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해피 버스데이(16)
수술 당일.
결전의 날이다.
출근하여 병동 루틴 일을 하고 있던 나는, 문득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선한 쌤!"
"아, 유 선생님."
산부인과 유정남 선생님.
평소보다 살갑게 다가오는 모습이다.
그는 내 어깨를 응원하듯 주물렀다.
"정노을 환자 씨섹(c―sec, 제왕절개), 17번 방에서 첫 수술로 있는 거 알죠?"
"네."
"지금 환자, 중환자실에 있거든요? 10분만 있다가 카인(car―in) 할 때 같이 내려갑시다!"
표정이 씩씩하다.
내 사정을 알고 있기에, 걱정을 덜어 주려는 듯한 말투였다.
"수술 잘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감사합니다."
역시 다정한 사람이다.
유정남 선생님이 병실로 다른 환자를 보러 간 사이, 미선 누나가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선한아, 가족 수술은 아무리 명의라도 칼을 쥐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너 괜찮겠어? 가족 같은 분이라며."
"네, 괜찮아요. 저는 인턴으로 어시스트 들어가는 건데요, 뭐."
나는 걱정 말라며 대답했다.
내가 본 미래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수술장에 함께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10분 뒤,
유정남 선생님과 나는 3층 중환자실을 향했다.
"이 시간에는 엘리베이터 늦게 오니까, 계단으로 갑시다."
타닥―
우리는 3층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응급 수술 때문에 어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유정남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혹시 정노을 환자 수술 플랜이 어떻게 되나요? 어제 회의에서 결정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저녁까지만 해도 확실히 듣지 못했어서요."
유정남 선생님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며 대답한다.
"일단 우리 환자니까 우리가 카인 할 거고. TS(흉부외과)에서 에크모 넣은 다음, 우리 쪽에서 씨섹(c―sec, 제왕절개수술) 진행할 거예요."
"아, 네."
겉으로는 무표정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다행이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됐어.’
송유주? 천사연? 김뱀? 아니면 노을 누나?
누구의 목소리가 이 결정을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처음 보았던 미래와는 다른 미래가 펼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바뀐 미래에서 노을 누나와 아기가 문제없으리라는 법은 없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잘 대처하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다졌다.
내가 바꾼 물줄기의 종착지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니까.
컨디션 관리는 철저히 해 두었기에, 지금 내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다.
‘아이젠멩거 환자의 분만 케이스는 빠짐없이 찾아보았고…….’
정말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찾아보았다.
케이스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든 위험이 낮은 방향으로 바꿔 놓았으니…….
이제 나는, 인턴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그때, 3층으로 이어지는 철문을 열면서 유정남 선생님이 물었다.
"아마 TS랑 마취과랑 다 ICU(중환자실)로 올 거라서 정신없을 수 있어요. 이런 대형 조인트(joint, 합동) 수술 처음이죠?"
"네, 맞습니다. 방해되지 않게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나는 꿈에서 시장통같이 사람이 북적였던 수술방을 봤었지만, 적당히 대답했고 우리는 중환자실에 들어섰다.
지잉―
ICU의 문이 열렸다.
‘와아…….’
나는 잠시 경탄했다.
꿈에서 보았던 수술방보다 더욱 정신없었다.
원래 중환자실의 특성상 베드와 베드 사이가 멀고, 넓은 공간에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지금 중환자실은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환자 한 명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수도 있구나.’
기존의 중환자실 회진을 돌던 팀에 중환자실 간호사들.
거기에 이전 예지몽에서 보았던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마취과 팀들이 하나둘 도착하여 환자 주위를 서성였다.
나와 유정남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노을 누나 베드까지 도착했다.
"노을 누나."
"선한아."
우리는 짧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노을 누나의 손을 살짝 잡았다.
꾸욱―
내 손가락을 쥐는 그녀의 손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진다.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가슴이 바늘로 쿡 찌르듯 아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신선한 쌤."
뒤돌아보니, 흉부외과 안경식 선생님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송유주 선생님한테 얘기 들었어요. 역시 우리 인턴 선생님 대단해. 논문까지 싹 다 찾아보고."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추켜세운다.
"아닙니다. 저, 송유주 선생님은 어디에?"
"지금 허준임 교수님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을 거예요. 교수님은 수술실에서 에크모 준비……."
그때, 마취과 선생님이 외쳤다.
"자, 정노을 환자 들어갈게요."
이제 시작이다.
나는 중환자실 베드의 고정하는 부분을 풀고, 베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르르―
평소의 카인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다.
마치 대통령이 탄 차를 호위하는 경호원들처럼, 마취과 선생님과 산부인과 선생님이 옆에 붙어 있다.
그동안 노을 누나는 말없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 여보!"
"노을아!"
환자가 중환자실을 나오자, 중환자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편과 가족들이 노을 누나에게 다가온다.
"여보, 잘하고 와. 알겠지? 조금만 있다 다시 보자, 응?"
남편이 노을 누나의 손을 붙잡고 말한다.
"응, 여보."
이 짧은 대화에도 남편의 눈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이를 지켜보는 내 눈시울도 붉어진다.
‘꼭, 꼭…… 다시 볼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그때, 또 한 명이 울면서 노을 누나의 베드에 달라붙는다.
