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7)
<에이씨씨(ACC) 잡습니다.>
끼리릭-
백의신은 말이 끝나자마자 굵은 클램프 포셉으로 슬기의 대동맥 전체를 물었다.
ACC (Aortic cross clamp, 대동맥 겸자).
대동맥을 클램프로 물어 심장과 대동맥 사이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심장을 따로 분리해서 보겠다는 의미이다.
<카디오플레지아(cardioplegia, 심정지액)!>
슈우욱-
백의신의 지시에, ‘심정지액’이 대동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동맥 겸자(ACC)로 완전히 단절된 것을 이용하여, 심정지액을 관상동맥으로 보내는 술기였다.
심장 혈류를 책임지고 있는 관상동맥으로 들어간 액체가, 심장 근육으로 전달된다.
"자, 이제 심장이 어떻게 되나 봐봐."
"예."
마동섭의 말에, 우리는 침을 삼키고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4℃의 차가운 ‘심정지액’이 심장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럴수록 심장은 창백해지기 시작했고 움직임도 서서히 느려졌다.
푸으윽-
곧, 심장 근육은 더 이상 뛰지 않는 지경까지 간다.
"우와, 심장이…… 얼어 버린 것 같아요."
신상미의 감탄에 마동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타슘(K, 칼륨)이 들어 있는 심정지액이 들어가면 저렇게 되지."
"포타슘은 엄청 조심해서 써야 하는 약이잖아요? 잘못 주사하면 환자 심장이 멈춰 버리니까."
"그 부분을 이용하는 거지. 잘 쓰면 약이고, 잘못 쓰면 독인 거야."
즉, 약물을 사용해서 의도적으로 심장을 한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근데 저렇게 하면 심장 근육이 보호가 돼요?"
"된다."
마동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Myocardial protection(심근보호).
말 그대로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심장 근육을 보호하는 핵심 단계.
수술 중 혈류를 공급받지 못하는 심장 근육들이 손상받지 않도록, 심장을 잠시 멈추는 것이다.
만약 심장 근육들이 손상받게 되면?
환자는 수술 후 심장 기능을 회복하지 못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니, 심장 수술 한번 받으려면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겨야 하는 거예요?"
"그런 심장 수술이 전세계에서 하루에도 수백 건 넘게 문제없이 시행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현대의학의 발전……."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덜컹-
강당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닫히는 문 사이로, 한 여자의 뒷모습이 도망치듯 사라지고 있었다.
"누구지?"
"뒷모습이 보호자 분 같은데…."
"헉, 아기 엄마요?"
"나도 깜빡 잊고 있었는데, 조금 전까지 맨 뒷좌석에서 수술 참관하고 계셨었거든."
"아……."
신상미는 혀를 깨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던 것이 어쩐지 미안해진 모양이다.
"아무리 강단 있는 사람이라도 자식의 심장 수술을 지켜보는 건 힘들었을 거야……."
마동섭이 착잡하게 말끝을 흐린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스터디를 하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움’의 의무가 있는 예비 1년 차들.
이런 기회에 열정적으로 학습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겠지.’
소중한 아기의 수술.
그것을 수많은 의사들이 냉정하게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것.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이 견디기 힘들 것이다.
모든 환자는 하나의 ‘케이스’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것이다.
‘잊지 말자.’
나는 보호자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가슴에 새겼다.
수술 하나하나.
의사에게는 경험치를 쌓는 과정일지 몰라도, 본인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라는 것을.
‘걱정하지 마세요. 슬기는 꼭 살아 돌아올 겁니다!’
보호자는 의사들을 믿고 용기를 냈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행되는 수술에 동의했고, 학술적인 목적을 위한 라이브 서저리에도 동의했다.
그만큼, 수술실의 의사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디 슬기가 사선에서 돌아올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 * *
한편, 17번 수술실.
송유주는 마스크 아래로 나지막이 숨을 내뱉었다.
‘후우.’
다리가 빳빳하게 굳었다.
하지만 이걸 펼 새도 없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손이 미세하게 흔들려서 수술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수술 필드의 속도감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덕분에 마음속 긴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백 선생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만 하는 것도 벅차.’
송유주는 집중력을 다잡았다.
실제로 수술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송유주의 공도 컸다.
무대가 화려할수록 그 뒷면에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법.
지금 자신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만 더 정신 차리자!’
그러는 한편.
PRT 수술은 거침없이 한 단계씩 진행되고 있었다.
백의신이 메스를 들었다.
그리고 심장의 우심방(RA, Right Atrium)을 가르기 시작한다.
스윽-
칼이 들어감과 동시에, 백의신의 입이 열렸다.
"송유주."
"예?"
"지금 내가 뭘 하는지 말해 봐."
뜻하지 못한 질문.
마치 테스트라도 하는 듯하다.
송유주는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침착하게 대답했다.
"벤팅(venting), 심정지액이 다시 심장 안으로 들어오는걸 빼내 주시는 겁니다."
마치 그에 답하듯, 백의신의 석션(suction)이 갈라 놓은 우심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심방 사이에 있는 구멍을 통해, 좌심방으로도 들어가 심정지액을 빼내 주었다.
"벤팅을 하는 이유는?"
