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02화 (202/241)

#202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5)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혹시 지금 포털 검색어 순위 봤어?>

"순위요?"

<얼른 확인해 봐.>

전화기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홍보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떠 있는 듯하다.

포털 검색어를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동기들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안 봐도 백의신 교수님이 1위일 것 같은데요?"

<백의신 교수님이 올라온 건 맞는데, 그 밑에 강남역 인턴도 연관 검색어로 올라오고 있거든.>

"예?"

이건 예상 못 했다.

물론 강남역에 돌아다니는 인턴이 한둘이겠냐마는, 저건 분명 나를 말하는 거겠지.

<작년에 백의신 워너비라고 뉴스룸 나와서 인터뷰했던 거 기억 나?>

"……그렇다고 제가 검색어에 떠요?"

<아까 백 교수님이랑 현장에 같이 있었다면서? 사람들 목격담이 올라오면서 화제가 됐나 봐.>

소문 참 빠르다.

이게 요즘 세상인가?

그렇게 옛날 사람 같은 탄식을 내뱉으며, 나는 몇 시간 전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응급실에서 난리를 피우며 엘리베이터까지 환자를 옮겼으니, 목격한 사람도 많았겠지.

시뻘건 피가 낭자한 가운데, 백의신 교수가 환자의 가슴속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병원 복도를 달리는 장면.

아마 누가 봐도 인상 깊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에 익숙해졌던 나에게도 자극적인 순간이었으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나는 왜 엮였지?’

나는 통화 도중 홍보팀장님이 보내 준 커뮤니티 링크를 열어 보았다.

환자를 스트레처 카에 태우고 엘리베이터로 달려가는 모습이 찍힌 흐릿한 사진이 있었다.

-연국대병원에서 목격한 1인입니다. 저기 사복 입은 사람 백의신 맞구요. 그 옆에서 가운 입고 달리는 사람 강남역 인턴 맞습니다.

-와 ㅋㅋㅋ

-대박 ㅋㅋㅋ

-진짜 다이나믹하게들 사시네

-강남역 인턴? 저분은 작년에 인턴이었으니까 올해부터는 인턴 아닐 듯 -혹시 백의신이 자기 후계자로 거둬들이려고 의료계에 복귀한 게 아닐까요?

-그럴싸한데?

후계자라니?

나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고 얼굴을 붉혔다.

물론 병원의 수련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도제식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교수와 나 같은 예비 레지던트의 관계가 그렇게 밀접할 리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의신 교수가 나를 키우려고 병원에 돌아왔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크크, 후계자라는 단어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앞으로 백의신 교수님이 있는 흉부외과에서 배우면서 일할 테니까!>

그렇게 날 띄우는 홍보팀장님의 말투가 심상치 않다.

이럴 때는 분명 무언가를 계획하면서 꼬드기려 하는 거다.

가령 연국대병원 홈페이지에 쓸 대문 사진이 필요하다거나, 보도자료를 만들려고 한다거나…….

"혹시 저한테 뭐 시키시려는 거예요?"

<눈치 빠르네.>

수화기 너머에서 히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조회수 6백만의 주인공, 흉부외과를 선택한 강남역 인턴. 꿈에 그리던 전설과 마주하다! 그런 기획을 하고 있거든.>

"제 영상이 6백만이 됐어요?"

<몰랐어? 얼마 전에 넘었던데, 아무튼 계속 들어봐 봐.>

그가 설명해 준 계획은 대충 이랬다.

교수-레지던트 예비 1년 차의 멘토링 특집.

한 명은 이미 전설이라고 불리우는 의사.

다른 한 명은 이제 막 흉부외과의 첫단계에 발을 들여놓은 꿈 많은 의사.

두 사람의 1대 1 대담.

내가 무언가를 질문하고, 백의신 교수가 인생 조언을 해 주는 영상을 찍어 보겠다는 소리다.

<참고로 영상은 병원 채널이 아니라 SBC 방송국 너튜브 채널에 올라갈 거야.>

"……갑자기요?"

스케일이 왜 그렇게 커져?

<파릇파릇한 새싹과 커다란 거목이 함께 일하는 곳! 그런 식으로 연국대병원의 이미지를 가져가려는 거야. 어때?>

갑작스러운 제안.

