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07화 (207/241)

#207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10)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교수가 한낱 인턴의 의견을 묻다니?

내가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운전석에 있던 홍보팀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백 교수님, 농담도 심하시네요. 이제 인턴 막 벗어나려는 선생님한테 그런 걸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러자 백의신의 웃음기 빠진 목소리가 뒷좌석으로부터 돌아온다.

"농담 아닙니다."

"……예?"

"<내가 집도의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관점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과, <그냥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뜻밖의 진지한 대답에, 홍보팀장은 머쓱한 듯 웃었다.

"아하, 진짜로 수술법을 제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 흉부외과 의사가 되려는 선한 쌤한테 조언을 해 주시는 거군요! 역시 백 교수님이십니다!"

그렇게 적당히 상황을 정리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백의신 교수의 질문을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이슬기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만약 제가 집도의라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나는 힘주어 말했다.

"세 가지 방법 말고, 다른 수술법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끼익-

홍보팀장님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암회색으로 흐려진 하늘 아래, 붉은 신호등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두 분 대화 듣다가 그만……."

홍보팀장은 급정거를 한 것을 사과하면서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곁눈질로 바라본다.

<교수 회의에서도 나오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인턴이 제시한다고?>

그런 당혹스러움이 눈빛을 통해 느껴진다.

내가 선을 넘어 버린 걸까?

인턴치고는 지나치게 과감했던 의견에, 한동안 백의신 교수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른 수술 방법?"

잠시 후, 침묵을 깨고 들려온 것은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방금 네가 말한 Rastelli, REV, Nikaidoh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하겠다고?"

백의신의 목소리를 이미지로 표현하자면, 마치 날카로운 메스 같다.

특히 의학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말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왠지 모르게 추궁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자, 운전석에 앉은 홍보실장님은 어색한 표정으로 우리의 눈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TGA 환자 심장 아나토미(anatomy, 해부학)나 제대로 이해하고 하는 소리야?"

백의신 교수의 말이 맞다.

난 소아 심장 수술을 눈으로 본 적도 없는 풋내기에 불과하다.

심장 수술을 글로 배운 사람이나 같다고 할까?

글로 배운 연애보다 더 심각한 상태.

아마 보통의 경우라면 여기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게 맞을 것이다.

홍보팀장도 적당히 눈치 챙기라며 나를 슬쩍 바라본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다. 이미 걸음을 뗀 이상, 여기서 멈추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리고 내 느낌상…… 백 교수님은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한번 들어나 보자.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렇게 묻는 말투가 날카롭긴 하지만, 밑 감정은 오히려 날 향한 흥미에 가까웠다.

"네 교수님, 제가 알아본 바로는 니카이도(Nikaidoh)의 변형 형태로 몇 가지 수술법들이 보고된 적이 있고……."

지난 몇 개월의 시간.

나는 TGA에 대한 것은 정말 목숨을 걸고 공부했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여러 논문들을 읽고 또 읽었기에 많은 지식들이 머릿속에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차 안이 흉부외과 의국이 된 것 같다.

나는 차분하게 공부했던 것들을 대답했다.

"니카이도(Nikaidoh) 수술법이 대동맥 뿌리(Aortic root)를 옮기는 거라면, 폐동맥 뿌리(Pulmonary root)를 옮기는 방법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파란 불이다.

백의신 교수가 가만히 내 말을 듣는 동안, 차는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몇 초 정도지만 나에게는 몇 분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백의신은 불현듯 호탕한 웃음을 껄껄 터트렸다.

"어디서 좀 찾아보긴 했나 봐?"

"케이스 리포트와 논문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제법이네."

그가 기분이 좋아진 듯 웃으며 덧붙였다.

"마지막에 말했던 그 방법은 아직 국내에서는 한 번도 시행된 적 없다는 건 알고 하는 소리였어?"

"그건 몰랐습니다."

"흐음."

톡, 톡-

백의신 교수는 뒷좌석의 손잡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마치 무언가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듯했다.

그때 홍보팀장이 우리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선생님들, 대화 중에 죄송하지만…… 이제 도착했습니다!"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차에서 내려야만 했다.

내 마음에는 아쉬움만이 가득했다.

조금만 더 TGA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백의신 교수가 뜻밖의 실마리를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자, 이쪽입니다."

우리는 홍보팀장님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고, 곧 촬영장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희야말로 이런 곳까지 섭외해 주셔서 감사하죠."

방송국에서 온 사람들.

그중 몇몇은 백의신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야 워낙 유명인이니까.

심지어 한때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던 백의신 교수였기에 더 신기해하는 듯하다.

한편 감독은 내게도 관심을 기울이며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그림 나오겠는데요? 배경도 좋고, 모델도 좋고. 내용까지 잘 나오면 딱이겠네요! 공들여서 로케이션 선정한 보람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촬영장은 마치 공방처럼 생긴 카페였다.

벽면은 전부 유리로 된 창이었고, 그 뒤로 커다란 자작나무 숲이 보였다.

오늘 하루를 통째로 빌린 걸까?

평소에는 테이블이 있었을 자리에, 오늘은 촬영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린 조명기가 몇 개.

스태프도 제법 많다.

마이크를 체크하는 사람, 반사판을 들고 있는 사람 등등…….

방송사 제작팀에서 지원을 해서 그런지, 촬영 장비들도 모두 본격적이었다.

‘이렇게까지 거창할 줄은 몰랐는데…….’

막상 하려니 긴장되네.

나는 스태프가 달아 주는 마이크를 부착했다.

전날 대략적인 대본은 전달받은 상태.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은 조금 전까지 차 안에서 나누었던 대화로 가득 찼다.

앞으로 촬영에 집중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여파는 첫 질문부터 버벅거림으로 나타났다.

