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93화 (193/241)

#193 흉부외과의 신선한(10)

마동섭의 숨이 거칠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환자의 바이탈 사인과 흉부 X―ray 영상을 힐긋 보고 상황을 판단한 듯했다.

"베큠(VAC) 드레싱 하고 있어서 전화 못 받았다. 블리딩(bleeding) 때문에 탐폰(tamponade) 걸린 건가?"

"네, 맞는 것 같아요!"

"나와 봐! 내가 할게!"

마동섭은 안경식에게 와이어 커터를 이어받고, 흉골에 박혀 있는 철사 와이어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툭―

툭―

마동섭 특유의 완력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끊어 낸다.

역시 치프 레지던트답게 속도도 빠르다.

"이 판단 누가 내린 거야?"

"……선한 쌤이 의견을 냈고, 제가 하자고 했습니다."

안경식 선생의 대답.

마동섭 선생은 별다른 말 없이, 우리의 판단을 믿고 작업을 계속했다.

"안경, 너 반대편 건너가고. 여기 벌릴 거 주세요!"

마동섭은 리트랙터를 건네받고, 힘을 주어 흉골을 다시 벌리기 시작했다.

드르륵―

환자의 가슴이 열린다.

생명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던 주범들이 눈으로 확인되려 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개흉을 했으니 미래는 달라졌어. 환자를 구하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해!’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흉부외과 의사 3명이 모이니 상황은 달라졌다.

치프 마동섭, 안경식 그리고 나의 조합.

여기 아이씨유 7번 베드의 수술은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었다.

"에피 볼루스(bolous, 한 번에 투입)도 한 번 더 주세요!"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혈압을 인식한 마동섭이 외친다.

그리고 동시에 리트랙터로 계속 흉골을 벌렸다.

드르륵―

시계 방향으로 손잡이를 돌리자 조금씩 흉골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다시 열린 흉골의 단면에서는 피가 흘러내린다.

그렇게 손잡이를 몇 바퀴 돌리자 김덕상 환자의 가슴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

내가 스터넘을 열고 바라보았던 흉강과는 전혀 다른 내부가 보였다.

오늘 오전 처음 열린 가슴은 깔끔하게 제자리에 있을 것들이 있는 정돈된 형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X―ray로 예상했던 것보다 헤마토마(hematoma, 혈종)가 훨씬 많은데?’

그중 일부는 아직 완전히 굳지 않은 선지의 모양으로 심장 근처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게다가 환자는 케비지(CABG, 관상동맥 우회술)를 받은 후의 환자.

피딱지들 사이사이로 혈관우회술에 사용된 내흉동맥과 대복재정맥이 구름 속에 가려져 있는 용처럼 그 모습을 살짝만 보여 주고 있었다.

"석션 파워 좀 올려 주세요!"

치익―

마동섭이 거즈와 석션을 사용해서 심장 근처의 혈종들을 걷어 내기 시작한다.

수술 부위를 혹시라도 망가트릴까 봐, 그 손놀림이 매우 조심스럽다.

‘만약 여기에다가 대고 가슴 압박을 힘껏 했다면…….’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아주 얇은 실로 꿰매어져 있는 환자의 혈관들은 십중팔구 망가졌을 것이다.

"안경, 출혈 있고 탐폰인 거 알고 나서 바로 연 거야? 컴프레션 안 하고?"

"예. 수술방도 어레인지 해 놨어요!"

"그래, 잘했다."

마동섭이 짧게 칭찬했다.

스윽―

혈종을 걷어 내자, 용처럼 꿈틀대는 내흉동맥과 대복재정맥이 더 자세히 보인다.

또한, 혈관의 문합 부위에 있는 실과 매듭까지 그 모습을 조금씩 드러낸다.

그가 석션으로 조심스럽게 심장 주변 구석구석 혈종들을 들어내자, 바이탈 사인(vital sign, 활력 징후)도 변화한다.

"혈압 70 후반대까지 올랐어요!"

그는 힐끗 바이탈 사인이 체크되고 있는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더니, 다시 필드에 집중한다.

어느 정도 혈종들을 걷어 낸 뒤, 흉강 속에 들어가 있는 체스트 튜브를 꺾어 필드 바깥 방향을 향해서 켈리로 잡아 둔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디서 피가 나는 건지 찾아보자!"

"예."

그는 여기저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바로 앞의 안경식은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왔다.

나 역시 집중해서 구석구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예비 1년 차이기 때문일까?

내 눈에 수술 필드는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출혈 부위가 어딘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쉽지 않은데……."

마동섭도 눈살을 찌푸린다.

