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67화 (167/241)

#167 라이벌 매치(5)

3번과 4번.

어느새 사람들은 두 화면만 주시하고 있다.

다른 인턴들에 비해 두 사람의 속도만 유독 눈에 띌 정도로 빨랐다.

<역시 이번에도 3번이 눈에 띄네요. 그런데 4번도 만만치 않게 치고 올라옵니다!>

링 옮기기는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작은 링을 하나씩 집어 올리는 것도 어렵거니와, 그걸 다시 폴대에 꽂아 넣는 건 더 어렵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턴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와, 선한 쌤 손 빨라진 거 뭐예요?"

"감 잡은 것 같은데?"

"어떻게 1라운드 끝나자마자 감을 잡아요?"

"나도 모르지."

화면을 지켜보던 마동섭과 안경식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고작 3분 만에 저렇게 숙달될 수 있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를 맡은 홍보팀장도 흥분한 듯 말이 빨라진다.

<아~ 쉬는 시간 동안 4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두 인턴의 대결,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류명인이 처음으로 실수를 한다.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 탓일까?

폴대에 꽂아 넣으려던 링이 빗나가 데굴데굴 굴러간다.

다시 링을 그래스퍼로 주워 폴대에 집어넣지만, 그러는 동안 시간이 꽤 흘러가 버린다.

한편, 선한은 1라운드와 마찬가지로 실수가 없다.

그 작은 차이 때문에, 신선한이 역전하는 경주마처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속도를 내며 마지막 링 한 개를 폴대로 가져가려는 순간, 사회자가 외친다.

<자, 시간 종료!>

삐이익―

타이머가 멈추자 인턴들 모두가 손을 뗀다.

2라운드의 점수가 집계될 동안, 교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나 참, 생각보다 인턴들이 너무 잘해서 당황스럽네요."

"이러면 레지던트들이 부담스러워서 다음 경기 하겠나?"

"그러게요. 인턴들 경기도 흥미진진한데요?"

원래 주최 측이 생각한 건 이런 그림이 아니었다.

분명 어리바리하는 인턴들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 두 사람 때문에 경기의 성질이 바뀌고 말았다.

신선한 vs 류명인.

본선에 버금갈 정도로 치열한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곧 모니터 위로 순위가 발표되자 홀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였다.

[2라운드 순위]

1위 : 신선한 19

2위 : 류명인 16

3위 : 손예리 13

4위 : 나유진 12

…….

"와아!"

드라마틱한 역전극에, 레지던트들의 탄성이 울렸다.

류명인의 얼굴이 밀랍처럼 굳는다.

한편 1등을 한 신선한은 담담한 표정이다.

결과창을 힐긋 바라보며, 마지막 링 한 개를 못 옮긴 것에 대해서 아쉽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그 옆의 조진기의 얼굴은 완전히 썩어 버렸다.

"이런 씨……."

조진기의 이름은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꼴등이라니!

자신만만하게 치고 올라가겠다고 말한 것치고는 초라한 성적이 아닐 수 없었다.

"젠장, 내가 왜 꼴등이야?"

"못했으니까 꼴등이죠."

"뭐?"

"1라운드에서 부정행위로 순위 올렸으면 2라운드 순위는 겸허히 받아들이세요, 진기 형."

"이 자식이……."

조진기는 류명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물론 류명인은 이런 상황에서 입조심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1위를 빼앗긴 것에 대한 충격만이 가득했다.

‘다음 라운드에는 다시 이기고 만다!’

그렇게 이를 악무는 류명인이었다.

잠시라도 1위를 못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성격이니까.

한편 안경식은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

"우와, 선한 쌤 대단하네요. 첫 라운드에서는 5등이었는데 두 번째는 1등이라니!"

"놀랍네. 물론 최종 우승은 류명인이 될 것 같지만."

"어,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안경식은 기뻐하다가, 곧 마동섭의 말에 계산을 해 보고는 시무룩해졌다.

이대로라면 선한의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

첫째 판에서 ?6점 차.

둘째 판에서 +3점 차.

즉, 마지막 3라운드에서 +4점 차를 벌려 놓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그런데 과연 류명인이 그만한 점수 차를 허용할까?

"좀 전에 외과 쪽에서 하는 말 들어 보니까, 쟤는 따로 연습을 했다더라."

