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11화 (211/241)

#211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4)

심포지움 시작 시간은 오후 1시.

그리고 수술 방송 시작 시간은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수술이기에 많은 이가 볼 수 있도록 설정한 시간이었다.

나는 병동 일을 재빨리 마치고,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강당으로 향했다.

"같이 가, 선한!"

막 비상문을 열려는데, 내 뒤를 신상미가 졸졸 따라왔다.

"너 아까 동의서 5개나 쌓여 있다고 하지 않았어?"

"다 끝내 놨지."

"아까 판컬쳐(pan-culture, 각종 배양검사)는?"

"어휴, 시어머니 같긴.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해 놨을까요, 어머니~!"

신상미가 우스갯소리를 하며 나와 발걸음을 맞추었다.

얘도 이제 흉부외과의 일원이라,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들을 닮아 발이 빨라졌다.

우리는 빠르게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근데 오늘 사람들이 많이 올까?"

"내가 듣기로는 다른 병원 흉부외과에서도 오는 걸로 알고 있어."

"진짜?"

"아무래도 그 유명한 백의신 교수님 수술이다 보니까."

"와, 내가 다 떨리네. 무슨 콘서트 보러 가는 기분이다, 야."

신상미가 두근대는 표정으로 말한다.

콘서트라…….

환자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수술에 빗대기는 어색한 표현이다.

하지만, 만약 아무 문제없이 수술이 안전하게 끝난다면 그정도로 좋은 분위기가 될 수 있겠지.

부디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근데 상미 너는 하트(heart, 심장) 수술 보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

"나 저번 회의 때 백의신 교수님 완전 팬 됐잖아! 남들 눈치 안 보고 확실하게 말씀하셔서 멋있더라. 그래서 오늘도 응원하면서 볼 거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비상계단 문을 열자마자 류명인을 마주쳤다.

"선한이 형!"

"명인아."

"오랜만이네요."

"ENT(이비인후과)는 안 바빠?"

"아무리 바빠도 시간 내야죠. 연국대병원 흉부외과의 빅 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류명인의 표정 또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후우, 내가 집도하는 수술처럼 긴장되네…….’

지하 1층은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연국대병원 의료진은 물론이고, 타 병원 흉부외과 의사들과 취재진들…….

그리고 강당 입구 앞에는 하루 만에 완성된 포스터가 걸려 있다.

포스터에는 백의신 교수님의 무뚝뚝한 얼굴과 함께,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심포지움의 스케줄이 적혀 있었다.

- TGA의 병태생리와 진단

? ? ? ? ? 소아과 이윤중 교수

- 소아심장 마취에 대한 고찰

? ? ? ? ? 마취과 양진우 교수

- TGA 수술법에 대한 고찰

? ? 1. Arterial Switch Operation

? ? ? ? ? ?흉부외과 허준임 교수

? ? 2. TGA, VSD, PS의 수술법

? ? ?: Rastelli, REV, Nikaidoh procedure

? ? ? ? ? ?흉부외과 안영욱 교수

? ? ?: Pulmonary Root Translocation

? ? ? ? ? ?흉부외과 백의신 교수

? ? 3. Live Surgery: Pulmonary Root Translocation

? ? ? ? ? ?흉부외과 백의신 교수

"다들 왔냐? 일루 와서 앉아!"

강당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해 있던 마동섭 선생님이 우리를 반겼다.

"오늘 이거 보면서 많이들 배워 가라. 내가 옆에서 설명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소아심장은 다들 경험이 없지? 미리 말해 두지만 소아심장 수술은 또 다른 신세계거든!"

우리가 막 대답하려 할 때, 앞쪽 단상에서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거의 만석이 되었네요. 오늘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곧 이번 심포지움의 마지막 강의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시고……."

우리가 도착할 무렵에는, 강의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소아과, 마취과에 이어 흉부외과의 순서.

