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해피 버스데이(17)
송유주 선생이 수술의 시작을 알린다.
첫 단계는 VA―ECMO 삽입.
환자의 V=Vein(정맥)에서 피를 뽑아서, A=Artery(동맥)으로 넣어 주는 에크모를 삽입하는 것이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송유주 선생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번 VA 에크모를 넣을 때 사용하는 혈관은 페모랄(femoral, 대퇴부)이라고 했었지.’
스윽―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초음파 프로브(probe, 탐촉자)가 환자의 허벅지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그러자 바로 앞 모니터에 허벅지를 지나가는 동맥과 정맥의 동그란 혈관 단면이 나타난다.
저 혈관들이 바로 에크모 카테터(catheter, 관)가 들어갈 곳이다.
"너, 이거 구분할 줄 알아?"
문득 수술방의 침묵을 깨고 송유주 선생이 내게 묻는다.
그야 알고 있다.
에크모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를 읽어 두기도 했으니까.
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예. 프로브로 눌렀을 때 눌리는 게 정맥이고, 동그란 모양이 유지되는 게 동맥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송유주는 말이 없다.
맞다는 의미일 것이다.
곧, 그녀의 주사기가 망설임 없이 환자의 피부를 뚫고 지나간다.
푸욱―
실린지에 선홍색 동맥혈이 차오른다.
혈관 정확히 가운데 바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초음파를 통해 보인다.
송유주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술기는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온다.
"셀딩거 테크닉(seldinger technique) 잘 봐 둬라."
"예."
<아는 만큼 보인다>.
나는 그 말을 체감 중이었다.
어리바리했던 지난 3월 첫 턴과는 다르다.
반년이 흐른 지금, 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셀딩거 테크닉.’
1953년에 스웨덴의 셀딩거라는 의사에 의해 최초로 고안된 기법이다.
첫째. 주사기로 혈관을 뚫는다.
둘째. 혈관에 가이드와이어를 거치한다.
셋째. 주사기를 빼고 가이드와이어를 따라 크고 굵은 카테터를 집어넣는다.
이 방법으로,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도 카테터를 혈관에 삽입할 수 있다.
에크모뿐만 아니라, 혈관에 접근하는 각종 시술에 다양하게 사용되는 현대의학의 필수 테크닉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옆에서 보니 확실히 알겠어.’
같은 고수라도 결이 조금씩 다르다.
장풍 선생이 거침없는 파도 같았다면, 송유주 선생은 마치 냉철한 기계 같달까.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주사기 구멍으로 가이드와이어를 정확히 밀어 넣었다.
뱀처럼 돌돌 말려 있던 철사가 일자로 펴지면서 동맥을 따라 들어간다.
‘바이탈은…….’
나는 슬쩍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노을 누나의 바이탈은 문제가 없다.
‘그래, 내가 본 꿈에서도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어…… 이제부터는 내가 보지 못한 전개야!’
송유주 선생은 곧이어 허벅지 동맥의 길을 넓혀 놓으면서 말했다.
"헤파린 주세요."
"네. 헤파린 들어갑니다."
헤파린(heparin), 피를 묽게 하는 약.
에크모에 혈전이 달라붙지 않고, 정상 작동하기 위해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약이다.
"15Fr. A 카테터 주세요."
"여깄습니다."
15Fr. 의 굵기(약 0.5cm)를 가지는 에크모 A 카테터를 수술방 간호사가 전달한다.
쑤욱―
송유주 선생이 가이드와이어를 따라서 A 카테터를 부드럽게 집어넣는다.
그 후, 교수를 한 번 쳐다본다.
"음."
흉부외과 허준임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말이 굉장히 많은 분이었던 것 같은데, 막상 수술실에서는 과묵한 스타일인 모양이다.
"꼼꼼히 봤지?"
"아, 네."
송유주의 말에 나는 얼른 대답했다.
순식간이었다.
