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10화 (210/241)
  • #210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3)

    "백 교수님, 설마 라이브 서저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병원장은 귀를 의심하듯 물었다.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

    간혹 학회에서 시행되는 온라인/오프라인 공개 수술을 일컫는 말이다.

    의학적인 노하우를 널리 공유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수술 장면을 중계하고 참석한 의사들끼리 수술법에 대해서 논의하는 이벤트이다.

    "학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이 수술을 위해서요?"

    "하는 김에 TGA, VSD, PS 질환의 수술법에 대해서 토론하는 학술 행사로 진행하면 되지 않겠어? 이메일 돌리고 오고 싶은 사람만 오라고 해."

    "하루밖에 시간이 없는데 많이들 못 올 텐데……."

    "올 사람들은 오겠지."

    "그, 뭐랄까,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시겠어요?"

    "나 그런 거 좋아해."

    "……."

    "요새 말로는 관종이라고 하던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에 병원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야말로 폭주기관차.

    한 번 출발하면 저지할 수 없다.

    백의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나. 옛날에도 몇 번 했었던 거 기억 안 나? 자네도 참관했었잖아."

    "그렇긴 한데요."

    병원장은 한숨을 쉬며 안경을 닦았다.

    물론 명분은 충분했다.

    국내 최초 수술.

    대외적으로 공유할 만한 의학적 가치가 충분하겠지.

    하지만, 병원장은 웬만하면 뜯어말리고 싶었다.

    병원의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백의신의 선언은 골칫덩어리였다.

    ‘이래서 전임 병원장이 그토록 대하기 어려워했던 건가……?’

    컨퍼런스 룸에서 안영욱 교수에게 수술을 뺏어 올 때부터 골치가 아팠다.

    조직에는 엄연히 교통질서라는 것이 있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백의신은 그런 것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었다.

    오직 직진.

    백의신이라는 존재는 아주 날카롭고 유용한 칼이었지만, 당최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쉬운 수술만 하면서 대외활동을 부탁했던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은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판이 깔렸는데 만약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게 될 것이다.

    연국대병원 전체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긴다.

    백 교수의 명성에 치명적인 누가 생길 것도 분명했다.

    "보호자 동의는요?"

    "이미 받아 놨어."

    "……."

    혹시 보호자가 거부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마저 없어졌다.

    "직접 이 수술을 보지 못하는 흉부외과 의사에게 교육용으로 보여 주려고 하는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마 수술실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테니까."

    마지막 말은 아리송했다.

    착각이었을까?

    백 교수의 말이, 마치 ‘특정한 누군가’에게 수술 과정을 보여 주고 싶다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 백의신의 건조한 표정에 약간이나마 화기가 도는 듯했다.

    백의신을 오래 알고 지냈지만,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지금 이곳이 아닌, 보다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세요."

    병원장은 결국 반쯤 포기한 듯 말했다.

    수술실이라는 극장.

    무대는 마련되었다.

    쇼타임을 앞두고 배우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 * *

    D-1.

    수술을 하루 앞둔 날.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송유주가 고장났어."

    "예?"

    함께 회진을 돌던 마동섭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장났다뇨?"

    "오늘 아침 컨퍼런스 회의에서 지각을 했잖아."

    "아아……."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하긴, 오늘 아침에는 다들 깜짝 놀랐다.

    송유주 선생님이 지각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다른 레지던트들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송유주이기에 특별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송유주 선생님이 지각하신 건 저도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동안 내가 보았던 송유주는 항상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였다.

    아마 프로그래밍된 게임 속 NPC라도 그렇게 규칙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고."

    "왜요?"

    "루페(loupe, 수술용 확대경)를 집에 두고 왔다면서, 급하게 집에 들렀다 오더라고."

    나는 뺨을 긁적였다.

    그 정도는 사소한 실수 아닌가?

    하지만 마동섭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못한 채 말했다.

    "혹시 멘탈이 나간 게 아닐까?"

    잘못 들었나 했다.

    멘탈이 나갔다니?

    내가 알던 송유주 선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송유주 선생님이요?"