금방 찾아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 순간에도 심장 주위에는 계속해서 피가 쌓여만 가고, 아직 모두 제거되지 못한 혈종은 저 아래까지도 보인다.

지잉―

그때, 아이씨유 문이 열리고 수술방에서 나온 수술 간호팀이 도착한다.

"어디로 갈까요? 아, 여기구나!"

크고 묵직한 박스를 몇 개 들고 온 것을 보니, 수술장 수술기구를 충분히 준비해서 나온 듯 보인다.

"이쪽에 공간 좀 만들어 주세요!"

하나둘씩, 수술실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중환자실에 모여들고 있다.

빠르게 상이 펴지고, 수술기구들이 튀어나온다.

옆에서 도와주던 중환자실 간호사 차유리의 자리에는, 이제 수술방 너스가 자리 잡는다.

그들은 수술방 전문 간호사들답게 마동섭에게 필요한 수술기구들을 적재적소에 전달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마동섭이 손만 벌리면 알아서 척척 쥐여 주는 모습이 놀랍다.

‘순식간에 안정감이 생겼어.’

스크럽 널스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응급세트에 있던 기구들보다 더 날렵한 기구들을 쥐여 주자, 마동섭의 손끝도 한결 날쌔진다.

슥, 스윽―

그는 혈종들을 마저 제거하고, 거즈를 팩킹해 가면서 출혈 부위의 후보를 좁혀 가고 있다.

그때 아이씨유 문이 열리고, 누군가 허겁지겁 중환자실로 달려 들어온다.

"뭐야, 어레스트 난 거야?!"

드디어 최종 보스.

스페셜리스트의 끝판왕, 김성탁 교수의 등장이다.

이 상황에 대해서 누군가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던 것 같다.

이미 그 외에도, CPR 방송을 듣고 달려온 흉부외과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차트를 보며 담당 간호사와 재빨리 이야기를 나눈 뒤, 그는 상황 파악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잘했다. 아이씨유에서 곧바로 가슴을 열었던 게 아주 좋은 판단이었어."

곧 김성탁 교수가 가우닝을 하고 필드로 들어온다.

비로소 온전한 팀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경식이는 다른 중환자실 환자 좀 챙기고, 바깥에 일 많이 쌓여 있을 테니 그거 해결하고 있어!"

그러고는 나를 가리킨다.

"선한이라 그랬지? 너 옆에서 석션 하고 시키는 것만 하고 있어라, 알겠지?"

"예!"

지금 이 시각.

중환자실 7번 베드는 꿈에서 보았던 수술장 16번 방과 같은 모습이다.

김성탁, 마동섭 그리고 옆에 있는 수술방 너스까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제2보조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지금부터는 보조에 집중하면 돼.’

김성탁 교수의 헤드라이트가 환자의 심장을 가리킨다.

그의 손끝이 심장 구석구석을 만지면서, 혈종들이 모두 걷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출혈 부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야."

교수가 짧게 읊조린다.

내흉동맥을 떼어 낸 근위부(proximal)에서 피가 얇게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고장 난 수도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환자의 혈압은 다시 60 초반대.

"나 올 때까지 잘해 놨네. 수술방까지 갈 것 없이, 여기서 끝내자."

"예, 교수님."

"그리고, 심장이 홀쭉해. 여기 볼륨 좀 더 줘야 해."

김성탁 교수는 환자의 바이탈을 힐끗 보고, 추가 수혈을 주문한다.

그러고는 카스트로비죠 니들홀더 (castroviejo needle holder, 극도로 얇은 실과 바늘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세밀한 니들홀더) 끝에 프롤렌(prolene, 봉합사) 8―0 니들(needle, 바늘)을 잡는다.

마동섭은 한 손으로 리트랙터를 들고 시야를 밝히고, 한 손으로는 김성탁 교수가 들고 있는 실의 뒷부분을 잡는다.

나는 흘러나오는 피를 석션으로 제거하면서, 출혈 부위를 더 잘 보이게 하고 있다.

"……."

김성탁 교수님과 처음으로 손을 맞추는 수술.

이렇게 중환자실에서 응급 수술이 될 줄은 몰랐다.

제2조수의 일은 단순한 업무 같지만 쉽지 않았다.

출혈 부위는 머리 쪽에 가까웠고, 내 앞에 김성탁 교수님과 마동섭 선생님의 손과 머리가 왔다 갔다 하고 있기에, 내 쪽에서의 시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제2조수는 집도의와 제1조수의 수술을 도와주는 역할.

그들이 나의 시야를 가린다고 비켜 달라 할 수는 없다.

‘내 석션 팁 끝이 어디로 가야, 이들의 수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가장 시야를 잘 밝힐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어깨너머로 보았던 수술을 상기하면서 수술 필드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연스럽게 김성탁, 마동섭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의 머리는 맞대어진다.

