔도 강물처럼 흐르고 흐르다 보면 결국 어디론가 떠내려갈 것이다. 하지만 결코 멈추는 법은 없다.

    후우우.

    연서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붉어진 눈으로 한강을 바라보았다.

    ‘아프지 말자, 엄마. 제발 좀.’

    연서는 어깨 뒤로 지나가는 풍경을 향해 나지막이 되뇌었다.

    * * *

    톨스토이의 유명한 고전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모든 가정이, 차마 남들에게 쉽게 말 못 할 사정 하나씩은 안고 있다.

    연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연서에게 충격을 안겨다 준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저 집은 또 이혼했대요.”

    “세상에.”

    “어쩜 그런대요?”

    첫 번째 아빠는 무책임한 사람.

    두 번째 아빠는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동화책에 나오는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연서의 가정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

    “저 집 엄마가 정말 박복한가 보네.”

    “그러니까 말이에요. 얼굴은 정말 미인상이던데.”

    “얼굴 예쁘다고 다가 아니라니까요. 도화살이 꼈는지…….”

    “쉿, 애 듣겠어요.”

    “흠, 흠.”

    연서는 초등학생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이 아무 생각 없이 툭 떨어트리는 말 하나하나가, 말랑말랑했던 연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무엇보다, 아빠라는 존재가 이토록 쉽게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영원한 건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그 사실을, 연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깨달았다.

    두 번의 결혼 생활이 실패로 돌아간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세 번째 결혼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연서야, 여자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 혼자 설 수 있어야 해.”

    엄마는 이제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지인에게 소개받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 보조원.

    간호 본부 소속으로, 3교대로 일했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주된 업무는 ‘간호 업무 보조’다. 환의와 시트 교환, 환경 정리, 기구 세척, 약품 및 물품 옮기기 등등…….

    월급은 200만 원 언저리를 받았다.

    그동안 연서는 어린 주안이를 거의 자기가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

    둘째 아빠에게서 태어난 동생이라 어색하거나 미울 만도 한데, 10살 터울인 만큼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엄마는 연서의 침대로 다가와 말했다.

    “연서야.”

    “응?”

    “주안이 돌보느라 힘들지?”

    “아니? 하나도 안 힘든데. 주안이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잘 돌봐야지.”

    엄마는 뭐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연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가 미안해……. 우리 연서 희생하게 만들어서.”

    희생?

    연서는 그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오히려 이 가정에서 희생하는 것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연서와 엄마는 서로를 연민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생이었던 연서는 엄마가 일하는 병원에 가게 되었다.

    평소에도 집 열쇠를 받거나 물건을 가져다주기 위해 몇 번 방문하곤 했지만, 그날은 특별했다.

    <직업 탐구>라고 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시키는 학교 과제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어머, 네가 연서구나. 엄마한테 얘기 많이 들었단다. 실제로 보니까 정말 사진보다 더 예쁘구나?”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교수실.

    여자 의사 선생님이 친절한 미소로 연서를 반겼다.

    나이가 지긋하고 인상이 좋은 가정의학과 의사였다. 보조원인 엄마의 인터뷰 부탁을 흔쾌히 들어줄 정도로 친절한 성격이기도 했다.

    다만, 사춘기였던 연서는 약간 성격이 비뚤어져 있었다.

    늘 힘들게 일하고 적게 버는 엄마를 보다가, 여유로워 보이는 의사 선생님을 보니 괜히 뾰족하게 심통이 났다.

    “선생님, 얼마 버세요?”

    “응?”

    “직업은 안정적인가요?”

    중학생의 당돌한 질문.

    아마 꽤 당황했으리라.

    어가 영 버릇이 없다고 혀를 차며 꾸짖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친절히 웃으며 성심성의껏 답했다.

    “으음, 그야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지. 왜냐하면 항상 사람은 몸도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거든. 그러니까 의사라는 직업 또한 없어지지 않을 거란다. 아마도.”

    그 말은 중학생 연서의 머리에 깊숙하게 새겨졌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안정적인 직업?