대충 어떤 그림인지는 알겠다.

작년에 TV에서 ‘백의신 워너비’라고 전국민 앞에서 광고를 했던 나였으니까.

백의신 교수의 복귀와 더불어 화제성을 키우고 병원 홍보까지 노리겠다는 것이겠지.

<작년에 이어서 전국민적으로 스포트라이트 받아 보자. 이번에는 백의신 교수님이랑 나란히! 어때, 생각만 해도 신나지?>

홍보팀장님의 야심 찬 말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부담스럽습니다."

완곡히 거절하려 했다.

오늘 백의신과의 첫만남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탓일까?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는 분명 나를 흉부외과에 오지 말라며 자격 미달 취급했으니까.

지금은 함께 미디어에 노출될 타이밍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인정받기 전까지는.

그리고 물론 존경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서로 묻고 답하는 건 상상만 해도 어색하다.

하지만 홍보팀장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비장의 한마디를 던졌다.

<거절할 거면 백의신 교수님한테 직접 얘기하든가. 백 교수님도 하겠다고 승낙했거든.>

"……백 교수님이요?"

<몰랐어? 백 교수님 은근히 관종이셔. 아차차,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백의신 교수님 아래서 일하게 되더라도, 이렇게 1대 1 대담 형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그럼 하겠습니다."

<역시 신선한이야.>

내 쿨한 대답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물론 부담되기는 하지만, 솔직히 좀 기대되기도 한다.

백의신 교수.

내가 학생 때부터 마음속의 나침반처럼 삼아 왔던 사람.

그가 했던 말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일종의 잠언이었고 삶의 지침이었다.

그러니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산더미였다.

<근시일 내에 촬영 일자 잡힐 거야. 하루 전날에는 알려 줄 테니까 그동안 질문이나 생각하고 있어 봐.>

"알겠습니다."

<피부 관리도 좀 하고. 화면발 잘 받아야지, 호호홍!>

홍보팀장님은 콧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피부 관리라니, 그런 사치스러운 걸 할 새가 있을까?

요즘 흉부외과 생활을 생각해 보면 거지꼴만 면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승낙하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네, 이거.

* * *

금요일 전체 의국 회의.

흉부외과의 모든 구성원들이 모이는 큰 회의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수술 보고와 엠엔엠(M&M, Morbidity & Mortality)이라고 불리는 사건/사고를 리뷰하는 시간.

당연히, 이번 주의 주요 이슈는 장재성 환자의 응급실 CPR과 응급수술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환자는 응급수술 후, 현재 중환자실에서 경과 관찰 중입니다."

새로운 치프 레지던트.

송유주가 단상 위에 선 채 명료한 목소리로 브리핑했다.

좌중에는 교수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다음 주부터 근무하기로 한 백의신 교수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백의신 교수님이 옆에 계셔서, bleeding focus(출혈 부위)를 막고 수술장으로 빠르게 옮길 수 있었습니다."

발표 도중, 백의신 교수의 이름이 안 나올 수 없었고 회의실의 분위기는 묘해졌다.

"환자 CPR 타임이 적지 않았던 거 같은데, 신경학적 후유증은 없나요?"

소아심장 안영욱 교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한다.

"다행히 신경학적 후유증 없이, 다음 주 병동 전실 계획 중입니다."

송유주가 대답하지만, 몇몇 교수들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다.

"아직 근무 시작하지도 않은 분이…… 응급실까지 가셨네. 환자가 괜찮아서 다행입니다만……."

"BPF에 저렇게 pulmonary artery(폐동맥) 터졌으면, 앞으로도 잘 봐야 될 겁니다."

모두들 평소보다 날이 서 있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환자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뭐랄까…….

백의신 교수에 대한 반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다들 말수가 적어지자, 의국장 허준임 교수가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어, 아무튼 환자가 큰일 날 뻔했는데, 다행히 매니지(manage, 관리)가 잘된 것 같네요!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요새 인터넷에 난리던데요? 역시 이슈 메이커 백의신 교수님이시네요. 아하하!"

"……."