세 명 모두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

김성탁 교수의 니들 끝이 몇 번 움직이고, 타이를 한다.

"이거 잡아."

"예."

스으윽, 슥삭―

그러자 어느새 출혈 부위에서는 피가 멎는다.

이것이 고수의 손길이겠지.

나는 꼼꼼하게 지혈하는 교수의 손길을 눈에 담아 두었다.

‘상황 종료인가?’

김성탁 교수의 등장과 함께 수술 필드는 빠르게 정리되었다.

그는 출혈 부위를 조절하고 여러 가지 약물 조절을 통해 환자의 바이탈 사인(vital sign)을 정상으로 만든 뒤, 열려 있는 가슴을 직접 봉합하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봉합이 빠르게 완료되었다.

수술실 간호사들이 필드를 정리하는 사이, ICU 간호사들은 어지럽혀져 있는 중환자실을 정리했다.

‘해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환자를 구해 냈다!

물론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환자에게 어떤 대미지가 가해졌는지 알 수 없다.

완벽히 멸균된 상황에서 가슴을 연 것이 아닌 만큼 감염 위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벼랑에서 극적으로 핸들을 틀어 미래를 바꾼 것에 나는 만족했다.

흉부외과 예비 1년 차로서 거두게 된 첫 성과였다.

‘가장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이제 중환자실에서 잘 회복하길 기다리자!’

나는 뿌듯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론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여전히 중환자실은 분주했다.

수술실은 한 명의 환자만을 위한 공간이지만, 중환자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여기도 좀 봐주세요!"

"예, 갈게요!"

중환자실의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안경식의 얼굴은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 * *

안경식.

그는 원래 흉부외과 지망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었던 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성형외과에 지원했지만, 뜻밖의 인턴점수인 C를 받고 탈락하고 만 안경식.

그는 군대를 갈 것이냐 2차 지원을 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2차 지원이 가능한 과에는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가 있었다.

평소 성실했던 그를 원하는 외과, 비뇨기과 선배들이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흉부외과였다.

대표적인 기피과인 흉부외과 전공의들에게 지원되었던 국가지원금.

넉넉지 못한 그의 집안 사정에 국가지원금은 큰 메리트였고, 좀 더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그는 흉부외과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에이 씨…… 그래, 이렇게 된 거 흉부외과에 뼈를 묻는다!’

안경식은 레지던트 1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에게 탈탈 털리는 게 일상이었다.

서러워서 수술실에 있는 화장실 문을 닫고, 변기 뚜껑을 내린 채, 거기에 앉아서 운 적도 있었다.

교수에게 칭찬을 한 번이라도 받아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경식아."

"아, 교수님."

김덕상 환자가 안정을 찾고, 가슴 봉합이 완료될 즈음.

김성탁 교수가 안경식을 불렀다.

안경식은 공손해졌다.

아이씨유 환자가 나빠졌기에, 어쩌면 주치의로서 질책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잘했다. 아이씨유에서 곧바로 가슴을 열었던 게 아주 좋은 판단이었어."

"……!"

안경식의 눈이 커졌다.

교수님에게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회식 후 뒤풀이 자리 예약할 때 빼고는 처음인 것 같다.

노래방에서 노래 잘 부른다고 칭찬받은 적도 있었지.

병원에서 이렇게 칭찬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짜식, 평소에는 어리바리해서 걱정했더니 이제 좀 TS 2년 차 같네! 네가 환자 살린 거다."

툭툭―

교수는 수술 가운을 벗으면서, 대견하다는 듯 안경식의 어깨를 두드렸다.

매일 혼나기만 하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내가 교수님에게 칭찬을 받다니…….’

하지만, 곧 안경식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고대했던 일인 만큼 기뻐야 하는 게 당연한데, 막상 그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만약 선한 쌤이 없었다면…… 내가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갑자기 부담감이 느껴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1년 차까지는 적당히 묻어갈 수 있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2년 차가 되면서 중환자실 주치의까지 맡게 되자 책임감이 늘어났다.

자신의 순간적인 결정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할 수 있다.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있던 두려움들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나 이 길로 계속 가도 되나?’

두 시간 후.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났었던 중환자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을 찾았다.

새벽 1시의 중환자실은 고요했다.

‘아이고, 힘들어.’

한 명씩 환자들을 살핀 안경식은 당직실로 발을 옮겼다.

터덜터덜―

노곤한 몸을 이끌고 당직실로 향하며, 그는 쌓여 있는 문자들을 확인했다.

"……응?"

그의 스마트폰에는 예상치 못한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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