뭐가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막힘없이 진행되는 통에 ‘꼼꼼히 봤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송유주 선생의 정확한 움직임과, 동맥에 들어가는 에크모 카테터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였다.
당분간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3월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CPR 상황에서 에크모 삽입을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그동안 나도 인턴 과정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이겠지…… 이제 내가 앞으로 뭘 배워야 할지 감이 좀 오는 것 같아.’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곧바로 다음 과정이 이어졌다.
"반대쪽 베인(vein, 정맥) 할 수 있지, 안경?
"네, 선배님!"
안경식 선생이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왼쪽에서 송유주 선생이 A 카테터를 해결했으니, 이제 다음은 반대쪽 정맥에 V 카테터를 넣을 차례다.
"인턴 보고 카테터 끝 잡고 있으라 하고."
최대한 나에게 경험을 많이 주려는 것일까?
송유주 선생이 나를 보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까딱 움직인다.
나는 반대편으로 이동해 안경식 선생을 도왔다.
V 카테터는 더 길기 때문에, 누군가 카테터 뒷부분을 들고 있어 줘야만 했다.
"CPR 상황도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해."
"네, 알겠습니다."
안경식이 착실히 대답한다.
물론 송유주의 말대로, CPR 상황에서 가슴 압박을 하며 진행되는 에크모 삽입은 훨씬 힘들겠지.
지금은 그보다는 수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안경식 선생은 시작부터 어설프다.
"저, 선배님. 이게 먼저 들어가는 거였죠?"
안경식 선생이 혈관에 가이드와이어를 넣어 놓은 뒤, 송유주에게 물어본다.
송유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한 모습이다.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나는 초조하게 그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곧 안경식 선생이 가이드와이어를 따라서 V 카테터를 집어넣는다.
쑤욱― 쑤욱―
그런데, 아까 송유주 선생이 하던 시술 과정과 너무 다르다.
‘……뭔가 이상한데?’
느낌이 싸하다.
단순히 고수와 초보의 차이일까?
카테터 뒤를 들고 있던 나에게까지, 무언가 계속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안경식 선생도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거 왜 이러지……."
그는 몸을 살짝 환자 쪽으로 기울이며, 손에 힘을 더 준다.
억지로 카테터를 밀어 넣으려 하자, 카테터가 S자로 휘기 시작했다.
나는 흠칫 놀랐다.
‘안 돼, 이건 부드럽게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야!’
조금의 미숙함도 지금 이 수술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옆에서 카테터를 들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안경식 선생의 팔을 잡았다.
"안경, 가만있어."
그때 송유주 선생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반대쪽으로 바로 건너온다.
"비켜 봐."
곧 손을 바꾼 송유주 선생이 안경식을 대신해 V 카테터를 밀어 넣기 시작한다.
"이 사람 베인(vein, 정맥)이 너무 질긴데…… 아이젠멩거 신드롬 환자라서 그런가."
송유주는 혼잣말을 뱉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송유주 선생이 부드럽게 V 카테터의 삽입을 완료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네 잘못 아니야, 안경. 환자 혈관이 일반 환자들이랑은 좀 달라."
송유주는 곧이어, 환자의 양쪽 허벅지에 연결되어 있는 카테터에 에크모를 연결했다.
"교수님, 에크모 온(ON) 하겠습니다."
"그래."
"ECMO ON!"
송유주의 말과 함께 에크모가 작동한다.
위이잉―
곧 환자의 피가 순환하기 시작한다.
V 카테터를 통해 나온 검붉은 피가, 에크모 기계에서 산소를 받아 선홍색 피로 변하여 A 카테터를 통해 환자에게 들어간다.
모니터상에 관찰되는 산소수치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이제 환자는 몸 바깥에 심장과 폐를 대신해 주는 기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즉, 수술 중 환자의 심장이 멈춰 버릴 걱정은 없게 되었다.
‘일단 첫 번째 위기는 넘긴 건가…….’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 진땀을 흘리던 안경식 선생이 내게 속삭였다.
