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해피 버스데이(9)
<사망률 50퍼센트>.
송유주 선생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담담하게 사실을 이야기한 것뿐이겠지만, 내게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 컸다.
"혹시…… 조금만 더 자세히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내 부탁에 송유주 선생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힐긋 보더니 말했다.
"지금은 수술방 들어가야 돼서 시간이 없고. 오늘 나 당직이니까 더 알고 싶으면 당직실로 찾아오든가."
"예, 감사합니다."
"그래."
지잉―
송유주 선생은 곧바로 산부인과를 나섰다.
언제나처럼 별 감정 없이, 바쁜 걸음으로 다음 일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이다.
반면 나는 냉정해지기가 힘들었다.
"……."
나는 스테이션에 걸터앉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노을 누나의 차트가 덩그러니 띄워져 있다.
‘아이젠멩거 신드롬……. 근데 임신 중 사망률이 50%라고?’
선천성 심질환(congenital heart disease) 파트.
소아과와 흉부외과에 걸쳐 있는 이 파트는, 의대생들이 6년 동안 배우는 내용 중에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이다.
복잡한 심장의 기형은 무수히 많았으며, 질환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질환의 이해도 쉽지 않았는데, 다양한 수술적 치료 방법은 더욱 복잡했다.
오죽하면, 시험기간에 선천성 심기형 파트는 과감하게 버리고 다른 파트에 집중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의사국가고시에서도 선천성 심기형은 가장 간단한 몇 개의 질환만 출제된다.
깊이 파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맞힐 그런 어려운 분야니까.
하지만.
노을 누나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제 아이젠멩거 신드롬은 내가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만 하는 질환이 되었다.
차트에 적힌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치 무게를 가진 것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목숨을 걸고 임신이라니…….’
송유주 선생님의 차가운 말투로 들으니 더욱 내 가슴속에 날카롭게 다가왔다.
"인턴 쌤, 3호실에 임유진 환자 에피듀랄(epidural, 척추마취) 있어요."
"아, 네."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자.’
나는 의사다.
개인적인 일로 본연의 업무에 소홀하면 안 된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들이 많으니까.
‘일단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리고 질환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야.’
내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워지고 있었다.
* * *
병동에 저녁이 내려앉았다.
나는 한결 가라앉은 마음으로 흉부외과로 향했다.
"어어?"
띠잉―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맞은편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야, 선한 쌤! 오랜만에 보네. 웬일이야?"
두꺼운 안경을 쓴 안경식 선생님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흉부외과 당직실을 처음 방문할 때도 만난 적이 있었지.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달은 흉부외과 아니지 않나? 저번처럼 또 뭐가 궁금해서 올라온 건 아니겠지 설마?"
"송유주 선생님이 오늘 당직이시라 잠시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요."
"오늘도? 하하, 열정이 대단하네. 나는 왜 인턴 때 선한 쌤처럼 열심히 안 했을까?"
안경식 선생은 안경을 추스르며 웃은 뒤 나와 함께 당직실로 향했다.
"근데 선한 쌤은 몇 살이야?"
"만으로 스물일곱입니다."
"어? 만으로? 그러면 한국 나이로……."
순간 안경식 선생이 당황한다.
나는 빙긋 웃었다.
"삼수했어요."
"어…… 어려 보였는데 나보다 나이 많구나…… 인턴이라고 반말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어, 그, 그럴까…… 요?"
얼굴이 빨개진 채 한참 헤매는 레지던트 1년 차, 안경식 선생이었다.
"자, 들어와…… 요?"
안경식 선생이 어색한 말투로 문을 열었다.
끼익―
두 번째 방문이다.
나는 흉부외과 당직실에 들어서며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선생님,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일단 다 들고 와 봤습니다."
부스스―
당직실 소파에 파묻혀 있던 송유주 선생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편의점에서 집어 온 군것질거리들을 뒤적거리더니 사탕을 하나 꺼낸다.
"아까 그 환자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던가?"
"예.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잠깐, 당 좀 채우고."
와득, 와득.
송유주 선생은 잠시 봉지를 뒤적거리더니 내가 사 온 사탕을 입 안에서 분쇄했다.
그러더니 잠이 깬 듯,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안경, 종이 한 장 가져와 봐."
"넵!"
안경식 선생의 잽싼 행동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펜도."
"여깄습니다."
차악!
안경식 선생이 종이를, 내가 펜을 재빠르게 전달한다.
"그런데 선배님, 오늘은 뭐 설명하시려고요?"
"어덜트(adult, 성인) PDA, 그로 인한 아이젠멩거 신드롬. 나 대신 네가 설명할래?"
"앗, 저는 자신이 없어서……."
"쯧."
송유주 선생은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색깔이 여러 개 들어 있는 펜을 집어 들더니 거침없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슥, 슥―
곧 종이 위에 심장의 단면이 완성된다.
「우심방 / 좌심방
우심실 / 좌심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빗금 쳐 채운다.
"이 색깔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지?"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색 = 동맥혈, 산소 있는 피 (좌)
―파란색 = 정맥혈, 산소 없는 피 (우)
"우리 몸을 돌던 피는 일단 심장으로 들어와. 그러고는 폐에서 산소를 받고, 다시 심장을 거쳐 빠져나가지."
빨간색은 산소를 먹고 온몸으로 빠져나가는 피, 파란색은 산소 전달을 마치고 되돌아오는 피다.
당연히 이 둘은 제멋대로 뒤섞이면 안 된다.