"그래요?"

"응. 레지던트들한테 부탁해서 제발 연습 좀 하게 해 달라고 그랬나 봐."

"와, 독한 놈일세! 어쩐지 잘하더라. 선한 쌤도 미리 만져 봤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안경식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는 한편.

대기석에 앉은 선한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무릎 밑으로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석연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선한이 저거 뭐 하는 거야?"

"쉬는 시간도 아까워서 허공에 연습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섀도복싱처럼."

"하여튼 유별난 놈이야, 저거."

마동섭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송유주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신선한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알아내고 싶은지를.

같은 부류끼리는 통한다고 하던가?

문득 송유주는, 신선한이 자신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야, 마동."

"왜?"

"지금 내가 특정 선수한테 훈수 두면 반칙이냐?"

마동섭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별일이었다.

원래 송유주는 남의 이름도 잘 못 외울 정도로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성격이다.

그런 인간이 오늘따라 웬일이래?

"……뭐, 그 정도는 해 줘야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상대는 외과에서 몇 시간이나 연습까지 시켜 줬다던데."

"그렇겠지?"

드르륵―

송유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답해하는 선한의 표정이 너무 이해가 잘 가서, 본인이 참을 수 없어진 그녀였다.

* * *

3라운드 시작 전.

나는 잠시 홀 입구로 향했다.

당직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바로 달려왔더니 목이 마르다.

꿀꺽, 꿀꺽―

복도 쪽 테이블 위에 비치되어 있던 생수를 하나 까서 들이켜자 비로소 정신이 든다.

"후우."

나는 목을 축이고 난 뒤 생각에 잠겼다.

1위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경기였지만, 이제 순위는 그다지 안중에 없다.

그보다는 새로 익히게 된 복강경/흉강경 기구를 더 잘 다루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런데…… 뭔가 답답하다.

퍼즐 한 조각이 모자란 느낌이다.

‘아직 뭔가 부족해.’

분명 어딘가 간지러운데, 그게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답답한 기분이랄까?

조금만 노하우를 습득하면 실력이 한 단계 더 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 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야."

날 부르는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송유주 선생님?"

"잠깐 와 봐."

까닥, 까닥.

송유주가 홀 입구 근처에 선 채 내게 손짓했다.

무언가 중요한 말이라도 전해 주려는 걸까?

내가 얼른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나를 삐딱하게 올려다보며 대뜸 말했다.

"손 내놔 봐."

"……손이요?"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리둥절한 와중에 일단 시키는 대로 손을 펼쳐 내밀었다.

송유주는 야생 고양이 같은 눈매로 내 손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물었다.

"너 그래스퍼 어떻게 잡아?"

"예? 그야……."

나는 손 모양을 재현해 보였다.

그래스퍼의 손잡이는 가위와 닮았다. 그러니 사용법도 얼추 비슷하다.

즉, 엄지는 위쪽 그립 안에 집어넣고, 나머지 손가락들은 아래쪽 그립에 집어넣는 것이다.

여기에서 둘째손가락만 조금 다르다. 검지로 집게 끝을 360°회전시키는 롤링 버튼을 만져야 하니까.

"검지만 따로 빼고,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손잡이 구멍 안으로 넣어서 잡습니다."

"꼭 그래야 할까?"

"……?"

"고정관념을 버려."

이상한 말이었다.

손잡이 안에 손가락을 넣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조작하라는 거지?

내가 순간 감을 잡지 못하자 송유주가 한마디 덧붙였다.

"손가락을 손잡이 안에 다 넣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선문답 중에 깨달음을 얻은 승려가 이런 기분일까?

시원한 바람이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간다.

쉬는 시간 내내 나를 괴롭혔던 가려움이 일시에 해소된 기분이었다.

"도움 됐어?"

"예, 감사합니다!"

내 인사를 다 듣지 않고, 송유주는 쿨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자, 이제 3라운드 세팅이 끝났습니다. 인턴들은 다시 자리로 향해 주세요!>

나는 송유주 선생님의 말을 곱씹으며 기구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3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기 직전까지 기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그래. 고정관념에 갇힐 필요가 없지.’

나는 앞선 라운드를 떠올렸다.

손잡이에 손가락 모두를 구겨 넣으려니 힘들었다.