    "나는 오랫동안 친구였으니까 얼굴빛만 봐도 대충 알거든. 오늘 하루 종일 안 하던 실수를 하더니만 어디론가 홀린 듯이 가 버렸어."

    절친인 마동섭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구나.’

    송유주가 누구던가?

    교수가 화를 내도, 환자가 속을 썩여도 언제나 한결같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사람이다.

    아마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져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기 살 길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한마디로 강철 멘탈.

    그런데 그런 사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내일 있을 큰 수술에 너무 긴장해 버린 건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마동섭은 콧잔등을 긁적거렸다.

    "사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유주도 선한이 너 못지않게 백 교수님 추종자거든. 애초에 흉부외과 지원했던 것도 백 교수님 따라서 온 거였고."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처음 듣는 소리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그게 바로 송유주 선생님이었다니.

    "유주가 1년 차 들어올 때에는 백 교수님은 미국으로 가셨을 때니까. 유주도 백 교수님이랑 수술하는 건 처음일 거야."

    처음으로 합을 맞추는 수술이라…….

    같은 백의신 추종자로서 그녀의 마음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워낙 중요한 수술이 되다 보니까, 행여 백 교수님한테 누라도 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야. 나도 걔 저러는 거 처음 본다."

    듣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됐다.

    내일 수술에서 송유주의 역할은 제2조수라고 하지만, 꽤 중요한 역할이다.

    완벽을 기해야 하는 수술이니만큼, 사소한 실수 하나가 치명적일 수 있다.

    "송유주 선생님 어디 계세요?"

    "나도 모르겠어."

    "흠……."

    왠지 알 것 같다.

    꿈속에서 몇 번 본 적 있으니까.

    송유주 선생이 심적으로 힘들 때 늘 향하던 장소가 있었다.

    ‘평소에는 금연하시는 것 같던데, 가끔 담배를 피우던 장면을 본 적 있었지.’

    장소는 병원 뒤편의 담배 터.

    나는 저녁 식사를 거르고 그쪽으로 향했다.

    ‘역시 여기였구나.’

    저녁노을이 내려앉은 병원 뒤편.

    나는 곧 송유주 선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익숙한 뒷모습이다.

    질끈 묶어 올린 머리, 가느다란 목과 손.

    새로 사서 뜯은 듯한 얇은 담뱃갑이 벤치에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짧은 꽁초가 네 개.

    즉, 앉은자리에서 줄담배를 피웠다는 소리다.

    "송유주 선생님."

    "어, 왜?"

    송유주 선생이 놀란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날씨가 추워서만은 아닌 것 같다.

    누가 봐도 긴장감으로 몸이 굳어 있다는 것이 명확했다.

    나는 그 옆자리에 앉으며 편의점에서 사 온 캔커피를 건넸다.

    "날이 추워서 따듯한 것 좀 사 왔어요."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딸깍-

    캔을 따자 커피의 향이 올라온다.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

    우리는 잠시 노을을 바라보면서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셨다.

    앙상한 겨울나무들 사이로 붉은 햇살이 흩뿌려지고 있었고, 병동에는 창마다 불이 환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명의 환자들과 의료진들이 저마다의 하루를 마감하고 있을 터였다.

    "내일 그 새로운 수술법…… 잘되겠죠?"

    "당연하지. 브라질 의술 무시하지 마라."

    "Da Silva가 브라질 사람이라고 했었죠?"

    "응, TGA에서 전세계적으로 많이 시행되는 Arterial Switch Operation. 그것도 브라질 의사가 고안한 수술법이야."

    송유주는 담배를 끄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안 하는 수술이지만, 옛날 유명한 만화책에서 나온 바티스타 수술(Batista procedure) 들어 봤지?"

    바티스타 수술?

    들어 본 적 있다.

    예전에 흉부외과를 소재로 한 의료 소설이나 만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단골 수술법이었지.

    나는 기억을 더듬은 뒤 말했다.

