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8)
‘당연히 백의신 교수님도 참석하실 줄 알았는데…….’
의아함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송유주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은근히 주위를 둘러보는 눈치였으니까.
그런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교수님들은 자연스레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하여 수술 일정을 당기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현재 환자는 흉부외과 중환자실에 입원 중입니다."
소아과 펠로우 정만섭 선생이 에코(echo, 심장 초음파) 소견과 증상에 대해서 짧게 발표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소아과 이윤중 교수가 입을 열었다.
"LVOTO (좌심실 유출로 협착 = PS)가 꽤 있는 편이라서 쉽지만은 않겠네요. 흉부외과 선생님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수술을 좀 당겨서 하는 게 맞겠죠?"
그러자 흉부외과 안영욱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환자가 무척 힘들어하고 청색증도 심해 보이던데. 지금 체중이 어떻게 되죠?"
"5.8kg입니다."
"4개월이 거의 다 되어 가고 5.8kg이라……. 이번 주 내로 수술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수술 시기에 대한 의견은 모두가 일치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러면 혹시 수술은 어떤 방법으로 하실 생각이신지요?"
수술 방법 이야기가 나오자, 컨퍼런스 룸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현대 의학의 난제.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의학계의 긴 역사 동안, 의사들은 어떻게든 다양한 답을 찾아왔으니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병원장이자 소아과 교수, 이윤중 교수의 말에 모두들 집중했다.
"……역시 라스텔리가 첫번째 옵션 아닐까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법 기호 1번.
Rastelli procedure.
심실 중격에 있는 구멍을 통해 <좌심실-대동맥> 연결을 심장 안에서 만들어 준 뒤, <우심실-폐동맥> 길은 심장외도관(conduit)을 통해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1969년에 처음 시행된 후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술법.
하지만, 명확한 단점이 존재한다.
<우심실-폐동맥> 길을 만들 때 쓰인 심장외도관은 우리 몸에 있는 생체 조직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망가질 수밖에 없는 법.
그래서 아이가 커 가면서 폐동맥 길을 다시 만들어 주는 재수술을 피할 수 없다.
다시 심장 수술을 받는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스텔리는 재수술 문제도 있고, 최근에 발표된 장기 생존율도 좋지가 않아요. 20년 생존율을 52% 로 보고한 레포트도 있으니까요……."
안영욱 교수의 말에 모두의 미간이 깊어졌다.
‘이제 겨우 태어난 지 3개월을 넘긴 아이가 20살 청년이 되기도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역시 현대 의학에서도 난제인 질환.
그나마 스탠다드에 가까운 수술법이 저 정도로 위험하다는 소리다.
나도 집중력을 유지하며, 회의 진행 과정을 쫓아갔다.
"그러면 다른 방법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 흉부외과 쪽에서?"
그러자 이번에는 허준임 교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연다.
"어,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요. 반복적인 재수술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모두가 허준임 교수의 입에 집중했다.
"일단 정상적인 해부학적 교정 방법인 REV 수술도 있습니다. 환자군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 수술법으로 유럽에서는 25년 생존율 85%까지 보고하기도 했으니까요."
수술법 기호 2번.
REV(Lecompte) procedure.
라스텔리 시술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1981년 처음 시도된 방법이다.
<좌심실-대동맥>을 연결하는 방법을 개선하여, <우심실-폐동맥>을 연결할 때 심장 외도관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법이었다.
하지만, 안영욱 교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REV도 결국에는 폐동맥 유출로 쪽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데이터를 보게 되면 좌심실 유출로 쪽도 결과가 만족스럽지만은 않고요."
역시 쉽지 않다.
어느 방법을 택하든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곧바로 안영욱 교수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 나간다.
"저는 니카이도(Nikaidoh procedure)가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자 다른 교수님들의 눈이 크게 떠진다.
무언가 놀라는 눈치인데…… 왜들 놀라지?
"최근 리포트에 따르면, 니카이도 술식이 장기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보여 주고 있어요."
그는 힘 있게 말을 이어갔다.
"수술 후 병원 내 사망이 5% 정도, 그리고 나머지 정상 퇴원한 환자들에게서는 30년 동안 모탈리티(mortality, 사망)가 없었다고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19명의 환자만을 분석한 결과이긴 하지만요."
그 말에, 허준임 교수가 조심스레 덧붙인다.
"해부학적으로 가장 좋은 수술법이긴 한데…… 장기적으로 보면, 대동맥판막 쪽에서 역류가 좀 걱정되기도 합니다, 선생님. 수술 범위도 넓고, 난이도 역시 높고요."
수술법 기호 3번.
Nikaidoh procedure.
대동맥을 뿌리부터 옮겨서(aortic root translocation), <좌심실-대동맥>과 <우심실-폐동맥> 연결을 만드는 수술법.
가장 정상적인 해부학적 교정 방법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1984년에 제안된 수술법이었다.
