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66화 (166/241)
  • #166 라이벌 매치(4)

    1라운드 시작 전.

    마동섭은 은근히 기대감에 차 있었다.

    그는 흉부외과 응원석에 앉은 채, 선한의 대기 중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재미있겠네.’

    솔직히 메인이벤트는 궁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차피 결과는 송유주의 우승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보다는 오프닝 매치가 훨씬 더 기대되었다.

    오늘 신선한이 인턴 리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동섭 선배, 그러고 보니 저는 선한 쌤 수술장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때요?"

    안경식의 속삭임에 마동섭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아냐? 나도 쟤 수술하는 건 한 번도 못 봤어. 근데 저번에 체스트튜브 넣는 거 보니까, 기본적으로 손은 좋은 놈인 것 같아."

    "그래요?"

    "얼굴 봐라. 수술 잘하게 생겼잖아."

    "그게 뭐예요."

    물론 농담이었다.

    마동섭은 피식 웃은 뒤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 고등학생 양송이 환자에게 처음으로 흉관을 삽입할 때.

    선한이 메스를 들고 정확한 각도로 망설임 없이 절개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주 미세한 디테일에 불과했지만, 동섭은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잠시나마 송유주의 뒤를 이을 잠재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기대했을 정도니까.

    ‘물론 내가 콩깍지에 씌어서 오버했던 것일 수도 있지. 흐흐.’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 대략이나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안경 너는 왜 참여 안 하냐?"

    "저는 아직 1년 차라 자신이 없어서…… 헤헤."

    "자랑이다 인마."

    "잠깐. 그러고 보니 동섭 선배님은……?"

    "렁티(lung transplantation, 폐이식 수술) 들어갔다 나와서 잠들어 버렸어. 신청하는 거 깜빡했다."

    그때, 두 사람 옆에 누군가 다가왔다.

    "비켜 봐."

    2연속 챔피언, 송유주였다.

    마동섭은 커다란 엉덩이를 들어 옆으로 자리를 비켜 주고 물었다.

    "어이, 챔피언. 올해도 가볍게 우승할 것 같아?"

    "모르지."

    "혹시 긴장돼서 몰래 담배 피우고 오거나 한 건 아니겠지?"

    "긴장?"

    송유주의 무심한 대답에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긴장이라는 단어가 대체 무슨 뜻이냐는 듯한 말투였다.

    "하긴 우리의 송유주가 이런 걸로 긴장할 리 없지."

    마동섭은 껄껄 웃더니 단상 앞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긴장 좀 타고 있을걸? 나도 작년에 해 봤는데 수술실 처음 들어갈 때만큼 긴장되더라고. 특히 인턴들은…… 아, 시작됐다."

    <그럼 오늘의 인턴들을 소개합니다!>

    드디어 인턴 입장이었다.

    이벤트 매치였지만, 그래도 레지던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안경식은 입 앞에 손을 모아 크게 외쳤다.

    "신선한 파이팅!"

    "야, 신선한은 지금 산부인과 인턴이잖아. 우리 과 인턴은 안중에도 없냐?"

    "에이, 인턴한테 우리 과, 너네 과가 어딨어요? 그냥 좋아하는 사람 응원하는 거죠."

    "그건 그래."

    "동섭 선배님도 어차피 선한 쌤 응원할 거잖아요."

    "인턴 파이팅!"

    마동섭은 굵고 짧게 외친 뒤 말했다.

    "나처럼 공평하게 모든 인턴들을 응원해라, 이 말이야."

    물론 마동섭의 속내는 당연히 신선한을 응원하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수많은 인턴들 중 한 명일 뿐인데 유독 정이 갔다.

    비록 이해하기 어려운 특이한 구석이 있는 친구이긴 했지만…….

    그래도, 뭐든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쩌면 정말로 곧 흉부외과의 일원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첫 미션부터 쉽지 않겠는데?"

    철인 3종 경기처럼 각 라운드의 기록을 합산해서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

    1라운드 <씨앗 옮기기>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그동안 왼쪽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씨앗 20개를 오른쪽 박스로 옮겨야 한다.

    옮긴 씨앗 숫자만큼 점수가 올라가며, 3분이 되기 전에 20개를 모두 옮기면 10초당 1점씩 추가 점수가 주어지는 규칙이었다.

    "선배님, 씨앗 집는 연습이 실제로 수술에도 도움이 돼요?"

