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88화 (188/241)
  • #188 흉부외과의 신선한(5)

    흉골 윗면.

    예상치 못한 출혈이 생기게 될 부위.

    나는 매누브리움(manubrium)을 따라 환자의 목 쪽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지이익―

    내 보비가 김덕상 환자의 연부조직을 태운다.

    그동안, 마동섭 선생님은 한 손에 기구를 들고 절개 부위 끝부분을 들어 올려 주었다.

    "자, 내가 여기 당겨 줄 테니까 sternum(흉골) 따라서 jugular notch(흉골의 위쪽 끝부분) 확인해 봐!"

    절개해 놓은 부위보다 더 위쪽으로 박리가 필요한 상황.

    어시스턴트가 시야를 밝혀 주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마동섭 선생님의 팔근육이 불끈 움직이자, 내 시야가 한층 밝아졌다.

    수술을 잘하기 위해서는 힘도 필요한 걸까?

    여태껏 어시스턴트의 자리에만 서 봤던 나는 집도의의 시선으로 필드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집도의 자리에 서 보니 알겠어. 어시스턴트가 잘하는 것도 수술에 얼마나 중요한지!’

    시야를 밝혀 주고, 적재적소에 석션을 해 주는 것.

    간단해 보이지만 수술의 원활한 진행에 큰 영향을 끼친다.

    왜 교수님들이 앞에 있는 어시스턴트에게 소리를 지를 때도 있고, 많은 요구 사항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마동섭 선생님의 어시스트를 믿고 진행해 보자! 분명 내가 보았던 미래대로라면…….’

    나는 이 부위의 박리를 진행하다가 출혈을 일으키게 되고, 내 시야는 피로 물들게 된다.

    그렇기에, 내 손끝은 더욱 세밀하게 움직였고 내 집중력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신중해졌네? 별거 없어, 스터넘 따라서 쭉쭉 진행하면 돼!"

    마동섭이 말했다.

    어서 빨리 흉골 윗면을 정리하고, 시원하게 톱질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과는 상관없이 차분하게 박리를 진행했다.

    ‘내 페이스를 유지해야 해.’

    집중력 하나는 자신 있다.

    어느새 들뜬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수술실에 흐르던 바흐의 선율은 어느새 쇼팽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침 선곡도 좋네.’

    차분히 진행해 보자.

    흉골 윗면에는 양쪽 빗장뼈 사이를 이어 주고 있는 강한 인대(ligament)가 존재한다.

    심장 수술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인대를 잘 끊어 주어야 한다.

    나는 인대를 조심스럽게 끊는 동시에, 주위 연부조직들을 차분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심스레 손을 움직이던 순간, 무언가를 발견한 내 눈이 커졌다.

    "……!"

    흉골의 윗면.

    가로로 길게 주행하는 길다란 구조물이 보였다.

    아직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내 헤드라이트가 가리키는 곳에는 매끈한 면을 가진 무언가가 있었다.

    ‘찾았다!’

    흉골 윗면을 가로지르는 혈관.

    지방조직과 연부조직에 둘러싸여 그 모습이 완벽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혈관이 분명했다.

    ‘……이놈이었구나,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게.’

    나는 보비 끝으로 살짝살짝 밀면서 혈관의 모습을 조금씩 노출시키며 말했다.

    "선생님, 여기 베슬(vessel, 혈관)이 하나 지나가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마동섭의 눈이 커졌다.

    "응? 뭐라고? 어디 보자."

    마동섭은 오른손으로 기구를 계속 당기면서, 머리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엇, 진짜네?"

    마동섭은 내가 찾은 혈관 부위를 포셉으로 만져 보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여기 가끔 이렇게 굵은 베인(vein, 정맥)이 지나가지. 어떻게 알았어?"

    "박리를 진행하는데, 그냥 소프트티슈(sofe tissue, 연부조직)같이 보이지는 않아서요."

    내 대답에, 마동섭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슬쩍 훑어보았다.

    "역시 신선한, 실망시키지 않는구만. 처음 하면서 이런 것까지 어떻게 찾은 거야?"

    마동섭의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다시 한번 흐뭇함이 묻어 나온다.

    "역시는 역시야."

