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53화 (153/241)

#153 해피 버스데이(12)

<한 가지 방법>.

허준임 교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인 다른 교수님들은 이미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선생님, ECMO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ECMO(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에크모).

에크모는 체외막 산소화장치로, 최근에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의료기기다.

우리 몸 안의 혈류를 바깥으로 빼내서 산소를 보충한 뒤, 다시 몸속으로 넣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사람의 심장과 폐를 대신할 수 있다.

한마디로 몸 바깥에 인공적인 심장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 미래를 보았던 환자도, 흉부외과의 에크모 처치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에크모라…… 헤모다이내믹(hemodynamic, 혈역학) 하게 무너지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해 줄 수 있겠네요."

"그렇죠, 거기에다가 태아에게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산부인과와 소아과에서 반가움을 표했다.

어찌 보면 간단한 해법이다.

Q. 심장이 힘들면?

A. 기계로 잠깐 심장을 대신하면 되지!

특히 소아과의 입장에서는, 저산소증으로 발달이 저하된 태아에게 적절한 산소공급을 해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허준임 교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 그런데 이 에크모라는 녀석이 꼭 만능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양날의 검이란 말이에요, 이거."

<양날의 검>?

나는 귀를 기울였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기관총처럼 정신없이 빨랐다.

"VA―ECMO를 사용하게 되면 heparin을 써야 할 것이고, 분명 bleeding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젠멩거 환자는 hematocrit이 높아서 thrombosis 생기기 쉬우니까, 에크모 과정에서 thrombosis로 고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어요. 한다면 Fem―fem으로 해야 할 텐데……."

너무 빨라!

입에 모터를 단 듯한 말이 한참을 이어진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에크모를 넣는 게 반드시 좋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결국 또 악마의 줄다리기인 것이다.

← : 혈전

→ : 출혈

만약 에크모라는 기관차를 타면, 오른쪽 출혈 방향으로 과하게 기울어질 수 있다.

만약 제왕절개 수술 후 지혈이 안 되면, 이는 환자의 생명을 강하게 위협하게 된다.

그러자 반가움을 표했던 교수님들도 고민에 빠졌다.

"그렇네요, 이 환자 객혈하는 거 보면 혈전 잘 생기는 것 같은데, 헤파린(heparin, 피를 묽게 하는 약)을 안 쓸 수도 없고……."

"수술 중에는 피가 잘 굳어야 하는데…… 에크모가 안전하게 돌게끔 하고 혈전증을 막으려면, 피가 잘 굳어서는 안 되고…… 진퇴양난이군요."

곧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각 과에서 보는 시선은 서로 조금씩 달랐다.

가령, 태아의 건강을 생각하는 소아과에서는 에크모의 사용을 반겼다.

하지만 수술을 집행해야 하는 산부인과 및 다른 과에서는 만약의 사태로 산모가 나빠질까 걱정이 앞섰다.

‘갈림길이다.’

고무줄을 당기듯 팽팽한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곳에 모여 있는 의료진들 모두 거대한 갈림길 위에 놓여 있다.

정답이 뭘까?

알 수 없다.

수십 년씩 의료현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어 왔던 교수님들조차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였다.

"그동안 우리 병원에서 산모에게 에크모를 넣고 씨섹(c―sec, 제왕절개)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요?"

조심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허준임 교수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알기로, 우리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음."

전례가 없다.

그 한마디에, 다들 일제히 보수적인 태도로 돌아갔다.

"허준임 교수, ECMO를 스탠바이(standby, 대기) 해서 수술하는 방법은요?"

마취과 교수가 차선책을 던졌다.

일단 에크모 없이 시작하고, 수술 도중 나빠질 경우 재빨리 에크모를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 두자는 의견이었다.

어찌 보면 가장 합리적인 중용의 대책이었다.

"뭐, 그런 방법도 있죠! 언제라도 에크모를 넣을 준비를 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에크모를 넣고 분만을 진행할지…… 이것 참, 저도 말하기 어렵네요."

허준임 교수는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젊고 도전적인 성격.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환자의 목숨을 건 도전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유의 낙관적인 말투와는 달리, 그 역시 이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내일까지 고민해 보는 것으로 하고, 이틀 뒤를 일단 분만 날짜로 정해 놓겠습니다."

산부인과 교수의 말에, 순환기내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저도 다시 한번 환자 폐동맥 저항이랑 압력을 살펴보도록 할게요."

ECMO를 넣고 분만할 것인가, 아니면 ECMO 없이 분만을 할 것인가.

장단점이 모두 존재하는 어려운 문제였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회의가 끝난 후.

텅 빈 회의실을 정리하는 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각 과에서 머리를 맞대 의논한 뒤 선택지가 정리된 것은 큰 진전이었다.

하지만 그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릴진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선한아, 괜찮아? 환자가 지인이라 걱정 많이 되겠다……."

함께 회의실을 정리하던 미선 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괜찮다는 듯 쓰게 웃고는 의자를 들어 올렸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 * *

"선한아. 안 무거워? 괜찮아?"

10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팔을 걷어붙인 채 커다란 여행 가방을 계단으로 내리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추운 줄도 몰랐다.

"내가 옮겨도 되는데."