2시에 이미 환자는 수술방에 들어가 있었고, 수술 시작 전까지 여러가지 준비가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마취를 하고 촬영 장비가 설치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강의와 강의 사이의 쉬는 시간에는 한쪽 편에서 수술 준비를 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다.

"저희 병원 소아 심장 수술시에는 벌루닝(ballooning, 공기주입) 없이 E-tube(기관내관)를 넣는 경우가 많으며……."

이미 강의를 마친 소아심장 마취과 양진우 교수님이 쉬는 시간에도 수술방 안에서 코멘트를 하던 중이었다.

낯선 기분이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수술을 지켜본다는 것은.

온갖 의료적인 지식들이 나열되는 가운데, 실시간으로 수술실에 있는 환자를 지켜보자 마음이 심란해졌다.

‘……저 아이는, 수술 후에 어떻게 될까?’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순서.

모두가 기다리던 백의신 교수가 단상 위로 올라섰다.

"백의신입니다."

자기소개는 짧았다.

물론 그 이상의 소개는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백의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까.

"오늘 진행될 수술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질문은 생략합니다."

백의신 교수는 마이크를 잡고 화면을 넘겼다.

마치 군사 작전 브리핑을 하듯 일목요연한 목소리.

좌중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마침내 오후 3시.

백의신 교수는 강당에서 짧은 강의를 마치고 수술실로 향하려 했다.

그때, 취재진 중 한 명이 손을 들며 물었다.

"백 교수님, 컨디션은 어떠십니까? 몇 년간 병원을 떠나 계시다가, 복귀 후 첫 심장 수술이라고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행되는 이 수술. 오늘 완벽하게 진행하실 수 있는 컨디션이신가요?"

모두들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시간 관계상 질문을 생략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중 일부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분명 백의신 교수를 둘러싼 루머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을 테니니까.

"……거기 기자 분. 이름이 뭡니까?"

움찔-

백의신의 물음에, 취재진은 들었던 손을 움츠렸다.

수술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백의신 교수.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사람을 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이 있었다.

"김……인중 기자입니다."

"김인중 기자님."

백의신 교수는 기자를 냉랭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 컨디션 걱정하기 전에 본인의 기억력부터 의심하시길 바랍니다. 질문 생략하겠다고 했습니다."

"……."

덜컹-

강당 문이 열렸고, 백의신 교수는 수술실로 사라졌다.

잠시 숨을 참고 있던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래도 되나?"

"기사 이상하게 나가면 어쩌려고……."

"하여간 나이 먹어도 성격은 여전하구만, 여전해."

잠시 후.

수술실의 캠에 백의신 교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조금 전과는 달리 수술모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백의신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케이스에 대한 pulmonary root translocation 수술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조수들도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1조수를 맡게 된 허준임입니다.>

<안녕하세요, 제2조수를 맡게 된 전공의 3년 차 송유주입니다.>

그때 류명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동섭 선생에게 물었다.

"어, 그런데 개흉을 아직 안 한 거죠?"

"그래. 이번 수술은 백의신 교수님이 스킨 투 스킨(skin to skin, 처음부터 끝까지)으로 다 하실 거야."

보통의 수술에서는 전공의가 환자의 가슴을 열고 닫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주요 부분을 집도의가 하는 형식으로 수술이 진행된다.

이 과정은 교육 목적을 수행해야만 하는 대학병원에서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수술은 백의신 교수의 복귀 후 첫 심장 수술.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술을 손수 진행하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나도 백 교수님 수술을 실시간으로 보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네."

백의신 교수의 이마에 있는 헤드라이트 옆에는 촬영용 소형 카메라가 달려 있다.

그 외에도 수술 필드 바로 상방의 무영등에도 작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화면은 4개로 분할되어 각각의 시점을 보여 주고 있었고, 중계를 맡은 흉부외과 펠로우가 상황에 따라서 특정 화면을 크게 보여 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슬기 환자,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백의신의 선언과 함께,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되었다.

* * *

<메스.>

백의신은 간호사가 건네는 메스를 손에 쥔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이 사실일까?