    "DCMP(확장성 심근병증)에서 시행하던 LV reduction(좌심실 근육 제거술) 수술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요새는 심장이식을 쉽게 하니까 안 하는 수술이지만. 그 수술도 브라질 의사가 고안한 수술이었어."

    "바티스타가 브라질 의사 이름이었군요."

    "맞아."

    브라질이라고 하면, 보통은 의료의 최전선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의사들이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다.

    환자에게 가장 좋은 수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진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백 교수님은 잘하실 거라고 믿어. 내가 조금이라도 누가 되면 안 될 텐데……."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송유주의 시선은 흔들리고 있었다.

    "유주 선생님은 잘하실 거예요."

    "무슨 근거로?"

    "감입니다."

    "또 그놈의 감?"

    "저 감 좋은 거 아시잖아요."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다소 긴장이 풀린 걸까?

    송유주는 피식 웃더니 내 얼굴을 힐긋 쳐다보았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 미래를 보기라도 하냐?"

    쿨럭, 쿨럭.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무슨 소리세요?"

    "예전에 에크모 넣어야 하는 환자 볼 때도 그랬고, 토션 환자 찾아올 때도 그랬고. 네 말은 대충 다 맞았잖아."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송유주 선생은 촉이 꽤 날카로웠지?

    물론 이런 상황에서 진지하게 날 의심하면서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불안할 때는 조금이라도 미래를 알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어때. 이번 수술에 대한 감은?"

    "……."

    나는 잠시 말을 아꼈다.

    내가 본 미래.

    그 수많은 길 중, 밝은 길은 없었다.

    어쩌면 이슬기 환자는 어떻게 해도 살려 낼 수 없는 것으로 운명이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송유주의 마음속 짐을 덜어 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가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됐다. 진지하게 물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대답해?"

    송유주는 탁탁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잘 마셨다."

    "별말씀을요."

    "나 담배 피웠다고 마동섭한테 이르지 마라."

    송유주는 커피캔과 함께 담배와 라이터를 휴지통에 넣고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이제 정말 내 손을 떠났어.’

    과연 이 방법이 옳을까?

    알 수 없다.

    어쩌면 처참하게 실패해 버릴지도.

    하지만 믿는다. 아니, 믿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내가 믿고 따라왔던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줄 테니까.

    * * *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마치 세상에서 색이라는 색을 모두 싹 뺀 것처럼 새하얀 공간.

    <왜 그렇게 애쓰는 거야?>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지만, 처음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때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인 거야?>

    문득, 눈앞에 무언가 나타난다.

    표백된 풍경 속에, 어린 시절의 내가 울고 있었다.

    어른이 된 나는 그 어깨를 두드려 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몇 걸음 떨어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때의 네 죄책감은 치유되지 않아.>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곧 목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건 나 스스로의 마음속 목소리다.

    "나는 내 트라우마를 치유하려고 일하는 게 아니야."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물론 엄마의 죽음을 겪은 이후로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지.

    하지만 기억은 기억일 뿐.

    그게 내 마음을 이끄는 근본적인 동기는 아니다.

    돈도, 명예도 아니다.

    심지어 백 교수에 대한 동경도 이제 와서는 부수적인 것에 가까웠다.

    "의사니까 의사의 일을 하는 거지. 다른 이유는 없어."

    <그게 전부라고?>

    "그래, 그게 전부야."

    <그렇게 애써 봤자 보상받지 못할 텐데?>

    "상관없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내 선에서 노력했다.

    의사니까, 의사의 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낯익은 숙소의 풍경이 보였다.

    나는 담담하게 스스로에게 결론을 내듯,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 상관없어."

    나는 가운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이슬기 환자의 수술이 있는 날이지만, 그 외에도 내가 돌봐야 할 환자들이 많다.

    그렇게 경험을 쌓고, 한 명의 써전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물론 그때마다 벽에 부딪힐 수도 있겠지만…….

    나아갈 것이다.

    답을 찾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여태까지 수많은 의사들도 다들 그런 길을 걸어왔으니까.

    * * *

    D-0.

    이슬기 환자의 수술이 이루어지는 날.

    오후가 되자, 병원 지하 1층 강당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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