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15화 (215/241)
  • #215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8)

    모두들 숨을 참고 상황을 지켜본다.

    이 수술의 하이라이트.

    폐동맥 뿌리가 뽑히기 직전.

    갑자기 백의신 교수가 한숨을 쉬며 수술 필드에서 시선을 뗀 것이다.

    ‘……무슨 일일까?’

    다들 의아해하는 눈치다.

    방송 화면에 당황한 허준임 교수가 보인다.

    그 옆의 송유주 또한 마찬가지.

    잠시 숨막히는 정적이 흐른 후, 마침내 백의신 교수가 탄식하듯 말한다.

    <제기랄. 수술에 집중하다 보니, 라이브 수술인 것을 깜빡했네.>

    모두가 그의 입에 주목한다.

    <자르기 전에 말했어야 했는데…… 지금 여기 폐동맥 뿌리를 하베스팅(harvesting, 채취)하는 부분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휴우우우-

    다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몰입하느라 본인이 시연하고 있는 수술에 대한 설명을 깜빡했다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신상미가 의자 등받이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와아~ 우리 백의신 교수님, 청중들을 아주 들었다 놓았다 하시네."

    "저도 무슨 일 생겼나 걱정했잖아요."

    류명인도 투덜댄다.

    반면 마동섭은 백의신 교수의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나 역시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이 부분이야말로, 대한민국 최초 PRT 수술의 핵심이니까.

    <……이런 식으로 인시션(incision, 절개)을 넣고 진행하면 됩니다. 참 쉽습니다.>

    쉽다고?

    농담일까, 진담일까?

    강당에 모인 모두가 헛웃음을 지었다.

    문득 ‘참 쉽죠?’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옛 화가가 떠오르기도 하고…….

    실제로도 얼핏 보면 참 쉬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집도의가 백의신이기 때문.

    이 강당에 있는 사람들 중, 저게 쉽다고 생각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동섭 선생님, 저거 쉬운 거 아니죠?"

    "쉽겠냐?"

    "근데 왜 백 교수님이 하는 건 저렇게 쉬워 보이죠?"

    "나도 그게 의문이다."

    대동맥 판막 부위와 승모판.

    심장 안에서 피의 흐름을 담당하는 중요부위다.

    이 부분들이 다치지 않게, 백의신은 폐동맥 뿌리를 조각하듯 박리해 나갔다.

    슥삭 슥삭-

    남아 있는 판막 아래 조직들과 심근의 일부를 절제하더니, 마침내 폐동맥 뿌리를 완전히 분리해 낸다.

    "마동섭 선생님, 그럼 이제 떼어 낸 구멍은 어떻게 해요?"

    "기다려 봐. 놀랄걸."

    마동섭은 씩 미소를 지었다.

    곧 백의신 교수의 손이 움직인다.

    폐동맥 뿌리가 없어진 자리를 수술 초반부에 떼어 놓았던 심낭막(pericardium)으로 덮어 준다.

    마치 사이즈가 맞는 뚜껑처럼, 딱 들어맞는다.

    신상미의 눈이 커졌다.

    "아, 수술 시작할 때 오려 놓았던 그 심낭막?"

    "맞아, 모든 건 계획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던 거지."

    "으아, 소름……!"

    신상미가 팔을 싹싹 문지른다.

    다른 외부 물질을 쓰는 것보다, 본인의 생체조직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법.

    그렇기에 미리 심낭막을 잘라 두었다 사용하는 것이다.

    마치 영화를 볼 때, 초반부의 복선이 엔딩에 딱 들어맞게 설명되는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역시 심장 수술은 멋있어.’

    나는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몇 시간에 걸친 수술.

    그 수술에도 정해진 길이 있고, 순서가 있는 법.

    지금 PRT 수술의 퍼즐 조각들은 하나씩 맞추어지며 큰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메스.>

    백의신이 다시 메스를 든다.

    이번에는 심장의 우심실을 절개하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 절개하는 부분이 폐동맥을 붙일 위치가 됩니다.>

    서억-

    백의신의 메스가 우심실을 가른다.

