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200화 (200/241)

#200 매의 눈, 여인의 손, 사자의 심장(3)

띠잉!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한다.

나는 응급실 소생실을 향해 달려갔다.

신상미 역시 나보다 뒤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다.

‘마동섭, 송유주 선생님은 수술방일 거 같은데…… 안경식 선생님이 먼저 와 계시려나?’

탁탁탁!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이미 응급실 소생실은 응급의학과 의사들과 간호사들로 부산스러웠다.

"여기 라인 하나 더 잡았어요!"

"거기로 플라스마 솔루션(plasma solution, 수액의 한 종류) 풀 드립!"

급한 목소리로 대화가 오가고 있다.

CPR 방송을 듣고 달려온 인턴 몇몇이 가슴 압박을 하는 것도 사람들 사이로 보였다.

소생실 입구의 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우리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아직 인턴 티를 벗지 못한 우리를 흉부외과라고 인식하는 간호사들은 없어 보였다.

"어, 왔나?"

소생실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를 알아본 여봉철 선생이 퍼뜩 고개를 들며 반긴다.

표정을 보아하니, 흉부외과에서 지원군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곧 내 어깨 너머를 살펴보면서 걱정스럽게 묻는다.

"선한이 니 혼자 온 기가?"

"저도 있는데요!"

뒤이어 달려온 신상미가 내 뒤에서 헥헥대며 말했다.

물론 그래 봤자 큰 위안은 안 되겠지.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예비 1년 차만 두 명이니 여봉철 선생이 불안하게 느낄 만도 하다.

"다른 선생님들도 곧 오실 거예요. 환자는요?"

내 말에 여봉철은 빠르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뉴모넥토미(pneumonectomy, 전폐절제술) 받은 지 3달 정도 됐고, BPF(기관지흉막루)로 엘로저 받은 지 이제 2주 좀 안 됐을 끼야. 피버(fever) 주소로 왔는데 갑자기 어레스트 났고, 여기 수술 부위에서 피가 좀 흐르는 것 같은데……."

엘로저라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물론 지난 6월 흉부외과 렁(lung, 폐) 파트 인턴을 돌 때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었다.

엘로저 수술을 받았던 환자.

동굴 같은 구멍으로 롤거즈(roll gauze, 두루마리 휴지처럼 구성된 거즈)를 밀어 넣었다 꺼내는 드레싱을 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엘로저라구요? 어디 한번 보…… 히익, 저게 뭐야?"

아직 렁 파트에서 일해 본 적이 없는 신상미는 아예 대놓고 놀란다.

이런 환자를 처음 보는 모양이다.

물론 이해는 간다.

나도 처음 봤을 때, 사람 몸 안으로 끝없이 들어가는 롤거즈를 보고 놀랐으니까.

‘그때 나도 저 안쪽으로 거즈를 밀어 넣는 게 무서웠는데…… 잠깐,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야!’

나는 급하게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출혈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BPF와 엘로저 수술. 저 흉강 안쪽이 감염되어 있다는 이야기일 텐데, 피가 난다는 건?’

내가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사이, 여봉철은 CPR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다시 2분 지났으니까, 리듬 확인해 볼게요!"

스윽-

인턴이 가슴 압박을 시행하던 손을 잠시 뗀다.

곧 모두가 숨죽이고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는 심장 리듬에 주목한다.

"……."

"선생님, 펄스(pulse, 맥박) 없습니다!"

가슴 압박이 시행된 지 두 번째 사이클.

즉 5분 정도 경과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절박하다.

그사이 많은 수액이 들어가면서 CPR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심장은 반응이 없다.

"일단 컴프레션 다시 해야겠제? 느그들 뭐 생각나는 거 있나?"

여봉철 선생이 우리를 향해 묻는다.

화면에 심장박동이 그려지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

흉부외과 의사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금 이 환자의 상태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아는 흉부외과 의사들밖에 없으니까.

