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59화 (159/241)

#159 해피 버스데이(18)

‘잠깐…… 블리딩(bleeding, 출혈)이 심상치 않은데?’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를 인턴인 나조차도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출혈량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복부를 열고 자궁을 향해 접근해 가는 과정을 석션(suction) 하면서 도왔다.

아니나 다를까, 교수님이 골치 아프다는 듯 조용히 혼잣말을 뱉었다.

"역시 헤파린(heparin, 피를 묽게 하는 약)을 쓰니 다르구나……."

그의 말대로다.

이전에 봤던 제왕절개 수술에서는 피가 나지 않던 곳에서도, 쉽게 피가 흐르는 것이 눈에 저명하게 보였다.

집도의인 교수 입장에서는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는 상황일 것이다.

"보비."

지지직―

보비(bovie coagulation, 전기소작 수술기구)로 지혈을 시도하지만, 전기로 태울수록 오히려 피는 더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곧 교수가 내뱉은 말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피가 좀 나네요. 트랜스퓨전(transfusion, 수혈) 필요할 수도 있겠어요."

"안 그래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산부인과 교수의 말에, 마취과 교수가 드렙(drape, 수술포) 위로 머리를 내밀며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적혈구(RBC)와 혈소판(PLT) 등의 혈액제제가 이미 폴대에 걸려 있었다.

"나중에 닫을 때가 걱정인데…… 일단 아기부터 꺼내자."

조재용 산부인과 교수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환자의 자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궁은 기본적으로 근육으로 이루어진 장기(organ)이며, 혈류 공급이 충분한 장기이다.

그래서 당연히 출혈경향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출혈 부위를 거즈로 눌러 가면서 안쪽으로 빠르게 접근한 교수는, 자궁을 가르기 시작한다.

"정남이 여기 잡고, 인턴은 여기 석션 부지런히 해라!"

"예!"

"네!"

나는 유정남 선생과 호흡을 맞추어 손을 움직였다.

그동안 교수는 자궁벽을 메스(mes, 칼)와 시저(scissor, 가위)를 사용해 갈랐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기가 있는 곳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자궁 밖으로, 아기가 머리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

아기의 작은 얼굴이 보인다.

그동안 저산소증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산소농도가 극히 낮은 곳에서 간신히 숨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기가 겪은 어려움이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 어려움을 32주 동안이나 견뎌 냈다.

물론 저산소증 때문에 하위 10%에 가까운 성장밖에 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을 견뎌 낸 이 아이가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나왔습니다!"

산부인과 교수의 말과 함께, 아기는 세상의 빛을 보며 자궁 밖으로 완전히 나왔다.

‘작다…….’

아기를 본 내 첫 느낌이었다.

몇 번의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와 보았지만, 내가 여태까지 본 가장 작은 아기였다.

체중이 1.5kg은 될까?

아니, 그보다 작을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덜컥 걱정이 되었다.

저 손바닥만 한 몸 안에 있는 심장과 폐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그렇게 32주 만에 자궁 밖으로 나온 정노을B(Baby)의 생사는 이제 <소아과>의 손에 달려 있었다.

삑―

소아과 팀에서 타이머를 누른다.

미숙아에게 세상에 나온 후 1분은 골든 타임(golden time)이다.

아기의 생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타악―

산부인과 교수가 아기를 꺼내자마자 탯줄을 자른다.

그리고, 바로 옆에 준비 중이던 워밍베드(warming bed, 아기의 체온유지를 위한 베드)에 올려놓는다.

곧 소아과 팀 3명이 워밍베드에 올려진 아기를 둘러싸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슴에는 심전도 단자가, 오른손에는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붙여진다.

또한, 아기의 체온 유지를 위해 모자를 씌운다.

1초, 1초…….

타이머가 흐르는 동안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나는 수술 필드에서 지혈 중인 산부인과 교수를 도우면서, 한쪽 귀를 열어 두었다.

‘이전에 본 미래에서 결국 아기는 하늘나라로 갔었지…… 제발 아기가 괜찮아야 할 텐데.’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조마조마하게 소아과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울음이 없다는 이야기는 자발호흡이 매우 약하다는 뜻이다.

"……."

수술실에 긴장이 감돈다.

소아과 팀의 손은 더욱더 빨라지고 있었다.

아이의 체온을 올려 주고, 머리맡에 작은 이불을 받쳐서 기도(airway)를 확보해 준다.

입안에 있는 이물질(secretion)도 제거해 준다.

그런데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다.

"이니셜 하트레이트(initial HR, 최초 심박수) 84입니다!"

심박수(heart rate)는 아이의 생사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수치 중 하나다.

정노을B의 심박수는 84회.

성인에게는 정상 수치겠지만, 갓 태어난 아기에는 현저히 적은 숫자다.

적어도 100회는 넘어야 정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흉부외과, 순환기내과, 수술방 너스 모두의 초조함이 초 단위로 점점 심해진다.

<아이야, 어서 울음을 터트려 줘라.>

수술방에 있는 모두가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다는 것을,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마스크!"

소아과 교수는 지체 없이 마스크를 쥔다.

양압환기(positive pressure ventilation)를 통해 아이의 숨길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바쁘게 흘러간다.

"30초 지났습니다!"

타이머를 재고 있던 소아과 팀원이 외친다.

퓨슈욱― 퓨슈욱―

1.5kg이 채 되지 않는 아기에게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작은 마스크로 공기가 투입되고 있다.