하지만, 대동맥 입구와 관상동맥 모두를 옮겨야 했기에, 수술 난이도가 높고, 수술 범위도 매우 광범위한 수술법.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좌심실-대동맥> 연결 부위에서 대동맥 판막의 역류가 있을 수 있고, <우심실-폐동맥> 쪽 역시 재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제 생각에는 지금 이 케이스에서는 니카이도가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안영욱 교수는 기호 3번 니카이도 수술법을 강력하고 고집스럽게 주장하고 있었다.
"음…… 일단 세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있겠네요. 지금 응급으로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니까,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음 회의 때 결정하도록 할까요?"
"네, 그러시죠. 니카이도 수술법으로 한다면, 집도의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
잠시 묘한 침묵이 흐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안영욱 교수의 멘트를 마지막으로, 회의에서는 다음 환자를 다루기 시작했다.
"다음 환자는……."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같은 날 저녁.
나는 틈만 나면 이슬기 환자의 곁을 맴돌았다.
세상의 빛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
몸집도 아직 작다.
하지만 이 작은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주 우연한 확률로 일어난, 심각한 결함.
그것이 한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 지독한 불합리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이 아이를 살리고 싶어.’
지난 3개월.
나는 숙소에서 잠들기 전, 각종 자료들을 펼쳐 놓고 공부를 할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아직 부족하구나.’
‘내가 모르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구나.’
누구나 초심자일 때는 용감해질 수 있지만, 알면 알수록 겸허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환자의 얼굴을 눈으로 보니 목표가 다시금 선명해졌다.
‘그때 꿈속에서는 분명 수술 후 5일째라고 했었어.’
수술 후 5일째, 심폐소생술을 받게 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 이 아이의 정해진 운명.
나는 이 상황을 바꾸어야만 한다.
아니, 바꿀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 가지 방법 중 뭐가 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 수술 후 병원 내 이벤트니까, 회의에서 말했던 장기 생존율보다는 안전하게 퇴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게 골똘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데, 송유주 선생이 다가왔다.
"너 여기서 뭐 하냐?"
"아, 선생님."
"요새 심장 인턴 널널해? 왜 소아 심장 중환자실에 자꾸 얼쩡거려?"
언제나처럼 말투가 뾰족하다.
나는 이슬기 환아의 수술이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송유주 선생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진다.
"네가 걱정해서 뭐 하게?"
"안영욱 교수님이 니카이도 수술법을 이야기하시던데. 아마 그 방법으로 수술을 하게 되겠죠?"
"이젠 내 말 귓등으로도 안 듣냐?"
송유주 선생은 눈썹을 세우며 핀잔을 주면서도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나도 그나마 셋 중에서는 니카이도 수술법이 이슬기 환자에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이야. 그런데……."
이어지는 송유주 선생의 말은, 내가 모르던 새로운 정보였다.
불과 몇 개월 전.
안영욱 교수님에게 바로 직전에 니카이도 수술을 시행받은 환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로 에크모 삽입 후에 결국엔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안영욱 교수님 수술 잘하시지. 그런데 모든 수술에는 일정 확률로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 생길 수밖에 없어. 지난번에는 운이 안 좋게 그랬던 케이스였던 거고."
오늘 낮, 컨퍼런스 회의에서 다른 교수님들의 눈빛이 흔들린 이유를 비로소 알 것만 같았다.
‘이전 케이스 때문에 불안해하셨던 거야. 내가 본 예지몽에서도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가 났었는데…….’
불안감이 증폭된다.
송유주 선생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마도 관상동맥(coronary artery) 연결 부위 쪽에서 문제가 있었을 거야. 워낙 니카이도 수술은 그쪽 컨트롤 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고난이도의 수술.
어떤 집도의가 수술을 하더라도, 일정 확률로 합병증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 그럼 혹시……."
그때, 눈앞이 어두워졌다.
중력이 없어지고, 일순간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듯한 충격.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둠 속으로 강하게 빠져들어 갔다.
* * *
‘여기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그 속에서는 공포까지 느껴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눈이 어둠에 적응을 하기 시작한다.
곧 내 눈앞에 희미하게 그려진 여러 개의 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이런 선들을 본 적 있었어.’
수많은 선택지를 개념화한 듯한 추상공간.
어둠 속에 수많은 가능성의 선들이 갈림길처럼 펼쳐진다.
마치 반투명한 거미줄의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았다.
‘이 선 끝에 보이는 장면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였지.’
지난번과 같다.
약한 중력에 이끌려 한 개의 선을 따라 몸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선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길만이 이어져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결국 정해진 미래가 펼쳐질 테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시선을 옮겼다.
이 중에서 빛이 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그 끝에, 분명 슬기를 살리기 위한 단서가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는 그렇게 방법을 찾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소름 끼치는 기분을 느꼈다.
‘빛이 없어?’
시야에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보고 싶은 밝은 빛으로 이루어진 길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길들은 모두 어두웠다.
마치 빛 한줄기 없는 심해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어떻게 된 일이지?’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누군가 내 귀에 잔인한 진실을 속삭이는 듯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슬기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