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77화 (177/241)

#177 그가 향하는 곳(8)

‘저 사람은……?’

안경식 선생님이다.

무슨 일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이고 있다.

살짝 흘러내린 뿔테 안경 너머 눈물이 잔뜩 고여 있다.

‘……왜 저렇게 슬프게 우는 거야?’

처음 보는 표정이다.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 차.

아직 연차가 낮지만, 그래도 웬만한 일에는 무뎌졌을 법도 한데.

그런 사람이 저렇게 울고 있다는 건…….

순간, 예전에 흉부외과 돌 때 마동섭 선생님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사망 환자들 퇴원기록 쓸 때 중에, 가장 슬플 때가 언제였는지 알아?>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두꺼운 손가락으로 코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소아심장 환자들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했을 때야. 성인들이랑 또 다르게 가슴이 정말 먹먹해져. 한 명, 한 명 잊히지도 않는다…….>

병원 복도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산짐승 같던 그의 눈망울이 촉촉해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쉽게 잊히지 않고 있었고, 지금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이곳 소아심장 중환자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자!’

나는 얼른 걸음을 옮겼다.

맞은편 코너를 돌자, 베드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이하게 생긴 영아용 베드.

소아심장 중환자실에서만 볼 수 있는 이 베드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3―7kg의 아기가 누울 수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베드가 가슴 높이에 있고, 그 위로는 아기의 체온 유지를 위한 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각종 약제와 산소통 등이 놓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지금은 그 베드 주위에 의사들 6―7명이 몰려 있는 상황이다.

‘이런, 잘 안 보여…… 뭘 하고 있는 거야?’

사람이 너무 많다.

의사들의 몸에 가려져 있기에 상황을 확인하기 힘들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곧, 내 눈이 커졌다.

‘소아 CPR(심폐소생술)?’

푸욱― 푸욱―

한 사람이 양손으로 아기의 가슴을 감싸고, 양쪽 엄지를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누르고 있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심폐소생술과 원리는 똑같지만, 긴장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갓난아기들 대상으로는 이렇게 하는구나.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아이의 가슴에 있는 흉골(sternum)이 고무처럼 눌렸다 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고작 한 줌밖에 안 되는 작은 아기의 가슴을 저렇게 세게 눌러도 되는가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은 아기의 심장을 쥐어짜 뇌를 포함한 전신에 혈류를 공급하는 게 급선무.

즉, 지금 저 아기는 생명이 위급한 상황인 것이다.

절벽 끝에 걸쳐진 아기의 생명을 어떻게든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에피(epinephrine) 들어갑니다, 26분째입니다!"

"POD(수술 후) 5일째지? 소아용 에크모 준비됐나?"

"몸무게 어떻게 되죠?"

"3개월, 6kg이에요!"

"수술방도 잡을까요?"

여러 대화가 어지럽게 진행된다.

혼돈의 도가니.

의료진들이 악을 쓰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흉부 압박과 동시에, 허벅지에서는 굵은 바늘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 있다.

혈관을 찾으려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CPR 중이면, 혈관 찾기가 쉽지 않겠지…….’

그때, 뒤늦게 펠로우 선생님 한 명이 베드로 달려온다.

사복 차림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니, 집에서 병원으로 한걸음에 달려온 모양이다.

"뭐야? 지난주 수술받은 TGA 환자?"

"네, 맞아요!"

"황인학 교수님 연락했고?"

"네! 오고 계십니다."

"하…… 벌써 26분째면 쉽지 않겠는데……."

정신없이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아기의 피부는 점점 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가만, 일단 아기 이름부터 봐야 해!’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러다가 꿈이 끝날 수도 있다.

아기의 이름표를 확인하려 했지만, 사람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여 아이의 정보를 파악하려는 순간.

파앗―

시야가 점멸하며,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 * *

눈앞의 풍경이 천천히 되돌아온다.

조금 전의 소음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NICU에는 조용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젠장, 이름을 못 봤는데!’

