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16화 (216/241)

#216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9)

<렁(lung, 폐)이 덜 펴진 것 같은데요, 마취과 선생님?>

<……!>

백의신의 판단은 빨랐다.

폐가 문제였다.

흉강 안으로 들어간 공기 때문에 폐가 미처 펴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흉막을 가위로 크게 열어 공기를 뺐다.

<앰부 배깅(ambu bagging) 좀 해 주세요!>

슈욱, 슈욱-

마취과 쪽에서 앰부(ambu, 공기주머니)를 짠다.

그 박자에 맞추어, 분홍색 폐가 부풀어 오른다.

폐의 겉면이 맨들맨들하게 충분히 부풀어 오르자, 백의신이 연이어 외친다.

<이노트로픽스!>

이노트로픽스(inotropics, 승압제).

심장의 힘을 잠시 높이는 약을 쓰자는 이야기였다.

잠시 멈춰 있던 수술실이, 그의 지휘 아래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콩닥, 콩닥-

잠시 겨울잠을 잤던 슬기의 자그마한 심장이, 봄을 만난 듯 힘차게 뛴다.

‘이제 나도 뛰고 싶어요.’

그렇게 세상에 크게 외치는 것처럼.

<석션!>

슈르륵-

심장 주위의 핏덩이들이 빠르게 사라진다.

슬기가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것처럼, 슬기의 심장이 뛸 수 있게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수술 필드의 리더는 그렇게 상황을 바꾼 뒤, 다시 체외순환사에게 말한다.

<다시 펌프 위닝(weaning, 이탈) 해 봅시다!>

두 번째 시도.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슬기의 심장과 폐가 정상이 되었을까?

모두의 조마조마한 시선이 슬기의 모니터링 기구로 향한다.

"……."

70%.

50%.

30%.

서서히 인공심폐기 의존도를 줄여 나간다.

시계 초침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바라본다.

환자의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잠시 왔다 갔다 하더니…….

"……괜찮은 것 같은데?"

강당의 누군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산소포화도는 99, 100.

희망의 숫자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90이 안 되는 산소포화도로 살아온 슬기.

이 작은 아이가, 처음으로 인공심폐기의 도움없이 100이라는 숫자를 가지는 순간이었다.

"와아!"

"됐다, 됐어!"

"역시…… 백의신 교수님이야."

마동섭이 미소를 짓는다.

강당의 청중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수술실 사람들도 마찬가지.

마스크로 표정은 가려져 있지만, 눈빛에서 십 년 감수했다는 감정들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한결같은 평정심을 유지한 것은 백의신 교수뿐이었다.

"선한이 형, 어떻게 알았어요? 심장이 아니라 폐가 문제일 거라는 거."

류명인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 내게 묻는다.

어떻게 알았냐고?

어려운 판단은 아니었다.

슬기의 미래를 보고 난 뒤, 심장 수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었으니까.

아마 내가 아니라도 흉부외과 의사라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다만 당황해서 모두의 눈이 일시적으로 가려졌을 뿐.

"가장 간단한 문제이길 바랐던 거야."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아직 수술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42km를 달린 마라톤 러너는 결승선을 끊어야만 완주자가 된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방심할 수 없다.

백의신이라는 주자는, 슬기의 손을 잡고 마지막 결승선을 앞두고 있었다.

<펌프 오프(pump off, 인공심폐기 멈춤)하고. TEE 봐 주시죠, 마취과 선생님.>

백의신이 말한다.

TEE(Trans-esophageal Echocardiogram, 경식도 심초음파).

환자의 식도로 프로브(probe, 탐색자)를 넣어 시행하는 심장 초음파 검사.

수술이 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테스트다.

모든 심장 수술에서는 이렇게 마지막으로 체크하는 과정을 거친다.

마취과 교수가 심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말한다.

심장에 있던 구멍들이 잘 막혀 있다는 이야기.

