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7)
슬기의 엄마, 지혜는 한부모였다.
소위 ‘미혼모’.
그녀는 그 표현이 싫었다.
마치 무언가 크게 부족한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사회적인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로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
그렇게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녀는 편견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혼자서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아빠 없이 애가 온전히 클 수 있겠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나중에 애가 느낄 감정은 생각 안 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다짐했다.
슬기를 부족함 없이 키우겠다고.
보란듯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딸로 키우겠다고.
그래서였을까.
슬기가 선천성 심기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예, 선생님. 지금 가고 있어요."
작은 SUV 안에서 지혜가 전화를 붙잡고 말한다.
운전석에는 급히 달려온 언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핸들을 잡고 있었다.
4개월 뒤 수술을 예약하면서 퇴원하였던 아이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숨을 빨리 쉬는 것 같았고, 평소 85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던 산소포화도 수치는 72를 가리키고 있다.
그마저도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더 떨어지고는 했다.
심장에 구멍을 뚫어서 겨우 혈액의 순환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위태로운 상황.
지혜는 품 안의 슬기를 바라보며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지금 가면 바로 입원할 수 있는 거죠? 수술은…… 예, 알겠습니다."
전화기 너머 소아 심장 파트 코디네이터 간호사의 대답을 듣고는, 얼른 전화를 끊고 아이의 상태를 살핀다.
청색증.
몸에 산소 공급이 부족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째서 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이런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
"슬기야, 괜찮아."
그녀는 점점 파랗게 변하는 것 같은 아기의 손을 꼭 잡았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분신.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던 날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아, 길은 왜 이렇게 막혀!"
운전석의 언니가 버럭 소리쳤다.
속내에는 동생에 대한 짜증이 들어가 있는 듯도 하다.
차라리 내 말 듣고 지우지, 왜 낳아서 이 고생이야?
그런 속상함이 담긴 질책이 목소리를 통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슬기야, 괜찮을 거야."
다시 한번, 지혜는 속삭였다.
그러자 아기가 대답이라도 하듯 엄마와 눈을 마주쳤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태어나기도 전, ‘지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십 번도 넘게 들었던 아이다.
지우라고?
어떻게 지울 수 있었을까. 이렇게 예쁜 너를.
"누가 뭐라 해도, 엄마는 너 포기 안 할 거야."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이 아이의 마지막 방파제라고.
내가 무너지면 누구도 이 아이의 생명을 응원하지 않을 거라고.
"엄마가 지켜 줄게."
그녀는 결연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으로 연국대병원의 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 말고도, 슬기의 생명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 기다리고 있었다.
* * *
<소아 심장 파트>.
흉부외과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파트다.
소아는 성인과 다른 생명이다. 그렇기에 성인 환자를 볼 때보다 더 많은 경험과 세심함이 필요하다.
"선한 쌤, 안녕!"
"안녕하세요."
안경식 선생님은 저번 사건 이후 열정맨이 되어 있었다.
"나는 다음 달에 소아 심장 파트로 가요. 그 파트는 처음 도는 건데 기대되네요."
연국대병원 흉부외과 수련코스에서 소아 심장 파트는 2년 차가 다 되어서야 돌 수 있는 파트다.
그만큼 ‘어나더 레벨’.
이 분야는 쉽게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백의신 교수님이 옛날에 소아 심장 수술을 그렇게 기깔 나게 하셨다고 하던데…… 설마 이제 심장 수술 안 하시는 건 아니겠죠?"
?
"안 그래도 간단한 수술만 하신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요."
안경식 선생의 수다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간호사도 옆에서 한마디를 거든다.
나는 말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말 나온 김에 소아 중환자실 한번 가 볼까요? 송유주 선생님이 소아 당직이니까 인사도 할 겸?"
"예."
나는 안경식 선생을 따라 소아 심장 중환자실로 향했다.
지잉-
소아 심장 중환자실 문이 열렸고, 한쪽에 간호사들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인사를 하자, 송유주 선생이 힐끗 우리 쪽을 한번 쳐다본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베드에는 귀여운 아기 한 명이 누워서 코에는 산소줄이 꽂힌 채, 손발을 바둥대고 있었다.
"우아- 애기 귀여운 거 봐."
안경식 선생이 아기 환자에게 다가가는 한편, 나는 환자의 이름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슬 기>
예전 소아과 NICU(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봤던 환자.
예지몽에서 CPR을 시행받고, 안경식 선생님을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게 했던 바로 그 환자다.
‘드디어 왔구나!’
지금 이슬기 환자가 누워 있는 베드 역시,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어느새 3개월이 지나, 이 아이는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온 것이다.
내 놀라움과는 상관없이, 미래를 보지 못한 안경식 선생은 밝은 목소리로 송유주에게 묻는다.
"선배님, 이 환자는 무슨 환자예요?"
꿈에서 보았던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그의 모습과 지금의 해맑은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얼마 전에 도망갔다 돌아온 안경식 선생님인데…….
또 뭔가 사고가 터지면 진짜 흉부외과를 그만두는 건 아닐까?
물론 그보다 걱정되는 것은 아기의 현재 상태다.
"TGA, VSD, PS 환자야. 10월에 Atrial septostomy(심방 중격 절개술) 하고 이번에 수술하려고 입원했어."
TGA (Transposition of Great Arteries, 대혈관 전위).
