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해피 버스데이(10)
"제일 큰 문제라니…… 선배님, 그게 뭔데요?"
"뭘 것 같아?"
송유주는 그렇게 물으며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앞에 아주 쉬운 정답이 있지 않냐고 묻는 듯한 말투다.
안경식은 버벅거렸고,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를 내뱉었다.
"임신."
"……!"
"배 속에 아기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아, 이 환자분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다고 했었죠?"
안경식은 아차 하며 혀를 깨물었고 송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제는 임신이야."
임신(pregnancy).
단순히 ‘배 속에 아기가 있다’라는 말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산모가 아이를 배 속에서 키우는 동안, 온몸의 많은 부분들이 격한 변화를 겪는다.
그중 하나는, 온몸의 저항(systemic vascular resistance)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근육 괴물이 된 폐 vs. 저항이 떨어진 온몸.
<통로>의 갈림길에서, 혈류는 더욱더 폐보다는 온몸으로 향하게 된다.
피의 흐름은 당연히 저항이 낮은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으니까.
즉, 산소 없는 피가 온몸으로 더 잘 가게 되는 것이다, 폐를 거치지도 않고.
그래서 임신이 진행될수록 산모는 낮은 산소 때문에 점점 더 힘들어하게 된다.
"으아, 큰일이네요…… 배 속에 애까지 있는데 온몸에 산소가 제대로 배달이 안 된다니."
"문제는 더 있어."
"예?"
"지금 이 시간 가장 힘들어하는 장기가 어디일 것 같아?"
송유주는 펜 끝으로 안경식의 가슴 언저리를 가리켰다.
바로 심장.
아기를 배 속에서 키우기 위해, 산모의 심장은 본래 일하던 힘(cardiac output)에서 40% 증가된 파워를 내야 한다.
심장근육이 강화되고, 더 빨리 뛰게 되며, 더 많은 피를 심장에 담았다가 한 번에 내뱉게 되는 것이다.
"헤엑…… 40퍼센트나요?"
안경식의 입이 벌어졌다.
나도 놀랐다.
하긴, 두 생명을 보존해야 하니 심장이 얼마나 열심히 일해야 할까?
나는 입술을 뜯으며 송유주의 말을 곱씹었다.
"심장에 공급되는 산소는 줄어들고 있는데, 카디악 아웃풋(cardiac output, 심박출량)은 40%나 늘려야 되는 거네요……."
"월급은 줄이고 밥도 안 주면서, 야근은 더 시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기가 차서 묻는 우리의 말에 송유주가 덧붙였다.
"뭘 놀라? 끝이 아니야."
여기서, 분만을 할 때는 다시 한번 최대 50%까지 심장이 파워 업을 해야 한다.
자궁이 수축할 때 더 많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심장에게는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가혹한 테스트나 다름없다.
"멀쩡한 사람도 힘들어하는 게 분만이야. 그런데 만약 지금 이 환자가 분만을 시도하면 심장이 어떻게 되겠어?"
안 그래도 힘든 심장이다.
그런데, 더 가혹하게 쥐어짜는 순간…….
여태까지 그나마 겨우 버텨 오던 녀석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심장 : 나 더 이상 못 하겠어 ㅜㅜ>
심장이 파업하면?
심정지(cardiac arrest).
CPR 상황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분만 도중 심장이 멈춘다는 것은…… 산모의 목숨도, 태아의 목숨도 보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아이젠멩거 증후군을 가진 여성이 임신을 하면 안 되는 이유야."
"……."
"환자 본인의 목숨과 아이의 목숨을 둘 다 잃게 될 확률이 어마어마하게 높으니까."
딸깍―
송유주는 목이 마른 듯 캔 음료를 땄다.
언제나 겨울철 나무처럼 메마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약간 감정적이다.
나 역시 차가워진 머리로 듣고 있지만, 가슴속은 뜨겁게 동요하고 있다.
"근데 저는 이해가 안 가는 게…… 환자분 지인도 듣는데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요."
안경식 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임신을 꼭 했어야 했을까요?"
"……."
우리 사이에 침묵이 이어지자, 안경식은 허둥대며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위험한 임신이면 애초에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싶고…… 만약 실수로 임신을 했더라도 안타깝지만 중단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해서……."
송유주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안경 말이 맞아. 아이젠멩거 임산부에게는 보통 임신을 하지 않기를 권해."
"그렇다면……."
"아마 두 가지 중 하나겠지."
송유주는 건조해진 말투로 덧붙였다.
"너무 늦게 알았거나, 혹은 환자 본인이 강행하기를 원했거나."
강행이라.
만약 그랬더라도 전혀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노을 누나는, 백번을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기 때문이다.
* * *
11년 전.
나는 노을 누나에게 과외를 받던 날들을 기억한다.
지금은 물에 번진 수채화처럼 흐릿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이지만, 몇몇 날들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신선한 씨."
따악!
노을 누나는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쳤다.
그날은 처음 과외를 시작하는 날이었고, 교복 차림의 나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악."
"집중 안 할 거야?"
"성적 안 나왔다고 때리실 건 없잖아요."
"누가 성적 때문에 그래? 과외 선생님 앞에 두고 첫날부터 울상 지으면서 멍 때리고 있으니까 그러지."
우리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는 시험지가 수북이 놓여 있었다.
첫 모의고사 성적.
결과는 처참했다.
의대에 가고 싶다는 꿈과는 달리,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온 것이다.
"벌써 포기할 거야?"
"그건 아니고요."
"참고로 난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1년간 너 어떻게든 가르칠 테니까 너도 잘 따라와야 돼."