물론 아직 끝이 아니다.

이다음이 중요하다.

대동맥으로 나가는 길(LVOT)과 폐동맥으로 나가는 길(RVOT)이 수술의 핵심이니까.

백의신이 묻는다.

그 말에, 모두가 심초음파 화면을 쳐다본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행되는 수술의 결과는 어떨까?

모두의 궁금증에 대한 답이 드디어 나올 차례였다.

<……좁아진 부분 없이 좋은데요?>

심장 수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방금 양진우 교수의 말이 이번 PRT 수술의 성공을 의미한다는 것을.

백의신도 심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제가 봐도 좋네요. 좁아지지 않고, 리거지테이션(Regurgitation, 역류)도 저 정도면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어요.>

<네, 수술은 아주 잘되었네요!>

짝짝-

누군가 갑자기 박수를 쳤다.

왕성한 교수였다.

혈기왕성한 인상답게, 화끈하고 뜨거운 박수였다.

그리고 그 박수는 조금씩 강당에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화면 속 백의신에게는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이제 수술의 마무리 과정을 향해 직진할 뿐이다.

<자, 이제 울트라-필트레이션(Modified Ultrafiltration, 심장 수술시 시행하는 여과법) 시행하겠습니다.>

"역시 백의신이구만, 마지막까지 빈틈이 없어."

왕성한 교수가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마지막까지 철두철미.

수술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인공심폐기를 통한 울트라필트레이션으로 환자 몸속의 수분을 조절한다.

캐뉼라 제거.

세척.

출혈 조절.

흉관 삽관.

페이싱 와이어.

이 모든 과정이 빠르게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흉골을 닫은 뒤, 백의신 교수는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수술 완료!

칼이 들어가고 수술 완료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준임과 송유주가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눈빛에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진다.

의미가 큰 수술에 참여했으니,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그래.>

백의신 교수는 짧게 대답한다.

환자가 중환자실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채, 백의신 교수는 수술방을 나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한편으로는, 그런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 * *

잠시 후.

"백의신 교수님 입장하십니다."

짝, 짝, 짝-

강당에 박수가 울려 퍼졌다.

그 박수 소리는, 수술복 차림의 백의신 교수가 단상 위로 올라올 때 더욱 커졌다.

마치 어려운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생각보다 좀 늦었습니다."

백의신 교수는 짧게 소감을 말한 뒤, 단상 위에 있던 물병을 따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멋있다……."

"크으……."

신상미와 류명인이 감탄을 흘린다.

나도 동감이다.

삼국지연의에서 화웅을 물리치고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온 관우가 저런 포스였을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뿌듯한 웃음이라도 지을 법한데, 여전히 메마른 표정이다.

"아까 안 받았던 질문, 지금 받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전례가 없던 수술이니만큼, 질문도 많았다.

백의신 교수는 지친 기색도 없이 명료하게 답했다.

그때, 누군가 장난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아까 백 교수님이 생각보다 늦게 끝났다고 했는데, 그럼 더 빠를 수도 있었습니까?"

"당연합니다."

"믿기지가 않는데요?"

백의신 교수는 웃음기 하나 없이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라이브 수술이라 설명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죠. 그리고 만약 조수 및 간호사들과 호흡을 좀 더 맞춰 봤다면, 더 빠르게 끝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보다 더 빠르게?

사람들은 상상이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실제로 수술실에서 허준임과 송유주의 보조는 흠잡을 곳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아 참, 그래서 말 나온 김에 말인데."

백의신 교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슨 말을 하려고?

다들 귀를 기울여 집중하는 가운데, 그의 입이 열렸다.

"백의신 팀을 만들려 합니다."

백의신 팀?

내 눈이 커졌다.

느닷없는 선언에 기자들이 바빠졌다.

"예전에 있던 백의신 팀과 동일한 형태인가요?"

"비슷한데 좀 다릅니다."