그의 써전(surgeon, 외과의사)으로서의 손끝은 여전히 매섭게 살아 있을까?

모두의 시선은 이제 백의신의 손끝을 향했고, 지켜보는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부담돼서 손 떨릴 만한 상황일 거야.’

한창 성장하고 있는 써전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누군가 뒤에서 보고 있으면 수술 실력이 30%는 감소하는 것 같다고.

한 명이 보아도 그럴진대, 수술이 생중계되어서 수십 명 이상이 보고 있다면, 어느 누가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역시 백의신은 백의신.

그의 손끝에는 미동도 없었다.

백의신 교수는 주변의 무성한 소문들을 뒤로하고, 복귀 후 첫 오픈하트(open heart, 개심술) 케이스를 생중계되는 수술로 시작하고 있었다.

‘시작됐다.’

스윽-

5.8kg밖에 안 되는 아기의 가슴 정중앙에는 메스를 따라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나의 둘째손가락 길이만큼이나 될까?

작은 아기인 만큼 절개 길이도 작았다.

허준임과 송유주의 보조 아래, 백의신은 보비(bovie, 전기칼)를 쥐고 흉골까지의 박리를 시작한다.

금세 흉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의신이 말없이 오른손을 내민다.

그러자 그의 손에 이번에는 스터노토미 쏘(saw, 톱)가 쥐어진다.

"저게 소아용 스터노토미 쏘예요?"

"그래, 성인용이랑은 또 다르지? 너네들 다 잘 봐 둬라."

성인 수술에서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

손잡이 앞에는 길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톱니가 보인다.

백의신 교수가 손잡이의 버튼을 누르자, 쏘 앞부분에 있는 톱니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잉-

그 작은 톱니로 톡톡 흉골을 치면서, 흉골을 가르기 시작한다.

‘……스터노토미가 저렇게 쉬운 거였나?’

나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성인 환자에서 마동섭이 보여 줬던 스터노토미가 거친 모습이었다면, 지금 소아에서 백의신이 하고 있는 모습은 부드럽고 섬세했다.

금세 스터노토미가 끝나고, 갈라진 흉골이 벌어진다.

그러자 뽀얗고 말랑말랑한 분홍색 물질이 가슴 중앙에 떡하니 나타난다.

그 모습은 흡사 때 타지 않은 폐(lung)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보였다.

적어도 성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구조물에, 신상미가 마동섭에게 묻는다.

"저건 뭐에요? 스터넘(sternum, 흉골) 갈랐으면 심장이 보일 차례 아니에요?"

"저게 싸이무스야."

"아하!"

싸이무스(thymus, 흉선).

우리 몸의 면역에 있어 중요한 기관으로, 좌엽과 우엽으로 나뉘어져 나비 모양을 하고 있다.

출생 직후에는 길이 5cm, 너비 4cm 정도로 몸의 크기에 비해서 큰 장기(organ)이지만, 성인기로 가면서 크기가 줄어들어 지방조직으로 바뀌어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이슬기 환자는 이제 출생 후 3개월에서 4개월로 넘어가는 시점.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저렇게 크게 보였던 것이다.

"와, 저렇게 보이는구나. 싸이무스가……."

우리는 감탄하며 수술의 진행상황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백의신의 피넛(수술 기구)이 몇 번 슥슥 움직이자 싸이무스가 동그랗게 양쪽에 더 도드라진다.

그러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타이(tie)와 클립핑(clipping)을 한 뒤, 싸이무스를 툭 떼어 낸다.

이제 그 아래로 얇은 심낭막(pericardium)이 보였고, 심낭막 아래 심장이 뛰고 있는 것도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백의신은 보비(bovie, 전기칼) 대신 날카로운 가위를 쥔다.

그리고 심낭막을 그냥 가르는 대신, 크게 동그랗게 떼어 낸다.

"저건 왜?"

"나중에 쓰일 일이 있다."

곧 심낭막 채취(pericardium harvest)가 끝나고, 이제는 심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수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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