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해피 버스데이(13)
‘시작됐다!’
나는 감각을 집중했다.
이젠 예전처럼 당황스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반갑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힌트를 찾는다면, 내 힘으로 흐름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집중하자. 중요한 단서가 나올지도 몰라.’
파앗―
눈앞이 어둡다.
시간 감각이 흐려진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기묘한 느낌과 함께, 나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여기는?’
낯익은 수술실이다.
오늘은 저번처럼 이상한 공간이 아니라, 곧바로 내가 아는 곳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른 풍경에 흠칫 놀랐다.
‘뭐야, 수술실 안에 사람이 왜 이렇게 바글바글해?’
과장을 좀 보태서 시장 바닥 같다.
환자의 머리 쪽에 위치하는 마취과의 공간.
평소보다 훨씬 많은 모니터링 기구들이 환자로부터 연결되어 있다.
모니터링 라인들이 어지럽게 지나가는 좁은 공간에, 5―6명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마취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워 있는 환자 주변으로 모자와 마스크 쓴 사람들 열댓 명이 서 있다.
‘……수술실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건 처음 보는데?’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루에 백 건이 넘게 이루어지는 수술 중에서도, 엄청나게 어려운 수술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가뜩이나 좁은 수술방인데, 사람들 사이로 평소에 흔하게 보지 못하던 기계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 기계들은…….’
에크모(ECMO).
그리고 신생아용 인큐베이터(incubator)까지.
미숙아, 혹은 출생 때 이상이 있는 아기를 키우는 의료기기다.
아기를 바로 인큐베이터에 받아 가기 위해 들어온 소아과 팀 3명도 보였다.
‘에크모와 함께하는 미숙아 출산. 이건 분명 노을 누나의 수술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벽에 붙어 있는 보드판을 바라보았다.
정노을
F/31
C―sec (PRN. ECMO insertion)
역시 예상대로다.
나는 수술 정보를 확인한 뒤 조심스레 필드 쪽으로 다가갔다.
지나치는 얼굴들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산부인과 팀.
수술방의 스크럽 널스들.
흉부외과 팀, 심장초음파를 보러 들어온 순환기내과 팀 등…….
그리고 그 가운데.
무영등이 비추는 수술방 베드 위, 노을 누나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누워 있었다.
"……."
쉬이익―
마취 가스가 마스크를 통해 투입되고, 노을 누나는 스르르 잠이 든다.
환자 위로 하늘색 드렙(drape, 수술 시 덮는 소독 천)이 펼쳐지고 난 뒤, 먼저 필드에 접근하는 건 흉부외과 팀이었다.
"펑쳐 니들(puncture needle, 주삿바늘) 먼저 주세요."
수술실의 온도를 더욱 낮추는 듯 서늘한 목소리.
송유주 선생님이다.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가느다란 체형과 눈매만 보고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에크모를 넣은 채 수술을 하려는 건가?’
스윽―
송유주가 가이드와이어(guide―wire, 에크모를 넣기에 앞서 혈관에 길을 만들어 놓는 철사)를 혈관에 집어넣는다.
모든 진행 과정이 매끄럽다.
그런데, 이어지는 상황은 내가 예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송유주 선생님은 가이드와이어를 동맥과 정맥에 넣어 두기만 했다.
"가이드와이어 넣어 놓고, 여기 거즈랑 아이오반으로 덮어 놓을게요."
"네, 거즈랑 아이오반 여기요."
덮어 둔다?
오고 가는 대화들로 미루어 볼 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결국 에크모는 사용하지 않은 채 수술을 시작하기로 했구나!’
문제의 <갈림길>.
그중, 교수님들은 보수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대신 언제라도 방향을 틀어, 에크모를 빠르게 삽입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두기로 한 모양이다.
역시 연국대병원의 교수들답게, 어쩌면 가장 안정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자 이제 인덕션(induction, 마취 유도)이랑 인투베이션(intubation, 기관내삽관) 시작할게요."
이번엔 마취과의 차례다.
인투베이션이 시작되는 지금, 환자의 바이탈은 아직까지는 안정적이다.
"NM blocker(마취약) 들어갑니다."
"e―tube 주세요."
필드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수술방 안의 많은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숨죽여 지켜본다.
그런데, 마취심도가 올라가고 전신마취가 진행하면서, 환자의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세츄레이션(saturation, 산소포화도) 떨어집니다."
이 시각, 환자의 바이탈(vital, 생명)을 쥐고 있는 것은 마취과.
모두가 긴장한 눈으로 알람이 울리는 환자 모니터와 마취과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다.
‘잠깐. 저번 회의에서, 전신마취에 들어가면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마취과 교수님이 말했었는데…….’
마취과 쪽에서는 예상했다는 듯 환자의 약을 조절한다.
그러고서 마취과 선생님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인공호흡기를 환자에게 연결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갑자기 환자 모니터에서 알람이 더 강하게 울린다.
띠띠띠―
"혈압 60대까지 떨어집니다."
모두의 눈이 커진다.
혈압이 곤두박질친다.
그와 함께 폐동맥 혈압 등 여러 가지 모니터링 수치들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산소수치가 떨어지고, 혈압은 이미 50대까지 떨어져 있다.
태아 심박수(fetal heart rate) 역시 90까지 떨어진다.
