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해피 버스데이(19)
"교수님, 여기 에크모 라인이……!"
내 예민한 감각에 느껴진 것은 바로 에크모 라인이었다.
드르르―
대퇴부 혈관에 들어가 있는 카테터(catheter, 관)가 기계로 연결되는 에크모 라인.
그 라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칫 놓칠 수 있는 미약한 신호였다.
하지만 촉을 바짝 세우고 있었기에, 나는 누구보다 먼저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 이렇게 라인이 떨리는 것은 환자의 이상을 나타내는 신호일 수 있다고 했는데……!’
물론 나는 인턴이다.
이렇게 절박한 수술 도중 목소리를 낼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느낀 것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은 환자의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
"라인이, 뭐?"
"라인이 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곧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흉부외과 팀은 물론이고, 마취과 교수도 머리를 내밀고 에크모 라인을 살피기 시작한다.
"……!"
필드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조재용 교수와 유정남 선생의 손도 잠시 멈춘다.
곧, 에크모 기계를 만져 보던 허준임 교수가 지체 없이 말한다.
"채터링(chattering, 에크모 라인의 떨림)이 있는 게 맞습니다."
"아, 그래요?"
"서킷(circuit, 에크모 기계와 카테터를 통칭하는 말) 쪽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에크모 플로우(ECMO flow, 에크모를 통한 혈류 순환량)도 조금씩 줄고 있는 걸 보니 볼륨이 없는 것 같네요."
볼륨, 즉 혈액량의 부족.
내 생각이 맞았다.
노을 누나는 출혈로 인해 몸 안의 혈액이 부족해졌고, 에크모 라인에서 이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곧 마취과에서 외친다.
"알겠습니다. ABGA 결과 나오는 것 보고, 추가로 RBC(적혈구) 트랜스퓨전 하겠습니다."
트랜스퓨전(transfusion, 수혈).
즉 출혈로 소실된 환자 몸의 혈액량을, 수혈을 통해 메워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마침 적절한 시점에 의사결정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미리 공부한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수술에 들어오기 전, 에크모에 대해 최대한 알아 둔 것이 도움이 될 줄이야.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혈액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새지 않도록 틀어막는 것이 급선무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역시 출혈이 쉽게 잡히지 않죠, 조재용 선생님? 옥시토신(oxytocin, 자궁수축제)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천천히 줄 수밖에 없네요……."
지혈에 필요한 자궁수축제이지만, 노을 누나의 혈역학적 위험성 때문에 빠르게 주입할 수도 없는 상황.
조심스러운 마취과의 말에, 조재용 교수가 진땀을 흘리며 대답한다.
"맞습니다…… 에크모 넣는다고 했을 때 걱정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수술실은 극장(theatre)이라는 단어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곳에 정해진 각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든 예측 바깥의 일이 일어나는 곳.
그렇기에 의사들은 다양한 상황에 최선을 다해 노련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나와 유정남 선생님에게 말했다.
"바이탈(vital, 생체 징후)은 마취과와 흉부외과에 맡기고, 우리는 지혈에 집중하자. 정남아 이거 실 잡고. 인턴은 여기 석션."
"네, 교수님."
"네!"
우리는 다시 출혈이 잡히지 않고 있는 수술 필드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인턴이 센스가 좋네. 잘 봤어. 에크모 라인 떨리는 것도 바로 알아채고."
허준임 교수의 나지막한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물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겨를은 없었다.
나는 산부인과 소속으로서 정노을 환자의 지혈술(bleeding control)에 집중했다.
산부인과, 마취과, 그리고 흉부외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정노을 환자의 생존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지혈 과정과 봉합이 끝났다.
복부와 자궁 안에 배액관이 삽입된 채 노을 누나는 수술방을 나올 수 있었다.
드르륵―
나는 카아웃을 진행했다.
노을 누나가 누워 있는 베드는 수술실을 빠져나와 복도 쪽으로 미끄러져 움직였다.
5시간.
노을 누나의 수술에 소요된 시간이었다.
아침에 시작된 수술이 끝날 무렵, 시계는 이미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단 고비를 넘기긴 했는데.’
수술 결과?
뭐라 말하기 어렵다.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아직은 좋다 / 나쁘다로 명확히 나눌 수 없다.
송유주 선생이 말했던 대로, 어쨌든 지금은 수술 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조금 전 교수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 정도면 나가서 굳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봉합 마무리하고 ICU(중환자실)에서 보겠습니다.>
산부인과의 소견.
일단 지혈이 어느 정도 되었다.
그러니, 나머지는 환자 본인의 응고기전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바이탈은 안정적인 것 같은데, 쓰는 약이 많아요. 심장이 아직은 임신 전만큼 돌아오지 못한 것 같아요.>
마취과의 소견.
한마디로, 걱정된다.
지금은 약물의 도움으로 괜찮아 보이지만, 아직 심장은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지금 모니터링되는 것만 보면 에크모 위닝(weaning, 제거)은 아이씨유에서 며칠 보다가 해야 될 것 같네요.>
<일단 지금 깨울 순 없을 것 같고…… 환자 재운 채로 나가서, 상태가 안정적인지를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흉부외과, 순환기내과의 의견이 이어졌다.
그렇게 모두의 동의하에 수술이 종료되고 난 후.
노을 누나는 흉부외과 중환자실로 이송하여 경과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전쟁 같은 수술이었어…… 5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네.’