"인턴 쌤, 땡큐…… 중간에 안 잡아 줬으면 실수할 뻔했네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만약 응급 상황에서 에크모를 넣으려 했다면, 이 과정에서 실수가 생겼을 수도 있다.
가령 급하게 삽입하느라 혈관이 찢어진다든가.
수술 도중 그런 일이 생긴다면 큰일이었겠지.
여러모로 에크모를 미리 넣는 것이 상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로우 문제없고, 에크모 잘 도는 것 같네요. 이제 인덕션(induction, 마취유도) 하시죠."
허준임 교수가 말했다.
이제 흉부외과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마취과의 시간이다.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내삽관) 하겠습니다."
전신마취가 시작된다.
환자의 목 안의 기도로 e―tube가 들어가고, 인공호흡기가 연결되려 한다.
"……."
긴장되는 순간이다.
내가 꿈에서 본 미래에선, 바로 이 시점에서 <심부전(cardiac failure)>이라는 큰 문제가 생겼으니까.
과연, 어떻게 될까?
나는 신중한 눈길로 마취과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몇 분 후.
"인덕션 잘 끝났고, 이제 산부인과 수술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취과 교수가 말했다.
역시 에크모 덕분일까?
인공호흡기가 연결된 후에도, 다행히 바이탈 사인은 안정적이었다.
교수님들끼리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확실히 벤트(ventilator, 인공호흡기) 연결하고 나니까 PAP(폐동맥혈압) 높아지네요. 우심실도 힘들어하는 것 같고."
"에크모 넣고 시작해서 다행이에요, 이거 진짜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났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뭐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에크모 넣고 하기를 잘한 것 같네요."
"저도 동의합니다."
다들 그런 분위기다.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교수님들이 주고받는 말이, 내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좋아. 두 번째 위기도 무사히 넘어갔고…….’
그때 맞은편에서, 송유주 선생이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힐긋 바라보았다.
<너 뭐야?>
그렇게 묻는 듯하다.
그야, 의아할 만도 하다.
수많은 경험을 쌓은 교수들마저, 실제로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으니까.
고작 인턴인 내가 이런 상황을 미리 알기라도 하듯 의견 제시를 했던 것이니, 미스터리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그런 눈빛으로 화답했다.
촉이 좋은 송유주 선생이니만큼, 나중에 날 추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별 상관 없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미래를 본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지금은 수술에만 집중하자!’
수술실 베드 옆에 서 있는 주인공들은 이제 산부인과 팀으로 바뀌었다.
<레지던트(R3) 송유주 ― 레지던트(R1) 안경식― 인턴(DI) 신선한>의 흉부외과 팀에서.
<교수(Pf.) 조재용 ― 레지던트(R2) 유정남 ― 인턴(DI) 신선한>의 산부인과 팀으로.
"인시전(incison, 절개) 들어갑니다."
산부인과의 턴.
조재용 교수의 외침과 함께 본격적인 씨섹(c―sec, 제왕절개) 수술이 시작되었다.
나는 제2조수의 위치에서 평소처럼 아미(Army, 수술기구)를 들고 수술보조를 했다.
스윽―
교수의 메스가 산모의 배를 가르고, 자궁을 향해 접근하면서 빨간 피가 주위에 흐르기 시작했다.
"……."
처음 본다.
아는 사람의 몸에 칼이 들어가는 모습은.
하지만 내 집중력은 평소와 다르지 않다.
물론 수술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심란했지만…….
지금 이곳은 필드.
드렙(drape, 수술포)이 펼쳐진 순간부터 사사로운 감정은 밑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오직 한 명의 의사로서 수술보조에 전념을 다할 뿐이다.
"석션(suction)."
"예."
교수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교수의 손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복부 근육 사이를 가르고 들어가, 자궁을 열고 들어가려 한다.
늘 보던 제왕절개 수술이다.
하지만, 이전에 보아 오던 수술과는 무언가 달랐다.
"음……!"
하지만, 이전에 보아 오던 수술과는 무언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