    "도움이 되지."

    마동섭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폐 실질(lung parenchyme)은 약한 조직이다. 그래서 그래스퍼(grasper)로 폐를 잡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일(manipulation)은 흉강경 수술의 기본이다.

    이 조작법이 거칠 경우, 수술 후 폐렴이나 급성호흡곤란증후군(ARDS) 등의 합병증에 더 쉽게 노출되기까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씨앗이 튕겨 나가지 않도록 적절한 힘으로 컨트롤하는 건, 흉부외과의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즉, 아무리 예능적인 이벤트라 할지라도 병원에서 하는 대회인 만큼 엄격한 수련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3, 2, 1, 스타트!>

    곧 우렁찬 사회자의 목소리와 동시에, 인턴들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강당 앞의 모니터를 주시했다.

    나누어진 화면 위에 참가자의 번호와 각 복강경/흉강경 기계의 화면, 그리고 타이머가 표시된다.

    <아~! 시작부터 헤매는데요? 5번 인턴, 씨앗을 내다 버리는 게 아니라 옮겨야 합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잠시 웃음이 번졌다.

    역시 레지던트들에 비해 인턴들의 손은 미숙했고, 애초에 이런 그림이 나올 거라고 모두들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돌연변이 같은 녀석이 하나 끼어 있었다.

    "뭐야, 저거 3번…… 너무 빠른데?"

    오오―

    구경하던 레지던트들 사이에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심지어 교수들도 서로를 쳐다보면서 제법이라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 3번 화면의 주인공은 바로 류명인이었다.

    "와, 류명인 봐라."

    "저거 인턴 맞냐?"

    "잘하네. 쟤 학부 때도 수석이라고 하지 않았나?"

    척, 척―

    망설임 없이 씨앗들을 집어내어 정확히 옮기고 있다.

    <저거 처음 맞아? 많이 해 본 솜씨인데?>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곧, 다른 인턴들도 몇몇 속도를 내는 것이 보였다.

    1라운드가 시작된 지 1분이 지나갈 무렵부터 참가자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졌다.

    "야, 안경. 너 위기감 느껴야겠다. 특히 저 3번 류명인 말야. 인턴이 저렇게 잘하는 건 처음 본다."

    마동섭의 말에 안경식은 코를 찡그렸다.

    인턴 류명인.

    예전에 흉부외과 인턴을 돌 때 몇 번 말을 섞어 본 적은 있었다.

    분명 수재이긴 하지만,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뭔가 지독한 재수 없음의 향기가 느껴진달까?

    안경식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그가 실수하기를 바랐다.

    ‘저 류명인인지 뭔지 하는 놈보다는 차라리 선한 쌤이 더 잘했으면 좋겠는데…….’

    곧 신선한의 화면을 확인한 안경식의 눈이 커졌다.

    "어? 의외인데요?"

    4번 화면 신선한.

    그의 속도가 가장 느렸다.

    1분 30초를 지나가는 시점, 4번 모니터의 화면에서 씨앗은 7개밖에 옮겨지지 않았다.

    바로 옆의 류명인이 6―7개의 씨앗만 남겨 놓은 것을 볼 때 확실히 느려 보였다.

    "쟤, 배츠(VATS, 흉강경) 수술에 들어갔던 적 있던가?"

    문득 송유주가 말했다.

    원래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는 그녀.

    하지만 지금만큼은 선한의 화면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동섭은 관자놀이를 긁적이고 대답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TS(흉부외과) 돌 때는 없었을 텐데…… 산부인과에서 수술 어시스트 서면서도 만져 볼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 같지 않아?"

    "게다가 아까 늦게 와서 제대로 연습도 못 한 것 같던데요."

    "그래?"

    안경식이 덧붙이는 말에 마동섭은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아무리 처음이라도 그렇지 너무 느리네."

    "아무래도 오늘 성적은 별로겠는데요?"

    "내가 따로 불러서 한 번 연습시켜 줄 걸 그랬나……."

    두 사람이 한마음처럼 안타깝게 입맛을 다셨다.

    그때 송유주의 입이 열렸다.

    "글쎄. 내가 보기엔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송유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회자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아~ 씨앗이 바닥에 떨어지면 안 되죠! 그만큼 헛된 시간이 날아가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급해진 인턴들의 실수가 이어졌다.

    옮기려다 힘 조절에 실패해서, 씨앗을 바닥으로 떨어트린 인턴들이 많았다.

