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Dr. 신선한 미래를 보는 의사-145화 (145/241)

#145 해피 버스데이(4)

제왕절개(帝王切開, Caesarean section).

수술로 배를 열어 아기를 꺼내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복벽과 자궁벽을 절개하여 태아를 분만하는 이 방법을, 줄여서 씨섹이라 부른다.

이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의 황제인 카이사르가 이 방법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혹은 라틴어로 ‘자르다’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전에 제왕절개를 했거나

―난산으로 정상적인 분만이 어려울 때

―아이가 머리부터가 아닌 엉덩이 쪽부터 나오는 둔위일 때 ―태아의 상태가 안 좋을 때 등등…….

제왕절개가 이루어지는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최근에는 산모가 원하여 시행되는 경우도 많다.

전 세계 4분의 1 이상의 분만이 제왕절개로 시행되며, 그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은 무조건 해야 하는 경우겠지!’

이예지 환자.

전자간증(preeclampsia, 임신중독증)으로 콩팥 수치가 급격하게 나빠져 응급으로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 저 아무렇지도 않은데…… 더 있다가 꺼내면 안 될까요?"

고위험 입원실로 들어가자, 누워 있는 환자가 주치의 선생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현재 환자의 주수는 34주.

임신 기간을 삼분기(trimester)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초기 : 첫 14주

―중기 : 15주 ~ 28주

―후기 : 29주 ~ 출산

보통 분만주수는 39―40주이고, 37주 이전의 출산은 조산이라고 부른다.

배 속의 태아는 임신주수를 채우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게 되면, 불완전한 존재로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그러니, 이른 시기에 아기를 꺼내는 것이 산모의 입장에서는 걱정될 만도 하다.

하지만 주치의인 유정남 선생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더 늦추면 콩팥이 망가져서, 평생 투석하셔야 될 수도 있어요. 지금 교수님도 오고 계시고, 어서 수술실로 가셔야 합니다."

물론 아기는 엄마 배 속에 오래 있으면 좋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모의 몸이 망가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이의 생명을 둘 다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바로 산과의 최종 목표다.

"이예지 환자분, 수술실로 가실게요!"

간호사의 말이 들린다.

곧 카인(car―in)이 진행된다.

그때 환자의 옆을 줄곧 지키고 있던 남편이 다가와 말한다.

"저, 선생님들. 혹시 저도 수술실에 들어가도……."

"안 됩니다."

남편의 요청에 간호사 선생님은 딱 잘라 거절했다.

보통 씨섹이 아닌 응급 수술이다.

조금이라도 수술을 딜레이시킬 수 있는 요소는 전부 배제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안전과 생명이 최우선이다.

지잉―

나는 환자가 누워 있는 베드를 끌고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5일간 입원해 있던 환자이기에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

입술은 파리하고, 배는 커다랗게 부풀어 있다.

하지만 정작 환자는 자신의 상태보다 이제 곧 태어날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

수술베드 위에서 환자는 떨고 있다.

수술실이 춥기 때문이 반.

그리고, 걱정되고 무서운 마음이 반일 것이다.

평화로운 클래식 음악이 틀어져 있는데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표정이다.

"자, 살짝 옆으로 돌아 누우셔서 배꼽 보고 웅크려 보실게요. 제가 옆에서 잡고 있을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나는 마취과 선생님을 도왔다.

제왕절개는 보통 하반신 마취로 진행한다.

이때 환자의 포지션을 잡고 마취보조를 하는 것 또한 인턴의 역할이다.

곧 옆으로 누워 등을 구부린 환자의 마취가 끝났고, 수술을 위한 포지션을 잡았다.

소독까지 마치자, 곧 교수님이 수술복을 입고 들어왔다.

"선생님……!"

낯익은 교수님이 보이자, 환자는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이 없다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보니 마음이 다소 풀린 모양이다.

"우리 아기 지금 꺼내도 괜찮을까요? 아직 34주밖에 안 됐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울먹인다.

하지만 교수님은 능숙한 말투로 환자를 안심시켰다.

"34주면 괜찮아요, 빠른 편 아니야. 잘해 드릴 테니 걱정 말아요."

환자의 병명은 전자간증.

흔히 ‘임신중독’이라 불린다.

고혈압과 함께 콩팥이 망가지는 임신 중 고혈압성 질환의 하나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악화 시 콩팥의 손상은 물론 경련이나 대발작(grand mal)까지 동반할 수 있다.

치료는?

아이를 분만하는 것이다!

산모의 건강을 위하여 40주를 채우지 못했더라도 수술을 통해 출산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메스."

곧 수술이 시작되었다.

스윽―

교수가 메스를 들고 복부 아래쪽의 절개를 시작한다.

부인과 수술에서는 수직방향(vertical) 절개였는데, 이번에는 수평방향(transverse) 절개다.

피부를 가로로 길게 자르자, 피가 흘러나온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가려져 있기에 환자 본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보비(bovie, 전기칼)."

치이익―

교수님은 보비의 버튼을 누르며 계속 배를 가른다.

지방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이거 잡고, 아미(army)!"

"예."

나는 교수님이 쥐여 주는 포셉을 한 손에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Army―navy retractor(조직을 당기는 수술기구)를 당기면서 바삐 움직였다.

이제 이 아미라는 기구는 내 손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익숙했다.

‘부인과에서도 2주 동안 맨날 쥐고 있던 게 이거니까!’

내가 확보한 시야 속에서,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은 더욱 속도를 냈다.

곧 복부 근육 레이어가 박리되었고, 그 뒤로 복막이 열렸다.

