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92화 (192/241)
  • #192 흉부외과의 신선한(9)

    "200J 차지!"

    차유리 간호사가 외친다.

    쾅―

    다시 한번 안경식은 패들을 쥐고 환자의 가슴에 제세동을 시행한다.

    털썩―

    200J의 충격에 맞추어 환자의 몸도 들썩인다.

    ‘리듬이라도 돌아와야 해!’

    지금 심장 리듬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환자의 가슴을 컴프레션 하여 전신에 혈류를 보내 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내가 보았던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달려왔지만, 달라질 게 없을 수도 있다.

    무언가 시도라도 해 보려면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제발 리듬이라도 돌아와라!’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의 심전도 파형에 집중된다.

    전기충격과 함께 잠시 사라졌던 심전도 파형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 사이너스(sinus, 정상 동리듬) 같은데……?!"

    안경식 선생이 코까지 내려온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한다.

    내 기도가 들렸던 것일까?

    환자의 심장 리듬은 일단 정상 파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찰나, 천장에서는 전체 방송이 울려 펴진다.

    <흉부외과 선생님, 흉부외과 선생님. 심장외과 중환자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CPR 방송이었다.

    중환자실 간호사 누군가가 재빨리 신청했던 모양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반복하여 연국대병원 전체에 울려 퍼진다.

    ‘CPR 방송이 울렸으니, 누구라도 와 줄 거야. 마동섭 선생님도 병원 안에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만 껐을 뿐.

    심장은 여전히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고, 정상 리듬으로 돌아왔지만 언제 다시 심실세동에 빠질지 모른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

    환자의 수축기 혈압은 60에서 70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모니터의 동맥압을 나타내는 파형은 금방이라도 맥없이 누워 버릴 것 같다.

    "에피(epinephrine, 강심제) 0.3으로 올려 주시고. 수술방 당장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안경식이 외친다.

    주치의답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

    곧 간호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의 활력 징후 모니터링 라인들을 침대에 달려 있는 포터블 모니터링 기기로 옮겨 꽂는다.

    환자에게 들어가고 있는 약물들도 침대 옆 폴대로 옮겨진다.

    수술방으로 옮겨지는 동안 인공호흡기 없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산소와 앰부 백이 준비된다.

    수술방 들어갈 준비에 바쁜 와중에, 이번에는 환자의 심박수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한다.

    "선생님, EKG(심전도)가!"

    나는 안경식 선생에게 외쳤다.

    심박수가 느려지고, 이상한 파형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경식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아잇 씨, 미치겠네. PVC가 왜 이렇게 많이 지나가지……?!"

    PVC(premature ventricular contraction), 심실 조기 수축.

    심방―심실의 순서로 뛰던 심장이 심실만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심장이 혈종들에 눌리고 있고, 강심제로 겨우 버티다 보니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느려진 심박수에다가 심실만 제멋대로 뛰다 보니, 환자의 혈압은 다시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50에서 60을 왔다 갔다 한다.

    "안경식 선생님, 이런 리듬과 심박수면 카디악 아웃풋(cardiac output, 심박출량)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잠깐만요, 생각 좀."

    그때, 안경식이 번뜩 눈을 뜨며 외쳤다.

    "그…… 페이싱(pacing) 할 수 있게 페이스 메이커 주세요!"

    이번에 안경식이 내놓은 카드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심장에 인공적으로 자극 펄스를 주기 위해 사용하는 전자장치이다.

    심장 수술이 끝나고 나면, 심방/심실에 페이싱 와이어라 불리는 얇은 선을 붙여 놓고 나오게 된다.

    심장 수술 후 약해진 심장이 느리게 뛸 경우, 이 선을 통해 자극을 주어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기 위해서다.

    "제발……!"

    안경식 선생이 페이스 메이커를 손에 쥐고 설정을 바꾼다.

    티딕―

    곧, 심박수가 느려진 김덕상 환자의 심장에 인위적으로 전기자극이 가해진다.

    그러자 심전도에 스파이크 파형이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빠르게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선생님, 혈압이 오르네요!"

    심장이 빠르고 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하자, 혈압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꿈에서 보지 못한 내용.

    내가 일찍 달려왔기에, 안경식 선생이 각성이라도 해서 새로운 해답을 내놓은 것일까?

    어쨌든 덕분에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벼랑 끝으로 달려가던 차가, 지금은 바퀴 반쯤을 땅에 걸친 채 겨우 버티고 있다.

    "마취과 준비되었다고 해요? 지금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안경식 선생이 소리친다.

    응급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마취과 인력과 수술방 인력들이 준비되어야만 한다.

    물론 지금은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수술방으로 밀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

    그렇다 하더라도 수술방에 도착할 때까지는 10분이 넘게 걸릴 것 같았다.

    ‘내가 달려왔기에, 조금 더 일찍 반응할 수 있어서 미래가 바뀐 걸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때.

    다시 심전도 파형이 불규칙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페이스 메이커를 사용한 지 몇 분이 채 되지도 않았다.

    "심장 주위에 혈종들이 가득하니까, 페이스 메이커도 잘 작동이 안 되는가 본데?"

    안경식 선생의 초조한 탄식과 동시에, 환자의 혈압이 다시 떨어진다.

    수축기 혈압은 겨우 50을 넘고 있다.

    환자는 여전히 아슬아슬한 생사의 경계에 놓여 있었고, 지금 우리의 손으로 뭐라도 해야 했다.

    "안 되겠어요. 에피 볼루스(bolous, 한 번에 투여)! 그리고 일단 컴프레션 할 테니까…… 선한 쌤, 앰부(ambu, 공기주머니) 좀 짜 줘요!"

    터억!

