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90화 (190/241)
  • #190 흉부외과의 신선한(7)

    "차유리 선생님,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모르셨구나? 저 외과에서 심장외과 중환자실로 옮겨 왔어요!"

    차유리 선생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간호사들도 일정 근무기간이 지나면 로테이션을 하게 된다.

    차유리 간호사의 이번 근무지는 여기 심장외과 중환자실인 모양이다.

    ‘오랜만에 봐도 에너지가 넘치시네.’

    차유리 선생님 특유의 밝은 분위기는 여전하군.

    그러고 보면,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게 정말 있는 모양이다.

    왠지 잠깐 볼 사이가 아닐 것 같더라니…….

    예비 1년 차가 된 시점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그나저나 선한 쌤은 TS 합격?"

    "예. 올해부터 흉부외과 신선한입니다."

    내 대답에 차유리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역시 고집은 여전하셔."

    "제가요?"

    "최우수 인턴상까지 받으시길래 혹시 다른 과 고르나 했는데, 결국 TS 고른 거잖아요?"

    그러고 보니 차유리 선생님이 예전에 그런 표현을 썼었지.

    <가시밭길>.

    "수술과 중에서도 마이너 써저리(minor surgery, 성형외과, 안과 등의 수술과) 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는 차유리 선생님도 또 중환자실이시네요."

    "그렇네요. 그것도 가장 다이내믹하다는 심장외과 중환자실."

    우리는 픽 웃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 느껴졌다.

    가시밭길을 앞둔 사람들끼리의 공감대라고 해야 할까?

    특히 차유리 선생과는 예전에 중환자실에서 같이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환자의 임종을 보며 울기도 했었고…… 닭발집에서 술도 기울일 정도로 친해졌었지.

    작년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유독 그때의 경험은 잊히지 않는다.

    "아무튼 돌고 돌아 흉부외과에서 보니 반갑네요!"

    "저도 반가워요."

    나는 미소로 답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반가웠다.

    간호사님들은 병원에서 일하다 어느 순간 안 보이는 경우도 많으니까.

    가령, 신규 간호사는 1년 내에 퇴직하는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차유리 선생님의 경우 연국대병원 중환자실에서만 4년 차.

    앞으로 내가 도움받을 일이 많을 것이다.

    "잘 부탁드려요."

    "그래요, 선한 쌤. 팀워크 잘 맞춰 봐요!"

    <팀>.

    오늘 자주 듣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의사와 간호사도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특히 레지던트들은 간호사들과 접촉할 일이 유독 많다.

    만약 이 관계가 틀어진다면…….

    <레지던트 : 환자 상태가 이랬으면 한 번 더 연락을 줬어야 할 것 아녜요!>

    <간호사 : 콜(call, 연락) 했는데 안 오셨잖아요! 저는 오더(order, 처방) 난 대로 했을 뿐이에요!>

    ……이렇게 원수지간처럼 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험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의사 : 중환자실 간호사가 저렇게 생각이 없으면 어쩌자는 거야?>

    <간호사 : 이번 주치의 선생님 막장이네…… 환자들 불쌍해서 어쩌나, 쯧쯧.>

    이쯤 되면 답이 없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의료팀이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나는 적어도 차유리 선생과 그럴 일이 없겠지.

    ‘흉부외과에 믿음직한 사람들이 많아서 좋네.’

    치프 송유주.

    치프 마동섭.

    ICU 간호사 차유리.

    적어도 세 명은 확실하게 믿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와 개인적인 관계도 좋은 편이고…….

    앞으로 내 흉부외과 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에서 힘이 되어 줄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아이씨유에는 어쩐 일로? 김덕상 환자 보러 온 거예요?"

    "안경식 선생님 뵈러 온 건데. 사실 이 환자분이 제가 처음으로 스터노토미 했던 환자분이라……."

    "오오― 스터노토미? 선생님이 연 거예요, 그럼?"

    "마동섭 선생님이 잘 도와주셔서요. 그런데 환자분 괜찮죠?"

    "체스트 튜브(chest tube, 흉관) 드레인량(drain, 배액량)이 많기는 한데…… 주치의 선생님도 알고 있고, 괜찮을 거예요. 김성탁 교수님 워낙 수술 잘하시니까."

    모든 수술은 수술이 끝난 뒤, 수술 부위 근처에 배액관을 넣고 나오게 된다.

