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13화 (213/241)

#213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6)

"?!"

수술 과정을 화면으로 지켜보던 우리는 흠칫 놀랐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아기의 대동맥에서 솟구쳐 오른 핏방울이 제1조수 허준임의 안경알에 선명하게 자국을 남긴다.

"헉, 허준임 교수님 안경에 피 묻었어요. 어떡해요…… 뭐 잘못된 건 아니겠죠?"

신상미가 호들갑을 떨며 걱정하자, 마동섭이 담담히 대답한다.

"Aorta(대동맥) 캐뉼레이션 도중에 피가 튀면 저렇게 높이 튈 수 있어. 대동맥은 우리 몸에서 압력이 가장 센 부분이니까."

흔한 일이라는 설명.

그 말대로, 백의신은 피가 튄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얼굴 근육에 미동조차 없다.

그저 손가락으로 피가 튀어오른 대동맥을 막고 있을 뿐.

이윽고 그는 수술 간호사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며 나지막히 말했다.

"캐뉼라(cannula, 관)."

곧 그는 손가락을 살짝 떼면서, 오른손에 받아 든 캐뉼라를 밀어 넣는다.

쑤욱-

캐뉼라는 부드럽게 대동맥 안으로 들어간다.

그와 동시에, 허준임이 두 겹으로 해 놓은 실 중 하나로 캐뉼라를 고정한다.

딸깍-

허준임이 모스키토(mosquito, 겸자 수술기구)를 사용해서 실을 고정하자, 백의신이 곧바로 다음 캐뉼라를 고정한다.

딸깍-

마치 수년간 계속해서 합을 맞춰 온 것처럼, 두 사람의 손은 물 흐르듯 움직인다.

"와……."

"빠르다……."

우리 예비 1년 차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백의신 교수님도 대단하지만, 허준임 교수님도 만만치 않다.

마치 합이 잘 맞는 칼군무를 보는 것 같달까?

집도의와 조수.

둘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필요없었다.

척하면 척.

미리 짜 놓은 대본으로 연기를 하듯, 그들은 서로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톡, 톡-

백의신은 클램프 포셉(clamp forcep, 수술기구)으로 캐뉼라를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때린다.

그러자 신상미의 질문이 이어진다.

"저건 뭐 하는 거예요?"

"방금 대동맥에 들어간 캐뉼라를 통해서, 심폐기가 우리 몸에 혈류를 쏴 줄 거 아니냐."

"네, 그런데요?"

"그러니까 저 안에는 공기 방울 같은 게 있으면 안 돼. 자칫 공기 방울이 머리로 날아가면 뇌색전증이 올 수도 있거든."

마동섭 선생의 무시무시한 설명.

내가 덧붙여 물었다.

"에어 엠볼리즘(air-embolism, 공기 색전증). 그러니까 지금 그 공기 방울들을 털어서 날리는 과정이군요?"

"그렇지. 저 작은 공기 방울 하나가 환자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피가 심폐기에서 산소를 얻어 대동맥으로 들어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작은 불순물이라도 있다면 환자를 죽일 수도 있다.

그게 설사 작은 공기 방울일지라도.

그만큼 심장 수술은 순간순간이 생사(生死)와 직결되는 것이다.

허준임 교수가 방금 대동맥에 넣은 캐뉼라를 심폐기에서 나온 튜브에 연결하자 마동섭이 설명한다.

"저런 과정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원칙이 있어."

"그냥 고정하고 연결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저 캐뉼라도 방향이 있기 때문에 그냥 무턱대로 고정하면 안 돼. 사이드에 있는 꼭지가 아래 방향을 향해야 한다고."

"하, 디테일……."

신상미가 어질어질한 표정을 짓는다.

"심장 수술의 초반 루틴 과정이 쉬운 게 아니야. 제대로 모르면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잘들 봐 둬. 허준임 교수님, 그리고 유주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마동섭은 그 뒤로도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제2조수, 제1조수, 그리고 집도의의 역할들.

캐뉼레이션 과정에서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기억해 두자.’

나는 집중력을 다잡았다.

환자의 생명이 걸린 수술.