"아이고, 노을아."
아, 저분은…….
노을 누나의 엄마.
오랜 세월이 지나 흰머리가 늘었지만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스크를 쓴 나는 알아보지 못하시는 것 같다.
"엄마, 잘하고 올게."
"노을아, 그래. 노을아, 내 딸……."
어머니는 목이 멘다.
그저 울먹이며, 딸의 이름만을 안쓰럽다는 듯 부를 뿐이다.
그 목소리에, 참고 있던 노을 누나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고 만다.
하지만, 긴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 환자분, 수술실 들어가겠습니다."
짧은 배웅이 끝난다.
어느새 우리는 수술실 입구에 도착하고, 가족들을 뒤로한 채 베드는 수술실 로비로 향한다.
수술실 입구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환자가 불안정(unstable)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중환자실에서 모든 확인 과정이 이루어진 노을 누나다.
그렇게 노을 누나가 누워 있는 베드는 지체 없이 17번 방으로 향했다.
지잉―
17번 방 문이 열렸다.
수술실은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꿈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다.
에크모 기계.
인큐베이터.
북적거리는 인파들…….
모든 장면들이 마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노을 누나는 조심스럽게 수술실 침대 위로 옮겨졌고, 무영등 아래에서 마취 가스로 살짝 잠들기 시작했다.
* * *
수술실에 긴장이 흐른다.
첫 번째는 마취과의 시간.
아이젠멩거 환자인 만큼, 각종 모니터링 기계가 노을 누나의 몸에 복잡하게 부착되었다.
EKG(심전도)
A―line(동맥혈압)
CVP(중심 정맥압)
PAP(폐동맥혈압)
Core body temperature(중심체온)
Cardiac index(심장박출지수)
…….
인턴인 나는 마취과 선생님을 도우면서 놀랐다.
이렇게 많은 모니터링 기계를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놀란 눈으로 모니터링 기계를 쳐다보고 있는 내 뒤로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런 수술마취 처음 보죠? 흉부외과 오시면 매일 볼 수 있어요."
안경식 선생님이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건다.
노을 누나의 생사가 걸려 있어,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와 달리 안경식 선생님은 여유가 있었다.
CPR이 발생하는 지옥 같은 미래를 안 봤으니까 당연하겠지.
"안경,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차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송유주였다.
내가 찾아가서 부탁한 대로, 허준임 교수님께 말해 주었을까?
마취 진행 중인 환자를 바라보는 송유주의 아무 감정 없는 표정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송유주 선생님의 뒤로,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잔뜩 그려져 있는 앙증맞은 수술모자가 눈에 들어온다.
‘저분은…….’
4월에 징계위원회에서 보았던 그 트레이드 마크 수술모의 주인공, 허준임 교수였다.
나는 눈을 살짝 마주치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허준임 교수는 내 인사를 봤는지 못 봤는지 환자의 모니터링 화면과 심초음파 화면만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자, 이제 준비는 다 됐습니다."
마취과 교수님이 외쳤다.
이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안경식 선생과 송유주 선생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환자의 포지션을 잡고, 양쪽 허벅지 쪽에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흉부외과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소독을 마친 송유주가 손을 씻으러 나가려다가 나를 슥 한 번 쳐다본다.
"……?"
나는 영문을 모르고 송유주 선생님과 눈을 마주했다.
곧, 송유주 선생이 허준임 교수와 몇 마디를 나눈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너, 에크모 넣는 거 손 씻고 들어와서 볼래?"
"네?"
"왜, 이제 흉부외과 관심 없냐?"
그렇게 말하며 삐딱하게 나를 쳐다본다.
"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미리 손을 씻고 들어온 안경식 선생이 드렙(drape, 수술 포)을 펼치는 동안, 나와 송유주 선생님은 개수대에 나란히 서서 손을 씻기 시작했다.
흉부외과를 돌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이렇게 수술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나란히 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솨아아―
물을 틀어 놓은 채, 그녀는 말없이 손과 팔을 스크럽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손과 팔을 스크럽으로 씻기 시작했다.
"에크모를 넣고 씨섹이 안전하게 잘 끝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응, 그래야지."
짧은 대답 후에 정적이 흐른다.
탁―
그녀는 무릎으로 개수대의 흐르는 물을 끄면서 입을 연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수술 후가 더 중요해."
"수술 끝나고 에크모가 돌고 있는 상태로 나가게 되나요?"
"이 환자는 수술 끝나고 흉부외과 아이씨유(ICU, 중환자실)로 간다. 환자 안정적인 거 확인하고 에크모 뽑을 거야."
수술과 동시에 중환자실 케어는 흉부외과에서 맡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마음 단단히 먹어라. 수술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으로 어제 노을 누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선택>.
미래를 바꾼 것 또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니, 그 결과를 내 눈으로 지켜보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잠시 후, 노을 누나는 깊지 않게 마취가 된 상태로 에크모 시술을 받게 되었다.
허준임 교수가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송유주 선생과 안경식 선생이 정노을 환자의 양쪽에 섰다.
나는 송유주 선생의 옆에 서서 일단 과정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정노을 환자 ECMO insertion & c―sec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puncture needle(주삿바늘) 주세요."
송유주 선생의 한마디와 함께 에크모 삽입(ECMO insertion)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