"그런데, 여기에 <통로>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
찌익―
송유주 선생이 펜으로 심장 안에 하나의 통로를 만들었다.
그러자 빨간색과 파란색 사이에 불길한 길이 하나 만들어진다.
"이걸 PDA라고 해."
PDA.
동맥관 개존증(Patent Ductus Arteriosus)의 줄임말.
말 그대로, <동맥관>이라는 <통로>가 열려 있는 채로 존재하는 증상을 가리킨다.
"선배님! 이 동맥관은 원래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막히는 거죠?"
"맞아."
안경식이 자신 있게 끼어들자 송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생 전에는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하고, 출생 직후에는 반드시 닫혀야 하지."
사실 이 동맥관은 태아에게 꼭 필요한 혈관이다.
그런데 엄마의 배 속에서 나온 후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자연스레 막혀야 하거늘…….
간혹 이게 안 막히고 그대로 뚫려 있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통로>를 이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산소 있는 피와 산소 없는 피가 계속 섞이게 됩니다."
"그래. 온몸에 산소 없는 피가 막 전달되겠지?"
이어지는 송유주 선생의 설명은 다소 복잡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기 땐?
폐 저항이 낮다.
그래서, <통로>의 갈림길에서 뒤섞인 피가 폐로 들어간다. 좌심실이 짜 주는 강한 힘으로!
그러자, 폐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폐: 야, 심장아! 왜 그러는 거야?>
<심장 : 미안해 ㅠㅠ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닌데…….>
<폐 : 아우, 힘들어 죽겠네!>
폐는 변하기 시작한다.
좌심실의 강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 혈관을 두껍게 만들면서 힘을 키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원래 폐는 숨죽이고 약한 사람처럼 지내야 우리 몸에 좋은데, 의도치 않게 근육을 키운다.
그렇게 몇 년 후.
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좌심실의 강한 압력에 노출되면서, 폐는 근육 괴물이 되어 있다.
심장은 이 근육 괴물에게 더 이상 피를 보내기에 힘이 벅차다.
<통로>의 갈림길.
폐를 향했던 뒤섞인 피가, 이제는 온몸으로 향하게 된다. 폐를 거치지도 않고 말이다.
마치 도로의 신호등 설계가 잘못되어 연쇄추돌사고로 이어지는 것처럼, 공포의 연쇄작용이 펼쳐진다.
"보통 이 자각증상이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나이쯤 일어나."
10~20대.
내가 노을 누나와 가까이 지내던 바로 그 시절이다.
……그러고 보면 노을 누나는 운동을 참 싫어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가 반쯤 남아 있어도 느릿하게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어쩌다 뛰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숨이 금방 차곤 했었지.
그때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감정이 올라온다.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건 물론이고, 심한 경우에는 갑자기 사망하기도 해."
"그냥 운동을 싫어하는 건 줄 알았는데……."
"……?"
내 혼잣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 물음표가 뜬다.
아 참, 그러고 보니 환자와 내 관계를 안 말했군.
"사실 환자와 예전에 잘 알던 사이였는데, 병원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뭐?"
"어쩌다 보니……."
"와, 병원에서 아는 환자를 만날 확률이 몇 퍼센트야? 정말 선한 쌤은 희한한 일은 혼자 다 겪네."
"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송유주는 안경식의 말을 끊고 내게 물었다.
"기억나는 대로 얘기해 봐."
딸깍, 딸깍.
송유주는 펜을 다시 들었다.
나를 통해 일종의 히스토리 테이킹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동안 내 말을 메모하더니, 펜으로 입술을 두드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20대 초반까지도 청색증은 심하지 않았다라…… 어렸을 때 자각증상이 약했을 수도 있어."
시한폭탄이 터지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령 남자 환자의 경우, 군대 가서 훈련을 다 받아도 멀쩡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폭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 터지냐의 문제지, 영원히 터지지 않을 수는 없어. 그 환자의 경우엔 지금에야 드러난 거야."
오랫동안 산소 없는 피가 섞여서 온몸으로 가는데 건강이 멀쩡해질 리가 없다.
호흡곤란.
청색증.
적혈구 수치 상승.
그리고 그에 따른 혈전증.
등등.
여러 가지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쯤 되면, 폐는 이미 망가진 상태라서 어떤 약을 써도 돌이킬 수가 없다.
해결하는 방법은 오로지 다른 사람의 폐를 이식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아이젠멩거 증후군(Eisenmenger's syndrome)이야."
송유주의 설명이 끝났다.
……나는 침묵을 지켰다.
생각할수록 안타까웠다. 이건 아기 때 조기진단으로 대부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발견해서 수술로 막기만 했어도…….’
시간을 돌리고 싶다.
하지만 내가 신이 아닌 이상 그럴 순 없다.
뒤늦게라도 최선의 대책을 세우는 수밖에.
"선생님, 지금이라도 이 <통로>를 막는 방법은요?"
"그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면 참 좋겠지."
송유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폐가 망가졌기 때문에 소용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이제 와서 막아 버리면 오히려 기껏 잡아 왔던 온몸의 밸런스가 깨질 수 있다고 한다.
"……뒤늦게 함부로 건드리면 오히려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
휘릭, 휘릭.
송유주 선생은 펜을 정신없이 돌렸다.
처음 보는 버릇이었다.
언제나 냉정한 사람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꽤 머리가 복잡한 듯했다.
"수술이 언제나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야.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환자는 일상생활 잘하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예."
"그런데 무엇보다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송유주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
나와 안경식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송유주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착잡한 감정이 올라와 있었다.
송유주 선생님이 이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