1분 1초가 배움의 순간이다.

백의신 교수님이 왜 라이브 방송을 강행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배움은 식물을 심는 것과 같다.

지식이 씨앗이라면, 경험을 통해 비로소 뿌리를 내리게 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간접경험.

단순히 지식을 책으로 배우는 것에 비해, 실시간으로 수술을 지켜보는 것은 경험의 질이 달랐다.

"자, 이제 캐뉼레이션 끝나간다. 다시 화면에 집중해!"

마동섭이 화면을 가리켰다.

백의신 교수는 상대정맥(SVC)과 하대정맥(IVC)에도 작업을 이미 완료했다.

이제는 심폐기가 작동할 시간.

허준임 교수와 송유주의 손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유주 선생님도 잘하고 계시는 거죠?"

"당연하지. 송유주가 누구냐?"

다행이다.

송유주의 손에서 전날까지 긴장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필드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제2조수.

곧 심폐기에 캐뉼라가 연결되자, 클램프를 풀면서 백의신이 외친다.

<펌프 온(Pump ON)!>

펌프.

인공심폐기를 간략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백의신의 외침과 함께 인공심폐기를 통한 체외순환이 시작되었다.

심장으로 피가 돌아오는 길인 상대정맥, 하대정맥에서 피를 뽑아서, 심폐기에서 산소를 머금고 다시 대동맥으로 돌아가는 ‘우회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이잉-

인공심폐기의 펌프가 조용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모든 과정에 문제가 없었을까?

잠시 긴장이 흐르고, 곧 그 앞에 있는 체외순환사가 외친다.

"펌프 100% 돕니다!"

심폐기를 통한 체외순환이 완벽히 시행되었다는 뜻이다.

그러자 백의신이 바로 연이어 외친다.

"벤틸레이터(Ventilator, 인공호흡기) 오프!"

마취 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숨을 쉬고 있던 이슬기 환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인공호흡기를 멈추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심폐기가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는 상황.

인공호흡기는 더이상 필요치 않다.

이때, 강당 안 대각선 방향에서 지켜보던 한 중년의 남자가 핸드폰 시계를 힐끗 보며 말한다.

"펌프 온까지 22분이라…… 백의신이 살아 있구만. 후후후."

혼잣말이었지만, 주위 몇 명은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였다.

‘누구지?’

나는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백의신 교수님 연배쯤 되었을까?

서스펜더(멜빵) 룩으로 정장을 맞춰 입은 그에게서 교수님의 냄새가 난다.

키는 작지만 매우 정열적인 인상이었다.

이를 본 마동섭 선생이 말했다.

"대일대학교 소아 심장 왕성한 교수님이다……."

"어라, 유명한 분 아니에요? 저도 들어 본 것 같은데."

"저 알아요. 심장외과학 교과서 저자 아니세요?"

류명인이 알은체를 하자 마동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이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이셔. 백의신 교수님 수술 보러 오셨나 보네."

대한민국 흉부외과 전체가 이 수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펌프 온까지 22분이면 빠른 건가요?"

"폐동맥 부분 박리까지 하셨는데 22분이면 엄청난 거지. 참고로 나는 한 시간 넘게 걸린다."

"우와……."

"사실 나도 보면서 믿기지 않긴 한데."

마동섭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덧붙였다.

"그동안 들었던 얘기들은 전부 헛소문이었네. 백 교수님 확실히 돌아오신 것 같다."

수술을 못 한다더라.

실력이 죽었다더라.

등등.

백의신을 향한 항간의 소문들이 거짓이라는 것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었다.

실제로 몇몇 비판적이었던 교수들도 이제는 그 의심의 눈빛을 조금씩 거두고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로서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비록 호불호는 갈리지만, 실력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이때, 수술장 안에서 백의신 교수의 마이크가 다시 켜졌다.

<이제 펌프 온 상태로, 수술은 모더레이트 하이포써미아(Moderate Hypothermia)로 진행하겠습니다. 체온은 23-24도로 맞춰 주세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수술의 다음 절차를 알린다.

중등도 저체온법.

심장 수술을 하면서 저체온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체온을 24도까지 낮추는 거예요?"

