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97화 (197/241)
  • #197 쫓고 쫓기는 게 우리 인생(4)

    가끔 생각한다.

    어떤 기억들은 평생 아물지 않는다고.

    엄마와 함께한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상처를 건드리는 것처럼 마음이 저릿하게 아프다.

    그 시간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딸, 아들, 일어나!"

    나는 아침을 깨우던 엄마의 목소리, 이불의 포근한 냄새까지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엄마 5분만……."

    "5분이 10분 되고 20분 되는 거야. 얼른!"

    파악!

    엄마는 이불을 들췄다.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는 것이 우리 집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 정말. 이불 좀!"

    "그러니까 한 번 말할 때 일어나야지."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항상 분주한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을 꼽으라면 우리 엄마는 꼭 들어가지 않았을까?

    나와 누나들은 잠에서 막 깨어난 채 엄마의 닦달에 못 이겨 거실로 기어 나오곤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고3이라 잠이 부족했던 첫째 누나.

    "아, 아침 안 먹는다고."

    사춘기를 정면으로 맞아 까칠했던 둘째 누나.

    "엄마, 이제 노크 좀 해 줘요…… 제발."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막내인 나까지.

    3남매가 삐죽삐죽 산발 머리를 한 채 아기 새처럼 식탁에 앉으면, 곧 엄마의 밥상이 차려졌다.

    철없던 어린 시절.

    당시엔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얼른 먹고 학교 갈 준비들 해."

    "네~"

    "잘 먹었습니다!"

    "야, 신선한. 화장실 먼저 쓰면 죽는다!"

    "너희들 아침밥부터 먹고 씻으라니깐!"

    "저는 다 먹었어요!"

    좁은 집에서 아침마다 난리 통이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 엄마는 기어코 우리를 다시 앉혀 몇 숟가락을 더 뜨게 했다.

    하루, 또 하루.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흔하디흔한 날들이었다.

    * * *

    "엄마, 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어느 겨울날 학교로 가기 전, 나는 신발 끈을 묶으며 물었다.

    "갖고 싶은 거?"

    "내일 엄마 생일이잖아."

    "어? 정말?"

    앞치마 차림으로 우리를 배웅하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달력을 쳐다보았다.

    "정말이네. 어쩐지 너희 아빠도 나갈 때 은근슬쩍 비슷한 거 물어보더만."

    "미역국은 누나들이 한다니까 난 다른 거 해 주려고……."

    "미역국?"

    "아차."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뒤늦게 입을 틀어막았고 누나들은 나를 쏘아보았다.

    "동생, 입단속!"

    "아 진짜 신선한! 비밀이었는데 그걸 말하면 어떡하냐?"

    따악!

    둘째 누나가 구둣주걱으로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파!

    그런 우리들의 살가운(?) 모습을 보며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우리 딸, 아들이 미역국도 끓일 줄 알아?"

    "선혜 언니랑 밤에 끓여 줄라 그랬지. 인터넷 찾아보니 쉽더만."

    "됐어. 그 시간에 너희 할 일이나 해."

    엄마는 늘 그랬다.

    넘치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 썼고, 정작 본인을 챙기는 데는 서툴렀다.

    "엄마 작년에도 미역국 패스했잖아. 재작년에는 아빠가 끓이다가 다 태워 먹었고……."

    "내년부터 해 줘. 선혜 대학 들어가고 나서. 엄마는 괜찮아."

    늘 듣던 말이었다.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우리는 완강히 고집을 피웠고, 그러자 엄마는 마지못해 말했다.

    "으이구, 알았어. 엄마가 미역국 끓여 놓을게."

    "그걸 왜 엄마가 하냐고. 우리가 끓여 준다니까?"

    "누가 하든 어때? 맛만 좋으면 됐지."

    어쨌거나 우리는 엄마와의 언쟁에서 이겨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시간도 없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길 미끄러워, 조심해!"

    엄마는 늘 대화의 마지막 문장을 걱정으로 종결짓곤 했다.

    나는 걱정 말라는 듯 엄마에게 손을 마주 흔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애매하게 녹다 만 고드름이 겨울 햇살에 빛났다.

    나는 하얗게 입김을 내뿜으며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고, 곧 엄마와의 대화는 머릿속에서 잊혔다.

    중학교 1학년.

    내가 아직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 * *

    "뭐? 엄마가 계단에서 넘어지셨다고?"

    그날 저녁.

    중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해가 다 지고 난 뒤에야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누나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다.

    장을 보고 오는 길에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근처 정형외과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였다.

    "후문 계단 길?"

    "응, 미역 사러 가다 넘어졌대. 속상해 죽겠어."

