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09화 (209/241)
  • #209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2)

    자신이 직접 수술을 하겠다는 말에, 모두들 놀란 눈으로 백의신 교수를 쳐다본다.

    ‘헉…….’

    ‘방금 우리가 뭘 들은 거지?’

    ‘분위기 어쩔 거야?’

    백의신 교수 vs 안영욱 교수.

    모두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쁘다.

    물론 백의신 교수도 나이가 지긋한 백전노장에 속한다.

    하지만 정년을 앞둔 안영욱 교수에 비해서는 아직 젊은 축.

    그런데, 이미 이슬기 환자 수술을 본인이 하겠다고 나선 그를 앞에 두고, 집도의를 자신으로 바꾸겠다니?

    자칫 하극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

    오랜 침묵이 이어진다.

    컨퍼런스 룸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얼음판.

    레지던트와 펠로우들은, 교수들의 눈치를 보느라 숨소리조차 쉽게 내지 못했다.

    "……혹시라도 보여 주기 식으로 수술을 하자는 거면 곤란해, 백 선생. 새로운 수술법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욕심은 알겠지만 말이야."

    어색한 침묵을 깨고, 안영욱 교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던 수술법이니만큼,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백의신 교수는 꿋꿋하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더 좋은 길이 있는데, 굳이 더 어려운 길로 갈 필요는 없잖습니까, 선생님."

    "으음……."

    노교수의 미간이 깊어졌다.

    사실 백의신 교수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다.

    <니카이도 수술>은 대동맥 뿌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관상동맥을 옮기는 작업’이 포함되어 있다.

    수술 후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요주의 작업.

    물론 수술을 잘하면 무슨 문제이겠냐마는, 문제가 될 소지를 애초에 안 만드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에 반해, 폐동맥 뿌리를 옮기는 형태로 진행되는 ‘PRT 수술’은 이 관상동맥 작업이 없기 때문에, 조금 더 간단한 방법이라 볼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 반드시 더 좋은 수술법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일단 백 선생 얘기나 좀 들어 보고 판단해 보지. 왜 이 환자가 그 새로운 방법으로 수술 받아야 하는지."

    안영욱 교수가 팔짱을 끼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비로소 컨퍼런스 룸에 숨통이 트인다.

    안 교수님은 꼬장꼬장한 성격이었지만, 그렇다고 환자의 생사를 앞에 두고 감정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백의신 교수는 고개를 꾸벅여 감사를 표한 뒤 펠로우에게 손짓을 했다.

    "에코 화면 넘겨 봐라."

    "네, 넵!"

    딸깍-

    화면이 넘겨진다.

    곧 백의신의 설명이 시작된다.

    "이 환자의 에코를 보게 되면, VSD(심실중격결손)이 작지도 않을뿐더러 위치도 Aortic valve(대동맥 판막)에서 멀어요. 게다가 RV(우심실) 크기도 적당합니다. 그리고……."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논리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지금 생후 4개월에 가까워 가는 시점이라면 myocardium(심근)도 어느 정도 성숙했을 거고. 결국 Pulmonary Root Translocation에 딱 맞는 케이스입니다."

    이 환자가 새로운 수술법에 적합한 환자라는 것을 설득하고 있었다.

    "논문에서 보고되었던 얼리 데쓰(early death, 수술 후 초기 사망) 문제를 간과할 수……"

    "아, 그 부분은 2005년에 수술법을 조금 수정한 이후에는 해소되었다고 다 실바(Da Silva)가 그러더군요."

    "다 실바가 그랬다고?"

    "예. 쉴 때 남미를 돌아다녔는데 식사를 한 번 했습니다. Jose Pedro da Silva와."

    "……!"

    모두의 눈이 커진다.

    심지어 수술법의 창시자인 다 실바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니 신뢰감이 더해진다.