    짧고 굵은 칭찬이었다.

    ‘휴…… 다행이야.’

    만약 마동섭 선생님의 페이스대로 진행했다면?

    분명 출혈 이벤트가 발생했을 것이다.

    물론, 마동섭 선생님은 이런 작은 혈관에서 나오는 출혈 정도는 해결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오늘 처음 하는 스터노토미.

    예상치 못한 출혈이 발생하면, 마동섭 선생님과 자리를 바꾸어 다시 어시스턴트의 자리로 옮겨 가야 했을 것이다.

    "혈관은 클립으로 잡아야 되는데, 해 볼래?"

    어느새 옆에는 간호사가 일회용 헤모클립 기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헤모클립(Vessel hemo―clip).

    집게처럼 생긴 수술도구로, 가위질하듯이 손잡이를 누르면 기구 끝에 클립이 물리게 되는 형식이다.

    "네, 해 보겠습니다."

    나는 간호사에게 헤모클립을 건네받아 손에 쥐었다.

    "이야…… 첫 스터노토미에 이것저것 다 해 본다, 신선한? 원래는 이런 것까지 시켜 줄 생각은 없었는데……."

    마동섭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게 헤모클립 사용법을 원 포인트 레슨으로 가르쳐 주었다.

    두터운 신뢰가 느껴진다.

    수술실에서 믿음을 사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탁―

    혈관의 양끝을 클립으로 물고 그 사이를 가위로 잘랐다.

    동그랗게 잘린 혈관의 양면이 귀엽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물어 놓은 클립 덕분에 그 혈관의 단면에서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좋아, 이제 마지막 준비 단계다. 스터넘의 미드라인 찾기!"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우리는 각자 갈비뼈 사이 공간을 포셉으로 눌러, 흉골 옆면의 경계선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 양측면의 정가운데에 보비로 흉골을 태워서 미드라인을 표시하였다.

    스터노토미 쏘(saw, 톱)가 지나갈 자리를 표시해 두는 것이다.

    준비는 끝났다. 환자의 흉골을 가를 시간이었다.

    "스터노토미 쏘 여기 있습니다."

    나는 마침내 쏘를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배운 대로, 이 기구가 잘 정비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했다.

    위이이잉―

    손잡이 버튼을 누르자 톱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쏘를 쥐고 자이포이드(Xiphoid process)에서부터 톱질을 시작했다.

    위이이잉이익잉―

    ……처음에는 진행이 잘 안되었다.

    소리도 요상하게 났다.

    처음으로 뼈를 잘라 보는 감각은 낯설기만 했다.

    "괜찮아, 괜찮아. 처음 쏘 들어갈 때는 이럴 수 있어. 당연하지, 뼈를 가르고 들어가야 되는 일이니까."

    마동섭 선생님이 나를 안심시킨다.

    나는 조금씩 쏘를 밀어 나가기 시작했다.

    몇 번 헛돌던 톱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한번 나아가자 쭈욱 진행할 수 있었다.

    위이이잉―

    미리 표시해 둔 정중앙선을 따라서, 내 기구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중앙선을 벗어나 어긋날 것 같았다.

    그래서 손끝과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번갈아 쳐다보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지잉― 툭!

    ‘됐다!’

    마침내 나의 쏘는 흉골의 윗면 끝부분에 다다를 수 있었고, 나는 스터노토미를 문제없이 완료했다.

    "수고했다! 별거 아니지? 흐흐."

    심장 수술의 고작 첫 단계를 하는데, 이렇게 힘들다니.

    그래도 문제없이 나에게 주어진 수술방 첫 임무를 마칠 수 있어 기뻤다.

    미션 컴플리트!

    "마무리 지혈하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나가 봐도 된다. 병동 일도 많을 거 아니야?"

    "네 선생님.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하는 거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간호사의 칭찬은 덤이었다.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난 뒤 수술방으로 나오며 생각했다.

    ‘작은 혈관 하나가 나를 그렇게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니…… 역시 많은 케이스를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겠구나.’

    백의신이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환자의 아나토미는 모두 다르다>.

    그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머리로 알고 있던 지식들이, 수술실의 경험으로 비로소 몸에 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 * *

    오전 10시.

