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4)
레지던트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의사 가운을 걸치지도 않은 남자가, 환자의 몸 속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백의신이라는 것에 한 번 더 깜짝 놀란다.
"백 교수님. 어떻게……?"
그중에서 송유주의 표정이 가장 눈에 띈다.
항상 무표정이던 사람이 저렇게까지 놀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반갑다는 인사 대신, 백의신은 송유주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뭐 하다 이제 쳐 왔어?"
"수술 끝나고 바로 뛰어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
송유주는 뒷말을 아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띠잉-
어느새 중환자용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백의신은 환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도 몸을 실으려는 찰나.
"너희는 계단으로 뛰어와. 여기 엘리베이터 좁은 거 안 보여?!"
엘리베이터에는 송유주와 백의신, 그리고 담당 간호사가 탄 채 문이 닫힌다.
타닥-
나와 신상미는 군말 없이 바로 계단으로 뛰어가 3층으로 달려갔다.
우리 옆에는 덩치가 커서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한 마동섭 선생님도 함께 달리고 있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진짜 백의신 교수님 맞아요?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신상미는 호들갑을 떨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일어난 일들이 믿기지 않았으니까.
"그래. 백 교수님 돌아오신 것 같다."
마동섭의 짧은 대답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물을 시간이 없다.
우리는 3층 철문을 열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곳으로 향했다.
환자가 타고 있던 베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수술방 입구로 향하는 중이었다.
곧 마동섭이 다가가 정중히 말했다.
"교수님, 제가 대신 할까요? 장갑 끼고 오겠습니다."
"너 지금 이 안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 눈에 그릴 수 있어?"
"……."
마동섭은 입을 다문다.
그가 백의신을 접했던 것은 인턴과 1년 차 극초반.
백의신의 눈에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 레지던트로 보일 것이 자명했다.
마동섭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그를 따라서 발걸음만을 움직일 따름이다.
"집도의 누구야? 이 환자는 무조건 살려야 하는 환자야!"
지금 백의신은 펄펄 끓어오르는 활화산 같았다.
여전히 그가 손을 환자의 가슴에 넣은 채, 환자는 수술방으로 이동된다.
나는 백의신을 따라 수술실 안까지 들어갔다.
수술방 안에는 마취과 선생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투베이션 되어 있으니까, 바로 벤트 걸게요!"
"라인 어디 어디 있죠?"
그렇게 수술 준비가 바쁘게 진행된다.
잠시 후.
지잉-
수술방 문이 열린다.
흉부외과 폐식도 파트, 한상기 교수.
별명이 탈곡기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이 거칠거칠한 그는, 수술실로 들어오자마자 놀라 외쳤다.
"뭐야, 누가 수술복도 안 입고 환자 몸에 손대고 있어?"
"나다 이 새끼야."
"……?"
한상기 교수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방금 잘못 들은 건가?
이 방에서 나를 저렇게 부를 사람이 없을 텐데?
그의 의아한 표정은 곧 놀라움으로 바뀐다.
"백 교수님?"
"빨리 안 튀어올래?"
"아니…… 근무 시작하는 건 다음 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쌉소리 하지 말고, 이 환자 infection(감염) 때문에 pulmonary artery stump(폐동맥 절단면) 녹은 것 같아. 내가 일단은 잡고 있는데 수술 쉽지 않을 수 있겠어."
"아…… 제, 제가 pneumonectomy(전폐 절제술) 하고 엘로저까지 했던 환자예요. 제가 잘 해결해 보겠습니다."
"어레스트 났었고, CPR 10분 안 되게 했으니까, 살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이 환자 죽으면 집도의 책임이야."
"네, 넵!"
세상에.
탈곡기 교수가 저렇게 쩔쩔매는 거 처음 본다.
흡사 고양이 앞에 선 쥐랄까?
아마 이 방에 있는 모두가 탈곡기 교수님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볼 것이다.
"워낙 급해서 일단 스텀프 손으로 잡았고, 에이셉틱(aseptic, 무균) 하게 할 새는 없었어. 그래도 환자 죽는 것보단 낫잖아?"
"무, 물론이죠."