    이후로도 백의신 교수의 논리적인 설명이 계속되자, 다른 교수들의 생각도 조금씩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음…… PRT를 문제없이 시행할 수만 있다면, 추후에 재수술할 걱정도 없으니 가장 좋긴 하겠네요."

    PRT 수술에서 옮긴 폐동맥 뿌리는 성장할 수 있다.

    기존에 스탠다드로 시행되던 방법에 비해 재수술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의견이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을 때, 허준임 교수가 입을 열었다.

    "백 교수님, 그렇다면 이 수술의 단점은 어떤 걸까요?"

    "단점은 가장 최근에 나온 수술법이기에, 15년 이상의 롱텀(long-term, 장기 관찰) 데이터가 없고, 다른 수술법과 직접 비교한 연구는 없다는 거겠죠."

    "리스크(risk, 위험)를 최소화하라는 평소의 말씀과 안 맞는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오히려 다른 옵션에 비해 가장 리스크가 적은 수술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허준임 교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다문다.

    "……."

    선택의 순간이다.

    총 네 가지의 수술법.

    과연 무엇이 최선일까?

    정답은 없다.

    물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합도를 따져 결정되는 것이지만, 의사들의 견해는 각자 다를 수 있으니까.

    나는 컨퍼런스 룸의 가장 뒷자리에서 초조하게 교수님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바뀌어야 해.’

    이전에 나왔던 수술법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잔잔한 호수에 백의신이라는 커다란 바위를 유인해 집어던진 것이다.

    하지만 그 파문이 어떤 모양으로 퍼져 나갈지는, 내가 계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회의실에서 대화들이 오간 후, 마침내 안영욱 교수의 입이 열렸다.

    "……그러면 백 교수의 말대로 해 보도록 합시다."

    좋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방향을 틀었다.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집도의는 백의신 교수.

    한때 전설이라고 불렸던 사람이니만큼,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들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병원장 이윤중 교수가 말했다.

    "……백 교수님, 복귀해서 첫 오픈 하트(open heart, 개심술)일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끝을 흐렸다.

    사실 회의실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마음인 듯하다.

    백의신 교수가 정상적으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소문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복귀 후 보여 준 수술이라곤 간단한 것들밖에 없었으니까.

    제아무리 전설적인 써전(surgeon, 외과의사)이라고 불리던 사람이라도 몇 년의 공백 기간은 무시할 수 없을 터.

    하지만 백의신은 건조하고 짧은 대답으로 일축했다.

    "문제없습니다."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는 말투였다.

    그는 희끗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수술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 * *

    D-1.

    이슬기 환자의 수술팀이 결정되었다.

    나는 흉부외과 스테이션에서 안경식 선생을 통해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

    -집도의 : 백의신

    -제1조수 : 허준임

    -제2조수 : 송유주

    "이 정도면 완전 연국대병원 흉부외과의 삼위일체, 트로이카!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죠!"

    안경식 선생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그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집도의는 전설, 제1조수는 전도유망한 교수, 제2조수는 천재라고 불리는 레지던트.

    스크럽 널스도 과거 백의신 교수와 여러 번 호흡을 맞추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다들 멋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예비 1년 차.

    아직 저 현장에 발을 들이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 소아 심장 수술 경험이 하나도 없는 의사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수술 과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까.

    ‘이제 내 손을 떠난 건가?’

    물론 아직 수술 전에 해야 할 필수 과정이 남았다.

    바로 수술 동의서를 받는 일이었다.

    나는 송유주 선생이 동의서를 받으러 가는 길에 동행했다.

    예비 1년 차로서 오픈하트(open heart, 개심술) 동의서를 받는 과정도 한번은 봐야 했기에, 그녀도 흔쾌히 허락했다.

    "일단, 이 수술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수술입니다."

    "처음이요?"

    "예.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이 수술 후 6% 정도의 환자는 한 달 내에 사망합니다."

    사망률 이야기를 듣고 난 보호자의 표정이 하얗게 질린다.