    수술 부위 출혈이 얼마큼 있는지 알기 위해서다.

    김덕상 환자도 가슴에 흉관 몇 개를 넣은 채 수술실 밖으로 나왔고, 지금 이 관을 통해 나오는 혈액량이 적지는 않다는 이야기였다.

    ‘……괜찮겠지? 안경식 선생님도 알고 있다고 했으니까.’

    아무리 못 미더운 취급을 받는다 해도, 안경식 선생님은 2년 차 흉부외과 의사.

    나보다 이런 환자를 더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그때, 마침 면회시간이 되어 보호자들 몇몇이 중환자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보호자는 단 한 사람.

    머리가 새하얗게 센 어머니가 황망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내 부름에, 보호자는 곧바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아들을 살폈다.

    "아이구, 내 새끼."

    마음이 아린 듯, 자꾸만 아들의 볼을 쓰다듬는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나와 차유리 간호사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우리 아들 수술 잘 끝난 거죠? 언제 깨어나는 거예요?"

    "보통은 수술 다음 날이면 인공호흡기 뽑으세요. 내일 오전 면회 때는 말씀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좀 있으면 주치의 선생님이 와서 자세히 설명해 주실 거예요."

    차유리 간호사의 친절한 대답에 환자의 어머니는 조금 안심한 듯한 기색이었다.

    "……그래도 병원에선 빚쟁이들한테 하루라도 안 시달릴 수 있겠네요. 배달인지 뭔지도 안 하고 잠이라도 푹 잤으면……."

    그 말에서 느껴지는 애잔한 감정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우리가 잠시 자리를 비켜 주는 사이, 차유리 선생이 내게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병동에서 인계받기로는, 대부업체에서 전화까지 와서 직접 물어봤다고 하던데요? 환자 일정에 대해서."

    "그래요?"

    나는 혀를 찼다.

    김덕상 환자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

    환자를 위협하는 것은 병마와 질환뿐만이 아닌 것이다.

    병원 바깥에 ‘생계’라는 더 큰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도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수술 후에 중환자실 안 가면 안 되냐고 고집부리시는 분들도 있어요. 중환자실 비용이 비싸니까……."

    그렇게 말하는 차유리 간호사의 표정이 씁쓸하다.

    오늘도 일에 혹사당하느라 건강을 잃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입원 후에도 돈 걱정은 끊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건강이 제일 우선>이라는 말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이런 경우, 의료진인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병동 빨리 올라가시는 편이 좋겠네요."

    "예. 잘 케어해서 재원일수 하루라도 줄이고, 예정대로 퇴원할 수 있게 해 드려야죠. 그래야 병원비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차유리 간호사.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자를 향한 세심한 마음이 느껴진다.

    "어쨌든 수술 후 경과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차유리의 말이 맞다.

    하지만 왜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는 것일까?

    사건은 그날 밤에 일어났다.

    * * *

    꿈을 꾼다.

    시야가 어지럽다.

    마치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물통처럼, 다채로운 색이 뒤섞이며 혼탁해진다.

    ‘내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지?’

    사아아―

    곧 시야가 밝아진다.

    무영등으로 밝혀진 회백색의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내게 익숙한 16번 방 수술방이었다.

    "와이어 커터 빨리 주세요! 야, 여기 석션!!"

    "김성탁 교수님 연락됐죠?"

    "아까 주차장이라고 했어요!"

    수술방이 아수라장이다.

    이전까지 내가 보았던 가장 정신없는 수술방은 노을 누나의 분만 수술이었다.

    마취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순환기내과 선생님들이 모두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수술은 일렉티브(elective, 예정된) 수술이었다.

    예정돼 있던 수술이었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수술방이었던 것이다.

    반면, 지금은…….

    ‘너무 정신이 없잖아?’

    수술방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장 바닥이었다.

    그야말로 난리 통.

    수술방 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전혀 질서 정연하지 않다.

    "이거 아이씨유 베드 좀 빼 봐요, 상 차릴 공간이 없어요!"

    수술방 너스가 외친다.

    수술대 옆 아이씨유 베드는 방금 심장외과 중환자실에서 온 듯하다.

    베드 위에 이불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여기저기 피가 묻은 시트는 침대에 반쯤 걸친 채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수술실 바닥에는 물과 흉관을 통해 배액된 피가 어지럽게 흘려져 있다.