VSD (Ventricular Septal Defect, 심실 중격 결손).
PS (Pulmonary Stenosis, 폐동맥 협착).
선천적으로 심장에 각종 기형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처음 들었다면, 복잡한 질환에 머리가 하얗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틈틈이 공부해 왔던 질환이기에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기억났다! 예전에 선한 쌤이 물어봤던 그 환자 아니에요, 혹시?"
그렇다.
처음 예지몽을 꾸었던 날 안경식 선생에게 물어봤었지.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심장 → 폐 → 심장 → 온몸 → 심장 → 폐…….
이렇게 하나의 순환고리로 이어져, 폐에서 받은 산소를 심장이 온몸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TGA(대혈관전위) 환자의 경우 몸 안에 두 개의 순환고리가 있다.
(1) 심장 → 폐 → 심장 → 폐…….
(2) 심장 → 온몸 → 심장 → 온몸…….
이 두 개의 순환고리가 서로 섞이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산소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아직 큰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작고 어렸던 이슬기 환자.
임시방편으로 저 순환고리가 섞일 수 있도록 심장에 구멍을 뚫어 놓은 뒤, 이번에 완전 교정을 받기 위해 중환자실로 온 것이다.
"프리옵(pre-op, 수술 전) 환자인데, 저희 중환자실로 왔네요?"
"원래는 4-5개월 정도는 키워서 수술하려고 했는데, 보다시피 애가 숨이 가빠하고 힘들어해. 룸에어(room air, 일반 공기)에서 세츄레이션(saturation, 산소포화도) 80도 안 나오는 수준이고."
"아이고, 이런……."
안경식이 안타까운 듯 탄식했다.
그동안 나는 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호흡이 빨랐고, 산소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모니터상 체크되는 산소포화도는 낮았다.
"그래서 수술 날짜를 당긴 거군요. 혹시 몰라서 중환자실에서 보는 거고."
"그래. 일반적으로 TGA 치료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송유주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인 TGA 환자들은 태어난 후 1-2주 안에 <동맥치환술>이라는 수술을 받게 된다.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를 바꾸어 줘서 정상 형태로 피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맞아. 그런데 이 아이처럼 VSD와 PS라는 심기형까지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지."
그렇게 말하는 송유주의 표정은 착잡했다.
"폐동맥이 나가는 길에 협착(PS)이 있다는 것은, 좌심실 유출로(LVOT)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를 바꾸어 주는 것만으로는 안 돼."
TGA 환자의 치료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좌심실-대동맥> 연결과 <우심실-폐동맥> 연결이 자연스럽게 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좌심실에서 나가는 길에 협착이 있다 보니, ‘동맥치환술’만으로는 치료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어……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안경식 선생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묻는다.
"이 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먼저 1차 시술로 체폐동맥혈이 섞일 수 있도록 만들어."
일단은 산소가 몸에 전달될 수 있도록 2개의 평행한 순환고리를 연결해 주어, 심장 수술에 적합한 시기가 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완전 교정을 위한 대수술을 하게 되는 거야. 그런데……."
송유주는 말끝을 흐리더니 덧붙였다.
"……이게 어떤 수술을 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아."
"네?"
안경식이 눈을 치켜뜬다.
송유주는 언제나 확신에 찬 듯 말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만큼 어려운 환자라는 뜻이리라.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게 없다고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와 있지.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완벽한 방법은 아직 없어."
TGA, VSD, PS.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치료법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난제였다.
다양한 수술 방법이 시도되어 왔지만, 어느 것 하나가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질환.
"아마 내일 컨퍼런스에서 이야기 나올 거야. 어떤 방법으로 수술을 할지 토의하시겠지."
"와…… 저도 들어가 보고 싶어요."
안경식 선생이 말한다.
소아 심장 질환 영역의 난제 중 하나를 연국대병원에서 어떻게 풀어 나갈지 궁금한 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나도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혹시 저도 가능하면 참석해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두 사람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아직 1년 차가 채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소아 심장 컨퍼런스에 참여하겠다 했으니 놀라울 만도 하다.
"뭐, 시간 되면 오든가."
송유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때마침 걸려온 콜에 안경식 선생님은 성인 심장 중환자실로 향했고, 나 역시 그를 따라 움직였다.
‘내가 어떻게든 개입해서 미래를 바꿔야만 해.’
현대의학의 난제에, 나는 미래를 보았다는 것만으로 도전장을 내밀어야 했다.
* * *
소아 심장 컨퍼런스.
소아 심장 질환을 내과적으로 다루는 소아과와, 외과적으로 접근하는 흉부외과가 함께 환자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이다.
수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소아 심장 질환 환자는 이 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치료 방침이 결정된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의 메인 주제는 <이슬기 환자>.
질환의 특이도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의사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원장의 위치에서도 환자 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소아과 이윤중 교수.
현재 흉부외과 소아 심장 파트의 최고 시니어인 안영욱 교수.
성인과 소아를 넘나들며 심장 수술 케이스를 늘려 가고 있는 흉부외과 허준임 교수.
그 외에도 많은 소아과와 흉부외과 레지던트, 펠로우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런데, 백의신 교수님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컨퍼런스에 모든 교수님들이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스케줄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어렵고 중요한 이슈에, 국내 심장 수술의 최고 권위자인 백 교수가 보이지 않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