지금까지 펼쳐졌던 미래는 모두 내 눈앞의 환자들 중 한 명에게 발생하는 사건이었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잠깐, 그런데…….

이 중에 누구지?

아기들은 다 똑같이 생겼고, 인큐베이터가 너무 많다.

‘이 중에서 누군가가 소아심장 중환자실에서 CPR 상황에 빠지게 되는 건가?’

……진정하자.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차분히 꿈속에서 얻은 정보를 정리해 보자.

―소아심장 흉부외과 중환자실.

―3개월, 6kg 아기.

―수술 후 5일째 CPR(심폐소생술).

‘그리고, T…… GA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잘 들은 게 맞나?’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려운 개념이긴 하지만, 언뜻 기억이 났다.

TGA(Transposition of Great Arteries, 대혈관 전위).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에서 나가는 중요한 큰 혈관인 대동맥과 폐동맥의 위치가 바뀌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TGA 환자는 태어나자마자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는 3개월 된 아이라고 했잖아?’

생각이 거기에 이르는 순간,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전에 보았던 질환들이 종이 위에 그려진 미로였다면…….

지금은, 갑자기 어두컴컴한 미궁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이전 노을 누나의 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려운 선천성 심질환에,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일단 여기 있는 애들 차트부터 열어 보자.’

나는 내가 있던 NICU B cell(구역) 환자들 한 명, 한 명의 차트를 열어 보았다.

방금 이송 다녀온 아이는 심장에 전혀 문제가 없던 아이였다.

‘이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굴까, 흉부외과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는 아이는?’

한 명씩 차트를 열어 보던, 내 손가락은 한 명의 차트 앞에서 멈추었다.

<이슬기>

입원한 지 10일째로, 선천성 심기형으로 타 병원에서 이송된 아기.

그리고 질환명은…….

‘찾았다, TGA!’

차트에 기록된 진단명에는 TGA(대혈관전위) 외에도, VSD(심실중격결손), PS(폐동맥협착증)의 심기형이 적혀 있었다.

‘선천성 심기형 종합세트라니…….’

꿈에서 보았던 아이는 3개월 된 아이였는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차트의 아기는 생후 3주밖에 안 된 아기였다.

설마 이 아이의 3개월 후 미래를 보여 준 걸까?

내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인턴 쌤,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지금 다른 인턴 잡(job) 없을 텐데?"

NICU 간호사가 한참을 모니터 앞에서 고민 중인 나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아…… 잠시 인턴기록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미리미리 해 놓으려고요."

"네, 그래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간호사에게 가볍게 대답한 뒤 아이의 차트를 자세히 보았다.

38주에 4kg으로 정상 출산되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산소포화도는 60―70%로 체크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생후 이틀째 연국대병원 NICU로 전원되었고, 바로 다음 날 심장의 심방중격(atrial septum)에 구멍을 뚫는 시술이 진행된 환자였다.

협진기록에는 흉부외과의 답변도 적혀 있었다.

balloon atrioseptostomy(풍선 심방중격 구멍술) 시행 후, 3―4개월째에 op.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f/u echo(심장초음파) 소견 회의에서 공유 부탁드립니다.

이 협진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이 아이는 3―4개월 후에 수술을 받고 소아심장 중환자실에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일단 결론을 내린 후 차트를 닫았다.

‘일단 소아심장 중환자실로 가 보자. 혹시 이 아이 말고 다른 TGA 환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잉―

03PH의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리는 순간에도 긴장되었다.

혹시 지금 CPR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긴장한 채,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소아심장 중환자실의 그 베드로 걸어갔다.

‘혹시 지금 입원해 있는 아이가……?’

하지만, 아니었다.

코너 자리에는 전혀 다른 아이가 누워 있었다.

단순한 ASD(심방중격결손)로 수술받은 아이였다.

"응? 인턴 술기 대장! 여긴 웬일이에요?"

그때, 누군가 반갑게 말을 건다.

소아심장 중환자실에 있던 안경식 선생님이다.