    "하지만 이 수술을 처음 시작한 그룹에서 말하길, 2005년 이후에 시행된 수술에서는 한 달 내 사망한 케이스가 없었다고 합니다."

    송유주의 설명 과정은 예상했던 만큼 차가웠다.

    팩트에 기반한 설명.

    환자에게 헛된 기대를 주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슬기의 어머니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이 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문제없이 잘 자랐나요?"

    "90% 가까이는 재수술 없이 잘 성장해서 정상 성인처럼 살고 있다고 합니다."

    "90%요?"

    "지금 슬기가 가지고 있는 심장질환에서 이 정도 수치면 매우 훌륭한 수치입니다."

    "……."

    "물론 심장 수술이라는 것을 할 때는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위험 요소들이 있습니다."

    송유주는 각종 합병증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중추신경계 질환, 부정맥, 심장 저박출성 신드롬, 탐폰, 출혈, 여러 가지 폐 합병증, 신장 손상, 위궤양, 색전증, 횡격막 마비, 그리고 폐동맥 고혈압 발작까지…….

    "자, 잠시만요. 이게 다 뭐죠?"

    "가능성이 있는 합병증은 모두 얘기하는 거라서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송유주의 말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의 표정에는 그늘이 가시지 않았다.

    어떤 기분일까?

    아이의 생명을 두고 모험을 걸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은.

    한참 동의서를 만지작거리는 보호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수술은 어제 회진 때 봤던 교수님께서 해 주시는 거겠죠?"

    "아뇨, 그분은 소아과 선생님이십니다. 수술은 저희 흉부외과에서 합니다."

    "그럼……?"

    "집도의는 백의신 교수님입니다."

    보호자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백의신.

    그 세 글자가 주는 영향력은 엄청났다.

    마치 선선한 바람이 불어 보호자의 얼굴로부터 그늘을 걷어 가는 듯했다.

    "제가 아는 그 백의신 교수님이요?"

    나는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세상에 어떤 의사가 이름만으로 저렇게 보호자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

    신뢰와 존경을 받는 의사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보호자는 크게 기뻐하던 중,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게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기사를 봤는데, 백의신 교수님이 수술을 제대로 못하는 상태라는 루머가 있던데……."

    여기에 대한 송유주 선생의 대답은 단호했다.

    "제가 아는 백 선생님은 책임지지 못할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두터운 신뢰가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그러자 보호자는 잠시 고민한 후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슬기, 꼭 남들 보란 듯이 잘 키우고 싶어요. 저희 모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실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을게요."

    보호자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고, 펜을 들어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소문은 발이 달린 것처럼 빠르게 퍼진다.

    하루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이 수술에 대해 알게 되었다.

    * * *

    [단독] 백의신 교수, 대한민국 최초로 선보이는 수술…… 작은 생명 살리는 기적 만들까

    "백 교수님,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병원장 이윤중은 한숨을 푹 쉬었다.

    병원장실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 PC에 기사가 떠 있었다.

    소문이 너무 크게 나 버렸다.

    <백의신이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수술>.

    이보다 더 자극적일 수 없는 카피였다.

    물론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수술 하나하나에 언론이 주목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역시 백의신 교수는 특별했달까.

    소문이 새어 나가자마자, 수많은 기자들로부터 대외홍보실을 통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쩌려고 그러긴. 환자 살리려고 그런 거지."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만약 실패하면요?"

    병원장은 자신의 옆에서 태연히 커피잔을 기울이는 백의신 교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수술의 성공과 실패.

    이건 실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확률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아무리 훌륭한 의사라도 일정 확률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수술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수술이야. 사람들이 주목한다고 더 정성을 기울이거나 할 것도 없어."

    정론이었다.

    병원장은 한숨을 푹 쉬며 커피잔을 들었다.

    그런데 백의신의 기행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개 수술로 할 거야."

    "퍼헙."

    커피잔을 홀짝이던 병원장의 안경에 커피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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