"연국대병원 안에 별도의 분리된 조직을 만드는 건가요?"

"뭐, 그런 건 아니고."

백의신은 희끗한 머리를 쓸어올린 뒤 말했다.

"오늘 같은 수술이 있을 때마다 헤쳐 모여를 반복하는, 일종의 TF(Task Force, 특수임무) 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흉부외과 의사들뿐만 아니라 마취과, 내과, 소아과, 간호사 등등 관련 부서의 전문가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갑작스러운 발표.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기자 중 한 명이 얼른 손을 들었다.

"중요한 수술만 하는 팀이라는 뜻인가요?"

"모든 수술은 중요합니다."

백의신은 기자의 말을 일축한 뒤 덧붙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려운 수술은 존재합니다."

흉부외과의 영역에서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수술.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수술.

그런 것들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 모인 타 대학 교수님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연국대병원의 흉부외과는 이미 대한민국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백의신 교수는 손바닥을 수평으로 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키를 재는 듯.

그리고, 그 손을 더 높이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것을, 세계 최고의 레벨로 끌어올리려 합니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울려 퍼졌다.

청중들의 반응은 제각각.

몇몇은 불편해하고, 몇몇은 환호한다.

마동섭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신상미와 류명인은 초롱초롱한 눈빛이다.

나는,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첫째. 제가 관종이기 때문이고."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관종은 관심 종자의 줄임말.

사람들의 이목을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다.

의사들 사이에서 백의신을 헐뜯는 말이기도 했는데, 그걸 본인의 입으로 말한 것이다.

"둘째 이유로는……."

나는 의자에 뿌리를 내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백의신 교수는 수많은 청중들 중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백의신 팀에 합류할 만한 새싹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강당이 소란스러워졌다.

모두에게 폭탄을 던진 뒤, 백의신 교수는 유유히 사라졌다.

오늘, 백의신 교수는 두 명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 * *

"속이 시원하십니까?"

"응."

병원장 이윤중 교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원망스러웠다.

병원장실에 태연히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저 인간.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처음 듣는 것도 아니면서 뭘 그래?"

"그 자리에서 갑자기 팀 결성을 발표하실 줄은 몰랐죠.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었지 않습니까."

"대외활동 열심히 하면서 병원 홍보해 주면 팀 만들어 준다면서?"

끄으응…….

병원장은 골치가 아팠다.

오늘 공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천만다행.

앞으로 수술 후 경과도 좋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그런데 백 교수님, 수술 실력 여전하시던데요?"

"당연하지."

"몸 안 좋아지신 거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 술자리에서도 병 떨어트리시고……."

"아, 그거?

백의신은 어깨를 으쓱인 뒤 대답했다.

"나 술 약해."

"……."

"몰랐냐?"

잠시나마 걱정했던 내가 바보지.

병원장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고, 백의신은 하품을 하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뭐, 시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야."

백의신은 이제야 피로가 몰려오는 듯 눈을 감았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수술해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수술 중에도 가끔 쉬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아까도 폐동맥뿌리 자를 때 눈이 순간 침침해지더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그래도 아찔하긴 했지."

"괜찮으신 거 맞죠?"

"그냥 나이 들어서 삭은 거지, 뭐."

몸이 삭는다.

그 표현이 어찌 보면 정확하다.

하루 종일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수술실에서 평생을 일했으니까.

"그래도 몇 년은 더 쓸만하니까 걱정 말아."

"은퇴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팀에서 후계자라도 양성할 생각이세요?"

"뭐, 비슷해."

"……송유주 말씀하시는 거죠?"

병원장이 지레짐작하듯 조심스레 물었다.

송유주라면, 백의신의 후계자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연국대병원 흉부외과 최고의 아웃풋.

이미 천재라고 병원에서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그런데, 백의신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걔 말고도 한 명 더 있어."

"누구요?"

백의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면서 창밖 어딘가 먼 곳을 쳐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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