"fetal distress(태아의 생명 적신호) 심한 거 같아요!"
"PAP 너무 높은데……."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혈압은 40대까지 떨어진다.
결국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직전의 상태까지 온 것이다.
"ECMO 넣어야겠어요. 16Fr.―24Fr. 주세요!"
"일단 epi 들어갑니다!"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외치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수술방은 아수라장이 된다.
"컴프레션(compression, 흉부 압박)!"
"네!"
누군가 기민하게 움직여, 발판을 가져와서 그 위에 올라간다.
저건…… 내 모습이다.
세컨드 어시스턴트의 자리에 서 있던 <꿈속의 나>는 환자의 가슴 중앙에 손을 얹고 압박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필사적으로 노을 누나의 가슴을 눌러 혈액을 순환시키려 하고 있다.
그동안, 흉부외과 허준임 교수와 송유주는 환자의 양쪽에 선다.
내가 가슴 압박을 하는 중에, 미리 넣어 놓았던 가이드와이어로 에크모(ECMO) 삽입을 시작했다.
모니터의 알람 소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약물을 투입하는 마취과, 에크모 삽입과 이를 도와주는 스크럽 널스들…….
수술방 안은 혼란 그 자체다.
이 모든 광경을, 관찰자인 나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산모와 아기들 모두 괜찮을까……?!’
가뜩이나 산소공급이 부족한 상황.
1분 1초라도 심장이 멈춘다면 모체와 아기에게 치명적인 손상이 생길 수 있다.
지금 이 사건이 어떤 결과로 흘러갈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곧, 아수라장이 된 수술방이 어두워지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 * *
장면이 바뀐다.
중환자실 앞 복도.
고요한 적막감이 감돈다.
그늘이 떨어지는 곳에, 두 사람의 인영이 드리워지고 있다.
"선생님, 우리 아내 의식은 돌아왔나요? 뇌 손상이 있을 수 있다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그렇게 묻는 것은 노을 누나의 남편이다.
안 그래도 핼쑥하던 얼굴이 이제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져 있다.
그러자 맞은편에 선 산부인과 교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은 생체 징후 안정화가 우선입니다. 중환자 의학과 교수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드리겠지만……."
"……."
"워낙 수술 전부터 심장이 힘들어하고 있었어서, 확실히 좋아진다고 말씀드리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남자는 안경을 벗었다.
손이 파르르 떨린다.
얼굴을 감싸 쥔 양손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몸을 들썩이며 한참 동안 오열을 참던 남자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우리 아기도 결국 그렇게 보냈는데…… 아내까지 그러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란 말입니까……?"
<그렇게 보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교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 소식은 소아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로서는 최선을 다해 보았지만…… 죄송합니다."
남자는 더 듣지 못했다.
그는 차가운 복도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간신히 참고 있던 슬픔을 게워 내듯 울음을 터트렸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텅 비어 버릴 것 같은 슬픈 오열이었다.
* * *
"선생님, 괜찮으세요?"
파앗―
나는 정신을 차렸다.
다시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병원 복도가 보인다.
노을 누나의 남편이 내 옆자리에 앉아,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나는 목소리를 내려 했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둑―
눈물이 뺨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는 차가웠지만,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제멋대로 눈물이 흘렀다.
나는 팔을 들어 얼른 눈을 닦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아는 환자분이라서 감정이 격해진 모양이네요."
"예……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자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내게 고마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수술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그렇게 거짓말을 한 뒤 혼자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단에 걸터앉아 남아 있는 눈물을 짜내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우."
……진정하자.
나는 차가워진 머리로 내가 보았던 상황을 정리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은 마음이 아팠지만, 차라리 끝을 알게 되니 생각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대로 가면 안 돼.’
수술은 실패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최악의 결과였다.
‘CPR 상황이었어도 에크모가 빨리 돌았으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내가 본 미래의 단편만으로는 뭐가 문제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급박한 상황에서 시행된 에크모와 출산의 결과는 처참했다.
산모도, 아기도 둘 다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면, 이 대참사는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자. 아직 포기하기엔 일러!’
나는 어제 있었던 회의 과정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임신 32주 상태>.
더 늦게 혹은 빨리 분만을 하게 해야 할까? 이건 아니야.
<전신마취>.
척추마취로 질식 분만을 해야 하나? 이건 더 아니야.
그리고 <에크모>…….
그때 내 머릿속에 번뜩 생각이 하나 지나갔다.
‘만약, 처음부터 에크모를 넣고 출산을 진행한다면?’
허준임 교수도 마지막까지 에크모에 대해서 고민했었다.
산모에게 위험할 수 있는 에크모를 쓰지 않고도, 분만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보았다.
결국 필연적으로 에크모를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쓰는 것이 훨씬 낫다.
에크모를 미리 넣고 분만을 진행한다면, 적어도 CPR이 일어나는 것은 막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아기가 산소공급을 못 받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그래, 이 방법이 최선이야!’
내가 할 일이 생겼다.
목표가 좁아지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런데 이미 한쪽 방향으로 가고 있는 교수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지.’
답을 찾을 것이다.
어떻게든.
여태까지 인턴 생활을 하면서 쌓았던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라도, 이 미래를 바꾸고 만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노을 누나의 수술까지, 앞으로 36시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