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85화 (185/241)

#185 흉부외과의 신선한(2)

남자는 놀란 눈으로 덕상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 왜 이래?

얼핏 보아도 안색이 안 좋다.

가만히 두면 금방이라도 눈 바닥에 쓰러질 것같이 불안불안하다.

"괜찮습니까?"

"신경 쓰지 말어, 가끔 이래. 날씨 추워지니까 더 자주 이러네……."

"거 원래 당뇨인가 뭐시기 있다고 안 했습니까? 그거 병원 잘 다니고 있어요?"

"약을 받기는 해. 다 먹은 지 몇 주 된 것 같은데…… 병원비 아까워서 못 가겠어."

가슴을 부여잡은 손을 살며시 떼고 있는 덕상의 말에, 남자가 버럭 짜증을 냈다.

"병원비가 문제입니까? 대한민국 의료보험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데, 그거 얼마 하지도 않을 거 같은데?!"

"먹으나 안 먹으나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던데 뭘."

"아니, 살아는 있어야 일도 하고 돈도 갚고 하는 거 아닙니까?"

"알았어, 알았어. 빚은 갚을 테니까 걱정 말어……."

덕상은 서글픈 표정으로 움츠렸던 몸을 겨우 추슬렀다.

"내일 꼭 병원 가 봐요!"

"그래……."

덕상은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벽에 손을 짚고 힘들어했다.

계단을 오르니, 가슴의 뻐근함이 다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막 돌아서려던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는 덕상의 팔을 붙잡았다.

"안 되겠다, 지금 원래 다니던 그 병원 응급실 가 봅시다. 빚 독촉하러 왔는데 심장마비로 죽는 꼴 보면 나도 뒷맛 더러우니까."

"심장?"

덕상은 덜컥 겁이 났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도 심장마비였던 기억이 났다.

응급실 비용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당장 죽는 것보다는 낫지 싶었다.

남자가 계속 윽박질렀다.

"고집부리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얼른 가자고요.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그래, 고마우이."

"시X, 못 할 짓이네. 빚 받으러 왔다가 이게 무슨……."

남자는 거친 욕을 내뱉으며 덕상을 부축했다.

문득, 남자의 팔이 닿자 덕상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비록 상대가 빚쟁이긴 했지만, 누군가의 온기를 느껴 본 것이 몇 년 만인가 싶었다.

그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소형 SUV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왕바이오…… 내 이름처럼 떡상할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지금?"

"……미안허이."

김덕상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그 와중에도 개그 욕심을 부리는 걸 보니 당장 죽지는 않겠다고 포마드 남자는 생각했다.

부르릉!

두 사람을 태운 소형차는 눈길을 헤치고 병원을 향해 나아갔다.

* * *

따르르르―

알람이 울린다.

아침 6시, 출근을 준비하는 몸이 가볍다.

"새해 첫날이네."

나는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한 해, 새로운 한 달.

나는 흉부외과에 합격한 채, 인턴으로서 1월 달 흉부외과를 돌게 되었다.

이번에 배정된 파트는 송년회에서 마동섭 선생님이 말했던 대로, <성인심장(Adult Heart) 파트>.

‘역시 <흉부외과> 하면 심장 수술 아니겠어?’

이곳에서는 관상동맥 질환, 판막 질환, 대동맥 질환 환자들을 다루게 된다.

그 외에도 부정맥 수술, 심장종양 수술,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평소보다 밝고 힘차게 인사했다.

이제 이곳 병동에서 보는 의료진들은, 앞으로 병원생활 내내 마주치게 될 사람들이다.

한 달 머물렀다가 사라질 인턴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후…… 이제 오늘 자 처방 수정이랑, 체스트 튜브(chest tube, 흉관) 뽑는 건 다 했고, 드레싱만 하면 되겠구나.’

나는 아침 회진 후, 병동 업무를 처리하면서 스테이션에 앉아있었다.

그때, 주머니 속 전화가 울렸다.

띠리리―

‘응? 나 여기 스테이션에 있는데…… 어디서 전화가 오는 거지?’