3분 동안 기구를 만지고 나면, 엄지손가락의 손바닥 쪽 근육도 아팠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잡으면 어떨까?

스윽―

나는 3번 손가락을 밖으로 빼 보았다.

그러고는 손잡이의 바깥쪽에 올려놓고 움직여 보았다.

이제는 2, 3번 손가락 두 개를 앞으로 내민 것 같은 손 모양이 되었다.

"……!"

기구가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이전까지는 손가락으로 힘을 주는 게 뭔가 어색했다면, 이제는 기구와 내 손이 하나가 된 느낌이랄까?

‘이렇게 하면 기구 끝을 더 부드럽게 미세 컨트롤할 수 있겠어!’

자신감이 솟는다.

송유주의 한마디에 업그레이드가 된 기분이었다.

왜 진작 이렇게 쥐어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싶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송유주 선생님은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걸까?

나는 문득 TV에 나오는 요식업의 대가를 떠올렸다.

<어때유, 이렇게 하니까 맛있쥬?>

간단한 비법 한마디로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걸 본 적이 있다.

지금은 내가 그런 멘토링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역시 분야를 막론하고 고수들의 눈은 뭔가 다른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송유주 선생님.

<자, 마지막 3라운드 ‘오각형 자르기’는 앞선 라운드보다 걸려 있는 점수가 큽니다! 가장 어려운 라운드인 만큼…….>

사회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3라운드는 종이 자르기.

이번에 사용하는 기구는 두 가지로, 쉽게 말하자면 집게와 가위였다.

왼손에는 그래스퍼(grasper).

오른손에는 엔도스코픽 시저(endoscopic scissor).

스틱형 기구 끝에 시저(scissor, 가위)가 달려 있는 기구다.

포트에 이 가위를 집어넣고, 펜으로 그려져 있는 모양을 따라 종이를 잘라야 한다.

단순히 뭔가를 옮기는 것보다 세밀함이 훨씬 더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 이번 라운드는 무조건 빨리한다고 장땡…… 아니, 능사가 아닙니다!>

이번 3라운드의 평가 기준은 두 가지였다.

(1) 시간.

(2) 정확도.

시간의 경우 기본 점수 5점에, 2분을 기준으로 빨리 끝낼수록 10초당 1점의 점수가 주어졌다.

그리고 잘라진 오각형 모양을 교수님들이 면밀히 살펴서 각 변당 3점, 총 15점 만점으로 정확도를 평가한다.

시간뿐만 아니라, 선을 따라 자르는 정확도를 중요하게 보는 라운드.

‘왼손은 힘을 받아야 되고, 가위질을 하는 오른손의 섬세함이 핵심이니까…….’

나는 머릿속으로 이번 라운드의 계획을 세웠다.

<자, 3라운드 시작합니다!>

타이머가 울림과 동시에, 나는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마동섭과 안경식은 시합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았다.

왼손과 오른손의 조화가 이번 3라운드의 핵심 포인트.

수술을 집도하는 데 있어, 양손의 적절한 조화(coordination)는 필수적이고 중요한 항목이다.

그렇기에 이번 3라운드야말로, 외과의(surgeon)로서 기본 소양에 가장 가까운 종목이었다.

물론 종이 자르기에 있어 오각형은 쉬운 모양이지만, 그마저도 초심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 근데 쟤 오른손 기구 잡는 법 바꿨네?"

문득, 손 모양을 바꾸고 종이를 자르는 신선한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류명인 왼손잡이였나 봐요? 엔도스코픽 시저를 왼손으로 잡았네요."

"음, 그랬구나. 왼손잡이 중에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서 오른손도 어느 정도 잘 쓰게 연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지."

"그래서 복강경에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나 보네요."

어느새 스포츠 경기를 보듯 몰입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누가 이길까요?"

"팝콘이라도 사 올 걸 그랬네."

왼손에 엔도스코픽 시저를 쥐고 오각형을 자르기 시작하는 류명인.

손의 쥐는 법을 바꾸어 한결 편해진 신선한.

두 사람의 마지막 대결이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흐른다.

1분을 넘어가는 시점, 한 명의 참가자가 누구보다 빠르고 자신 있게 일어나며 외쳤다.

"저 완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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