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12화 (212/241)
  • #212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5)

    콩닥, 콩닥-

    작은 사과 크기조차 되지 않는, 자두만 한 크기의 심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략 분당 140회의 속도.

    심방 한 번, 심실 한 번…….

    그렇게 규칙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심장의 근육들이 수축하고 있다.

    비록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지만, 여느 보통 아기들의 심장과 같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 심장박동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이 화면 너머까지 느껴졌다.

    ‘……저게 소아의 심장이구나.’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성인 심장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저렇게 작은데도 성인 심장과 같은 구조물이 다 들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신기했다.

    그렇지만, 성인과 다르게 누런색 팻(fat, 지방)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성인이랑 소아 심장은 뭔가 다르네요. 생김새부터 수술 과정까지 모두 다."

    우리 예비 1년 차들은 잠시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동섭 선생이 왜 ‘신세계’라고 표현하였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흐흐. 놀라긴 일러. 수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저기서 보면……."

    마동섭 선생님이 화면을 가리키며 뭔가를 설명하려다가, 갑자기 설명을 멈춘다.

    "쉿."

    마동섭 선생님은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곧 한쪽 화면에 백의신 교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툭 튀어나온 3.5배 확대경이 붙은 안경 너머로, 강당에서보다 더욱 차가운 눈빛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목 옆에는 소형 마이크가 붙어 있다.

    이윽고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심장이 보이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Aorta(대동맥)와 그 좌측 뒤로 Pulmonary artery(폐동맥)이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옆 수술 필드 화면에는 이미 심낭막 고정이 끝나서, 심장의 구조물들이 정확히 보이고 있었다.

    <수술 전 에코(echo, 심초음파)에서 보셨듯, coronary artery(관상동맥)은 1 AD; 2 R, Cx 형태로 나오는 것 같군요.>

    대략 관상동맥의 주행 방향이 예상했던 대로라는 소리다.

    TGA 수술에 있어서 심장 자체에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에, 미리 위치를 체크해 두는 장면이었다.

    <일단 바이패스(bypass, 체외순환)에 앞서서 폐동맥 주변과 대동맥과의 인접 부위의 박리부터 충분히 진행하겠습니다.>

    수술명에서 알 수 있듯, 이 수술은 폐동맥 뿌리를 이동시키는 수술이다.

    그렇기에 폐동맥이 옮겨질 수 있도록, 그 주변을 충분히 박리하여 자유롭게 해 주는 부분이 중요했다.

    곧 백의신의 왼손에 든 포셉과 오른손에 든 보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멈칫-

    백의신 교수의 손이 멈춘다.

    그는 고개를 들더니 앞에 있는 허준임 교수를 노려본다.

    <너, 안 당기고 뭐 하냐?>

    <아, 말씀이 다 끝나신지 몰랐습니다.>

    <카메라 돌아간다고 집중력 놓지 마 새끼야, 이제 수술 시작이야.>

    아직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그는 날카로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전도유망한 교수일지라도, 백의신에게 그저 제1조수일 뿐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허준임 교수는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수술에 집중한다.

    평소처럼 쾌활하고 수다스러운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지켜보던 우리의 관자놀이에서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우와……."

    "저 교수님이 욕먹는 거 처음 봐요."

    "하긴 허준임 교수님은 한때 백의신 교수님 팀에 있던 분이니까."

    "예전에 백 교수님한테 그렇게 많이 갈굼당했던 장본인이라면서요?"

    소곤소곤.

    레지던트들은 감정 이입을 하며 숨을 죽였다.

    살다 보니 교수님에게 동병상련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이야.

    그만큼 날이 서 있는 분위기.

    수술장에는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고, 이를 지켜보는 강당 안 사람들도 조금씩 더 수술에 집중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지이익-

    백의신의 보비가 움직인다.

    그의 전기 칼날이 지나가는 길에는 심장의 구조물들이 명확한 모양을 드러냈다.

    마치 마법처럼, 그가 손대는 곳에서 대동맥과 폐동맥, 그리고 그 분지(branch)들이 모습을 정확히 보여 주었다.

    미세출혈도 거의 없이, 순식간에 엉겨 붙어 있던 조직들은 서로 분리되었다.

    "흠……."

    "깔끔하네."

    강당 안의 좌중들이 짧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몇몇만 그럴 뿐.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백의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하듯 뜯어보고 있다.

    "역시 백의신 교수님 손끝 살아계시네. 저게 쉬워 보여도 순식간에 저렇게 박리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

    마동섭 선생이 턱을 쓸어 만지며 말한다.

    "와, 아까는 잘 안 보였는데, 이제는 폐동맥 분지랑 다른 구조물들이 잘 보이네요…… 대박."

    신상미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감탄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장 수술이라면 질색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한편, 내 옆자리의 류명인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에이, 저 정도는 나도 몇 번 해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건방진 녀석.

    하지만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주변부 박리는 레지던트만 되더라도 어느 정도 숙달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들었으니까.

    "인마,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해. 본 수술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마동섭 선생의 속삭임을 뒤로, 백의신 교수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자, 이제 헤파린(heparin) 줘요.>

    곧바로 마동섭이 설명을 덧댄다.

    "헤파린을 준다는 얘기는 이제 CPB를 시작한다는 이야기야."

    CPB (Cardio-Pulmonary Bypass, 심폐우회술).

    심장 안쪽을 수술하기 위해서는, 심장이 멈춰 있고 비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심장이 멈춰 있고 비어 있으면 사람이 죽어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심장 수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이 바로 <심폐우회술>이다.