전화기 화면에는 [마동섭 선생님]이 적혀 있었다.

<친구야, 지금 바쁘냐? 급한 일 없으면 수술실 16번 방으로 와 볼래?>

"네, 선생님.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없어요. 바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내려갔다.

이미 수술복 위에 가운을 걸치고 있던 터라, 가운을 탈의실 옷걸이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뒤 수술모와 마스크를 썼다.

‘하트(Heart, 심장) 파트 수술방은 처음이구나!’

두근, 두근.

가슴이 뛰었다.

인턴생활 1년째.

인턴으로서 새롭고 신기한 경험은 이제 남아 있지 않을 시기이다.

하지만, 흉부외과 수술실로의 입장은 내 심장을 다시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잉―

16번 방 문이 열리고,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오늘의 두 번째 수술 준비에 한창이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 왔구나! 얘가 우리 1년 차 들어올 신선한이에요. 다들 송년회에서 잠깐씩 봤죠?"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쓰고, 의료용 루페(loupe, 확대경)를 쓴 마동섭 선생님은 나를 사람들에게 인사시켰다.

"안녕하세요, 3월부터 1년 차로 일하게 될 신 선 한 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수술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저기 안쪽은 마취과 선생님들인 거 같고, 나머지 분들은 수술실 간호사, SA(수술보조 간호사), 체외순환사 선생님들일 텐데…….’

처음이다 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흉부외과 식구인 것은 분명하기에, 나는 정중하게 모두에게 인사했다.

"아, 동섭 쌤이 맨날 칭찬하던 그 선생님이구나!"

다들 각자의 업무로 바쁜 와중에 눈인사를 건네었다.

"쌤 반가워요!"

그렇게 반갑게 인사하는 이도 있었지만…….

"컨타(contamination, 오염) 조심하시고요. 거기 넘어가시면 안 돼욧!"

인사도 없이 까탈스러운 말투로 나를 맞이하는 간호사도 있었다.

"아 네, 주의하겠습니다."

환자는 이미 마취가 끝난 채, 똑바로 누워 있었고(supine position, 반듯이 누운 자세), 드렙(drape, 포)까지 둘러져 있는 상황이었다.

"친구야, 바쁘겠지만 스터노토미 하는 것만 보고 가라!"

"아, 네 선생님."

마동섭의 외침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

스터노토미(Sternotomy, 흉골절개술).

심장 수술을 위해 필수적으로 쓰이는 절개법으로,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기본 방식은 마동섭 선생님이 말한 정중 흉골절개술(Median sternotomy).

가슴 가운데 있는 흉골을 세로로 길게 가르는 술기로, 심장 수술의 첫걸음이라 볼 수 있다.

"손 씻고 와서 볼 것까진 없고, 발판 하나 가져와서 거기 올라가서 보면 돼."

"알겠습니다."

나는 계단식 발판을 끌고 와, 그 위에 올라서서 마동섭 선생님의 손끝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수술실로 왜 불렀나 했더니…… 이걸 보여 주려고 하신 거였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바쁜 와중에도, 마동섭 선생님은 마치 떡 하나 더 주려는 자식처럼 나를 챙겼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족이니, 얼른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메스(mes, 수술용 칼)!"

스윽―

마동섭 선생님은 칼로 환자의 가슴 한가운데를 길게 세로로 가르기 시작했다.

지지직―

보비(bovie, 수술용 전기칼)로 환자의 지방과 근육의 일부를 태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얼마 후, 환자의 가슴 가운데 있는 흉골(sternum)이 노출되었다.

그러자 마동섭은 쇠로 된 커다란 물건을 간호사에게 건네받아 오른손에 쥐었다.

"자, 봐라. 이게 스터노토미 쏘(sternotomy saw, 흉골절개용 톱)라는 거야."

흡사 총처럼 생겼다.

하지만 그 끝에 달린 것은 톱날이다.

마동섭 선생은 허공에 대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물건의 손잡이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마치 공업용 그라인더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손잡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전기톱의 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들고 있으니까, 의료기구 같지가 않아요…….’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전기톱으로 환자의 아랫가슴부터 위쪽으로 톱질을 하기 시작했다.

