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08화 (208/241)

#208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1)

잠시 우리 사이에 말이 없어지자, 촬영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홍보팀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아까 차에서부터 저러더니…… 왜 저렇게 소아 심장 질환에 집착할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몇몇 스태프도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만큼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인터뷰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소아 심장 환자의 수술법 이야기를 하다니?

물론 그들과 달리 백의신 교수님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이, 1시간 전 차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기존의 수술법과 새로운 수술법이라……. 어떤 환자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적어도 환자 나이와 에코(echo, 심초음파) 소견 정도는 알고 이야기해야 되지 않을까, 신 선생?"

잠시 머뭇거리는 나를 두고, 백의신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기존의 사람들이 선택했던 방법에는 그 이유가 있을 거야. 반드시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그 새로운 수술법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건 누구의 판단인가?"

그의 말이 백 번 맞다.

새로운 수술법이 좋은 것일까?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이대로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면 이슬기 환자가 죽는다는 것을.

그러니 포기할 수 없다.

수술이 이틀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백의신 교수님은 내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니까.

"기존 수술법이 완벽하지 않다는 가정하에, 새로운 방식이 있다면 어떻게 접근하실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선대의 경험을 체득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모든 학문에 있어서 공통적인 부분이야. 그래서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지. 그런 연구가 모여서 교과서가 되는 것이고."

테이블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세상에는 교과서에 들어가지 못하는 수준의 수많은 연구가 있어. 새로운 연구라고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야."

공방 안의 모든 이들은 이번 인터뷰의 마지막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의신 교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무리했다.

"자네의 모호한 질문에 나도 모호하게 대답하고 싶은데? 너희들 말로 케바케라고 하던가? 라고. 어떤 환자 케이스이냐에 따라서 각 환자에 맞는 최적의 치료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거야."

정론이다.

우문현답의 표본.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내 목표는 논리로 백의신 교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기 위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백 교수님이 예전에 말씀하신 게 기억납니다. 수술은 수술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환자를 처음 진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내 말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백 교수의 사소한 어록까지 하나하나 꿰고 있는 사람은.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예. 10년 전에 메디컬데일리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기억한다고?"

백 교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일이지."

"예."

"그래서 그 환자를 내가 직접 봤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말 끝났냐?"

따악!

백 교수는 별안간 내게 딱밤을 먹였다.

이마에 구멍이 뚫리는 줄 알았다.

"악!"

"까불지 마라, 무슨 수작 부리고 싶은지 다 보인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촬영장의 긴장이 탁 풀려 버린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백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이쯤하고, 방금 장면은 편집하십시다. 제자한테 폭력 휘두르는 교수라고 소문 나면 안 되니까."

잠시 당황해하던 촬영 스태프들이 서둘러 장비들을 정리하며 외친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머리가 멍했다.

한 대 맞아서?

아니,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제자>.

분명 방금 백 교수님이 그렇게 말했다.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내가 알기로, 백 교수님은 그런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 * *

촬영이 끝났다.

바깥에 주차된 차에는 얕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백의신이 차에 올라타자, 홍보팀장은 선한에게 말했다.

"자기는 병원으로 돌아가야 하지? 나는 백 교수님 다음 행선지까지 좀 데려다드리려고 해."

최근 백의신의 스케줄은 대외활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 인턴 동기가 제 일까지 하느라 죽어날 것 같아서요. 택시 타고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한은 좀 더 목소리를 크게 내어 덧붙였다.

"이슬기라는 소아 심장 환자에 대한 회의도 오늘 오후에 있을 예정이라서, 인턴 업무를 끝내고 그 회의에 참석하려면 얼른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미심장한 말투.

마치 무언가 언질이라도 주는 듯하다.

그러자 창문 너머로 듣고 있던 백의신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웃어 본 것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재밌는 녀석이네.’

패기, 도전의식, 호승심…….

그런 마음가짐들은 유통기한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눈빛에는 총명함이 사라지고 초점이 흐려진다.

처음에는 꿈에 부풀었던 어깨도, 병원에서 1년쯤 일하고 난 뒤부터는 현실의 무게에 매몰되어 축 처지게 된다.

백의신은 그동안 그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 보았다.

그런데, 눈앞의 녀석은 조금 다른 듯했다.

‘신선한이라…….’

이름 값 하는 놈이네.

아직 1년 차이기 때문일까?

눈빛이 살아 있다. 마치 펄떡 뛰어오르는 활어처럼.

심지어 은근히 자신에 대한 도전의식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선한은 택시를 잡고 떠나 버린다.

"홍보팀장님. 다음 스케줄이 보건차관이 초청했던 행사였던가요?"

홍보팀장이 운전하는 차가 촬영장소를 벗어나려는데, 백의신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예. 안 그래도 아까 촬영 중에도 저한테 연락이 와서 백 교수님 언제 오냐고 그렇게 닦달을……."

"불참하렵니다."

"예?"

갑작스러운 선언에, 홍보팀장이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봐야 할 중요한 환자가 생겼다고 전하세요."

"아니, 그래도 차관님인데……."

"차관이고 장관이고, 병원 일이 더 중요합니다."

백의신의 거역할 수 없는 말에, 홍보팀장은 울상을 지었다.

"병원으로 갑시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 단호함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었다.

백의신을 태운 승용차는 눈길을 뚫고 연국대병원으로 향했다.

* * *

그날, 늦은 오후.

이슬기 환자의 수술을 이틀 앞둔 시점.

2차 컨퍼런스가 열렸다.