    "길 얼어 있는 거 알면서, 우리 걱정하기 전에 자기나 조심하지 좀!"

    둘째 누나는 버럭 짜증을 냈다.

    나도 공연히 화가 났다.

    나 때문인가?

    괜히 미역국 얘기를 꺼내서 엄마가 장을 보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다른 데 다친 데는 없어? 다리 부러지면 목발 짚고 다녀야 되는 건가? 얼마나? 입원까지 해야 된대?"

    우리는 큰누나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내일 오후에 수술받으실 거야. 선한이 너는 내가 밥 차려 줄 테니까 그 핑계로 땡땡이칠 생각 하지 말고! 학교 끝나고 학원 갔다가 병원으로 와, 알겠지?"

    고등학생이었던 누나는 나를 타일렀다.

    나는 당시 막 개통했던 내 핸드폰으로 병원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괜찮아?"

    <응, 아들~ 엄마 괜찮아!>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밝았다.

    비로소 약간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밝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많이 아파?"

    <아프긴. 그냥 뭐…….>

    엄마는 수화기 너머에서 살포시 웃었다.

    경비골 골절(Tibia/fibula fracture).

    아프지 않을 리 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암튼 냉장고 두 번째 칸에 밑반찬들 있으니까, 그거 꺼내 먹고. 냉동실에 떡갈비 있으니까, 그거 전자레인지에 3분 돌려서 먹어, 알겠지?>

    "……내일 수술받아야 한대?"

    <옆에 아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일 아침도 계란프라이랑 밑반찬들로 꼭 먹고 가고! 알겠지?>

    엄마와의 대화가 늘 그렇듯, 도돌이표 혹은 깔대기형 대화가 이어졌다.

    "응, 선도 누나한테 들었어. 알아서 잘 해 먹을게! 내일 학교 끝나고 갈게, 엄마."

    <너, 내일 체육복 입어야 된다고 해서, 내가 베란다에 널어놓았는데. 선혜한테 챙기라고 했거든? 꼭 챙겨 가고.>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내 걱정만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빠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이고, 아들도 다 컸소. 알아서 잘할 거니 잘 준비나 해요, 여보.>

    그러더니 핸드폰을 넘겨받고, 아버지가 이야기하신다.

    <아들, 내일 학원 끝나고 여기 현민병원 한번 들러, 엄마가 아들 보구 싶은갑다.>

    "알았어요. 아빠가 간호 잘해 줘요, 내일 갈게요."

    그러더니 엄마가 또 전화기를 건네받는다.

    <잘 때 전기장판 틀고 자는 거 잊지 말고!>

    "아이고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합시다. 추우면 알아서 켜고 자요. 내일 갈 테니까 내일 봐요, 엄마!"

    툭―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대로라면 밤새도록 잔소리가 이어질 것 같아서였다.

    끊고 나서는 조금 후회했다.

    잔소리 듣는다고 툴툴대지 말고, 애정 표현이라도 해 드릴 걸 그랬나.

    ‘……뭐, 내일 하면 되겠지.’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해야만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은, 그저 기분 탓이라 생각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엄마의 생일.

    오전 11시, 엄마는 수술방에 들어갔다.

    현민병원은 정형외과 수술을 많이 하는 것으로 동네에서 유명한 병원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대학병원에는 한참 모자라는 크기.

    하지만 당시에는 골절이 있으면 모두가 찾아가는 그런 병원이었다.

    하반신 척추마취를 하고 시작된 수술은 3시간이 가까이 걸려 끝이 났다.

    [선한] 아빠, 엄마 수술 잘 끝났어요?

    나는 수업이 끝나 갈 무렵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날따라 유난히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빠] 응, 수술 잘 끝나고 병동으로 방금 올라왔어.

    엄마는 이때까지만 해도 문제가 없었다.

    병동으로 전실된 이후에 산소수치가 조금 떨어지는 경향이 보여 산소마스크를 해야 했지만, 일반적인 수술 후 코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 걱정 말고 공부 잘하고 와

    [선한] 꽃 사 갈까요?

    [아빠] 웬 꽃?

    [선한] 엄마 꽃 좋아하잖아요

    [아빠] 그려 그러든가

    아빠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지만 표현은 언제나 서툰 사람이었다.

    ‘이따 학원 끝나자마자 꽃 사 가야겠다.’

    나는 안심하고 공부에 열중했다.

    그렇게 내가 학원 수업을 한창 듣고 있을 저녁 7시 반.

    갑자기 사건은 시작되었다.

    "여보, 이제 좀 통증은 줄어들었어? 이거 약 쓰면 자꾸 잠이 온다 하던데. 심호흡 열심히 하라고 했어, 의사 선생님이."