    심장 수술은 단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특히 CABG 수술의 경우, 아무리 빨라도 4시간 이상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수술실에서 멀뚱멀뚱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수술 과정을 지켜보고 싶지만…….

    ‘일단 병동 일부터 처리하자!’

    인턴의 손은 잠시라도 멈추면 안 되니까.

    나는 얼른 병동으로 올라가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처방 업무와 동의서.

    환자 드레싱.

    등등.

    마지막 흉관 제거 업무까지 마치고 난 뒤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마침 나처럼 인턴 잡을 마치고 온 신상미가 호들갑스럽게 다가왔다.

    "야야야, 너 오늘 스터노토미 한다며?"

    "응. 이미 하고 왔어."

    "헐 정말? 나도 시켜 준다고 하는데, 무서워서 미루고 있는 중인데…… 어땠어?"

    그렇게 묻는 신상미의 목소리가 숨죽인 듯 조용하다.

    "재밌었지."

    "사람 뼈 자르는 게?"

    "응."

    "그게 어떻게 재밌…… 하긴, 네 표정 보니까 알겠다."

    "내 표정이 어떤데?"

    "짝사랑한테 고백 성공해서 오늘부터 1일 선언하고 집에 돌아온 표정이잖아."

    ……그 정도라고?

    누가 들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겠네.

    하긴, 짝사랑이라는 표현도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10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서 메스를 드는 날을 꿈꿔 왔으니까.

    "그런데 아까부터 왜 그렇게 목소리를 죽이고 있어?"

    "몰랐어? 아까 아침에 한바탕 난리 났었어. 지금 분위기 안 좋아."

    "분위기가 왜?"

    "안경식 선생님이 환자 매니지(manage, 관리) 잘못했나 봐. 교수님이 엄청 화나셨어."

    "아아……."

    그러고 보니 안경식 선생님은 교수님들에게 탈탈 털리는 게 일상이었다.

    폐식도 파트에서도 그랬지만, 성인심장 파트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물건은 안 날아다녔어?"

    "물건?"

    "내가 흉부외과 처음 왔을 때는 물건이 날아다녔거든."

    "와 씨, 대박. 나한테 물건 던지면 난 그날로 흉부외과 관둔다."

    오늘도 하루에 한 번씩 입버릇처럼 흉부외과 탈주 각을 재는 신상미였다.

    나는 픽 웃고 일어섰다.

    "어떻게 결정하든 네 몫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전문의는 같이 땄으면 좋겠어."

    "뭐야, 갑자기 동기 사랑?"

    "힘든 TS 레지던트 생활 동안 기댈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어?"

    그러자 신상미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이다.

    "어디 가?"

    "잠깐 아래 카페 좀 다녀올게."

    "쉴 틈도 있어?"

    "쉬는 게 아니라, 수술방 사람들한테 커피 좀 돌리려고."

    흉부외과뿐만 아니라, 모든 수술과에는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온 관습이랄까?

    무언가 기념할 만한 경험을 하고 나면, 레지던트이건 펠로우건 수술방에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간단한 대접을 한다.

    내가 집도의 자리에 서 있는 동안, 모두가 긴장하며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도록 집중해서 도와주고 있었으니 한턱 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어디 보자, 수술방에 있던 사람은 나 빼고 6―7명이었으니까…….’

    한 손에 4잔씩.

    나는 지하 1층의 카페에서 산 데일리 요거트와 커피 총 8잔을 종이 캐리어에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물론 수술이 끝나고 나면 이 커피는 죄다 식어 있겠지만…….

    갓 내린 따스한 커피의 여유를 즐길 만큼 수술과의 스케줄은 넉넉지 않다.

    중간중간 짬이 나는 사람들이 나와서 먹고 가는 수밖에.

    "선한 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3층 수술실 가세요? 눌러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간호사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커피를 가져다 놓기 위해 수술실 라운지에 다다를 무렵.

    따르르르―

    주머니 속 콜폰이 울린다.

    이런, 받아야 하는데?

    경황이 없는 와중에 커피를 쏟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

    나는 겨우 커피를 복도에 있는 의자 위에 내려놓자마자 전화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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