"그, 그게…… 콜록, 콜록!"

신상미는 공연히 기침을 하면서 내 옆구리를 푹 찌른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모여든다.

이 방에 있는 흉부외과 의사를 쳐다보는 응급실 의료진들.

부담감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한다.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출혈이 있다는 건…….’

심장이 멈추는 원인은 다양하다.

이 환자의 경우, 오른쪽 폐를 모두 자른 후 그 공간에 감염이 발생한 상태.

그리고 그곳에 발생한 출혈로 몸에 혈액이 부족해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감염이 저 안쪽에서 출혈을 일으킨 거야.’

그렇다면 그 출혈을 막고, 부족한 혈액을 보충해 주면 심장이 다시 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일단 출혈 부위를 막고 수액을 공급해 줘야 해. 그런데 어떻게?’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곡담에서 시행했던 EDT(응급 개흉).

출혈 부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그 부위를 노출시키면서, 심장을 직접 마사지(internal cardiac massage)를 한 적이 있었지.

마침 환자는 출혈이 있는 오른쪽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이미 개흉이 되어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저 뚫려 있는 구멍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론상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될까?

저 미지의 동굴 속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다 보니 쉽게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내가 아직 대답을 내뱉지 못하는 사이, 여봉철이 외친다.

"PEA(pulseless electrical activity, 무맥성 전기활동, 심정지 사인)니까, 일단 에피(epinephrine, 강심제) 주고 다시 컴프레션 합시다!"

여봉철의 말과 동시에 간호사는 에피네프린을 투입하고, 인턴은 다시 가슴 압박을 시작하려 한다.

"선생님, 잠시만요!"

"와, 뭐 할라꼬?"

나는 장갑을 끼면서 환자의 오른쪽 가슴에 있는 구멍에 다가갔다.

여봉철 선생님이 지휘하던 상황에 끼어들려 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큰 목소리가 울렸다.

"다들 뭐 하는 거야!!"

우뚝-

모두들 얼어붙었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운 목소리.

모두들 하던 행동을 멈추었고, 나 역시 장갑을 끼우려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목소리는…….

‘백의신?’

분명, 백의신이었다.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수십 번이나 돌려 본 다큐멘터리 속 목소리와 똑같았으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희끗한 백발.

호리호리한 체형 위에 입은 평상복.

건조한 표정 위로 형형하고 사나운 눈빛.

다큐멘터리에서 봤었던 그의 얼굴보다 조금 늙어 보였지만, 틀림없이 그가 맞았다.

"저기요 아저씨, 소생실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 엇?"

여봉철은 의사복을 입지 않은 백의신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곧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백의신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없을 테니까.

하물며 연국대병원 의사들이라면 더더욱 모를 리가 없었다.

"배, 백의신 교수님?"

"비켜 봐!"

파악!

백의신이 여봉철을 밀치고 환자 앞으로 다가왔다.

여봉철이 작은 체구도 아닌데 휘청하고 밀려나는 모습이 놀라웠다.

"여기 TS 없는 거야? 왜 아무도 디씨젼(decision, 결정)을 못 내리고 있어?!"

백의신이 우리를 꾸짖듯 소리쳤다.

이어지는 그의 행동은 망설임이 없었다.

팔을 걷고 오른손에 장갑을 끼더니, 환자의 오른쪽 가슴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손을 쑥 넣는다.

"……?!"

모두의 눈이 커졌다.

저래도 되나?

너무 과감한 거 아냐?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놀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방금 전 생각했던 것처럼, 심장을 직접 건드리려 하는 것이다.

"이 환자가 이렇게 어레스트 날 가능성은 이거밖에 없어."

백의신이 말했다.

그의 팔근육이 움찔댄다.

엘로저 수술이 시행된 창(window, 창)으로 들어간 그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됐어."

잠시 후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백의신의 한마디에, 나는 알 수 있었다.

‘벌써 출혈 부위를 잡은 거야!’