드르르―
베드를 민다.
늘 하던 일인데, 손에 와닿는 감각이 유난히 묵직하게 느껴진다.
그야 ICU 베드에 에크모 기계가 올려져 있기 때문에 당연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마음이 무겁다.
수술이 끝나자, 비로소 마음 한편에 밀어 두었던 여러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괜찮을까?’
나는 걱정스레 노을 누나를 바라보았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머리는 헝클어진 채 수술모가 씌어져 있다.
입에는 인공호흡기가 꽂혀 있고, 이마에는 수술 도중 부착되었던 모니터링 기계의 자국이 선명하다.
몸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수액 라인들이 연결된 인퓨전 펌프는 베드의 한쪽 끝에서 7개가 겹쳐서 탑을 만들고 있다.
……인퓨전 펌프가 이렇게 높은 탑을 쌓고 있는 것은 처음 본다.
그만큼 노을 누나에게 현재 각종 약들이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제발 이겨 낼 수 있기를.’
지잉―
수술실 문이 열린다.
베드는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가 중환자실로 향한다.
산부인과, 마취과, 흉부외과 교수와 레지던트들이 환자의 주위에서 함께 동행한다.
나는 맨 뒤에서 베드를 밀고 있었다.
그때, 중환자실 문 앞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우리 노을이 맞죠?"
"노을아!"
노을 누나의 가족들이다.
우리가 수술방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가족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5시간이라는 시간이 이들에게는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노을 누나와 아기 모두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베드 옆으로 달려와 울먹인다.
"우리 아내, 괜찮은 거 맞죠, 선생님? 지금은 정신이 안 돌아온 거 같은데……."
남편이 걱정스레 묻는다.
수술에 대한 설명은 교수님께 이미 한 번 들었겠지만, 또 묻고 싶은 것이 가족의 심정일 것이다.
"아이씨유 자리 정리되고 나면 면회시켜 드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유정남 선생님이 가족들에게 간단히 설명하는 동안, 노을 누나의 베드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중환자실에서의 케어가 노을 누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거야!’
출산 후 6개월 동안 산모의 심장(cardiac output)과 온몸의 저항(SVR)은 임신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출산 후 첫 2주 동안 대부분이 진행된다.
즉, 출산 후 2주가 혈역학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시기라는 말이다.
곧, 마취과와 흉부외과 사이에 인수인계가 이어졌다.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는 주체가 흉부외과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산부인과와 순환기내과도 계속 치료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본인의 생명력이다.
이겨 내야 한다. 어떻게든.
아직 산모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 *
흉부외과 중환자실.
노을 누나에게 여러 가지 중환자실 세팅이 이루어진다.
쉬익 쉬익―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숨을 쉬면서, 각종 약물로 잠들어 있는 노을 누나.
위이잉―
바로 옆에서는 에크모 기계가 조용히 돌아가고 있다.
‘포스트옵(post―op, 수술 후) 코스가 문제없어야 할 텐데…….’
초조한 마음으로 세팅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허준임 교수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야~ 우리 구면이지?"
그렇게 말하는 교수님의 눈매가 휘어진다.
"네, 예전에 징계위원회 때……."
"그래그래, 강남역 사건! 그때도 참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오늘 수술실에서도 멋있었어! 인턴이 제 할 일만 하기도 정신없을 텐데 에크모의 이상까지 눈치채다니~!"
허준임 교수.
그는 평소처럼 말이 많은 타입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 같달까?
수술실 안과 밖의 모습이 확연히 구분된다.
나는 겸손히 대답했다.
"저를 기억해 주실 줄 몰랐습니다."
"아이고, 무슨 소리야. 흉부외과에서 요새 자네 이름 모르는 사람 없을걸? 그리고 사실 풍이 형한테도 자네 얘기를 들었거든."
생각하지 못했던 이름을 듣자 순간 반가움이 일었다.
"풍 선생님이요?"
"그럼~ 대한민국 흉부외과가 얼마나 좁은지 알면 놀랄걸? 나 풍이 형이랑 친해! 이 수술모를 누가 만들어 줬을 것 같아?"
그렇게 히죽 웃으며 자신의 수술모를 가리켰다.
토끼 무늬.
그러고 보니, 풍 선생님의 미술 작품에서 시그니처가 토끼였잖아?
물론 그것을 미술 작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허준임 교수님의 특이한 모자에는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수술모를 처음 받았을 때가 떠오르는구만. 그때가 아마 10년쯤 전이었을 거야. 나는 풍이 형이 행운의 선물이랍시고 만들어 준 이 수술모의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이 수술모를 쓰고 들어간 첫 수술에서부터……."
재잘재잘.
한동안 투머치 토킹이 이어진다.
……이분, 정말 말이 빠르다.
귀에서 피 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두 사람은 매우 친하다는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수다쟁이와 허풍쟁이의 콜라보레이션이랄까?
생각해 보니 꽤 재미있는 콤비라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죽상이네. 환자 걱정하고 있는 거야?"
"아, 네."
나는 얼른 말했다.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환자의 복부와 자궁에 넣고 나온 배액관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피가 흘러나왔다.
큰 출혈은 잡혔지만, 미세한 출혈은 수술 부위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허준임 교수님이 말했다.
"자네, 혹시 모쏠의 딜레마라는 거 들어 봤어?"
"예?"
갑자기 뜬금없이?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는 아니고, 그보다는 수수께끼를 내는 듯한 말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