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64화 (164/241)

#164 라이벌 매치(2)

[레지던트 상품]

―1등 : 최신식 노트북

―2등 : 캠핑용 미니빔 프로젝터

―3등 : 스마트 워치

[인턴 상품]

―1등 : 버즈팟 프로3

―2등, 3등 : 소정의 기념품

오, 괜찮은데?

생각보다 상품 구성이 본격적이다.

그중에서도, 인턴 1등 상품을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혹하고 말았다.

"이거 최신 모델 아니에요?"

"아는구나?"

"그럼요."

"하긴, 요새 젊은 친구들이 엄청 좋아한다 하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노리고 준비했지."

1등 상품이 꽤 매력적이다.

무선 이어폰.

강력한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탑재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신 기술로 불필요한 생활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제품이라 들었다.

"안 그래도 살까 고민했거든요."

"오, 그래? 평소에 음악 듣는 거 좋아하나 봐?"

"그런 건 아니구요."

나는 머쓱히 웃으며 어젯밤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소음 차단용으로 필요하다.

물론 항상 귀를 열어 놓아야 하는 인턴인 만큼, 평소에는 쓸 일이 없겠지.

하지만, 밤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드르렁 드르렁― 컥컥― 푸후―

요새 이식(transplantation) 외과 파트에서 힘들어서 그런지, 룸메이트 근욱이의 코골이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특히 잠들기 전에 근욱이가 코를 골기 시작하면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마치 응급 환자를 수송하는 헬기가 옆방에서 이착륙하고 있는데 잠들어야 하는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근욱이의 호흡기를 틀어막을 순 없으니 내 귀를 막는 수밖에.

가끔 오프(off, 비번)인 날에는 정말로 귀마개를 끼고 자기도 했다.

"마침 잘됐네. 열심히 도전해서 상품 한번 노려 봐."

"그럴까요?"

"그럼 나야 좋지. 너튜브 조회수 꽤 올라가겠는데? 벌써부터 썸네일 각 나온다. 후후후."

홍보팀장님은 본격적으로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강남역 사건으로 얼굴이 알려진 나를 써먹으려는 야심이 한가득 느껴졌다.

이미 연국대병원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에 강제로 사진이 박제당한 나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그럼 내일모레 보자고!"

홍보팀장님은 히죽 웃으며 내 등을 두드리고 바쁘게 사라졌다.

벌써부터 내가 대회에 참여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했다.

물론 안 그래도 참여할 생각이다.

대회 자체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품까지 매력적이니까.

게다가, 복강경/흉강경은 외과 계열에 지원하려는 나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마스터해야 할 테크닉(surgical technique)이다.

"도전욕 생기네."

"그쵸?"

깜짝이야.

불쑥 류명인이 내 옆에 고개를 들이민다.

"언제부터 나와 있었어?"

"방금요. 좀만 더 깐죽대다간 근욱이 형한테 얻어맞을 것 같아서 도망쳐 나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류명인의 시선은 포스터에 고정되어 있다.

역시 이런 행사에 녀석이 빠질 리가 없지.

순위 경쟁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성격이니까.

"이 대회 알고 있었어?"

"그럼요. 소식 듣자마자 첫 번째로 참가 신청했어요."

"벌써?"

"당연하죠. 제 손이 얼마나 좋은지 쇼 앤 프루브(show and prove, 보여 주고 증명함) 할 기회인데 놓칠 수 없죠. 저 이런 거 1등 못 하면 못 참는 거 형도 알잖아요."

류명인은 희멀건 얼굴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녀석의 불타는 경쟁심이 피부로 느껴진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녀석은 아직도 나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뜨거워 죽겠네. 얼굴 타겠다.

"선한이 형은 아무래도 소정의 기념품으로 만족해야겠네요. 1등은 어차피 제 거니까."

"자신감 넘치네?"

"저 류명인이잖아요."

또 시작이다.

귀엽게 봐줄래도 밉상인 건 어쩔 수 없다.

하긴 중2병스러운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이 녀석의 특징이었지.

그런데…….

승부욕이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경쟁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이겨야 한다.

"선한이 형도 당연히 참가 신청할 거죠?"

"아마도."

"저 무섭다고 피하면 안 돼요."

"우리 명인이 쌉소리 장인인 건 여전하네."

"후후…… 그럼 내일모레 봐요."

류명인은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녀석의 본모습을 본 것 같달까.

이제는 위장막도 없이 대놓고 도발을 시전한다.