째깍― 째깍―

어느덧 타이머에 기록되는 시간은 40초를 넘어간다.

하지만 모니터에서 관찰되는 아이의 심박수는 여전히 100회를 넘지 못하고 있다.

‘아기야, 제발.’

나는 간절히 마음으로 외쳤다.

1초가 1분 같다.

그렇게 얼마가 더 흘렀을까.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의 입술이 바싹 말라 가고 있을 때.

―으… 으앙….

아기의 입에서, 작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

안도, 환희.

여러 감정이 번진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 동안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한 듯하다.

아기가 호흡을 시작하자, 함께 숨을 죽이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겨우 숨을 내쉰다.

타이머에 시간이 1분 10초를 넘어가는 순간, 드디어 아기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으앙, 으아앙!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저 작은 아이가 저렇게 울 수 있다니…….

현장에서 경험하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롭다.

32주의 미숙아, 하위 10%의 성장을 했던 아기도 저렇게 크게 울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나에게 느껴지는 기쁨의 감정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아기가 울었다는 것은…….’

산모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일단 아기는 극단적인 응급 상황을 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울음이 터진 아이가 흉부압박(CPR)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아기의 심박수 역시 120회까지 올라간다.

"휴, 다행이네요. 아기는 괜찮아 보이는 거 아닌가요?"

허준임 교수가 가장 먼저 입을 연다.

수술방에 있는 모두가 안도하는 마음일 것이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수술실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곧 소아과 교수가 소아과 팀원에게 말했다.

"APGAR 스코어 8점은 되겠네. 아까 1분 시점에서는 3점으로 기록해 둬."

8점!

예상보다 좋다.

소아과에서 들려온 그 말이 반갑기 그지없다.

아프가(APGAR) 점수란, 신생아의 건강을 빠르게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모습(Appearance).

―맥박(Pulse).

―찡그림(Grimace).

―운동(Activity).

―호흡(Respiration).

각 다섯 항목에 최대 2점을 주고 점수를 합산한다.

0점에서 10점까지.

총합 7점 이상이라면 정상이며, 3점 이하라면 치명적이다.

지금처럼 8점이라면 세이프…… 아니, 충분히 건강한 편에 속한다는 뜻이다.

태어난 지 5분에 시행된 APGAR 스코어 8점, 산소수치(pre―ductal spO2)는 85%.

즉, 생각보다 아기의 상태는 좋다!

분만장 안의 인큐베이터에서 아기를 조금 더 지켜보던 소아과 교수가 외쳤다.

"다행이에요. 아기 괜찮을 것 같아요, 정노을B NICU(신생아 중환자실)로 바로 이송하겠습니다!"

지잉―

수술실 문을 열고, 소아과 팀은 인큐베이터에 아기를 담아서 바로 나갔다.

물론 아직 100퍼센트 안심할 수는 없지만…….

이곳은 연국대병원.

아마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저 정도 미숙아들을 다뤄 본 경험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잘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믿는다.

‘좋아, 아이 쪽은 일단 한시름 놓았고…….’

이제부터는 2차전.

산모 혼자의 고독한 전쟁이다.

소아과 인원이 빠지고 난 뒤, 한쪽이 휑해진 수술실에서는 산모의 태반을 꺼내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평소처럼 태반을 꺼낸 뒤 봉합을 하면 된다.

"……."

그런데.

산부인과 교수님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자궁의 겉 부분은 물론이고, 자궁 안쪽에서도 피가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손댔던 곳은 모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뭐 해? 좀 더 당겨 봐!"

조재용 교수의 목소리가 격양된다.

자궁 안쪽 태반을 떼어 낸 자리에서 피가 차오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시야를 밝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

출혈 부위를 보비로 몇 번을 지지고, 수처(suture, 봉합)를 해 보지만, 건드리는 족족 피가 계속 난다.

그는 마취과 쪽에 외쳤다.

"옥시토신(oxytocin, 자궁 수축제) 주시겠어요? 이거 너무 물렁해서 더 지혈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자궁은 원래 딱딱해야 하는데 물렁물렁해지면 피가 계속 날 수 있다.

그래서 자궁 수축제를 주고, 마사지를 해서 지혈을 도우려는 것이다.

"네, 약 들어갔고, 수혈 진행 중입니다! 아직 헤모글로빈 수치는 괜찮아요."

"에크모 플로우(ECMO flow)도 아직까지 문제없습니다."

흉부외과와 마취과에서는 아직 까지 큰 문제를 나타내는 신호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삑, 삑―

하지만, 모니터에서 관찰되는 혈압은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고, 에크모 플로우(flow)도 떨어지고 있었다.

이 수술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정신 차리자.’

예상했던 상황이다.

흔들리면 안 된다.

지금 노을 누나는, 벼랑 위의 좁은 철로를 위태롭게 달리는 고장 난 열차나 다름없다.

철로 위의 작은 돌멩이 하나 때문에 벼랑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아주 작은 사인이라도 놓치지 않아야…….

"……?"

그때.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잔뜩 예민해진 감각.

필드에서는 자궁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지혈이 한참일 때, 내 허벅지 쪽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드렙(drape, 수술포)이 펼쳐져 있는 공간이었다.

필드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그 느낌은 점차 확실해졌다.

‘이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금은 인턴부터 교수까지, 모두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한 몸으로 움직이는 유기체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급히 고개를 들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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