"맞아. 체온이 낮아지면, 우리 몸의 산소 소모량이 줄어들지. 10도 떨어질 때마다 산소 소모량은 거의 절반으로 감소한다고 보면 된다."

마동섭이 종이에 적어 가며 설명했다.

우리 몸의 모든 장기는 산소 요구량과 공급량이 불균형을 이루면 손상을 입게 된다.

심장 수술 중에는 이런 불균형에 노출되기 쉽다.

그렇다고 산소 공급을 늘리겠다고 심폐기를 너무 과도하게 쓰면, 각종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체온을 낮추어 우리 몸의 산소 요구량 자체를 낮추는 것이다.

"저체온법으로 심장 수술 중에 각종 장기들을 보호해 주는 거야."

"와, 체온만 낮춘다고 그게 된다구요?"

"당연하지. 예를 들면 뇌라든가."

"뇌까지?"

신상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랄 만도 하다.

뇌는 허혈 상태에 가장 취약한 조직.

머리에 산소가 잠시만 가지 않아도 치명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니까.

나는 얼마 전까지 책에서 공부했던 것을 떠올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만약 우리 뇌에 피가 하나도 안 가더라도, 중등도 저체온에서는 20분을 버틸 수 있다고 들었어."

"엥? 그럼 그동안 머리에 피가 안 가도 문제없이 깨어난단 말야?"

신상미의 질문에, 마동섭이 내 말을 확인해 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한이 말이 맞다. 심지어 18도까지 낮춰 버리면 45분까지도 버텨."

"와…… 그야말로 죽었다 살아나는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죽다 살아난다.

결코 틀린 표현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흔히 ‘강을 건넌다’고 표현한다.

동양의 삼도천, 서양의 스틱스 강 등등…….

그 신화적인 표현을 적용한다면, 심장 수술을 받는 환자는 실제로 강에 몸을 담그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몸은 밧줄에 묶여 이승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끝에서 줄을 붙잡고 있는 것이 바로 심장 수술에 참여하는 의사들인 것이다.

"으, 소름 돋아. 개멋있어. 짜릿해. 흉부외과 오길 잘했다."

신상미가 팔을 쓰다듬으며 감탄하자, 류명인이 입술을 삐죽였다.

"흉부외과 싫다면서요?"

"크흠, 흠. 내가 언제? 얘가 치프 선생님 듣는데 별말을 다 하네."

"저번에 분명 수틀리면 도망친다고……."

"어맛, 이 계절에 모기가!"

신상미는 류명인의 나불대는 주둥이를 짝 소리 나게 후려쳤다.

확실히 심장 수술의 세계는 신상미조차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더군다나 소아 심장 수술.

작은 아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인류가 쌓아 올린 모든 의학 지식을 총동원하는 현장.

지금 저 수술실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감동이 있었다.

"후후, 역시 내가 흉부외과를 온 건, 나 같은 천재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신의 계시군요……."

류명인이 빨개진 입으로 중얼거리는 헛소리를 무시한 채, 마동섭 선생이 다시 말을 잇는다.

"자, 이제 심장이 멈춰질 차례다."

"심장이 아예 멈출 거라고요? 그냥 심장을 비우기만 하고 수술하는 게 아니라?"

"이제 봐. 그 과정이 시작될 테니까."

우리는 화면에 집중했다.

스윽, 스윽-

백의신이 방금 연결한 대동맥 캐뉼라 바로 아래에, 다시 한번 펄스 스트링 수처(purse string suture)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얇은 관을 하나 더 대동맥에 꽂는다.

"심장 수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투여하기 위한 관(cannula)이야. 저기로 뭐가 들어갈지 맞혀 볼 사람?"

"심정지액."

"오오, 맞았어."

내 망설임 없는 대답에 마동섭이 놀라며 기뻐했다.

"선한이가 공부 좀 했나 보네? 허준임 교수님이 말했어. 심장 수술은 마이오카디알 프로텍션(Myocardial protection, 심근보호)이 핵심이라고."

수술은 한 단계, 한 단계씩 더 심오한 단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화면 속 백의신이 고개를 들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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