"됐어요, 누나 약골이잖아요."

"너 은근히 나 놀린다?"

노을 누나가 웃으며 눈을 흘겼다.

나는 웃지 않았다.

솔직히, 어린 마음에 조금 심통이 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계속 보아 왔던 누나와 헤어진다는 게 섭섭하고 아쉬웠다.

‘유학이라니.’

사실 축하할 일이었다.

해외대학 편입을 위해 그동안 노을 누나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통번역가를 목표로 삼은 누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아무튼 노을 누나는 앞으로 착실하게 나아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짐을 택시에 싣고 난 뒤, 노을 누나가 내게 말했다.

"미안해. 너 수능 볼 때까지 끝까지 책임 못 져서."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노을 누나는 약속대로 최선을 다해 나를 가르쳐 주었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은 단순히 공부뿐만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는 법.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는 법.

한 번 목표로 삼았던 것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법까지.

노을 누나는 빙긋 웃더니 내 손을 잡고 씩씩하게 악수했다.

"선한이 화이팅! 꼭 목표로 했던 것 이루자!"

"네, 꼭 의사 될게요."

"응, 믿고 있을게."

"그리고……."

나는 머뭇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나는 치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만약 나중에 아프면 다른 병원 가지 말고 저한테 와요. 제가 의사 되면 다 치료해 드릴게요."

"푸하하!"

노을 누나는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내가 여태까지 본 그녀의 표정 중 가장 큰 웃음이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고, 노을 누나는 웃느라 눈물까지 훔쳤다.

"선한아, 나 좀 설렜다?"

"놀리지 마요, 안 그래도 부끄러우니까."

"나 평생 아플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우리 든든한 선한이가 있으니까."

노을 누나는 그 뒤로도 한참 웃더니, 내 달아오른 볼을 토닥였다.

"잘 지내."

내가 본 노을 누나의 모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철없을 때 했던 약속이었지만, 나는 내가 했던 말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한다.

포기하지 말자.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자.

* * *

D―2.

수술 이틀 전 밤.

나는 잠시 복도에 서서 가족들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뭐? 노을이가?!>

선도 누나는 내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비단 둘째 누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은 모두 노을 누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소식 못 듣고 있었는데…… 그렇게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노을이가?>

"맞아."

그러자 수화기 맞은편에서 물기에 젖은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은 소식이 멀어졌다 해도 어릴 때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 작은누나도 충격이 클 것이다.

<면회 갈게.>

"아니야, 면회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노을 누나는 더 이상 고위험 산모실에 있지 않았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으니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이다.

중환자실 면회는 오직 직계가족만 가능하며, 이미 가족들이 한 차례 방문한 후다.

<그럼 수술 끝나면 소식 전해 줘. 금방 갈 테니까.>

"알겠어."

나는 전화를 끊고 복도 의자에 걸터앉았다.

‘수술 끝나면’이라…….

과연 그때 노을 누나가 면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일까?

"선생님."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노을 누나의 남편.

안경을 쓰고 착실하게 생긴 중년의 남자로, 며칠 동안 면도를 못 했는지 수염이 거뭇했다.

"잠시…… 옆에 앉아도 될까요?"

"아, 예."

나는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남자는 정중하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내 옆에 앉았다.

부인이 중환자실에서 심각한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저, 선생님."

"예?"

"……제가 잘못한 걸까요?"

대뜸 물어 온 말이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위험한 줄 진작 알았으면 절대 임신을 하자고 안 했을 겁니다."

"……."

"아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말렸더라면…… 아니, 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심장검사를 받자고 했더라면…… 저는 나쁜 남편인 걸까요……."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뺨을 감쌌다.

그 옆에서, 나는 잠시 말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제가 산부인과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산모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미안하다는 말이요."

남편의 동공이 흔들렸다.

"노을 누나는 책임감이 강하니까, 분명 속으로는 자신이 누구보다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

"남편분에게도 그렇고, 특히 아이에게 미안하겠죠. 아이가 배 속에서 저산소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나는 말을 끝낸 뒤 기다렸다.

그러자 남편이 내 말에 담긴 뜻을 깨달은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렇겠네요…… 지금 제가 죄책감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요. 제일 힘든 건 제 아내일 텐데."

"예, 내색하지는 않아도 그럴 겁니다."

"……."

"미안해하지 마시고, 힘을 주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내가 웃으며 건넨 말에, 그의 눈빛에 조금 의지가 돌아오는 듯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던가.

남편 역시 노을 누나를 닮아 의연한 구석이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흔들림 없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 큰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선생님, 수술 방법에 대해서는…… 에크모라는 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하던데, 맞나요? 교수님한테 설명을 듣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서요."

그렇게 물으며 불안해한다.

그야 당연하다. 환자에게는 늘 정보가 부족한 법이니까.

게다가 이건 심지어 전공자들에게도 어려운 내용들이니, 잠깐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는 이해가 힘들 것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에크모를 사용하고 안 하고가, 꼭 어느 쪽 방향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교수님들이 내일 결정하실……."

나는 그에게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그때.

파앗―

시야가 점멸했다.

복도가 어두워지고, 내 눈에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교수들조차도 알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미래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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