    체스트 튜브 바틀이 엎어졌다가 다시 세워진 모양이다.

    ‘중환자실에서 정신없이 여기까지 밀고 온 건가?’

    내가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누군가 크게 외친다.

    "나 헤드라이트 좀 씌워 줘요. 일단 빨리 열어야 돼요!"

    마동섭 선생이었다.

    앞에는 안경식이 마동섭을 돕고 있다.

    나는 환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M/49 김덕상

    김덕상 환자!

    그리고 벽면 보드에 적혀 있는 날짜와 시간은 바로 오늘 밤.

    나는 얼른 촉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자의 바이탈은 어느 정도지?’

    모니터에 보이는 수축기 혈압은 50대를 가리킨다.

    A―line(환자의 동맥에 들어가 있는 혈압 모니터링 기구)을 통해 보이는 환자의 혈압에는 웨이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심장이 거의 멈추기 직전이잖아?’

    툭― 툭―

    마동섭이 스터넘에 걸려 있는 와이어를 끊어 낸다.

    내가 갈라서 열었던 그 스터넘이다.

    수술이 끝나고 봉합할 때, 철사로 된 와이어로 흉골을 다시 이어 붙여 놓은 것을 마동섭이 하나씩 끊고 있었다.

    "리트랙터!"

    스터넘이 열리고, 마동섭은 그 사이를 조금씩 벌린다.

    그런데, 스터넘 아래 있어야 할 심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위에는 피가 굳어 만들어진 혈종들만이 가득하다.

    마동섭은 손에 거즈를 들고 조심스럽게 혈종들을 걷어 내며 외친다.

    "젠장, 컴프레션 하면서 anastomosis(혈관 봉합 부위) 다 망가진 것 같은데?!"

    환자는 거의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상황.

    마동섭은 컴프레션이 환자를 더 나쁘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드르륵―

    마동섭이 리트랙터를 벌려 스터넘을 다 열고 나서야, 수술실 간호사들의 수술기구 세팅이 완료된다.

    이제야 보통의 수술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응급 수술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늦은 건 아니어야 할 텐데……!"

    마동섭이 초조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뭔가 늦게 대응했구나. 아까는 컴프레션(compression, 흉부압박)이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상황을 유의 깊게 지켜보는 동안, 마취과에서는 혈액팩을 손으로 쥐어짜 환자에게 볼륨을 공급하고 있다.

    서억―

    마동섭이 심장 주위의 혈종들을 거의 걷어 내자, 혈압이 조금씩 조금씩 겨우 오르기 시작한다.

    그때, 김성탁 교수님이 헐레벌떡 들어온다.

    "뭐야, 어레스트 난 지 얼마나 된 거야? 동섭아, 어디서 피 나는지 보이니? 일단 에크모 돌리지 그랬어? 심장 뛰고 있어?"

    한 번에 많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브이핍(V.fib, 부정맥)이 제일 처음 이벤트였고요, 니어 어레스트(near arrest, 거의 심정지)이긴 했는데, 탐폰(tamponade, 심장눌림증) 걸렸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

    마동섭도 빠르게 현재 상황을 김성탁 교수에게 이야기한다.

    "일단 헤마토마(hematoma, 혈종) 제거하고 볼륨 들어가면서 혈압은 조금씩 잡히는데요, 출혈 부위가 어딘지는 모르겠습니다!"

    김성탁 교수는 급히 수술복을 입고 필드에 들어간다.

    "이거 컴프레션 많이 했니? 아이씨유에서 일단 열거나, 어레스트면 에크모 돌렸어야지! 환자 머리 괜찮을지 모르겠네……!"

    상황은 점점 급박해진다.

    내가 김성탁 교수님의 손을 따라서 수술 필드를 보려 다가가는 순간―

    * * *

    "헙!"

    나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퍼억!

    바닥에 무릎을 박았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벌떡 일어났다.

    "쿠르르르……."

    근욱이의 코 고는 소리는 여전하다.

    지금이 몇 시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 버렸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얼얼한 무릎을 부여잡고 황급히 시간부터 확인했다.

    ‘10시.’

    숙소에서 잠깐 잠이 든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사이에 엄청난 꿈을 꿨다.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잠기운을 내쫓으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생각했다.

    ‘……방금 내가 미래를 본 게 맞나?’

    이게 미래를 본 거야, 아니면 단순한 악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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