"그리고 미리 공지했듯이 오늘 저녁에는 백 교수님 환영회 겸 회식이 우성각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많이들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밝게 이야기하는 허준임 교수와는 다르게, 몇몇 교수는 고개를 돌리고 먼 곳만을 쳐다본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다 같이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는 길.

몇몇 교수들이 허준임 교수에게 불참을 표했다.

"아, 나는 선약이 있어서 참석은 못 할 것 같습니다."

"나도 오늘 수술 스케줄이……."

레지던트들과 펠로우들도 회의실을 나오면서 웅성댄다.

그중 백의신과 일해 본 듯한 펠로우의 소곤거리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분위기 어떡하냐."

"왜요?"

"나는 한때 같이 일해 봤잖아. 그분이 조직에 있으면 원래…… 아니다,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몇몇 레지던트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멀어진다.

물론 모두가 백의신을 반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허준임 교수는 안 그래도 텐션이 높은데 평소보다 더욱 신나 보였다.

아마도 백 교수님과 사이가 좋은 듯.

그리고 레지던트 중에서도 눈에 띄게 들떠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송유주였다.

"환영회식 갈 거야?"

"가야지. 당직 좀 바꿔 줘라."

"웬일이냐, 4년 동안 당직 바꿔 달란 소리 한 번을 안 하더니?"

마동섭과 그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

늘 로봇처럼 정해진 일정대로만 움직이던 송유주 선생이 당직을 바꾸다니?

"오늘만 바꿔 줘."

그렇게 말하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띠어진다.

이 또한 놀라웠다.

송유주 선생이 입꼬리를 올리다니?

물론 평소처럼 무표정에 가깝긴 하지만, 그간 관찰해 왔던 송유주의 표정을 생각했을 때 저 정도면 기쁨 10단계다.

아마도 백의신의 복귀 때문이겠지.

‘밖에서 볼 때 백 교수님은 모두의 존경을 받는 듯했는데…… 막상 병원 안에서 분위기는 다르네.’

호와 불호가 이렇게까지 갈리는 사람이 있을까?

마치 흉부외과가 반으로 나뉜 듯하다.

이 묘한 분위기는 그날 저녁의 회식 자리까지 이어졌다.

"자, 잔 채우시고~ 백의신 교수님의 복귀를 축하드리면서!"

"축하드립니다!"

"환영합니다, 교수님!"

회식 자리에 사람 없어 보이면 안 된다며, 안경식 선생님이 나와 신상미를 내보내 주었다.

회식 장소는 예상보다 소박한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교수님들 서너 명이 자리했다.

응급 이식수술 때문에 시니어 교수님들은 자리하지 못했고, 펠로우들은 그보다는 많이 보였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영광입니다."

펠로우와 레지던트들이 빈 잔을 들고 백의신이 있는 곳까지 가서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잔을 받는다.

조직마다 술자리에도 관행이 있고 격식이 있다.

나도 아직 완벽히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오늘 술자리의 분위기는 유독 딱딱한 편이다.

특히 백의신이라는 존재 때문에 더욱 그런 듯했다.

"참 피곤하게들 산다. 뭐 하러 빨빨거리고 돌아다녀? 밥 먹으러 왔으면 밥이나 먹지."

백의신 교수는 사소한 예의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백의신 교수에게 예의 없게 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달까?

모두의 차례가 돌아간 듯하자, 흉부외과 막내인 나와 신상미는 함께 잔을 들고 백의신에게로 향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아, 거참. 밥 좀 먹자."

백의신은 귀찮다는 듯 내 얼굴을 힐긋 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넌 아직 그만 안 뒀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

"예. 흉부외과 예비 1년 차 신선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신상미입니다. 존경해요, 교수님!"

"예비 1년 차들이면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들 생각해 봐."

여전히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

백의신 교수는 술을 꽤 마셨지만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름 사회성에 자신이 있는 신상미는, 자신의 싹싹한 목소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공손 모드가 되었다.

"어휴, 다시 생각해 보기는요.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우리는 앞서 모두가 했던 것처럼 술잔을 받았다.

그때, 백의신 교수의 손에서 술병이 미끄러졌다.

챙그랑!

상 위로 떨어지더니, 바닥으로 굴러가 깨져 버린다.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나자 모두들 놀라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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