    안경식 선생은 침대 옆의 사이드레일을 내리더니, 환자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CPR 상황에서 시행하는 컴프레션.

    지금 이렇게 혈압이 낮은 상황에서, 기초 소생을 위해 흉부압박(external cardiac massage)을 가하는 것은 교과서적으로도 틀린 처치는 아니다.

    어떻게든 뇌와 온몸에 혈류와 산소를 공급해 줘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어.’

    멈칫―

    나는 안경식의 말에 따라 반사적으로 앰부를 잡으려던 손을 멈추었다.

    흉부 압박을 하면서 수술방까지 가는 것을 기다린다?

    이것은 잘못된 선택지다.

    이 길로 가면, 결과적으로 환자는 죽음 직전의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된다.

    그때 문득, 꿈속에서 거칠게 외치던 김성탁 교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이씨유에서 일단 열거나, 어레스트면 에크모 돌렸었야지!>

    지금 안경식 선생의 선택은 소극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분명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물론 그 길은 두렵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선택해야 한다.

    ‘지금 컴프레션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야!’

    나는 막 환자의 흉부를 압박하려던 안경식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왜, 왜요?"

    "지금 컴프레션이 좋은 선택이 아니라면 어떡하죠?"

    "뭐요?!"

    안경식의 표정은 황당 그 자체였다.

    네가 뭘 알아?

    나보다 1년 아래면서?

    그런 표정이 숨길 수 없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안경식이 아무리 호인이라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내가 선을 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했다.

    "컴프레션으로 수술 부위가 망가질 수도 있고, 수술방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안경식의 동공이 흔들렸다.

    안경식도 탐폰을 일으키는 혈종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수술방으로 빨리 옮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도 알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제세동과 페이스 메이커를 사용했지만, 그다음 결정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 지금 혈압 50대인데 컴프레션 안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수술방으로 옮길 때까지 버티려면……."

    애써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지만, 평소 유약한 성격이 드러난다.

    누군가 대신 결정을 내려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듯한 표정이다.

    그게 예비 1년 차인 나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지금 여기서 열어서 헤마토마(hematoma, 혈종)라도 제거하는 건 어떨까요, 선생님?"

    "뭐, 여, 여기서요?"

    안경식 선생은 화들짝 놀랐다.

    중환자실에서 다시 가슴을 여는 결정은 그에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2년 차 레지던트.

    케비지(CABG, 관상동맥 우회술)를 받은 환자를 아이씨유에서 본인이 다시 열어 본 경험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한 상황도 목격한 적 있다.

    곡담병원에서 풍 선생은 훨씬 열악한 응급실에서도 개흉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선생님."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의 생명은 초를 다투고 있다.

    혈압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언제 다시 심실세동이 발생할지 모른다.

    수술방에서 보았던 미래를 막으려면 지금밖에 없다.

    그때, 안경식이 결심한 듯 외쳤다.

    "……알았어요. 제가 책임질 테니까, 여기서 엽시다!"

    의외였다.

    안경식의 평소 성격에 비해 완강한 어투였다.

    물론 그렇게 과감하게 말하면서도, 얼굴은 숨길 수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개흉 준비할게요!"

    드르륵―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차유리는 어느새 응급개흉 세트(emergency resternotomy set)를 가져와 준비하기 시작한다.

    아이씨유의 김덕상 환자 자리는 순간 수술실 형태로 변화한다.

    그 준비 속도는 곡담 응급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개흉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심장외과 중환자실답게, 잘 훈련된 간호사들은 순식간에 준비를 마친다.

    환자에게는, 그사이 도착한 혈액제제와 함께 칼슘을 포함한 각종 약제들이 투입된다.

    "스터노토미 세트랑 석션, 보비, 헤드라이트 다 준비됐어요!"

    삐 삐―

    환자의 혈압은 다행히 60 언저리가 유지되고 있다.

    나와 안경식 선생은 가슴을 열기 위해 수술 부위 드레싱을 뜯어내고, 포비돈 소독액을 부었다.

    콸콸―

    곧, 드렙(drape, 방포)이 펼쳐지고 안경식 선생님이 집도의의 자리에, 내가 어시스트 자리에 선다.

    수술 시작을 알리는 외침 따위는 없다.

    우리는 환자의 가슴에 있는 봉합용 스테플러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모스키토(mosquito forcep, 수술기구)로 아래쪽 뜯어요, 내가 위쪽에 뜯을 테니까!"

    "예!"

    트드득―

    피부에 있던 봉합용 스테플러가 모두 뜯겨 나가고, 그 아래 조직을 꿰매 놓았던 실을 모두 끊는다.

    그러자 내가 갈라놓았던 그 흉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

    몇 번을 봐야 익숙해질까?

    수술실 바깥에서 환자의 몸이 열리는 순간은 긴장감이 남다르다.

    게다가 내가 열었던 멀쩡한 흉골은 이미 없다.

    다시 열게 된 흉부 지방조직에서 흘러나오는 빨간 피 사이로, 흉골을 이어 붙인 굵은 철사 와이어 6개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안경식 선생 역시 긴장한 듯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와이어 커터!"

    안경식 선생이 온갖 힘을 주어 흉골 사이를 붙여 놓은 철사 와이어를 끊는다.

    툭―

    툭―

    그 손길은 능숙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필사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그렇게 힘들게 와이어를 끊고 있을 때, 옆에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안경, 내가 할게!"

    옆에서 외치는 큰 그림자의 주인공은 마동섭이었다.

    병원에 울리는 CPR 방송을 듣고 달려온 모양이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선배님!"

    안경식은 거의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마동섭을 반겼다.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아군의 지원을 목격한 장수가 저런 표정일까?

    치프 레지던트가 왔으니 지금 우리에게는 구원투수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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