그래도 음흉하게 가면을 쓰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저렇게 대놓고 싸움을 걸어오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아무튼 1등이 결코 쉽지는 않겠네.’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3달 전.

나는 흉부외과 스케줄을 같이 돌면서 류명인의 실력을 확인했다.

과연 연국대 수석.

류명인은 머리 회전이 남달랐고, 무엇보다 손이 빨랐다.

그건 분명 내가 인정하고 가끔 감탄하기도 했던 부분이다.

그러니 저렇게 자신감이 넘칠 만도 하지.

‘뭐, 그래 봤자 어차피 같은 인턴끼리 경험 없는 건 똑같으니…… 일단 조건은 동일하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막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휴게소 안쪽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야, 근욱아. 너는 그럼 밀림에서 사자 vs 호랑이 하면 누가 이길 것 같냐?"

"호랑이가 이기죠."

"사자가 이기지."

"호랑이는 앞발로 원투펀치 할 수 있거든요?"

"장난하냐, 너 사자 펀치 한 번도 못 봤어? 그리고 야생에서는 사자가 싸움 경험이 더 많거든?"

……정녕 초등학생으로 회귀했단 말인가?

두 사람의 논쟁은 이제 메시와 호날두를 넘어서 다른 영역으로 옮겨 간 모양이다.

나는 또 휘말릴까 봐 얼른 방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물론 호랑이랑 사자 얘기는 아니고.

본선에서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서로 경쟁하면, 그중에서 최강자는 누구일까?

* * *

"뭐, 올해도 우승자는 송유주 선생님이겠죠."

"역시 그렇겠죠?"

"쉿, 목소리 좀만 낮추고."

다음 날.

나와 함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던 산부인과 유정남 선생님은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나는 말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이미 재작년부터 송유주 선생님은 우승자 고정이던데……."

어젯밤, 나는 대회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연국대병원의 채널에서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들이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우승자는 2년 연속 같은 사람이었다.

―1회 우승자 : 송유주(레지던트 1년 차)

―2회 우승자 : 송유주(레지던트 2년 차)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송유주 선생의 실력은 나도 몇 번 눈으로 보아 알고 있으니까.

가끔 사람이 아니라 기계처럼 느껴질 정도랄까?

특히 흉강경은 흉부외과의 필수 도구인 만큼, 송유주 선생이 못할 리가 없었다.

물론 1년 차 때부터 4년 차 선임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을 한 건 놀라운 일이었겠지.

그야말로 소위 말하는 괴물 신인이었을 것이다.

"송유주 선생님 대단한 건 저도 알죠. 근데 혹시라도 올해 우승자는 송유주라고 했다가 천사연 선생님 귀에 들어갈까 봐……."

"천 선생님?"

"둘이 라이벌이거든요."

"아, 그래요?"

그건 몰랐던 사실이다.

둘이 라이벌이었어?

천사연 vs 송유주라니…… 언뜻 상상이 잘 안 간다.

유정남 선생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사연 선생님만 일방적으로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만요…… 어디 가서 제가 이런 말 했다고 하지 마세요."

물론 지난 대회에서 천사연 선생님도 분발했고, 성적이 꽤 좋았다.

1회 때 5등.

2회 때 3등.

레지던트 중 낮은 연차임을 감안하면 무척 높은 성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송유주라는 벽을 넘지는 못했다.

물론 3등도 잘한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천사연의 자존심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야말로 송유주 선생님을 어떻게든 이겨 보려고 칼을 갈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구요."

"칼까지 갈아요?"

"요새 당직 서실 때 밤늦게 혼자 지하에 동물실험실에 있는 연습 기계로 복강경 훈련하고 있다던데요?"

그 정도라고?

하긴, 상품이 문제가 아니다. 자존심이 걸려 있는 대결이니까.

나는 천사연 선생이 특유의 커다란 눈을 희번덕거리며 특훈을 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뭔가 스산하군…….

"근데 올해는 진짜 어떻게 될지 몰라요. 언뜻 들었는데, 룰이 조금 바뀐다고 하니까."

"그래요?"

"워낙 송유주 선생님이 밸런스 붕괴 캐릭터라서, 올해부터는 좀 다르게 진행하려나 봐요.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룰 변경이라.

여러모로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당장 내일 있을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느꼈다.