"이제 한 선생이 알아서 잘해."
"네!"
마취과 쪽 준비가 끝나자, 백의신은 슬며시 손을 놓아 본다.
역시나 손을 놓자마자 환자의 혈압은 떨어졌지만, 마취과가 바이탈을 겨우 유지시키면서 수술은 시작될 수 있었다.
"정재성 환자 Bleeding control op. (지혈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한상기 교수가 집도하는 수술이 시작되었고, 환자를 수술실까지 이송했던 우리는 모두 바깥으로 나왔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소화가 안 된다.
겨우 한숨 돌리려는 때, 먼저 나와 있던 백의신이 나를 노려보았다.
"넌 뭐 하는 새끼야?"
"예?"
"정신 놨어?"
파악!
그는 나를 향해 장갑을 벗어던졌다.
시뻘겋게 피가 묻어 있는 장갑이 내 발치에 툭 하고 부딪혀 떨어졌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너는 흉부외과 의사라는 게 거기서 멀뚱히 CPR 하는 걸 보고만 있어?!"
눈썹을 곤두세운 백의신의 벼락같은 호통에 정신이 멍해진다.
아까 응급실에서 대처가 늦었던 것을 질책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멀뚱히 보고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백의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판단에 확신이 없어 잠시 망설였던 것은 사실이기에,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들 숨죽여 눈치를 보는 가운데, 송유주가 중재하듯 끼어들었다.
"백 교수님."
"저거 아직 인턴이지?"
"예, 이제 1년 차 될 아이입니다."
"다행이네. 아직 발 뺄 시간 있으니까."
백의신은 손을 탁탁 털고 복도로 나가던 도중,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따위로 어버버 할 거면 TS 오지 말라 그래. 좀 기대했더니 엉망이야."
지잉-
백의신은 그 말을 남긴 채 문 바깥으로 사라졌다.
……처음이다. 이렇게 강하게 질책받은 것은.
작년 한 해, 비교적 성공적인 인턴 생활을 보냈다.
교수님들에게도 ‘잘한다’, ‘제법이다’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그 증거처럼 <올해의 인턴> 상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백의신 교수의 기준에는 내 첫인상이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한아, 괜찮냐?"
곧 마동섭이 슬며시 다가와 나를 달랬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백 교수님 장갑만 끼면 무섭기로 유명했었거든. 나도 실습 때 몇 번 레지던트 선생님들 혼나는 거 봤는데…… 아유, 생각도 하기 싫다."
내 기분이 상했을까 봐 걱정하는 투였다.
그런데, 나의 반응은 그가 우려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백 교수님이 방금 하셨던 말, 혹시 저를 알고 계시는 걸까요?"
"응?"
분명 백의신 교수는 방금 그렇게 말했다.
<좀 기대했더니 엉망이야>라고.
그 말은 즉, 나의 존재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맞죠?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겠죠?"
내 반응에 마동섭과 송유주는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어떻게 혼나고도 그런 표정이냐? 너 백 교수님 덕후라더니 진짜인가 보네."
"중증이다, 중증이야."
이미 그들이 하는 말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게 성공한 덕후인가 하는 그건가?
뒤늦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1월이 끝나 갈 무렵, 드디어 만났다.
백의신 교수.
물론 생각했던 성격과는 조금 다른 듯했지만…….
내가 흉부외과 의사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문턱이겠지.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언젠가는 인정받고 싶은 도전욕이 치솟았다.
* * *
그날 밤.
연국대병원은 시끌시끌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이미 병원에 소문이 자자했다.
심지어 응급실에 있던 보호자 중 한 명이 동영상을 찍어서 기사까지 난 모양이다.
[단독] 백의신, 응급실에 깜짝 등장…… 연국대병원의 왕의 귀환?
<왕>이라…….
마치 류명인이 쓸 법한 과장된 표현이군.
하지만 그것이 백의신이라면 결코 과장이 아니게 된다.
한동안 잠잠했던 언론들은 다시 백의신의 등장에 뜨거운 관심을 기울이며 후속 기사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야, 백의신 교수님 파워가 대단하긴 하네. 지금 뉴스 1면에 너튜브 실시간 급상승에 난리 났어."