나는 인터뷰를 끝내고 와서 급하게 병동 일을 마무리하고 오느라, 조금 늦게 회의실에 들어갔다.

‘너무 늦지는 않았어야 할 텐데…….’

큰 회의실이 가득 차 있다.

이전처럼 소아과와 흉부외과 교수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직 다른 환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아직 늦지 않았구나!’

나는 조심스럽게 회의실의 뒤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슬기 환자 차례가 왔다.

"다음 환자는 이전에 말씀드린 이슬기 환자입니다. TGA, VSD, PS 로 이틀 뒤 수술 예정이며, 현재……."

소아과 펠로우 정만섭이 이슬기 환자에 대해서 짧게 브리핑했고, 오늘 촬영한 심초음파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안 선생님, 생각 좀 해 보셨나요?"

병원장 이윤중 교수가 안영욱 교수에게 의견을 물었다.

"니카이도 수술법이 가장 맞을 것 같아요."

안영욱 교수는 이전 회의와 같은 의견을 밀어붙였다.

이 회의장에서 가장 시니어(senior)였던 안영욱 교수의 말에 이견을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극히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자연스럽게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누군가 오기를 바라며, 1초, 1초를 마음속으로 카운트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게 치료 방침과 수술법에 대한 이야기를 끝맺음하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뜻밖의 등장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

"음, 타이밍 맞게 도착했구만."

백의신 교수.

그의 등장에 모두들 놀랐다.

순식간에 회의실의 공기가 바뀌는 듯하다.

아마 한 명뿐일 것이다. 저런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사람은.

"백의신 교수님?"

병원장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금 여기 계실 시간 아니지 않습니까?"

"아, 취소했어."

"예?"

"저 환자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저 에코(echo, 심초음파), 이슬기 환자 얘기들 하시는 거 맞죠?"

드르륵-

그는 화면을 슬쩍 본 뒤 의자에 앉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수술법에 대해서 토의 중이신가요?"

조용-

회의실에 적막감이 흐른다.

아무도 이 분위기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후, 천천히 입을 연 것은 안영욱 교수였다.

"……내가 니카이도(Nikaidoh)로 해 볼까 했는데, 백 교수 생각은 어때?"

나이는 백의신보다 더 많지만, 연국대병원 흉부 외과가 커 가는 과정을 함께했던 안영욱 교수.

백의신의 의견을 안 들어볼 수 없었다.

"정만섭 선생, 한 번만 더 브리핑……."

병원장님이 말하는 것을 끊고, 백의신 교수는 손을 저었다.

"아, 다 보고 왔으니 브리핑은 생략하고."

과연 백의신 교수님은 어떤 해답을 준비해 왔을까. 안영욱 교수님과 같은 생각일까?

"어렵고 복잡한 수술이 항상 더 좋은 수술은 아니죠."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문장으로 보아, 니카이도 수술법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안영욱 교수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데…… 어떤 방식으로 하자는 것일까?

"니카이도 같은 경우에는 코로나리(coronary artery, 관상동맥)를 옮겨야만 하니, 리스크가 없다고 할 수는 없죠. 물론 안 교수님이 이 분야에서 최고시니 잘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의외로 손윗사람에게는 예의를 지키는 모습.

그는 안영욱 교수를 무시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확고한 본인의 의견을 밀어붙이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 환자의 경우, 굳이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 합병증) 가능성이 있는 니카이도보다는 심플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심플한 방법이요?"

"그게 뭡니까?"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으로 향하며 다음 말을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Pulmonary Root Translocation으로 가시죠."

회의실이 술렁인다.

이 자리에는 그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허준임 교수가 놀라며 묻는다.

"백 교수님, 설마 Da Silva의 그 PRT 말씀하시는 건가요?"

PRT.

브라질의 Da Silva가 2000년에 발표한 새로운 수술법.

TGA, VSD, PS의 선천성 심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1994년부터 시행한 PRT 케이스를 모아서 2000년도에 그 결과를 발표했었다.

기존에 언급되었던 수술법들을 각각 따져 보자면…….

-1번 후보, Rastelli: 1969년

-2번 후보, REV: 1981년

-3번 후보, Nikaidoh: 1984년

지금 언급된 PRT는 2000년에 발표되었으니, 가장 최근에 나온 수술기법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시행된 적이 없는 수술법.

‘그래. 이 수술법이라면 미래가 바뀔지도 몰라!’

나는 긴장한 채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회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백 교수의 입에서 튀어나온 생소한 수술법에, 옆에 있던 이윤중 교수도 턱을 만지며 말한다.

"지난번 런던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하는 걸 들은 적은 있습니다만……."

그도 직접 PRT 환자를 본 적은 없었기에 말을 끝까지 잇지는 못한다.

"브라질 Da Silva 그룹에서 발표한 거 보면, 얼리 데스(early death, 수술 후 초기 사망)도 적지는 않던데. 니카이도보다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자신을 향한 질문에, 백의신 교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이에 가만히 듣고 있던 안영욱 교수가 입을 연다.

"……백 교수, 알고 있겠지만 그 수술법은 우리 병원에서도 경험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대한민국을 다 뒤져도 마찬가지일 거고."

노교수의 점잖은 질책.

이미 자신이 결정한 바이니 방금 발언을 철회하지 않겠냐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백 교수는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교수님들의 안색이 하얘졌다.

레지던트들은 숨을 죽이고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송유주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고, 마동섭과 안경식은 동시에 입을 가렸다.

"여태까지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말과, 아무도 할 수 없다는 말은 다르죠."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백의신 교수님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했다.

"제가 집도하겠습니다, 이 수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