노을 누나는 빙긋 웃더니, 이번에는 나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언어는 생각보다 점수가 훨씬 잘 나왔잖아. 이건 좀 희망적이지 않니?"
지금은 국어 영역이라고 이름이 바뀐 언어 영역.
그나마 다행이랄까.
나는 책 읽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었고, 그 덕에 언어 영역은 제법 점수가 잘 나오고 있었다.
"글 읽는 건 좋아해서요."
"내가 선물로 준 책은 읽어 봤어?"
"네, 하루 만에 다 봤어요."
"어땠어?"
오래된 베스트셀러 표지에는 한 순례자가 길을 걷고 있고, 그 머리 위에 찬란하게 달이 빛나고 있었다.
"저는 별로였어요. 메시지가 공감이 하나도 안 되던데요?"
나는 뒤로 기대며 삐딱하게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나는 나이에 걸맞게 시니컬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가 소망을 들어준다>는 소설 속 문구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고 누가 도와줘요? 너무 허황된 얘기인 것 같아요."
"선한아, 중요한 게 그게 아니야. 삶에서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지."
"……."
"너도 뭔가를 간절하게 이루고, 찾아내고 싶은 거잖아. 그래서 나한테 공부 배우겠다 한 거지?"
말문이 막혔다.
노을 누나를 보면, 마치 해를 보는 것처럼 눈부셨다.
방황하던 시절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그늘이 환하게 걷힐 만큼.
"자, 망한 시험에서 얼마나 많은 걸 배울 수 있는지 가르쳐 줄게. 오답 노트 펼치자!"
"넵."
나는 군말 없이 대답한 뒤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공부에 집중했다.
희한했다.
일종의 긍정적인 전염이라고 해야 할까?
노을 누나는 체력도 약하면서 집념 하나만큼은 대단했고, 항상 심지가 곧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나도 이따금씩 막연하게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바라면, 때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 *
"……."
쉬이익―
벽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는 산소줄을 통해 산소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노을 누나의 머리카락은 산발이고,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푸른 기운이 돈다.
나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녀의 상태를 체크했다.
‘이 정도 세츄레이션(saturation, 산소포화도)에서 그래도 잘 버티고 계시는구나. 심박수도 이 정도면 많이 빠르지 않고…….’
입원 이틀째.
나는 자주 노을 누나의 병실을 방문했다.
인턴인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혹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이젠 내가 도움을 주고 싶어.’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너무 어렸던 탓에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러니,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조금이라도 노을 누나의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길을.
"멋있네."
문득 고개를 돌리자, 노을 누나가 언제 잠에서 깼는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요?"
"너 의사 옷 입은 거. 잘 어울린다고."
노을 누나는 빙긋 웃었다.
왠지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나는 삐뚤게 대꾸했다.
"누나는 환자복 입은 거 안 어울려요. 갑자기 이렇게 아파서 찾아오는 게 어딨어요?"
그렇게 말하는 내 말투가 마치 10대 소년처럼 들려서 놀랐다.
오래된 관계라는 게 그렇다.
노을 누나를 만나니, 마치 그때의 나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동안 10년의 시간이 없어진 것처럼.
"……책은 여전히 좋아하시나 보네요."
나는 헛기침을 하며, 베드 머리맡에 놓여 있는 책을 가리키며 말을 돌렸다.
"우리 남편도 출판사에서 만났어."
"그랬어요?"
"응. 나 번역 일 하잖아……."
그 뒤로도 노을 누나는 그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묻고 싶다.
이 임신, 왜 했냐고.
이렇게 위험한 줄 알면서도 굳이 목숨을 걸 필요가 있었냐고.
‘안경 선생님 말대로, 두 사람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임신을 중단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임신중절 자체는 뜨거운 감자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논쟁이 계속되며 제도가 바뀌는 중이니까.
어쨌거나 현재의 모자보건법만 보아도, 인공임신중절수술의 몇 가지 허용조건을 뚜렷하게 명시하고 있다.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즉, 노을 누나는 명백히 임신을 중단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선한이 너, 무슨 생각 하는지 맞혀 볼까?"
"예?"
"왜 이렇게 위험한 임신을 결정했을까, 그런 생각 하고 있지?"
참 눈치가 빠르다.
내 기색만 보고도 어렴풋이 알아챈 모양이다.
노을 누나는 베개를 고쳐 베고는 숨을 몰아쉬더니 느릿하게 말했다.
"예전 병원에서 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24주였어."
"24주요? 그 정도면 숨이 많이 차셨을 텐데."
"응. 원래 내가 몸이 좀 약하니까. 임신하면 다 그런 줄 알았지……. 동네 작은 산부인과에 다녔었는데 거기서도 그 전에는 별 얘기가 없었어."
초기라면 임신 중단이 유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24주가 넘어간 시점.
이때에는 아기를 지우는 것 자체도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중단하든 계속하든, 둘 모두 산모와 아기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연국대병원에 오기 전 다른 대학병원에서, 노을 누나는 임신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어차피 일찍 알았어도 안 지웠을 거잖아요, 누나는 한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니까."
내 핀잔에 노을 누나는 말없이 웃었다.
……나로서는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내가 못 보던 10년 동안, 이 사람은 어떤 일을 겪었고 얼마나 아이를 원했을지.
그걸 내 마음대로 짐작하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말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쉬어요."
나는 노을 누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모니터를 힐긋 바라보았다.
모니터에서는 노을 누나의 심박수에 맞추어 산소수치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파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수치는 익숙한 숫자가 아니었다.
‘잠깐…… 좀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