    반면, 선한은 실수가 없었다.

    그리고 속도도 아주 조금씩 빨라졌다.

    결과적으로, 가장 느리게 시작한 선한이 오히려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아하…… 성급하게 하기보다는 실수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나 보네요."

    "괜찮은데?"

    간단한 논리였다.

    가령, 씨앗 하나를 옮기는 데 8초가 소요된다 치자.

    중간에 떨어트리는 경우,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되고 만다.

    게다가 다시 줍는 시간까지 합치면 더욱 낭비가 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처음부터 10초 이상을 투자해서 신중하게 옮기는 것이 낫다.

    "역시 선한 쌤 똘똘하네요."

    "그래, 손 좀 느리면 어때! 연습도 실전처럼 정확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송유주는 조금 다르게 보고 있었다.

    ‘손이 느리다고?’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달까?

    송유주는 문득, <영점을 잡는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원래는 사격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사람마다 개인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때 쓰는 말이다.

    1라운드는 충분한 연습, 그리고 본격적인 시작은 2라운드부터…….

    적어도, 송유주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자, 시간 종료되었습니다~!>

    곧 타이머가 종료되고, 점수를 집계한 순위가 공개되었다.

    [1라운드 순위]

    1위 : 류명인 23

    2위 : 손예리 20

    3위 : 김유진 19

    4위 : 조진기 18

    5위 : 신선한 17

    ……

    역시 1위는 류명인.

    무려 2분 30초 만에 미션을 완료해, 다른 인턴들이 따라잡기 힘든 점수를 기록했다.

    인턴들은 다음 라운드의 미션이 세팅되는 동안 잠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야, 봤냐? 다음 라운드 때 더 치고 올라간다."

    조진기가 선한이 들으라는 듯 이죽거렸다.

    선한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해 기고만장한 표정이다.

    그의 전략은 선한과 정반대인 ‘무조건 빨리빨리’.

    그래서 씨앗을 엄청나게 흘려 대며 사람들의 웃음을 샀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꽤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

    "17개? 예전에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결국 나보다 못했네?"

    그렇게 조진기가 계속 이죽대자, 류명인이 옆에 앉으며 싸늘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진기 형, 룰 지킨 거 맞아요?"

    "뭐?"

    "제가 30초 동안 시간이 남아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부정행위 하신 것 같은데."

    "뭐…… 뭐 이 새끼야, 증거 있어?"

    조진기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편 류명인은 전혀 물러섬 없는 눈빛으로 담담히 말했다.

    "마지막에 떨어트린 씨앗 우르르 주워 담을 때 몇 개 슬쩍 오른쪽으로 넣은 거 아녜요?"

    "무, 무슨 개소리……."

    "뭐,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고요. 어차피 2라운드 때는 그런 허접한 술수는 안 통하는 미션일 테니까."

    류명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조진기는 무릎 위로 주먹을 콱 쥐었지만 당연히 여기에서 주먹질을 할 수는 없었다.

    한편, 두 사람의 사이에 낀 선한은 별반 표정 변화가 없었다.

    ‘재미있다.’

    선한은 몰입하고 있었다.

    새롭게 손에 익기 시작한 그래스퍼라는 도구가 생각보다 흥미롭다.

    처음에는 마음대로 잘되지 않던 도구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기분…….

    짜릿하고, 새롭다.

    한번 집중하면 다른 게 보이지 않는 성격.

    머릿속에는 온통 다음 라운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곧 2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인턴들은 다시 제자리로 위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휴식이 끝난 뒤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두 번째 미션은 <링 옮기기>.

    그렇다, 어린이집에 있는 그 링 옮기기의 축소판이다.

    한쪽 폴대에 쌓여 있는 링을 반대쪽 폴대로 옮겼다가, 다시 원래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고무링의 크기는 대략 엄지손톱 정도.

    콩은 반대편 박스 안에 그냥 떨어뜨리면 되었지만, 고리는 폴 안에 정확히 집어넣어야 했다.

    그래서 더욱 미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자, 한층 더 어려워진 2라운드 시작합니다!>

    오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1라운드에서 몸이 풀린 인턴들이 본격적으로 경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모니터가 두 개였다.

    기존의 3번.

    그리고 4번이다.

    3번 류명인의 능숙함은 예견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4번 화면 속 선한의 그래스퍼도 점차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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