    그러자 그 안으로 심실 사이에 있는 구멍인 VSD(심실중격결손)가 보이기 시작했다.

    슬기에게 이 VSD는 그나마 피가 섞이게 해 주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사실 정상 심장에서는 없어야 되는 구멍이다.

    <…….>

    백의신은 차분히 심실 사이의 구멍을 살펴본다.

    그러더니, 수술용 가위를 쥐고 심장 안을 다시 한번 조각하기 시작한다.

    서억, 서억-

    심장근육과 중격이 조금씩 깎여져 나간다.

    그렇게 백의신이 든 수술기구들은 심장 안쪽에 길을 만들고 있었다.

    마동섭의 설명이 이어진다.

    "결국 TGA 수술에서 중요한 건, 심장에서 피가 나가는 길을 잘 만들어 주는 거야. 지금 그 길을 만들고 계신 거라고."

    좌심실 → 대동맥.

    우심실 → 폐동맥.

    이게 옳게 된 방향이다. 마치 우주의 섭리처럼.

    그동안 해가 서쪽에서 뜨던 현상을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

    백의신은 금세 길(LVOT, 좌심실 유출로)을 만들었고, 이제 심실중격결손을 막아 주면서 그 길의 건설 과정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는 이번에는 니들홀더(needle holder, 바늘을 잡는 수술도구)를 들고 연속 수처로 꿰매기 시작했다.

    스윽- 드르륵-

    바늘이 심장조직을 통과하는 소리와, 니들홀더를 다시 무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린다.

    그의 손은 빨랐다.

    재봉틀처럼 움직이는 손놀림을 계속하면서, 백의신이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여기 후부 쪽 VSD 경계면을 꿰맬 때는 조심해야 됩니다. 컨덕션 시스템이 지나가니까.>

    컨덕션 시스템 (conduction system, 전기 전도계).

    우리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게 하는 것은, 심장 내에 있는 전기의 힘이다.

    만약 전기 흐름에 손상을 준다면?

    부정맥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기에 심장 수술 중에는 전기가 지나가는 주요한 길들을 미리 알고 피해 가야 한다.

    백의신은 그 주요한 길까지 알려 주고 있었다.

    마치 모든 길을 훤히 꿰뚫고 있는 내비게이션처럼.

    <자, 이제 피에이(PA, 폐동맥)를 이어 붙입니다.>

    어느덧 거의 마지막 단계.

    방금 떼어 놓았던 폐동맥 뿌리를 우심실에 붙인다.

    심장 조각 작품의 완성.

    그 모양이 경이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3개월 전 뚫어 놓았던 심방중격결손을 막으면서 수술이 거의 완료된다.

    그때, 강당에서 지켜보던 왕성한 교수가 나지막이 탄성을 흘린다.

    "……메인(main procedure) 끝내는 데까지, 두 시간이 채 안 된다고? 너무 빠른데?"

    그제야 다들 시계를 보고 술렁인다.

    수술이 빠르면 좋냐고?

    그야 당연하다.

    심장 수술 중에는 인공심폐기를 쓰면서 심장이 뛰지 않는 시간이 이어진다.

    이 시간이 길면 길수록 합병증의 확률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수술 후 심장이 회복하는 데 힘들 수 있다.

    그렇기에 빠르고 정확한 수술은 수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이다.

    "히야……."

    "역시 대단하시네."

    "백 교수님 이제 심장 수술 못 할 거라고 누가 그랬습니까?"

    "어험, 험. 그러게요. 누가 그런 헛소문을 내 가지고는……."

    두 시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팔짱을 끼고 의심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의신 교수는 보여 주고 증명했다.

    그의 수술 실력은 여전히 탑 클래스임을.

    "크으, 주모!"

    "이게 연국대병원 흉부외과 클래스죠!"

    "다들 진정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마동섭의 말에, 잠시 흥분했던 인턴 동기들은 진정했다.