그러자 분홍빛과 자줏빛이 섞여 있는, 산모의 자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교수님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칼을 든 지 몇 초나 지났을까?

벌써 자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민낯을 드러낸 자궁은 생각보다 단단해 보이는 질감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아미보다 조금 더 큰 기구를 들고 교수님의 시야를 밝혔다.

필드는 바쁘게 돌아갔다.

교수님은 어느새 메스를 다시 쥐고, 자궁에 얇게 칼을 그었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간호사에게 쥐고 있던 메스를 다시 건네며 외친다.

"메이요 씨져!"

메이요 씨져(Mayo scissor).

날카로운 가위 형태의 수술기구다.

교수님은 자궁을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스피디한 진행과는 다르게, 교수님의 손은 섬세했다.

혹시라도 자궁 속에 있는 태아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바로 그때,

꿀럭!

양수가 터져 나왔다.

양수(amniotic fluid).

자궁 속에서 태아와 함께 있던, 노랗고 약간의 초록빛을 띠는 진한 액체.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는 이 액체는 태아가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외부 충격으로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나는 곧바로 흘러나오는 양수를 석션(suction) 했다.

그러자 내 앞에 보라색 빛깔의 꼬불꼬불 꼬여 있는 탯줄이 보였다.

교수님은 탯줄의 위치를 한쪽 방향으로 하더니, 자궁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때, 내 눈이 커졌다.

‘어? 저건 뭐지?’

순간 알아보지 못했다.

갈라진 환자의 배 사이로, 듬성듬성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보였다.

잠시 후에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기 머리구나!’

순간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아기의 머리 말고 그 자리에 뭐가 있겠어?

하지만 아무리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해도,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쑤욱―

자궁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교수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쥔 뒤 배 속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인계받은 대로, 산모의 배를 부드럽게 눌러 아기가 나오는 것을 도왔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곧, 탯줄과 함께 아기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양수에 젖어 있는 머리와 몸통, 그리고 태아의 뒤통수가 보였다.

교수의 손이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면서, 이제는 아이의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수 안에 있는 여러 물질들이 달라붙어 살색 등판이 보랏빛, 하얀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곧, 태아는 산모의 자궁에서 완전히 밖으로 나오고 교수님은 아이를 들어 올렸다.

‘……!’

난생처음 참여해 본 제왕절개 과정, 아기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응급 제왕절개가 결정된 지 1시간 30분만의 일이었다.

"0시 26분입니다."

간호사가 태어난 시각을 알려 준다.

……으아앙!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아이가 세상을 향해 첫 목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34주.

크지 않지만, 대견했다.

타악―

탯줄이 잘라진다.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도 10개씩인 것을 확인한다.

태아를 자궁에서 꺼냈으니 이제 봉합하고 수술을 끝내면 되냐고?

그렇지 않다.

자궁 속에는 태반이 남아 있다.

탯줄과 연결되어 있는 태반(placenta)은 태아와 모체의 자궁벽을 연결하는 기관이다.

이 태반을 통해서 전달되는 혈액을 통해, 태아는 산모로부터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제 탯줄을 끊었으니 태아는 스스로 호흡하고 먹으면서 생존해야만 한다.

그럼 이제 필요 없는 태반은?

그렇다.

제거해 주어야 한다.

교수는 탯줄을 잡고, 배를 눌러서 태반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크다.

꿀렁―

거의 한 아름은 되어 보이는 조직이 통째로 산모의 배 속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같은 시각, 가림막 너머에서는 산모가 태아를 만나고 있었다.

"산모분, 아기 얼굴 보실게요."

배 속에서 한 몸으로 지냈던 아기가 이제는 눈앞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간호사들의 손에 의해 잘 닦인 후, 말끔한 모습을 한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마주한다.

아직 배가 열린 채 누워 있는 엄마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아기에게 첫 인사를 건넸다.

"안녕, 기특아."

당연히 아이는 대답이 없다.

아직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울고 있을 뿐이다.

산모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행복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말 그대로 <엄마 미소>였다.

짧은 만남이 끝나고, 곧 아이는 수술실 바깥 신생아실로 옮겨진다.

"아기 얼굴 보셨으니까, 이제 잠깐 재워 드릴게요."

마취과에서 산모에게 수면 마취제를 투여했고, 제왕절개 수술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교수는 마지막으로 안쪽을 확인했다.

혹시 출산 과정에서 자궁 안에 피가 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블리딩(bleeding, 출혈)은 없고…… 됐어."

출혈이 없는 것을 확인한 교수님은 자궁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맞은편에 선 레지던트 선생님이 보조를 하는 동안, 나는 석션을 하며 시야를 밝혀 주었다.

‘대단하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싶었다.

이렇게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의사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경험 중 하나가 아닐까?

다시 한번 새로운 경험과 경외감으로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 * *

약 1시간 후.

수술이 끝났다.

나는 산모를 회복실로 바로 옮겼다.

수술실 바깥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남편이 회복실까지 따라왔다.

제왕절개는 신속하고 안전하지만, 대신 수술 후부터 통증이 시작된다.

그래서 통증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하고, 이 외에도 다른 수술 후 합병증에도 주의해야만 한다.

주치의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지속적으로 케어해 주게 될 것이다.

"휴우."

나는 스테이션으로 돌아왔다.

평범한 인턴 잡을 하다가, 수술 어시스트를 서자 비로소 한 건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여운이 남네.’

그때, 같이 수술에 들어갔던 당직 레지던트 선생님이 마스크를 벗고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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