"흉부외과…… 크흠."

첫 질문을 시작하려다가 음이탈이 났다.

속된 말로 삑사리.

나는 머쓱하게 목을 가다듬었고, 딱딱했던 촬영장에는 유연한 웃음이 번졌다.

"죄송합니다."

"신 선생님, 긴장하지 말고 하세요! 롤모델 앞이라고 너무 굳으신 거 아녜요?"

나는 촬영팀의 응원에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쩌면 방금 장면은 따로 편집당해서 알뜰하게 활용될지도 모르겠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내 앞에는 백의신이 마주 앉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분 탓일까?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더 나에게 흥미를 보이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아마도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나눈 대화 때문이리라.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금 더 자신감을 키워서 말했다.

"흉부외과의 세계에서 백의신 교수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텐데요……."

의례적인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눈빛이 다시 약간의 지루함으로 뒤덮인다.

"……그런 흉부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 오셨을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뿌듯함을 느꼈던 것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제작진이 적어 준 내 질문이 끝났다.

그러자 백의신 교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흡사 수분이 하나도 없이 말라 버린 겨울철 나뭇가지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질문이지?"

"예?"

"환자 살릴 때 일일이 감정 느낄 새가 어딨어? 누가 이런 쓸데없는 질문 적어 줬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의신이 아무리 감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의사로서 뿌듯한 순간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런 벅차오르는 순간이 한 번도 없으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백의신이 불쑥 엉뚱한 말을 꺼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흉부외과 치료 기록이 뭐였을까?"

뜬금없는 질문.

대화의 맥락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그의 말이 이어졌다.

"대략 백 년 전. 지금의 명동성당 앞에서 일어났던 일이야."

백의신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창밖 자작나무 숲에는 싸락눈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나는 예정된 질문을 멈추고 그의 말을 들어 보기로 했다.

"한 고위 관료가 기습적으로 칼에 찔렸어. 좌측 두 번째 갈비뼈 아래 자상. 동맥 출혈이 있었고 폐 손상, 흉부타박상, 외상성 늑막염이 생겼지."

"어떻게 됐죠?"

"VIP 환자였던 그 남자는 대한의원에서 최상급 치료를 받았고, 50여 일 만에 회복해서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지."

"다행이네요."

"그래?"

내 반사적인 대답에 백의신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그 환자의 이름은 이완용이었어."

이완용?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대한민국 사상 가장 대표적인 매국노.

그가 대한민국 1호 흉부외과 환자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었을 줄이야.

"을사오적 이완용…… 말씀입니까?"

"그래. 여기서 질문."

백의신 교수는 입가에 웃음기를 싹 지운 채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 네가 집도의였고, 그리고 일제에게 희생당한 독립군의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이완용이 수술대 위에 올라왔다고 생각해 봐."

"……."

"어떻게 해야 할까?"

역으로 나에게 질문이 들어왔다.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예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패턴 그대로였다.

백의신은 언제나 시니컬한 철학자처럼 역으로 질문을 던졌고, 그 앞에서 인터뷰어는 쩔쩔매기 바빴었지.

지금은 내가 그 위치에 앉아 있는 셈이다.

"……순간적으로 감정은 흔들렸을 것 같지만, 어쨌든 저였어도 의사의 본분을 다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백의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정답이 없는 질문.

하지만 방금의 대답으로, 그와 나 사이에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된 기분이었다.

"환자를 살리는 데 의미 부여를 하고 일일이 감정을 섞으면 그런 상황에서 흔들리게 되지."

그 말을 듣자, 나는 비로소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살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그냥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거미가 거미줄을 짜는 것처럼."

나는 두 번 정도 곱씹어 본 다음에야 그 말을 이해했다.

‘역시 백의신 교수님다운 생각이구나.’

철학자, 혹은 구도자 같은 화법이랄까?

첫 질문부터 쉽지 않았다.

그 뒤로도 많은 질문이 이어졌고, 백의신 교수의 대답은 매번 범상치 않았다.

나는 그가 펼쳐 놓는 해박한 지식과 수많은 경험, 독특한 견해 앞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마치 수많은 책이 쌓여 있는 도서관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랄까.

그럴수록 그에 대한 내 마음속 신뢰감은 커져 갔다.

누가 뭐라든, 백의신은 여전히 백의신이었다.

* * *

두어 시간 후.

촬영이 끝나 간다.

우리의 대화를 통해 이미 충분한 분량을 뽑은 감독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럼 마지막에는 자유 질문으로 가도록 할게요. 이건 흉부외과 인생 후배로서 대선배님에게 물어보는 마지막 질문, 아무거나 자유롭게!"

감독이 추가적인 촬영을 요구한다.

즉, 대본에 없던 질문.

그때 나는 무언가를 생각해 냈다.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선을 넘어 보기로 했다.

"백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생각한 질문을 던졌다.

"첫 질문에서, 환자를 살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라고 말씀하셨죠."

"그랬지."

"한 소아 심장 환자가 있습니다."

소아 심장 환자라는 단어에 백의신의 눈썹이 꿈틀하고 반응했다.

"A라는 수술은 기존의 방법이고, B라는 수술은 조금 더 도전적인…… 아무도 해 보지 않은 방법이지만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수술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길을 택하실까요?"

백의신의 표정이 변했다.

이것은 차 안에서 이루어지던 대화의 연장선이다.

그도 내 질문의 의도를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집도의라면 말이지?"

"예…… 교수님께서 집도의라고 하신다면."

나는 지금, 하늘 같은 교수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줄곧 마음속으로 북극성처럼 여겨 왔던 동경의 대상에게.

조금 전까지 건조하기만 했던 눈빛이 이채롭게 빛나며 나를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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