띠링―

그때, 때마침 내 폰으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인재교육 개발실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인턴 선생님들은 복강경과 흉강경의 경험이 없으므로, 대회 시작 전 30분 일찍 도착하여 연습할 기회를 드립니다. 늦지 않게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티저 영상 링크를 첨부하오니 SNS 등에 홍보 바랍니다…….

티저 영상?

이런 것도 있네.

링크 주소를 터치하자, 대회에 참여하는 네 개의 과에서 교수님들을 인터뷰한 짧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산부인과 : 양필순 교수님]

―이번 대회로 우리 전공의 선생님들의 실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산부인과 선생님들 모두 파이팅!

시작은 평범한 인터뷰였다.

양필순 교수님 특유의 차분하고 인자한 말투.

그런데, 다음부터 텐션이 본격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흉부외과 : 허준임 교수님]

―아, 뭐, 어차피 우승은 흉부외과 아닙니까? 우리 과에서 2년 연속으로 우승한 건 다 이유가 있지요.

광역 도발!

역시 젊은 교수답게 예능감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자 마치 ‘악마의 편집’처럼, 다른 과 교수님들의 난처하게 웃는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고 보니 제가 레지던트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 오른손잡이였던 저는 왼손 연습을 하기 위해서…….

삐리리릭~

비디오가 빠르게 넘어간다.

그리고 자막으로 <투머치 토커>라고 뜬다.

홍보팀장님 정말 준비 많이 하셨구나.

동영상 편집이 잘되어 있어서 예능 프로그램처럼 재미있게 느껴졌다.

흉부외과의 말이 끝나자, 다음은 외과의 차례였다.

[외과 : 엄서용 교수님]

―올해야말로 외과의 자존심을 살린다! 다들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하면 우승할 수 있다! 아자, 아자 파이팅!

외과 엄서용 교수님은 오랜만에 본다.

시종일관 변 선생에게 훈계를 하면서 ‘너 때문에 내 머리가 더 빠진다’고 한탄하던, 정이 무척 많은 분이었다.

이렇게 화면으로 다시 보니 반갑군.

그리고 압권은 마지막 비뇨기과였다.

[비뇨기과 : 전입선 교수님]

―안녕하세요. 연국대병원 비뇨기과 교수이자 사회인 야구단 4번 타자 전입선입니다. 작년에는 우리 비뇨기과 선생님들이 순위권에 들지 못했지요.

무뚝뚝한 표정인 그는 병원 앞뜰에서 야구 배트, 소위 빠따를 들고 있었다.

부웅, 부웅!

그는 위압적으로 배트를 몇 번 휘두르더니 카메라에 대고 짧고 굵은 멘트를 던졌다.

―얘들아, 웃을 때 잘하자. 파이팅!

"푸하핫. 이거 홍보팀에서 대본 짜 준 거 같은데요?"

같이 영상을 보던 유정남 선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네.’

교수님들이 나서서 벌써부터 열심히 경쟁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물론 나는 특정 과에 속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덩달아 의욕이 솟는다.

나는 오늘 당직 후 내일 오프.

오늘 밤에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컨디션 난조가 예상되긴 하지만…….

‘별일 있겠어?’

갑자기 마지막 날에 일이 미친 듯이 몰려온다든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 * *

그런데, 짜잔.

그 일이 놀랍게도 실제로 일어났다.

나의 산과 마지막 스케줄은 헬 파티였다.

"응급 씨섹 두 개 시간 격차 두고 열릴 거니까, 인턴 선생님 준비 잘해 줘요!"

"응급실에 운드(wound, 절개 부위 상처) 터진 환자 드레싱해야 되는데 가서 준비 좀 해 줄래요?"

갑자기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나의 마지막 당직은 쉴 새 없이 바빴다.

며칠간 평화로웠던 일상의 빚을 갚는 느낌이랄까?

역시 <요새 좀 편하군> 이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아침에 출근한 미선 누나는 나를 보고 놀랐다.

"선한아 너 오늘은 왜 이렇게 초췌해 보이니?"

"간밤에 일이 좀 많았어요."

"오늘 술기 대회 있다 그러지 않았어?"

"일단 인계부터 하고요."

그야 당연하다.

본업을 소홀히 하면 안 되니까.

꼼꼼하게 놓치는 것이 없도록 확실히 인계를 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8시 45분.

"어뜩해…… 빨리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네, 저 얼른 가 볼게요."

"잘하고 와, 파이팅!"

"파이팅!"

지각이다.

나는 서둘러 대회가 열리는 <히포크라테스 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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