"대박."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한동안 시끌시끌했던 적 있지 않았냐? 그때도 막 뉴스 뜨고……."
"야, 파워가 다르지. 선한이는 인턴이었지만 백의신 교수님은 전국민 스타라고."
"그런데 선한이 쟤는 상태가 왜 저래?"
"몰라."
휴게실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동기들이 나를 의아한 눈으로 힐긋 쳐다본다.
머엉~
나는 쭉 이런 상태였다.
아까의 여운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었다.
-줄곧 롤모델로 삼아 오던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기분을 서술하시오. (주관식, 4점).
그렇게 내가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동기들은 계속 수다에 열중했다.
"아무튼 진짜 등장부터 화려하네. TV에서만 보던 백의신 교수님 앞으로는 실제로 볼 수 있는 거 아냐?"
"야, 야! 좋아할 일이 아니야. 흉부외과에서 일하는 사람들 앞으로 죽어 나갈 거라던데?"
"왜?"
"나야 잘 모르지. 되게 빡센가 봐."
그때 연국대병원의 정보통, 중원이 형이 오랜만에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17번 방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17번 방이요?"
"옛날에 백의신 교수님이 주로 수술하시던 방이 17번방 이었거든."
슬픈 전설?
나는 쫑긋 귀를 기울였다.
중원이 형이 손에 든 과자를 씹으며 말을 이었다.
"레지던트들 하도 털려서, 눈물 찔끔 빼는 걸로 유명했는데. 실제로 눈물이 수술 필드 위로 막 떨어지니까, 그거를 소방으로 덮느라 힘들었대."
"대박."
"에이, 그건 너무 과장 아녜요?"
"진짜라니까! 한 달에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던데? 그래서 슬픈 이야기가 많다고 오래 일했던 수술방 간호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
아마 중원이 형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아까 잠깐 경험해 본 것으로도 백의신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중원이 형은 낄낄대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뭐, 아무튼 흉부외과에서 유명인사 둘이 만나게 됐네. 잘해 봐라."
"제가요? 비교도 안 되죠."
"야, 너도 인지도로는 만만치 않아. 요새는 너 따라하는 개그맨도 있잖아."
"아, 그거요?"
나는 얼굴을 붉혔다.
이건 최근에 안 사실이었다.
작년 강남역 사건 이후,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를 패러디한 코너까지 생겼다고 한다.
"크크, 나도 그거 봤어. 웃기더라."
"오랜만에 틀어 볼까?"
"그럽시다!"
"안 보면 안 될까……?"
나는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든 말든, 동기들은 스마트폰으로 개그프로그램 클립을 틀었다.
대충 흐름은 이렇다.
A라는 개그맨이 썰렁한 개그를 친다.
그러면 B라는 개그맨이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지며 응급상황을 연출한다.
이유는 ‘너무 개그가 재미가 없어서’.
<큰일이야! 이대로라면 너무 재미가 없어서 노잼사하고 말 거야!>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C라는 개그맨이 배경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다들 비키세요! 의사입니다!>
심지어 옷도 그때의 나랑 똑같이 입었다.
그리고 나서, 쓰러진 사람을 소생시키기 위해 개그를 한다.
거기에서 관객들이 웃어 주면 성공이고, 만약 실패하면 옆에 같이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다.
<큰일이야! 의사도 노잼으로 드러누웠어!>
"푸하하!"
"야, 이건 다시 봐도 웃긴다."
"의사 역할 말투 선한이랑 똑같애!"
이제 내가 강남역에서 등장하는 장면은 일종의 밈(meme, 유행하는 문화복제현상)이 되고 만 것이다.
"으, 난 못 보겠다."
나는 얼른 휴게실에서 탈출했다.
지이잉-
막 숙소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얼른 전화를 받으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흉부외과 신선한입……."
<자기야 오랜만이야!>
홍보팀장님이다.
이 병원에서 나를 저렇게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나한테 또 무슨 일일까?
왠지 벌써부터 무언가를 꾸미는 듯한 수상한 기운이 스멀스멀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