    "……."

    "여보?"

    "……."

    "여보!!"

    아빠가 흔들어 보았지만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의식이 저하되고, 불러도 반응이 없는 상태가 된 엄마.

    "여…… 여기요! 여기 좀 봐주세요!"

    아빠는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는 엄마를 살피기 시작했다.

    통증 자극을 강하게 주자, 눈을 뻐끔하며 떴다 감는 것이 전부였다.

    간호사는 당황하며 혈압을 측정하고 심박수를 체크했다.

    "혈압, 맥박, 호흡수는 정상이신데, 산소포화도가……!"

    이미 산소를 마스크로 투여하고 있음에도 산소수치는 90을 가리켰다.

    간호사는 급히 산소마스크의 산소 용량을 늘리면서 의사를 부른다.

    "204호 환자 의식이 없어요, 당직 선생님 콜해 주세요!"

    보호자와 병동 사람들, 그리고 간호사들까지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의사가 달려왔다.

    그는 급히 환자를 평가하더니,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했다.

    흉부 X―ray와 뇌 CT검사가 응급으로 시행되었다.

    머리 CT에서는 크게 이상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고, 흉부 영상에서는 양측에 물이 조금 찬 소견이 관찰된다.

    젊은 당직 정형외과 의사도 난감해했고, 원인을 찾지 못한 그는 아빠에게 말했다.

    "큰 병원으로 가셔야겠습니다!"

    현민병원은 이런 중환자를 볼 수 없는 병원이었다.

    대학병원으로 갈 준비가 시작됐지만, 구급차와 서류들을 준비하는 사이 몇 분이 또 흘러갔다.

    그사이, 엄마는 호흡이 더 얕아졌고, 눈이 왼쪽으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보였다.

    강한 자극에도 반응은 없었고, 의식이 더 떨어지는 것이 관찰되었다.

    산소수치 역시 마스크로 최대한의 산소를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87% 정도였다.

    "보호자분, 앞에 타세요!"

    "그쪽 응급실에는 말해 놓았으니까, 서류 이거 보여 주시면 될 거예요!!"

    모두가 급박하게 움직인다.

    삐이잉―

    엄마가 타고 있는 구급차는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급하게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대학병원에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혈압과 산소수치가 더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바로 기관삽관과 함께 심폐소생술이 한동안 시행되었다.

    * * *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시각이었다.

    왜일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밤에 병원을 방문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정문 안으로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끝도 없는 고요한 어둠 속으로 집어삼켜질 것 같은 기분.

    "……."

    나는 한 손에 엄마가 좋아하던 히아신스 꽃 화분을 끌어안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었다.

    "선한아."

    중환자실 앞 복도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빠의 그런 얼굴은 처음 봤다.

    마치 하루 사이에 십 년은 늙어 버린 것 같았다.

    그 옆에서 누나들은 얼굴을 감싼 채 앉아 있었다.

    "……엄마는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물어보았다.

    모든 일이 어제 아침처럼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듯이.

    하지만 가족들의 표정을 보고, 나는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빠도.

    첫째 누나도.

    둘째 누나도.

    모두 내게 상황을 설명할 기력 없이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선한아……."

    "큰누나까지 왜 이래. 장난치지 마."

    나는 일어나 내 손을 잡으려는 누나를 뿌리쳤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발밑이 푹 꺼져 한없이 깊은 곳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의사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

    머리가 희끗했던 의사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저희 엄마 괜찮죠?"

    물어도 대답이 없다.

    "제가 어제 엄마랑 통화도 했는데요."

    내 목소리가 스스로에게도 잘 들리지 않았다.

    "분명 괜찮다고 했단 말이에요. 엄마가 괜찮다고 했는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나를 외면하는 의사 선생님의 가운 자락을 붙잡았다.

    "선생님. 아니잖아요. 다리 좀 부러졌다고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잘, 잘못되고, 그런 거 아니잖아요."

    숨이 잘 안 쉬어진다.

    목에서 자꾸만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둘째 누나가 울부짖으며 주저앉는 순간, 나는 비로소 모든 것을 눈치챘다.

    큰누나가 나를 끌어안았고, 나는 숨을 쥐어짜 내 의사에게 달려들며 울었다.

    "선생님, 이거 아니잖아요. 우리 엄마 어떻게 된 거예요, 선생님……!"

    엄마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고, 면회를 가도 대화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후 머리 MRI검사를 포함한 각종 검사가 시행되었지만, 엄마의 의식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일상의 행복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우리가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 줄 수 있는 기회도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중학교 1학년.

    내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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