꿈속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서글프게 울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왠지 따뜻하게 대해 주고 싶었다.

"선생님, 혹시 TGA 환자가 지금 아이씨유에 있나요?"

"응? TGA?"

생각지 못한 단어를 들었다는 듯, 안경식의 눈이 커졌다.

그는 두꺼운 안경을 추스르며 말했다.

"TGA 수술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어서, 지금 중환자실에는 없는데…… 뭐 궁금한 거 있어요?"

"아, 그럼 혹시 NICU 환자 중에 TGA 아기 있던데……."

"아, 맞아요. 걔는 일단 심장에 구멍 뚫어 놓고, 나중에 완전교정(total correction) 수술 받을 거예요."

"구멍을 뚫는다고요?"

"아하~ 우리 인턴 쌤한테는 좀 어려운 개념이겠구나!"

안경식 선생이 오랜만에 아는 내용을 말할 수 있어서 신난 모양이다.

"자, 봐 봐요. 간단히 설명해 줄게."

일단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

심장 → 폐 → 심장 → 온몸 → 심장 → 폐…….

이렇게 하나의 순환 고리로 이어져, 폐에서 받은 산소를 심장이 온몸으로 전달해 준다.

하지만, TGA(대혈관전위) 환자의 경우 몸 안에 두 개의 순환 고리가 있다.

(1)심장 → 폐 → 심장 → 폐…….

(2)심장 → 온몸 → 심장 → 온몸…….

이 두 개의 순환 고리가 서로 섞이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산소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아직 큰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작고 어린 슬기.

그래서 일단 저 순환 고리가 섞일 수 있도록 심장에 구멍을 뚫어 놓은 뒤, 아이를 좀 더 성장하고 나면 큰 수술을 시행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마 1월 말쯤 수술받게 될 거예요."

"아, 네. 그렇군요. 혹시 그럼 3개월 동안 아이는 어떤 치료를 받게 되나요?"

"음…… 잘 먹고 잘 크면 돼요. 소아과에서 계속해서 관찰할 거예요. 아이가 수술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잘 자라날 때까지!"

"아, 네 감사합니다."

1월이라…….

소아과를 돌면서 아이들과 친해지다 보니,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건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마침 내가 TS(흉부외과)를 돌게 되는 달이다. 기억해 두고 있자. 이슬기.’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 * *

"이나야, 이제 집에 가야지."

"싫어!"

"퇴원하고 집에 가는 건데 싫어?"

"고릴라 아저씨랑 더 놀 거야!"

10월의 마지막 주.

이나는 껌딱지처럼 근욱에게 찰싹 붙어 있었다.

근욱은 약속한 대로 이나와 10분 동안 놀아 주었다.

무등도 태우고, 슈퍼맨놀이도 해 줬다.

이날을 위해 근력운동을 했다는 듯, 근욱은 이나를 위해 인간 롤러코스터 역할을 했다.

"선생님, 그동안 우리 이나 잘 보살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하, 제가 뭘요. 이나가 많이 호전돼서 다행이에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에이, 아니에요."

이제 작별의 시간.

근욱도 아쉬움을 느꼈다.

정든 환자와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삼촌과 조카처럼 친해졌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병원 안에서만이다.

또 다른 인턴 잡이 빠듯하게 밀려 있는 만큼, 더 이상의 시간을 쓸 수는 없었다.

"이나야, 선생님이랑 인사해야지?"

결국 보호자가 겨우 떼어 내어, 이나는 아쉽게 뒷걸음쳐 물러나게 되었다.

삐죽 내민 입술이 서글프다.

하지만 울지는 않는다.

고집 센 악동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인 걸까?

그 토라진 모습에 근욱이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안녕, 이나야. 밥 잘 먹고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건강하고! 빠이빠이!"

근욱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뒷맛이 씁쓸했다.

유독 정이 들어서일까?

이나는 인턴생활 동안 만났던 많은 환자들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고릴라 아저씨!"

그때, 등 뒤에서 이나가 근욱을 불러 세우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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