    단순히 얘기하면 심장과 폐를 대신해서 ‘사람의 대정맥에서 피를 뽑아, 대동맥으로 산소가 있는 피를 다시 넣어 주는 작업’.

    이를 위해서 필요한 기계를 인공심폐기라고 부르며, 이 기계가 없이는 심장 수술이 불가능하다.

    "다들 뭔지 알지? 심장이 잠시 일을 안 해도 되도록 만들어 주는 거야."

    심장을 멈추고 비워서, 심장 수술을 하겠다는 발상.

    누가 이를 쉽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 기계가 처음 쓰인 시점은 1953년.

    즉, 심장 수술의 역사는 7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인공심폐기를 단순화하여 수술실 밖으로 가지고 나간 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에크모(ECMO)이다.

    역사적으로 에크모의 시작점은 심장 수술이었던 것이다.

    ‘인류가 쌓아 올려온 수많은 의술 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것이 바로 저것 아닐까?’

    자, 그럼 <심폐우회술>을 위해서는?

    말 그대로 우회로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심장 수술을 위해서 상대정맥, 하대정맥, 대동맥에 각각 관을 넣게 되는데, 이 작업을 캐뉼레이션(cannulation)이라고 부른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

    이렇게 관을 넣게 되면, 우리 몸은 이것을 외부물질로 생각하기 때문에 혈전이 생길 위험이 있다.

    이 위험을 막기 위해 피를 묽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헤파린을 넣는 과정이 CPB(심폐우회술)의 시작 신호가 되는 것이다.

    "잘 봐라. 이제 곧 수처(suture, 봉합) 시작하실 테니까."

    마동섭이 우리에게 예고하듯 말했다.

    마치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예술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된 기분.

    곧 백의신 교수는 니들홀더를 들고 대혈관에 수처를 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대동맥에 두 겹의 펄스 스트링 수처(purse-string suture, 쌈지봉합. 굵은 관을 고정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수처)가 시행된다.

    백의신의 손 움직임에는 막힘이 없다.

    그러자 강당 안의 사람들이 조금씩 술렁대기 시작한다.

    "오……."

    "심장 수술 오랜만에 하시는 거 아닌가?"

    "이야, 막힘이 없네. 마치 지난주에도 수술했던 것처럼."

    "저게 몇 년 만에 뜨는 purse-string suture라고?"

    모두가 놀란다.

    특히 마동섭 선생님은 수술이 진행될수록 놀라고 있었다.

    그도 백의신 교수의 수술 실력에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

    그렇기에, 그가 보여 주는 니들링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역시 대단해.’

    <아는 만큼 보인다>.

    나는 그 말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수처를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지금 저 평범해 보이는 손길에 어느 정도의 내공이 깃들어져 있는지를.

    ‘화려하지 않아도, 내공이 깃들어 있으면 다르구나.’

    나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화면을 쳐다보았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 아까운 기분.

    백의신 교수의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 정도로 세세한 수술 과정은 당연히 다큐멘터리에서도 보여 주지 않았으니까.

    비록 수술실에 있지는 않지만, 나는 마치 백의신 교수와 함께 수술을 하는 것처럼 몰입하고 있었다.

    "에이, 그냥 혈관에 수처하는 거 아니에요? 다들 너무 오버하는 것 같은데……."

    류명인이 또다시 분위기를 깨며 웅얼거렸다.

    그러자 마동섭이 팔꿈치로 녀석의 옆구리를 퍽 찔렀다.

    말이 팔꿈치지, 마동섭의 두꺼운 팔은 거의 성문을 부수는 공성추나 다름 없었다.

    "이 녀석아, 닥치고 봐."

    "아악."

    "대동맥에 저렇게 바늘을 넣을 때는 깊이와 각도 모두 중요해. 캐뉼레이션 후에 캐뉼라(cannula, 관)가 고정도 잘되어야 하고, 자칫하면 다이섹션(dissection, 대동맥박리)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심장 수술의 기본 루틴.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동맥에 수처를 마친 백의신은 지체하지 않고 상대정맥과 하대정맥에도 수처를 마친다.

    그때, 인공심폐기 앞에 앉아 있는 체외순환사가 외친다.

    "베이스라인 지났습니다!"

    헤파린 투여 후 이슬기 환자의 피가 충분히 묽어졌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인 즉, 이제 캐뉼레이션을 해도 된다는 뜻.

    백의신은 이번에는 메스를 들었다.

    이제 다음은, 동그랗게 purse-string suture를 해 놓은 사이로 칼집을 넣고 거기에 관을 넣는 과정이다.

    그 이후 바로 관을 고정시키기 위해 제1조수 허준임 교수가 준비하고 있다.

    제2조수 송유주는 심박수에 따라 흔들리는 대동맥이 고정될 수 있게, 대동맥 껍질의 일부를 기구로 잡고 있다.

    마동섭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만약 대동맥을 너무 깊이 찌르면 뒷벽을 찌를 수도 있어. 여기까진 나도 해 본 거라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준비를 마친 백의신은 망설임 없이 메스를 대동맥에 가져간다.

    그는 먼저 메스로 대동맥의 껍질을 살짝 벗긴다.

    그러더니 왼손으로는 대동맥에서 피가 튀지 않도록 메스가 들어가고 나온 자리를 막을 준비를 한 채, 오른손에 쥔 메스를 대동맥에 살짝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때.

    "!"

    피슷-

    이슬기 환자의 대동맥에서 피가 얕게 솟구쳐 오른다.

    맞은편에 있던 허준임 교수의 안경에 붉고 선명한 피가 몇 방울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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