"심정지액이 심장에 쌓여서 심실이 확장되면, 마이오카디알 데미지(myocardial damage, 심근 손상)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백의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답이라는 뜻.
지금 그는 어떻게든 심근손상을 안 시키려고 갖은 애를 쓰는 중이었다.
심근만 잘 살린 채로 심장 수술을 끝내도 환자는 죽지 않으니까.
"자, 이제 심장도 멈춘 것 같고."
백의신이 말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생명력을 과시하던 작은 심장.
그랬던 심장이, 지금은 미동도 없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곧 백의신이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백의신의 차가운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진다.
캐뉼레이션 과정에서 그의 손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 준 시점.
이제는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차례였다.
강당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모두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폐동맥 쪽 박리하던 부분을 계속해서 진행하겠습니다.>
본격적인 PRT 수술의 시작.
백의신의 손이 움직인다.
한 손에는 포셉.
다른 한 손에는 보비(bovie, 전기칼)와 메젠바움(metzenbaum, 수술용 가위)을 번갈아 든다.
곧, 그의 손이 피아니스트처럼 움직이며 폐동맥 뿌리를 박리하기 시작했다.
‘……!’
송유주의 눈이 커졌다.
지금 이 순간.
피로감과 긴장감 따위는 새하얗게 날아가 버렸다.
그 마음은, 신선한을 포함한 강당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그동안 많은 수술에 참여했던 송유주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집도의들과 레벨이 세 단계는 다르다는 것을.
‘이게 백 교수님 수술이구나.’
빠르다.
그리고 정확하다.
고도의 기술은 예술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던가?
그의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조각에 혼을 바친 예술가를 보는 것만 같다.
주먹만 한 소아의 심장을 자유자재로 조각하는 예술가.
그동안 송유주가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그려 왔던 이상향에 가까웠다.
‘이런 분이 TOS(흉곽출구 증후군)라고?’
그럴 리 없지.
만약 병 때문에 손이 저렸다면 수술 도구를 잡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날카로운 손놀림을 직접 보고도 그런 의심을 가지기는 힘들었다.
‘대단해.’
문득 송유주는 오래된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누군가 성공 비결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명료한 문장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
슥, 삭-
백의신의 손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메젠바움은 폐동맥이 위치하고 있는 좌심실의 일부 심근을 파고들어 간다.
절제되어 있는 움직임 속에서도, 필요한 부위에 필요한 만큼만 힘을 들여 진행되는 박리(dissection).
그의 마법 같은 손끝 움직임에 폐동맥 뿌리가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다.
곧, 그의 손끝은 좌심실 쪽으로 파고들어 간다.
‘여기가 가장 중요해!’
송유주는 보조에 집중하며 생각했다.
‘우심실 분지(large conal RV branches)와 관상동맥(LAD coronary artery)가 안 다치게 조심해야 하는데…….’
역시 백의신 교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위험한 부분을 귀신같이 피해 간다.
심장의 3차원적 구조가 머릿속에 완벽하게 들어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집도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송유주는 머릿속으로 잠시 생각해 본 뒤,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불가능.
물론 몸 밖에서 환자의 심장을 구성할 수 있는 검사 수단은 많이 있다.
심장초음파.
심장 MRI.
심장 CT.
하지만 이런 검사결과들로 환자의 심장 구조를 완벽하게 3차원으로 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어느 부분에 칼을 댈 때, 이 뒷부분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면 칼을 함부로 댈 수 있을까?
그래서 수술을 위해서는 3차원적인 공간 인지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때, 체외순환사가 외친다.
"20분 경과했습니다!"
백의신이 손을 쉬지 않고 대답한다.
"카디오플레지아(cardioplegia, 심정지액) 한 번 더 줄게요."
다시 심정지액이 들어갔다.
집중하는 와중에도 주기적으로 심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손기술뿐만 아니라, 신경 써야 할 다른 부분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 모습.
백의신의 손은 계속 바쁘게 움직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폐동맥 뿌리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논문을 읽어 보았을 때, 이 부분에서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될 구조물들이 많았었는데…….’
송유주는 집중했다.
폐동맥 뿌리를 완전히 떼어 내는 과정.
이 과정에서 승모판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는 것은 물론, 대동맥 쪽이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칼날의 진행 방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
그런데 송유주의 생각과는 반대로, 백의신은 손끝은 오히려 더욱 속도를 낸다.
‘그래, 백 교수님이라면 잘 해내시겠지.’
슥삭- 슥삭-
그는 슬기의 심장에서 폐동맥 뿌리를 조각해서 빼내고 있었다.
마치 심장에서 하나의 조각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백의신이 잠시 필드에서 물러나 고개를 빳빳이 든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걸까?
"……휴우."
백의신이 짧게 숨을 한번 내뱉는다.
수술이 시작되고 지금껏, 폭주기관차처럼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그가 드디어 쉼표를 가져갔다.
그런데, 그 시점은 수술의 가장 위험한 부분.
"뭐야?"
"왜 멈추셨지?"
강당 안도 술렁였다.
팔이 저려 온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자르지 말아야 할 곳에 칼집을 내 버린 건가?!
모든 사람들이 긴장한 채 백의신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