믿을 수 없었다.

환자 파악부터 의사 결정, 출혈을 잡는 데까지 도합 20초는 걸렸을까?

이 사람은 수술이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감염 때문에 출혈이 발생한다면 어디서 피가 터져 나올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지켜보던 여봉철과 응급실 의료진은 아직도 얼음처럼 얼어 있다.

"뭣들 하고 있어? 블리딩 포커스(bleeding focus, 출혈 부위) 잡았으니까……."

백의신은 나와 신상미 쪽을 스윽 쳐다보더니 버럭 외친다.

"야 이 새끼들아, 너희 TS랍시고 여기 온 거 아니야? 컴프레션 해! 너는 수술방 당장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하고!"

"예…… 예!"

그의 말에 압도된 사람들이 비로소 다시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얼른 환자의 가슴을 압박했다.

퍽, 퍽, 퍽-

지금 환자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은 두 명.

나와 백의신 교수다.

백의신은 환자의 오른쪽 가슴 구멍으로 손을 넣어 출혈 부위를 막고 있다.

그리고 나는 반대쪽에서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다.

한편, 이제야 정신을 차린 여봉철과 응급실 의료진은 수액을 밀어 붓고 약을 준비한다.

신상미는 전화기를 들고 수술방을 어레인지한다.

‘언젠가는 만날 줄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백의신 교수를 만나게 되다니.’

퍽, 퍽-

나는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며 생각했다.

대체 백 교수님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설마 복귀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던 걸까?

물론 더 이상 깊게 생각하거나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지금은 환자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니까.

나는 정확한 리듬에 맞추어 환자의 가슴을 압박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급히 뛰어오느라 내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환자를 향해 뚝뚝 떨어졌다.

"감염 때문에 pulmonary artery stump(수술할 때 폐동맥을 잘랐던 부위)가 터진 거야. 볼륨 따라 들어가면서 수술만 잘하면 살릴 수 있어!"

백의신이 모두를 향해 확신을 심어 주듯 소리쳤다.

놀랍게도, 말의 힘은 대단했다.

백의신의 한마디에 모두의 눈빛이 달라졌다.

때마침 도착한 RBC(적혈구 수혈 제제)가 환자에게 투입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던 환자에게, 백의신의 손가락이 밑을 메꿔 주니 환자의 부족했던 혈액이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2분이 지난다.

"2분 됐습니다, 펄스 체크 하겠습니다!"

여봉철이 외쳤고, 나는 잠시 손을 환자에게서 떼었다.

"……!"

모두가 숨을 삼켰다.

비록 미약하지만, 모니터에서 동맥압의 파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장 리듬도 조금씩 정상 모양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절망적이었던 조금 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놀랄 만한 변화였다.

"여기 에피(epinephrine, 강심제) 한 번 더 주고, RBC 더 가져와!"

"넵!"

백의신의 말에 여봉철은 어느 때보다 빠릿빠릿한 움직임으로 대응한다.

조금 전에 백의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던 사람은 어디 갔나 싶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넌 컴프레션 좀만 더 해라."

"예!"

나는 백의신의 말을 따라서 가슴 압박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1분 후.

나는 백의신의 손짓에 따라 컴프레션을 멈추고 모니터를 올려다 보았다.

수축기 혈압이 80대까지 측정된다.

"당장 수술방으로 옮겨!"

백의신이 진두지휘하는 CPR.

이제는 누구도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우리는 환자와 함께 달렸다.

"앞에 비켜 주세요!"

드르륵-

스트레처 카가 복도를 미끄러진다.

달리는 와중에도 여전히 백의신의 손은 환자의 몸 속에 들어간 채였다.

환자와 백의신의 옷은 이미 시뻘건 피로 얼룩져 있었고, 사람들이 놀라서 흩어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때.

"백 교수님?!"

뒤늦게 달려오던 송유주, 마동섭이 우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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