    마음에 들었다.

    ‘안정적’이라는 것은 연서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기에…….

    처음으로 의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은 이어졌다.

    “그리고 의사들의 수입은 개인의 상황마다 다르지만, 보통…….”

    “!”

    이어지는 말을 듣는 순간.

    연서의 진로가 정해졌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제법 독하게.

    연서는 그날부로 싸구려 로드샵 화장품들을 휴지통에 투척했다.

    “엄마, 나 공부할 거야.”

    “응?”

    “독하게 공부해서 성공할 거야.”

    어린 연서에게서 비범한 결심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일까?

    빨래를 개던 엄마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물었다.

    “학원 끊어 줄까?”

    “응.”

    “!”

    엄마는 놀랐다.

    초등학생 시절 이후, 그녀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사교육에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집안 사정이 결코 넉넉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집에 막둥이도 있다.

    아직 돌봄이 필요한 어린 동생까지 끼고 공부에 몰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서의 결심은 확고했다.

    “나 한번 믿어 줘, 엄마.”

    열심히 할게.

    내가 언젠가는 다 갚을게.

    우리 가족 행복해질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 열심히 살 거야.

    그러니까, 엄마.

    그때까지 아프지 말자.

    제발.

    * * *

    타악!

    택시의 문이 닫힌다.

    연서는 병원 응급실을 향해 달렸다.

    곧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안아.”

    “누나.”

    열댓 살 정도의 소년.

    주안이가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뽀얀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누나의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이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린다.

    연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야, 왜 그렇게 울어?”

    주안이 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은 뒤 말했다.

    “엄마 무릎 찢어져서 열두 바늘 꿰매야 한대.”

    “……그게 전부야?”

    “으응.”

    “뼈는?”

    “이상 없대, 일단은.”

    “무릎만? 다른 데는 괜찮고? 머리나 허리는?”

    “괜찮나 봐.”

    연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가파른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무릎 피부가 찢어진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워낙 병원에서 온갖 끔찍한 케이스를 보아 왔기에, 이 정도라면 어마어마하게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주안이는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누나, 우리 엄마 왜 이렇게 자주 아파?”

    동생이 또다시 울먹인다.

    말을 하다가 울컥한 듯, 목소리에 물기가 차오른다.

    연서는 동생을 끌어안고 어린아이를 달래듯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주안아.”

    “갑상선인지 뭔지, 그거 수술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근데 이번에는 또 계단에서 넘어지기나 하고…….”

    “별일 아니야.”

    “뭐가 별일 아니야…….”

    “누나가 병원에서 아픈 사람 한둘 보는 줄 알아? 거기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 엄마는 아픈 것도 아니야. 다들 살면서 겪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뚝.”

    “흑…….”

    “뚝.”

    토닥, 토닥.

    연서는 동생의 등을 차분히 쓸어내렸다.

    중학생이면 클 만큼 큰 나이다. 이제 덩치도 제법 크고, 변성기도 왔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업어 키웠던 누나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인다.

    주안이는 서러운 듯 누나의 어깨에 이마를 파묻고 훌쩍훌쩍 울었다.

    “…….”

    그러는 한편.

    응급실 사람들은 어느새 이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심지어 조금 전에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실려 왔던 환자까지…….

    다들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두 사람의 비주얼이 장난 아니다.

    연서야 말할 것도 없지만, 주안이는 더했다. 벌써부터 아이돌 연습생 아니냐고 주위에서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두 남매가 얼싸안고 있는 것이, 가련한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보였다.

    ‘와, 애들 인물 좋은 거 봐.’

    ‘연예인 집안이야?’

    ‘저 집은 뭘 먹이길래 저래?’

    ‘아따…… 우는 얼굴들도 예술이네, 예술이여.’

    다들 말은 못 하지만 내심 감탄하고 있다.

    그동안 연서는 계속 주안이를 안고 토닥여 주었다.

    그때, 응급실 의사가 조심스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저, 진혜경 환자 가족분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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