    만약 자동차의 엔진을 교정했다면?

    시동을 걸어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심장 내부의 술기가 끝났다면?

    이제 인공심폐기에서 벗어나, 슬기의 심장으로 돌아올 시간이 왔다.

    백의신 교수가 수술 시작 후 처음으로 필드 바깥을 보며 말한다.

    <체온 올려 줘요.>

    수술이 끝나고, 펌프(pump, 인공심폐기)를 줄일 타이밍.

    체온이 올라감과 동시에, 심장 안에 남아 있는 공기 방울들을 제거하는 작업들이 진행된다.

    체온이 충분히 오르고, 심정지액의 효과가 사라지는 시점이 오자 슬기의 심장이 조금씩 조금씩 다시 뛰기 시작한다.

    "……."

    푸륵- 푸르륵-

    아주 천천히, 조금씩 빠르게.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그것은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마치 잠시 떠났던 슬기의 영혼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와,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네요! 신기해요!"

    신상미는 어느새 심장 수술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 이제 메인 수술은 끝났다고 봐야지. 하지만,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다."

    "아직도 뭐가 남았어요?"

    "펌프 위닝(weaning, 줄여서 이탈). 수술이 잘되었는지 평가하는 시간이야. 수술이 잘되었다면, 인공심폐기 도움 없이도 혈압이나 산소포화도가 충분히 나와야만 해."

    마동섭의 말대로였다.

    심장수술의 평가는 수술장 내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인공심폐기 없이, 심장이 충분한 힘을 낼 수 있는가?’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수술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이 심근보호(Myocardial protection)가 되었든, 심장 내에 만들어 놓은 길들이 잘못되었든 말이다.

    <펌프 줄여 볼까요? 일단 70%.>

    꿀꺽-

    모두 숨죽여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50%, 30%…….

    차례로 백의신이 말하면서 펌프 의존도가 줄어든다.

    그런데.

    모니터링 기구에서 심박수에 따라 울려 퍼지는 소리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띠, 띠-

    새츄레이션(saturation, 산소포화도)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내려가는 숫자를 향해 카메라가 클로즈업된다.

    "……?"

    심근보호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수술이 잘못된 건가?

    모두의 불안한 시선이 바이탈 사인 모니터로 향했다.

    "……혹시 라이브 수술이라고 너무 속도를 낸 거 아냐?"

    왕성한 교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강당 안의 사람들이 웅성인다.

    모두들 이 수술의 결과에 확신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빠져들었다.

    <일단 펌프 다시 올리겠습니다!>

    위이잉-

    곧 새츄레이션이 회복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

    수술실의 사람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백의신의 눈치만을 살폈다.

    만약 이대로 심장 기능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여태까지 한 모든 것이 무용지물일 터.

    강당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목이 탔다.

    "으, 살 떨려……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수술 중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지."

    신상미와 류명인이 조마조마하게 화면을 살핀다.

    마동섭도 불안해하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아니, 아직 실패한 게 아니야.’

    백의신 교수.

    그는 당황하지 않는다.

    만약 수술 필드가 경기장이라고 한다면, 집도의의 위치는 감독이자 에이스.

    그가 당황하면 게임은 그대로 끝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다.

    ‘만약 내가 백의신 교수라면…….’

    나는 상상했다.

    17번 수술실, 환자의 오른쪽.

    만약 저기에 내가 있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던 도중, 무언가 머릿속에서 툭 하고 떠올랐다.

    "심장이 아니라, 폐가 문제일지도 몰라요."

    내 말에 마동섭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때.

    <메젠바움.>

    백의신 교수가 옆으로 손을 내밀며 말한다.

    <……예?>

    <안 들려요?>

    백의신의 말이 신경질적으로 날카롭다.

    수술방 간호사는 처음으로 당황하면서도, 수술용 가위를 건넨다.

    차악-

    백의신은 가위를 건네자마자 손을 움직인다.

    심장 바로 옆.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pleura)를 갈라서 열며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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