부아아앙―

톱은 환자의 흉골을 정중앙으로 갈랐고, 잘린 뼈 단면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끝난 마동섭의 톱질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와아…… 사람 가슴뼈를 저렇게 톱으로 갈라도 되는 거야?’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을 만큼 과격한 장면이었다.

"봤지? 이게 메디안 스터노토미(median sternotomy, 정공흉골 절개술)라고 하는 거다."

그는 큰 목소리로 말하며, 잘린 흉골 단면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곧, 지혈 과정을 마친 그는 스터넘 리트랙터(sternum retractor, 흉골을 벌리는 수술기구)로 잘린 뼈 사이를 벌렸다.

트드득―

손잡이를 시계 방향으로 돌려 잘린 흉골뼈 사이를 벌리는 모습에서, 곡담에서 풍 선생님이 가슴을 벌리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흉부외과 사람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벌려진 뼈 아래로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

물론 살아서 뛰는 심장을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곡담에서 풍 선생님과의 수술에서 보았던 심장은, 옆면에서 쳐다본 심장이었다.

‘그때는 가슴 옆으로 절개하여 수술했었지…….’

이번에는 똑바로 누워 있는 환자의 앞면으로 접근하여 바라본 심장이었다.

곡담에서와는 또 다르게, 눈앞의 장면은 새롭고 놀랍게 다가왔다.

"어때? 잘 봤어? 1년 차 되면 바로 지금 봤던 스터노토미(sternotomy)를 네가 할 거야. 책이랑 동영상 좀 찾아보면 도움 될 거다."

"……네."

나는 짧게 대답했지만, 내 가슴은 더욱 쿵쾅대고 있었다.

긴장? 떨림?

아니다. 그보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더 컸다.

드디어 심장 수술에 참여하는 써전(surgeon, 수술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못내 기뻤다.

‘……차원이 달라지는구나.’

나는 방금 내가 본 장면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다.

비로소, 흉부외과 성인심장 파트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 * *

폐식도 파트가 암센터에 있다면, 성인심장과 소아심장 파트는 본관 건물에 위치했다.

위치만 다른 것이 아니라, 심장 쪽과 폐식도는 같은 흉부외과이지만,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폐식도 파트보다 조금 더 날것의 느낌이랄까?

교수님들부터 거칠고 와일드한 느낌이 강했다.

"야 이 자식아, 아이씨유(ICU, 중환자실)에서 그냥 가슴을 열었어야지!"

"포타슘(potassium, 칼륨) 레벨 얼마라고?! 안 들리잖아, 크게 말해!"

"어제 와파린(warfarin, 항응고제) 용량 어떤 XX가 정한 거야?!"

병동과 아이씨유까지 회진을 따라 돌다 보면, 이런 거친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일상이었다.

여기에, 나는 이미 흉부외과가 확정된 예비 1년 차.

그러다 보니 중환자실 업무, 수술실 업무에 대해서도 조금씩 배워 가야만 했다.

본격적인 흉부외과 레지던트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소아심장 환자까지 챙겨야 한다.’

이슬기.

2달 전, 예지몽에서 보았던 환자.

그 환자가 분명 1월에 입원할 것이다.

안경식 선생님을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게 만들었던, CPR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그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한 달 안에 최대한 성장하자!’

그날이 왔을 때, 내가 평범한 인턴이어선 안 된다.

한 명의 어엿한 흉부외과 전공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으니까.

‘이번 달도 쉽지만은 않겠어…… 아니 어쩌면 가장 어려운 한 달이 될지도 몰라.’

나는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그 와중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내 옆에는 마동섭이라는 스파르타식 조교가 있었다.

며칠 후.

응급실을 통해서 환자가 병동으로 올라왔을 때 마동섭이 불쑥 말했다.

"내일 첫 수술, 김덕상 환자. 스터노토미(sternotomy, 흉골절개술) 네가 해 볼래?"

……벌써요?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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